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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00화 (100/174)

〈 100화 〉 99화 시작된 내전

* * *

황제는 짜증이 났다.

화가 났다.

그 빌어먹을 모리스에게 농락을 당하지 않았던가.

황후가 있는 곳이라 생각했던 곳에 갔던 근위대장은 연락이 끊겼다.

그건 아마.

‘모리스에게 당했다는 뜻이겠지.’

까드득!

당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까지 잃었다.

­짜증나지 않아?

­그 놈이 너를 얕잡아 본 거잖아.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건방진 놈이긴 하지.”

­너는 이 제국의 주인이야. 뭐든 네 맘대로 할 수 있는.

­언제까지 그놈이 멋대로 하는 짓거리를 보고만 있을 거야?

귀가 아닌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

­어차피 너도 그놈이 싫었잖아. 감히 제국의 지배자인 너를 배신하고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는 그 마법사가 짜증나지 않아?

“짜증나지.”

황제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대답하듯 말했다.

­모리스는 물론이고 세리아와 세실리아 그년들을 전부 죽이고 싶잖아. 감히 황제의 권력이 도전하는 그년놈들을 말이야.

“죽이고 싶지.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목을 분질러 버리고 싶다고.”

­그럼 죽여. 군사를 일으켜서 놈의 저택을 찾아가.

­다 죽여보자고.

­피가 이리저리 넘치면 재밌을 거야.

“흐, 흐흐. 그렇겠지? 역시.”

광기 넘치는 웃음소리가 황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방에 집결된 병력을 전부 수도로 복귀시키라고 전해라.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발견하는 귀족파들의 영지는 모두 불태우라고도 전해!”

“폐하!”

황제의 말에 법무대신이 입을 열었다.

제국 내에서도 충언을 아끼지 않기로 유명한 호팔 백작이었다.

“그 명만큼은 거두어주시옵소서! 제국의 병사로 제국의 귀족을 공격하다니요.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뭐?”

“지금 귀족파 귀족들을 치는 것은 다시 한 번 내전을 부르는 일이옵니다! 내전이 끝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아직 지방에는 반군들이 들끓고 있는데 어찌 다시 전쟁을 벌이시려는 것이옵니까!”

“그래서 하지 못하겠다?”

“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무릎을 꿇은 호팔 백작이 하얀 수염을 흔들며 외쳤다.

그를 보는 황제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감히 황제에게 도전하는 놈이잖아. 죽여.

내 명령을 거부해?

제국의 황제는 이 대륙을 지배하는 남자다.

어찌 감히 내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이냐!

내가 하라면 하는 것이고.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것이다!

“네놈이 짐을 능멸하는구나.”

“폐하! 이는 안 될 말씀이옵니다! 신은 죽어서라도 폐하의 뜻을 막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어.”

스릉.

검을 뽑은 황제가 일어났다.

호팔 백작은 굽힌 무릎을 펴지 않고 그 자리에서 황제를 노려보았다.

“정녕 폭군이 되고 싶으신 겁니까?”

“폭군? 나는 성군이 되기 위해 네놈을 죽이는 것이다.”

“세상 어떤 황제도 제손으로 신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가 최초가 되겠네.”

크크큭.

황제는 자신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나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모두 내 적이다.

나는 내 적을 모두 죽일 것이다.

내 말이 곧 법이며 내 뜻이 곧 제국의 뜻이다.

서걱!

황제는 호팔 백작의 목을 내려쳤다.

부릅뜬 백작의 목이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잘린 목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며 대전을 더럽혔다.

“자, 다른 놈은 없나?”

대전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거봐. 내 말을 들으니까 조용해졌잖아. 네놈은 황제야. 그 누구도 너의 권한을 넘볼 수 없어.

피식.

만족스러웠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자신이 제국의 황제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폐하.”

솔라리온 공작이었다.

“딸내미가 모리스와 노닥거려서 자네도 정신이 나간 건가? 감히 황제의 말에 토를 달다니.”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생각을 해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무슨 말이지?”

“병력이 여기까지 도달하기 전에 모리스가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폐하께서 모리스에게 당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모리스가 아닌 주위 귀족들부터 잡으시지요. 적당한 죄를 매겨서 잡는다면 귀족들도 저항할 수 없을 겁니다. 그건 모리스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만약 움직인다면.”

“움직인다면?”

“반역죄로 잡으면 될 겁니다. 명분은 저희에게 있을 테니까요.”

“호오?”

“모리스 드미트리가 서둘러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면 그들 역시 빈틈을 보일 것입니다.”

“크크크, 역시 공작이야. 훌륭해.”

“과찬이십니다.”

고개를 숙인 솔라리온 공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총명했던 황제였다.

원래라면 그가 먼저 생각했을 전략이었을 거다.

아니.

애당초 내전의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렸겠지.

‘아아, 어쩌다 저리 되신 건가…….’

황제가 저리 나온 이상, 돌이킬 수가 없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이익을 낸다.

그는 드래곤의 뒤에 올라탄 기분을 느꼈다.

***

“큰일났습니다.”

“근위대가 움직인다는 거?”

내 말에 로널드 백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움직이지 않으십니까! 이러다간 수도에 있는 귀족들이 모두 잡혀갈 판입니다.”

“그러겠지. 허나 내가 움직일 수는 없다.”

“왜 그렇습니까?”

“부정축재, 뇌물, 기타 범죄들. 지금까지 관례로 넘어가고 있던 걸 죄목으로 들어 잡고 있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

로널드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황제가 무작위로 잡아대는 것이 아니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움직여 근위대를 막는다면.

황제는 반역죄라며 나를 압박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당연히 마법부도 내게 등을 돌릴 것이고, 황제의 아군이 늘어나는 걸 뜻했다.

‘영리해.’

귀찮게 말이다.

솔라리온의 생각일 거다.

상태가 이상해진 황제가 생각할 리는 없을 테니까.

“내 손발을 자르려는 심산이로군.”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지.”

반격은 어려워도.

발버둥은 쳐야지 않겠는가.

“황궁에 가야겠군.”

“자살행위입니다! 마법사가 황궁이라니요! 지금 솔라리온 공작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 가시려는 겁니까?”

“혼자 가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면 누구와?”

“에미르 솔라리온과 함께 갈 생각이다.”

“함께 가려고 할까요? 그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물론이다.”

내가 데리고 갈 검사 중에선 가장 믿음직하고 동시에.

솔라리온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

이미 내전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쓸 수 있는 카드라면 뭐든지 써야겠지.

나는 떠나기 전 로널드에게 물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내전에서 이긴다면 황제를 어떻게 하는게 좋겠나?”

“무슨 대답을 원하십니까?”

“솔직한 대답. 귀족파를 이끼는 귀족이 아닌, 제국의 귀족 입장에서 말해주게.”

잠시 고민하던 로널드 백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폐위가 답이라고 봅니다.”

“힘든 길을 걷겠군.”

우리 모두 말이지.

***

에미르는 자신의 앞을 막은 바트람을 보았다.

“바트람 경, 이게 무슨 짓이죠?”

“아가씨를 저택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는 가주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셨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택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

에미르의 눈이 차갑게 가라 앉았다.

아버지가 그녀를 막은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제가 드미트리가에 가기 때문인가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역시.

지금까지 가는 걸 막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 막는다는 건 역시.

‘내전.’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된다는 뜻.

그녀가 모리스에게 잡히는 걸 막으시려는 거 같지만.

여기서 멈출 그녀가 아니었다.

“당장 비키세요. 전 가야겠어요.”

“아가씨께서 듣지 않을 거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오늘은 안 될 겁니다.”

스릉.

바트람이 검을 뽑았다.

“솔라리온은 검으로 말하는 가문. 이곳을 지나시려면 저를 꺾고 가십쇼.”

“솔라리온에게 검을 뽑는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는 건가요?”

“가주님께 허락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가시께서 다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바트람은 자신했다.

그가 아는 대로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검을 뽑으십시오.”

“좋아요. 후회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스릉.

에미르도 검을 뽑았다.

우우웅.

에미르가 먼저 검기를 일으켰다.

그녀의 검 끝에서 분홍빛 검기가 흘러나왔다.

분홍빛 검기라니?

처음 보는 종류의 색이었다.

“본격적이시군요.”

“그럼요. 한 번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지요.”

“알겠습니다.”

바트람 역시 검기를 뽑았다.

푸른 검기가 그의 검에 감돌았다.

그는 자세를 잡고 에미르의 공격을 받아쳤다.

깡!

검기와 검기가 마주치며 불꽃이 튀었다.

강렬한 기운이 서로 부딪쳤다.

‘성장하셨다.’

검을 처음 맞댄 순간 깨달았다.

검기의 농도가 이전보다 훨씬 짙어졌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뭐지?’

바트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변화였다.

언젠가 겪어본 적이 있었다.

과거 혈기가 넘쳤던 시절.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용병으로 위장해서 대륙을 떠돌던 때.

기사의 관습을 잊고 자유롭게 활동하던 그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유혹받았을 때.

세차게 두근거렸던 심장.

입안이 쩍쩍 말랐으며 손에는 식은땀이 났다.

어쩔 줄 몰랐던 그 때의 감각을.

검을 뽑은 지금, 느끼고 있었다.

‘이건 대체?’

소드마스터인 바트람의 감정을 조절할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그는 에미르를 보았다.

분명 그녀에게서 나오는 기운이었다.

그의 눈이 분홍빛으로 빛나는 에미르의 검기에 향했다.

저거다.

저 검기가 무슨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거다.

사특한 기술이었다.

분명 모리스 드미트리의 짓이 아닌가.

모리스라면 잘 가르칠 거라 생각해 넘어갔던 바트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특한 기술이라니!

그러나 그보다 더 한 것은.

그녀의 검술.

강해진 것은 사실이나.

솔라리온이라기엔 너무 부드럽고 유려했다.

이걸 솔라리온의 것이라 볼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모리스 드미트리에게 무엇을 배우신 겁니까?”

“검술이죠.”

“강해지셨으나, 그 기운은 좋지 않군요.”

“이 검기 말하시는 건가요?”

분홍빛 검기.

“그렇습니다. 그런 사특한 기술을 배우게 둘 순 없습니다.”

“그 덕에 제가 바트람 경과 호각으로 싸운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시나요?”

“아가씨는 강해지셨습니다. 그러나 잘못 아시는 게 있습니다.”

바트람이 기를 끌어올렸다.

“저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드마스터의 기세가 전신에서 풍겼다.

그가 제대로 힘을 쓴다면 에미르가 금방 포기하리라 생각했기에.

전력으로 덤볐다.

“바라던 바에요.”

그러나 에미르 역시 밀리지 않았다.

마스터가 아니라면 진즉에 검이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엇인가.

그녀는 바트람을 상대로 계속해서 버텨내고 있었다.

바트람이 살초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지만 소드마스터였다.

‘벌서 이렇게 성장하셨단 말인가.’

모리스에게 배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빌어먹을.’

검을 맞댈수록 자꾸만 아랫도리가 불끈거렸다.

한계까지 다다른 압박감에 버티기 어려웠다.

에미르의 검에서 나온 저 이상한 기운 탓이었다.

“끄으으윽!”

바트람이 알 수 없는 감각을 견디기 위해 정신을 쏟은 그 찰나의 시간.

아주 잠깐의 방심.

에미르의 검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이겼네요.”

그녀의 검이 바트람의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크윽……. 졌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기운 때문이라지만 싸움 중에 정신을 팔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지나갈게요.”

검을 거둔 에미르가 태연하게 문 밖을 나섰다.

풀썩.

“허어억.”

바트람은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힘이 풀린 다리가 덜덜 떨었다.

다시 일어나보려고 했으나.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가씨.

‘대체 무슨 기술을 배우신 겁니까.’

그는 멀어지는 에미르의 등을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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