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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94화 (94/174)

〈 94화 〉 93화 모리스 드미트리는 어디에도 있다.

* * *

에밀리의 보고서를 읽은 황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케롤베리? 그딴 곳에 황후를 숨겨두고 있었어? 키, 키킥. 이러니 아무도 못 찾지.”

케롤베리.

제국 북서부에 위치한 황야.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땅으로 무엇보다 황야를 돌아다니는 마적들 때문에 쉽게 접근조차 불가한 곳이었다.

“키키킥, 이 개같은 새끼.”

까드득!

모리스를 생각하자 이가 저절로 갈렸다.

‘감히 나를 속이고 에밀리와 한통속이 돼서 반대편에 서? 내가 얼마나 챙겨주고 밀어줬는데.’

마법부 장관으로 만들어준 것도 자신이고, 휴양지를 하사하며 수많은 편의도 봐준 자신이었다.

거기다가 세리아 지크프리트를 조교할 기회도 주지 않았던가.

“세리아……. 세리아. 내가 왜 그딴 놈에게 너를 보냈을까?”

지금 생각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배은망덕한 짐승새끼한테 주다니.

“이젠 괜찮아.”

모리스를 단번에 나락까지 떨어트릴 카드를 손에 쥐었다.

현재 그들이 데려간 황후의 위치가 담긴 보고서.

그가 황후를 납치하고 데리고 갔다는 증거.

이제 보고서에 적힌 위치에서 황후를 데리고 온다면, 지금 이 상황.

그가 황후를 고문했다는 말도 안 되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세실……. 내가 반드시 너를 악독한 놈들에게서 되찾아 올게.”

황제는 그의 뒤를 따르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당장 케롤베리로 가서 황후를 데리고 오도록! 너희들의 길을 막는 자들은 전부 사살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소드 마스터이자, 근위대 사령관이 함께한다면 황후를 구해올 수 있으리라.

병사들이 떠나고, 황제의 시선이 제시에게 향했다.

그녀는 황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불만인 거지?”

“과거부터 이뤄온 맹약이 깨지는 것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크큭, 내가 두려워 할 이유가 뭐가 있지?”

“황궁이 멀쩡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초월체간의 전쟁으로 생긴 마나 균열이 황궁을 덮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미 역사가들마저 잊어버린 놈들이 입은 잘도 터는 구나.”

황제는 혀를 찼다.

말로만 떠드는 위협만큼 무섭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을까.

“이게 과연 말뿐인지 두고 보십쇼.”

“너야말로 육체가 없는 것에 감사한 줄 알아라.”

“뭐라고요?”

“네년이 육체가 있었다면 범하고 죽여버렸을 테니까.”

제시가 이를 악물었다.

황제는 그런 제시를 비웃으며 마탑을 떠났다.

자신의 병사들이 황후를 데리러 갔으니, 그는 찬찬히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아니지. 내가 찾아야 할 것이 더 있잖아?”

황제의 눈이 빛났다.

그의 머릿속에 세리아 지크프리트가 떠올랐다.

그가 모리스에게 하사했던, 자신의 신분을 잃어버린 여자 말이다.

황제의 욕정을 채워주던 그녀.

“이제 뺏기고 있을 수만은 없지.”

키득거리던 황제가 바삐 발을 움직였다.

***

황제가 사무실을 나가고.

“빠, 빨리 알려야 해.”

제시가 허둥거리며 모리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장관님, 황제가 알았어요. 장관님 보고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고요.

그러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장관님! 장관님!

아무리 불러도 모리스의 대답은 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계신 거야.”

제시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지금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따로 없었다.

그저, 모리스가 빨리 와서 황제를 막아주길 바랄 뿐.

***

황제는 거침없이 모리스 드미트리의 저택으로 향했다.

분노에 휩싸여 번쩍 뜬 눈은 사방에 흰자위를 띄우는 사백안이 되어 있었다.

“개 같은 새끼들…….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거 같아? 빌어먹을 자식들…….”

발작하던 황제가 난데없이 혼자 킬킬대며 웃었다.

“우선 모리스 그놈의 직위부터 모조리 박살내는 거야. 그리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 지하 감옥에 가둬서 그놈 혼자서 고독하게 죽는 거지. 아, 세리아에게 모리스를 고문하라고 시키는 것도 재밌겠어. 자신을 괴롭힌 자에 대한 복수를 시키는 거지.”

뭔가에 홀린 듯 혼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뒤따르던 기사들이 흠칫흠칫 놀랐다.

그들 역시 이렇게까지 망가진 황제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허나, 황제의 모습이 볼품이 없다고 해도 그는 제국의 황제.

일개 기사가 감히 평가할 영역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황제를 따라 자신의 임무를 하면 그만.

그들은 눈앞에 위치한 모리스 드미트리의 저택을 보았다.

꿀꺽.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장관을 적대한 존재가 들어가서 나온 적이 없다는 죽음의 저택.

그곳에 지금 들어가는 것이다.

“진입하겠습니다.”

기사가 저택 문을 열었다.

위이잉!

경고음이 세차게 울렸다.

“황제 폐하의 행차시다!”

기사가 앞으로 나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러자, 한참을 울리던 사이렌이 멈췄고.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모리스 드미트리.

제국의 마법부 장관이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평생 검만 잡은 기사들마저 입을 쩍 벌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정도로.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모리스가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다.

완벽한 제국의 예법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소리 없는 감탄을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그 인사를 받는 황제만이 얼굴을 구긴 채로 서 있었다.

얼굴 근육이 발작하듯 떨리는 황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폐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모리스의 물음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어색한 침묵 속에 서 있던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잘난 머리로도 짐이 왜 찾아왔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가 보군?”

“어찌 평범한 인간이 제국의 태양의 뜻을 알겠사옵니까.”

“크크크, 그래 모르겠지. 모를 거야.”

황제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모리스는 그런 황제를 말없이 보았다.

“아직 황후 폐하에 대한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누가 감히 황제의 걸음을 막겠는가.”

한참을 웃던 황제가 본인의 용무를 입에 담았다.

“세리아를 데리고 가려고 왔다.”

“세리아……를 말씀이십니까?”

세리아라는 말에 모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짐이 하사했으니, 짐이 데려가는 것이 맞겠지. 그렇지 않은가?”

“불가능합니다. 폐하.”

“감히 짐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뜻인가?”

모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황제폐하라고 하셔도 제국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은 허할 수 없습니다.”

“건방지군. 정말 건방져. 감히 황궁까지 쳐들어와 황제를 협박한 놈다운 말이야.”

끌끌 웃던 황제가 손을 까딱거렸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하아.”

모리스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퍼억!

그의 주먹이 선두에 선 기사의 턱을 박살냈다.

뒤이어 다가오는 기사의 가슴을 걷어찬 뒤.

­슬라이드.

재빨리 캐스팅한 마법으로 다른 기사를 자빠트렸다.

능숙한 마법과 재빠른 움직임.

모리스가 보여주는 건, 단순 마법사의 싸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법에 능한 격투가의 싸움에 더 가까웠다.

“모두 마나 억제기를 펼쳐라!”

마법사의 약점 중 하나.

마나를 억제시키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리스의 움직임은 처음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마치 마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그게 통할 거라 생각하는가?”

퍽!

“끄어억!”

기사단 십인대장이 복부를 맞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 이게 대체…….”

기사들보다 훨씬 민첩한 마법사.

다른 기사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손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지금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음은 누구지?”

모리스의 말에 모두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황제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넌 누구냐? 모리스 드미트리는 어디에 있어!”

“소신이 바로 모리스 드미트리입니다.”

황제의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놈은 모리스가 아니라고.

그리고 지금 자신은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거라고.

“이, 이게 대체…….”

그는 눈을 끔뻑이며 모리스 드미트리인 척을 하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이런 실력자가 어디서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폐하, 물러나시지요. 섣불리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황제의 뒤를 따르던 호위기사가 속삭였다.

그 역시 마스터에 가까운 기사였지만, 눈앞의 존재와의 격차를 느낄 수 있었다.

저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최소한 마스터급 기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이익! 안 된다! 나는 세리아를……!”

“황후폐하의 일만 잘 끝난다면 자연스럽게 폐하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황제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럴 거다. 곧 모든 것이 다 옳게 될 거다. 그래 맞아.”

황제는 뭔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모리스는 그들이 모두 도망치는 걸 지켜만 보았다.

“후우…….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모리스의 어깨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얼굴이 액체처럼 흘러내림과 동시에 세바스찬의 주름진 얼굴이 드러났다.

마법으로 감췄던 골격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세바스찬님 괜찮으세요?”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세리아가 다급히 나와 세바스찬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우드득!

세바스찬이 관절을 푸는 소리가 요란했다.

“늙으니,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군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세바스찬이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들어가시죠. 바람이 찹니다.”

“정말 다친 곳은 없으시죠?”

“그럼요. 생각보다 이 늙은이 강하답니다. 허허.”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세바스찬은 멀어지는 황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건가.’

강인했던 황제의 정신이 무너지기까지 말이다.

***

황제가 보낸 특무대는 포탈을 타고 케롤베리에 도착했다.

소문만큼이나 건조하고 삭막한 황야였다.

소드 마스터인 근위 대장이 앞장서 그들을 노리는 마적들을 손쉽게 박살냈다.

시체를 살필 시간도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최대한 빨리 황후를 구출하고 황궁으로 돌아가는 것.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무조건 해내야 하는 임무였다.

황후를 납치하는, 반란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저지른 놈들을 벌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확실한 증거인 황후를 구출해야만 했다.

“이 근처인데…….”

근위 대장인 필립스가 지도와 주위를 맞춰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이는 아주 작은 동굴.

‘설마 저기에?’

필립스가 검을 뽑았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주의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동굴에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들도 몇 번이나 들어보았던 여성의 목소리.

황후, 세실리아의 목소리였다.

필립스는 기감을 최대한 가동해서 동굴 안의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안에 있는 게 확실하다.’

정보가 사실이었다.

귀족파의 수뇌부들이 황후를 납치하고 거짓된 증거를 만들어 황제에게 거짓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

마법부 장관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보고서에 적힌 내용대로 말이다.

‘황후폐하를 구출하고 마법부 장관을 비롯한 귀족파 핵심 귀족들을 내란죄로 체포해야 한다.’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임무였다.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는 임무이기도 했다.

­내가 먼저 진입한다. 따라 들어오도록.

필립스가 수신호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필립스는.

검을 쥐고 동굴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런데.

“어?”

동굴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황후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필립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동굴을 살폈다.

그리 넓지 않은 동굴이었다.

귀족의 침실보다 조금 더 넓은 정도?

“그럼 내가 들은 건 뭐였던 거지?”

이상하게 여긴 필립스가 동굴 안을 살필 때였다.

“근위 대장, 누굴 그리 급히 찾는가?”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상황에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목소리.

끼기긱.

목에 힘을 주고 돌린 탓일까. 필립스는 자신의 목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필립스의 눈앞에.

“꽤 놀란 것처럼 보이는군. 황제폐하는 어디에 두고 이 먼곳까지 혼자 온 것이지?”

마법부 장관, 모리스 드미트리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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