〈 101화 〉 100화 내전(2)
* * *
“저는 왜 안 된다는 건데요?”
세리아가 볼을 부풀렸다.
황궁으로 간다는 말에 그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황궁 안에서 너의 힘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다인가요?”
“그래.”
“그럼 저 여자는 왜 가는 건가요?”
세리아가 에미르를 가리켰다.
“그녀는 황궁 안에서도 싸울 수 있으니까.”
“이이익!”
세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부푼 볼이 더욱 커졌다.
“어쩔 수 없네요. 제가 세리아 씨보다 능.력.이 좋은 걸요.”
에미르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승리에 도취된, 승자의 미소였다.
저렇게도 웃을 줄 아는구나.
의외의 모습을 또 하나 보았다.
“함께 가지 못하는 네게 시킬 일이 있다.”
“뭔가요?”
불만 가득한 목소리.
꽁해 있었다.
“귀족파 귀족들을 압송하는 병사들을 유혹했으면 한다.”
“유혹……이요?”
“그래. 그대가 병사들의 움직임을 멈추는 동안, 귀족들이 도망을 칠 거다. 그동안 나는 황제와 대면을 하고 있을 테고. 나를 용의자로 지목하지 못하겠지.”
“……. 주인님은 정말 제가 그러길 원하시나요?”
“아니. 네가 다른 남자를 유혹하는 꼴은 보기 싫다.”
몇 번을 고민했다.
세리아를 실전에 보내는 것이 맞는지.
그녀의 능력이 부족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절반은 초월체인데다가.
마법에 재능도 가졌다.
실제로 나를 제압할 정도로 강하기까지.
다만 걱정되는 건.
그녀가 목적을 위해 다른 남자를 유혹한다는 것.
그 사실이. 굉장히.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러기 위해서 마법을 가르친 건 아니지만.’
“그래요?”
한참을 나와 마주보던 세리아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네요.”
“내가 진심이라는 건 어떻게 아나?”
“주인님은 거짓말을 말할 때 특유의 버릇이 나오거든요.”
“지금은 없나?”
“네!”
세리아가 웃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나는 세리아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럼 다녀오겠다. 병사들을 유혹해야 할 타이밍은 세바스찬이 알려줄 거다.”
“알겠어요.”
나는 에미르와 함께 황궁으로 향했다.
같은 마차에 올라탄 나는 에미르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온 건가?”
그녀가 혼자서 저택에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당연히 솔라리온이 그녀를 막으려고 했을 테니.
솔라리온의 기사단장 바트람은 그녀가 상대하기 버거운 기사였다.
그가 봐줬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해선 힘들었을 텐데.
그래서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에미르가 저택에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내게 숨기는 기술이라도 있나?”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저번에 세리아와 함께 몸을 섞었을 때부터 기운이 달라졌다는 건 알았지만.
아마 그 때 뭔가 얻은 걸지도.
‘나중에 확인해도 되겠지.’
본인이 말하기 싫어한다면 억지로 묻진 않을 거다.
“알았다.”
마차가 조용해졌다.
말발굽소리만이 울렸다.
쿵. 쿵. 쿵.
“밖이 소란스럽군.”
큰 진동소리에 나는 창밖을 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멀리서 들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옆에 앉은 에미르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긴장이라도 한 건가?”
“그, 그게…….”
에미르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나, 남자랑 단 둘이 마차를 탄 건 처음이라.”
“아.”
세리아의 매혹향 때문에 충동적으로 몸을 섞은 것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처녀였던 여자였다.
남자와는 거리가 있는.
오로지 나를 바라봐주었던.
거기까지 인식하자, 그녀의 부끄러움이 이해가 됐다.
그리 공격적으로 대시하던 여자가 이런 쪽에선 쑥맥이라니.
나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에미르를 보았다.
“나랑 있어서 긴장한 건가?”
“엣? 예?”
“황궁에 가는 것 때문이 아니고?”
“아……. 예…….”
에미르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붉었다.
살짝은 토라진 듯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나는 그런 에미르의 팔을 잡았다.
“모, 모리스님?”
그런 에미르의 팔을 내 가슴에 갖다 대었다.
“나도 그렇다.”
“예?”
“나도 너와 함께 마차를 탄 것 때문에 긴장했다고 말하는 거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에미르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손바닥이 내 가슴에 닿았다.
내 가슴에 손을 얹은 에미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가?”
“진심……이시네요.”
에미르는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찌 긴장하신 건가요?”
“그건 내 몸이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리아와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모리스님께선 그녀도 좋아하시는 겁니까?”
“세리아.”
아름다운 여자였다.
외모도 매력도.
이 세계에 홀로 남았을 때.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했을 때.
황제가 내게 하사한.
그 이후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게 만든 여인.
서큐버스의 자식일 줄은 몰랐지.
그녀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좋아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그녀와 몸을 섞지 않았을 거다.
그 감정에는 죄책감 또한 섞여있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것이 분명 있을 테니.
“좋아한다.”
“역시 그러시군요…….”
“그래서 내가 싫어진 건가? 그대만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포기할 사랑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런가.”
에미르가 나를 보았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첩이던 정부던 다 이해해드릴 수 있다고.”
에미르가 그녀의 팔을 잡은 내 손을 포개며 내게 몸을 기댔다.
“제가 모리스님의 첫 번째가 될 수 있다면 그만입니다.”
“어려운 문제로군.”
내가 보았던 그 어떤 마법공식보다 더.
“그럼 쉽게 만들어드릴게요.”
에미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보았다.
무슨 뜻인가.
잠시 고민하던 찰나.
그녀가 내 셔츠를 잡고 아래로 당겼다.
내 얼굴이 아래로 내려갔고.
에미르와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쿵. 쿵. 쿵.
에미르의 심장의 고동과.
두근. 두근. 두근.
내 심장의 두근거림이.
넓은 음악홀에서 퍼지는 음악처럼.
내 귀를 간지럽혔다.
세리아보다 미숙했고, 백설보다 설익었으나. 에미르만의 풋풋함이 있었다.
매혹향에 절여지지 않은, 에미르는 이렇구나.
그녀의 키스는 이렇게 깨끗했구나.
나는.
그녀의 처음을 가져간 것이구나.
아주 조금 부끄럽게도.
나는 진심으로 흥분하고 말았다.
황제와 만나는 이 중요한 순간에 말이다.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에미르와 입맞춤을 끝낸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를 안았을 거다.”
“……저도요.”
그렇게 우리는 황궁에 도착했다.
***
“에미르…….”
에미르가 나와 함께 있는 걸 본 솔라리온 공작이 몸을 떨었다.
“기어코 가문을 배신하기로 한 것이냐.”
“제 길을 찾으러 간 것뿐이에요. 아버지.”
“그 입으로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스릉.
공작이 검을 뽑았다.
“나는 가문을 배신하는 딸을 둔 적이 없다.”
그는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모리스가 바트람을 박살냈겠지만, 여기선 그러지 못할 거다.”
“아뇨. 아버지.”
에미르가 검을 뽑았다.
“바트람 경은 제가 쓰러트렸습니다.”
“뭐?”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진 눈.
“네가 어떻게?”
“예전에 저로 이해하시면 안 돼요.”
“믿을 수 없지만, 만약 정말 네가 바트람을 쓰러트린 거라면.”
우우웅.
“나도 전력으로 상대하마.”
“진심이신가요? 딸에게 정녕 검을…….”
“그런 딸은 두지 않았다 말했다.”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에미르의 검에서 분홍빛 검기가 치솟았다.
“쯧, 폐륜아가 따로없군. 자기 아비에게 검을 들이밀다니. 그렇지 않은가? 드미트리?”
“폐하께선 더하셨습니다.”
솔라리온 부녀가 검을 맞대는 동안, 나는 황제에게 다가갔다.
“아주 똘똘해. 그리고 대범해. 감히 마법사 주제에 황궁까지 쳐들어오다니. 네놈의 무덤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건가?”
“물론입니다. 폐하께선 여기서 저를 죽일 수 없을 겁니다.”
나는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분노를.
그리고 배신감을.
내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하고 싶은 말은 뭐지?”
“귀족들을 잡아가는 걸 그만두십시오.”
“그들이 지은 죄가 있는 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정녕 피를 보고 싶으신 겁니까?”
“반역인가?”
“신하된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충언입니다.”
“하!”
황제가 외쳤다.
“네놈이 그 건방진 입을 아직도 놀리는구나.”
“폐하께서 계속 하신다면, 저 역시 검을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있나보군?”
“물론입니다.”
“어쩔 셈이지?”
“황후 폐하를 증인으로 삼은 정식 재판을 열 생각입니다.”
“크크크크킄. 크하하하하!”
내 말에 황제가 황궁이 떠나가라 웃었다.
“네놈이 납치한 그 황후 말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네놈들이 납치해 죽인 것이 아니냐!”
“안전한 곳에 계십니다. 그저 황제 폐하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지요.”
“건방지다. 건방져.”
황제가 낄낄거렸다.
“솔라리온 공작,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쾅! 쾅! 쾅!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제국의 기강이 무너졌군. 일개 공작이 황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다니.”
뭐가 좋은지 낄낄거렸다.
이미 이 황궁은 수많은 것들로 뒤틀린 상태였다.
황제는 물론이고.
마나가 뒤틀려 망가진 지금 상황까지 모두.
황제가 이렇게 된 건.
‘균열이 나고 망가진 이 환경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네놈이 무슨 자신감으로 그리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좋다. 네 말대로 재판을 열지. 단!”
황제가 검지를 폈다.
“조건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황후가 이곳, 황궁에 돌아와야 한다. 그게 조건이야. 그걸 지키지 않는다면 재판은 없다.”
“좋습니다. 재판을 위해 황후 폐하를 모시고 오지요.”
내 말에 황제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였다.
“폐하! 급보입니다!”
대전의 문을 열고 한 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 그것이…….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짐이 기분이 좋으니, 용서하마. 말하라.”
“귀, 귀족들을 압송하러 갔던 병력들이…….”
병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병력들이 뭐?”
“전부 전멸했습니다.”
“……. 뭐? 누구한테?”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전부 웃으면서 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들 사정한 상태였다고.”
“귀족들은 어떻게 됐지?”
“전부……. 도망쳤습니다.”
순간 황제의 눈이 나에게 향했다.
“모리스 드미트리이이이!!!!”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여기에 있습니다.”
“솔라리온 공작! 당장 저놈을 체포해! 반역의 주동자다!”
공작이 몸을 돌려 내게 검을 뻗었다.
빠르나 패도적인 동작.
딱 하나 흠이 있다면.
그의 아랫도리가 발딱 서 있다는 것.
‘저것 때문에 에미르가 바트람을 이겼던 거군.’
나는 배리어를 시전해 공격을 막았다.
저번에 녹음파일을 보였던 것과 똑같은 물건이었다.
마나를 저장해 마법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아티팩트.
공작을 이기진 못해도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다.
“반역이라니 이해할 수 없군요. 저는 황제폐하와 같이 있지 않았습니까?”
“네 이놈!”
“솔라리온 공작님도 섣부른 공격은 그만하시죠. 자식을 위한 훈육도 좋지만, 진검은 너무 과합니다.”
나는 여기저기 옅은 상처가 난 에미르를 한 팔로 안았다.
“황후 폐하를 모시고 다시 돌아오지요. 아, 그럴 필요도 없으려나?”
압송당할 귀족들은 전부 도망쳤으니 말이다.
“조만간 전장에서 뵙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