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96화 뭔가 이상한(?) 수업 (2)
* * *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건가요? 솔라리온 영애님.”
세리아의 말에.
“아직 제 차례가 끝나지 않은 거 같은데요? 그리고 언제부터 하녀가 이렇게 영애에게 따지듯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에미르가 받아쳤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저나 솔라리온 영애 모두가 주인님께 배우는 입장 아닌가요? 그럼 저도 끼어들 권리가 있을 텐데요?”
세리아도 지지 않았다.
그녀 역시 모리스가 에미르에 의해 몇 번이고 검술을 다시 반복하는 걸 보았다.
에미르에게 쩔쩔매는 의외의 모습이 새로웠고 동시에 질투가 났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었는데.
허나 곧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리는 모습에 넋을 놓았다.
‘저건 잘 했네.’
늘 마법으로 압도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모리스였다.
그런 모리스의 몸에 흐르는 땀이라니.
땀에 젖은 모리스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하지만.
‘이건 아니지!’
모리스의 품에 안긴 에미르를 보는 순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던 거다.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세리아 역시 권리가 있다는 말에 에미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제가 먼저잖아요? 그리고 제 수업시간에 괜히 끼어 드는 거 아닌가요?”
“하! 그게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인님께 껴안겨서 유혹이나 해대고!”
“그러면 그쪽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얘기네요!”
두 사람의 말싸움이 점점 격해졌다.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에미르의 몸에서 살기가 치솟았고.
세리아는 서큐버스 특유의 마나를 뿜어냈다.
이러다가 진짜 싸움나겠군.
나는 중재를 위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리스님은 가만히 있어요!”
“주인님은 거기 계세요!”
두 여자가 동시에 나를 쏘아보며 으르렁거렸다.
들어가지 않는 것만 못한 반응.
“커흠…….”
오늘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알았다.”
나는 가만히 물러섰다.
여전히 두 여자는 서로를 보며 이를 드러냈다.
“나는! 검을 꼭 배워야겠어요.”
“오랫동안 모리스님의 검을 보고도 모르신다면 솔라리온 영애님은 검에 재능이 없으신 거 아닐까요?”
“뭐라고요?”
“저렇게 땀을 흘리실 정도로 열심히 가르쳐주신 모리스님이 스승에 재주가 없으실 리는 없잖아요?”
“그, 그건…….”
“제 말이 틀린가요?”
“나, 나는 더 확실하게 배우기 위해서 물어본 것 뿐이에요.”
“오호, 그러신가요? 그럼 이제 더 하실 필요 없지 않을까요?”
“아뇨. 조금 더 봐야겠는데요?”
불꽃이 튀었다.
세리아도 에미르가 더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했는지.
씩씩거리던 어깨를 차분하게 만들더니, 입을 열었다.
“이러다간 우리가 싸우다가 시간을 다 보내겠는데.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뭐죠?”
“서로 배울 때 만큼은 건드리지 않기.”
“이렇게 끼어들고서요?”
“미리 정하지 않았으니까요.”
“…….”
에미르가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계속 싸워봤자, 시간만 버리는 꼴이지 않은가.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그리고!”
“음?”
“과하게 스킨십하지 않기. 이건 꼭 넣어야겠어요.”
“에, 에?”
“아까 보니까 자꾸 앵겨 붙으려고 하시는 거 같은데 절대 안 돼요.”
“다, 당신이 그,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안겨서 이케이케! 하려는 걸 봤는데 어떻게 못 봐요?”
세리아가 몸을 배배 꼬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쳤다.
“그, 그건!”
에미르가 입을 다물었다.
“아닌가요?”
“아니지 않지 않은 건 아닌데…….”
“그럼 빼야겠죠?”
“이이익!”
에미르가 이를 악문 채로 부들거렸다.
“그럼 당신도 그러지 마세요!”
“물론이에요.”
세리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올렸다.
“좋아요.”
끝내 에미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둘 간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다 됐나?”
두 여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서로 생각이 통했거든요.”
다시 한 번 두 여자가 서로 시선을 교차했다.
“그럼 다시 시작하도록 하지.”
나는 에미르를 데리고 다시 한 번 연병장에 섰다.
“아까 다 봤을 거라 믿는다. 다시 해보겠는가?”
“좋아요.”
자세를 잡은 에미르가 검을 쥐고 휘둘렀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
검을 쥐었을 때부터 주위 공기가 달라졌다.
내가 처음 검을 휘둘렀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는 무시할 수 없었다.
쐐애액!
부드럽게 날던 검이 한순 간 속도를 높여 허공을 찔렀다.
만약 적이 있었다면 그 속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었으리라.
아직은 어설펐지만, 그 기세만큼은 굉장했다.
하루, 아니 며칠 만에 그녀는 내가 응용한 검술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재능이야.’
부정할 수 없는 재능.
만약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는 검을 배웠다면, 소드마스터는 우습게 달았으리라.
아깝다.
저 꽃을 피우지 못한 재능이 말이다.
나는 그녀가 자세를 잡지 못하는 부분에선 검을 쥔 손을 고치거나 자세를 직접 잡아주었다.
에미르와 터치가 많아질수록.
따끔.
‘음?’
세리아의 매서운 눈빛이 내게 꽂혔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녀에게 검을 가르쳤다.
나는 오랜 훈련에 지쳐 헐떡대는 에미르에게 물었다.
“하나만 묻겠다.”
“말씀하세요.”
“만약 황제파와 귀족파가 싸울 수밖에 없다면, 그대는 어느 편을 들겠는가?”
에미르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녀는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 때,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그걸 물어보았다.
“만약 귀족파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황제파의 일원들은 자신의 권력을 모두 잃겠지. 황제는……. 축출당하거나 허수아비로 남아 있을 것이고.”
“솔라리온은…….”
“죽이지는 않을 거다. 그들은 정통성 있는 귀족이니까. 허나.”
잠시 단어를 입에 되새긴 나는 말을 이어갔다.
“지금 같은 위상은 갖지 못하겠지.”
“……. 그렇겠죠?”
잠시 입을 다물었던 에미르가 내게 말했다.
“그럼 만약에 솔라리온의 영애가 가문을 배신하고 귀족파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 공으로 죄를 사해줄 수는 있는 건가요?”
그녀가 나를 보았다.
나도 그녀를 보았다.
그 눈이 참으로 진실되고 올바랐다.
지금 그녀가 말한 말은 모두 진심이리라.
가문을 배신하고 내 쪽으로 서겠다는 말.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선택을 지금 내린 것이다.
그런 진심이라면.
응해주는 것이 남자 아니겠는가.
“물론이다.”
“좋아요. 그럼 제 선택은 하나밖에 없네요.”
에미르가 싱긋 웃어보였다.
“……네 의지는 알았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이다. 다음 수업은 2주 뒤다.”
“2주나요? 대체 왜…….”
에미르는 끝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으리라.
“세리아!”
“예, 주인님!”
“들어가자. 네게 마법을 가르칠 시간이 얼마 없다.”
“알겠어요.”
세리아가 웃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어디 가시는 거죠?”
갑자기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에미르가 놀라 물었다.
“솔라리온 영애님은 모르실 그런 거요.”
“저도 따라가겠어요.”
“진심이신가요? 견디기 꽤 힘드실 텐데.”
세리아가 말꼬리를 흐리며 자극하자.
“견디다니요? 마법 수업을 보는 것이 뭐가 그리 힘들다고.”
에미르는 입을 굳게 다물며 두 사람을 따라갔다.
“저도 궁금했어요. 마법이란 걸 어떻게 배우는지요.”
“따라오는 건 상관 없다만, 정말 힘들 거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괜찮아요. 저는 솔라리온 기사니까요.”
에미르의 총명한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
“아, 앗…….”
에미르는 자꾸만 뜨거워지는 아랫배의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리아가 모리스와 단둘이서 마법을 배운다기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따라갔다.
세리아도 자신의 훈련을 몰래 지켜보았다. 에미르 역시 갈 명분은 충분했다.
그런데.
‘몸이 왜 이렇게 뜨겁지?’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몸이 자꾸만 뜨거워졌다.
특히.
아랫배가 자꾸만 욱신거리는 것이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이상해.’
세리아의 마법 훈련을 지켜보던 에미르는 주위에 가득찬 다량의 마나를 보았다.
세리아가 마법을 쓸 때마다 주위 마나가 공명하며 마나의 농도가 점점 진해졌다.
어떤 마법도 이런 효과를 지니지 못했다.
마법을 쓸수록 진해지는 마나라니!
어느 마법이 그럴 수 있을까?
꿀꺽.
왜 이럴까.
모리스에게 자꾸만 시선이 꽂히는 이유는.
이상해.
에미르가 모리스를 보는 거야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모리스의 주위에 빛이 뿜어지는 거 같고, 시선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린 채로 모리스를 보았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세리아가 모리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도 막았을 테지만, 그녀의 눈엔 모리스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모리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올랐다.
‘저 두꺼운 손이 나를 만져줬으면.’
내 몸 이곳저곳을 더듬고 쓰다듬으며 나를 안아줬으면.
사랑을 속삭이고 서로를 갈구했으면.
“헤헤.”
상상이 현실이 된 것처럼 그녀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모리스가 고개를 돌려 에미르와 눈을 마주쳤다.
‘엇?’
그 순간, 정신이 확 돌아왔다.
‘내가 뭘 한 거지?’
방금 지었던 멍청한 표정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쳤나봐.’
그러나 에미르가 더 놀란 건.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있다는 것.
‘이, 이게 대체 왜……?’
이게 뭔지 모를 정도로 순수하진 않았다.
그녀 역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그녀는 당황한 듯 어버버거렸다.
고개를 홱 들어 주위를 살폈다.
방금 자신을 보던 모리스는 다시금 세리아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모르겠다.
그녀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일이었다.
에미르의 머리 위에 계속해서 물음표가 떴다.
***
‘걸렸군.’
세리아의 마법이 이어지면서 퍼지는 매혹향에 에미르가 중독된 거다.
이래서 막으려고 했던 건데.
본인의 고집이 강해서 막을 수가 없었다.
“하아.”
“무슨 일 있어요?”
세리아가 모르는 척 태연하게 마법을 시전했다.
이번에 시전하는 마법은 플라이.
세리아의 몸이 허공에 두둥실 떴다.
“세리아 잠시 마법을 멈추고…….”
“제가 왜요?”
세리아가 모른 척 말했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 시선을 피한 세리아.
그러나 알고 있으리라.
에미르가 왜 저리 흥분한 채로 당황해 하는지 말이다.
모를 리가 없지.
“제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나를 보며 미소 짓는 세리아의 표정이 마치.
어엿한 서큐버스와 똑같았다면 기분 탓인 걸까?
“하지만 에미르가…….”
“다른 여자 얘기하지 마요. 지금은 제 시간이잖아요.”
세리아가 내 목에 팔을 감았다.
그런 그녀의 몸에서 퍼진 진한 매혹향이 내게 닿았다.
“그러니까 제게만 집중해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