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90화. 백설 차가운 면모에서 보이는 반전 매력?
* * *
나는 백설이 부족장의 자리에 적응할 때까지 옆에서 도왔다.
조금 걱정도 했었다.
그녀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항상 저택 안에서 산책을 하며 자수를 따던 백설이었다.
아무리 공주라고 해도 여러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사냥 성공률이 굉장히 낮습니다.”
“사냥법을 바꿔보지. 지금 하는 사냥은 너무 단순해서 좋지 않아. 2인 1조로…….”
“남부로 병력을 모는 건 위험합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올 테고…….”
“그렇기 때문에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춥지 않은 곳으로, 푸른 풀이 자라나는 곳으로.”
“허나 성벽이 높습니다. 적들도 강합니다.”
“우리는 더욱 강하다.”
“부족장 대결하는 와중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왜 죽인 거지?”
“복수라고 합니다. 부모를 죽였던 원수라고.”
“원래는 어떻게 처리했어?”
“묻지도 않고 사형에 처했습니다.”
“너무 야만적이네. 그렇지 않아도 늘 인력 부족을 겪는데. 재판을 내려서 죄의 경중을 따져, 처벌을 내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제국에서 보고 들었던 율법들을 자신의 부족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했다.
‘괜한 걱정이었군.’
그녀는 내 생각 이상으로 훨씬 잘해주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부하들 역시 그녀의 말을 잘 따라주었다.
중간 중간 내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저것도 얼마 가지 않을 거다.
백설의 방식이 보다 더 부족민들을 풍요롭게 만든다면, 저들 역시 그녀를 따르리라.
그 전까지는.
‘내가 주기적으로 찾아와야겠지.’
감히 반기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말이다.
나는 멀리서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백설을 보았다.
저게 오늘 부족장이 된 사람의 표정이라니.
백설의 새로운 모습에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쯤.
그녀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차갑게 굳어진 백설의 표정이 녹아내리며 해맑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보았다.
입을 벙긋거리는데.
‘이따가 기대할게요.’
무엇을 기대한다는 건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시선을 거둔 백설의 표정은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제왕의 포스.
그녀에게 그 분위기를 느꼈다.
‘재밌네.’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백설도.
그리고 내게는 완전히 풀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도.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백설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할 일이 없군.’
크루이 족을 정비해 남쪽으로 내려가려던 계획까지 세운 내가 할 일이 없게 만들었다.
남쪽으로 진군하기 위해 병력을 모으고,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백설 혼자서도 충분해 보였다.
그래서 심심함을 달래고자,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확실히 낙후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절망의 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가장, 요리를 하며 기다리는 아내, 부모들을 향해 해맑게 웃는 아이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을 장벽 안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나는 백설과 크루이 족이라는 제국 내 든든한 우군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쁘지 않은 일이야.’
한참을 돌아다닌 뒤, 다시 부족장이 자리하는 거대한 천막에 도착했다.
“왜 이제 오셨사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갔나?”
“네, 전부 내보냈어요.”
족장의 망토를 두른 백설이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는 잘 끝났나?”
“물론이죠. 며칠 뒤면 전 병력을 모아서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빠르군.”
“그게 우리들의 장점이니까요.”
“부하들을 잘 조련하던데?”
“태어났을 때부터 공주로 태어났고, 방중술과 함께 제왕학도 배웠거든요.”
“그런가?”
“거기에 제국에서 좋은 교보재도 있었잖습니까?”
“누굴 말하는 거지?”
백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내 가슴에 대고 팔자를 그렸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모리스님이시옵니다.”
“내가?”
“예, 늘 봐왔습니다. 집무실에서 일 하는 모습들을요. 어떻게 업무를 처리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가끔 방문하는 부하 직원들은 어떻게 모리스님을 바라보는지도요.”
“그랬나?”
백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저는 이곳 크루이 족의 부족장이지만, 모리스님의 제자이기도 해요.”
“그럼 지금은 어떤 거지? 부족장인가? 아니면…….”
나는 백설의 턱을 가볍게 당겼다.
“내 제자인가?”
눈을 마주친 백설이 배시시 웃었다.
“당연히 모리스님의 물건이죠. 과거 크루이 족 족장이 보낸 선물이고요.”
한층 더 나가는군.
허나 그 당돌한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백설은 몸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스르륵.
망토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조용한 천막 안에 울려 퍼졌다.
“여기서 할 텐가?”
“갑자기 하려니 겁이 나시는 겁니까?”
“서툰 도발이군. 밖에 경비병이 들을 텐데, 그건 부끄럽지 않은가?”
“들으라면 들으라죠.”
“당당하군.”
“호색한인 건 부족장에게 흠이 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에 천막 주위로 소음 차단을 걸려던 걸 그만두었다.
“백설, 네 신음을 들으면 경비들이 밤새 잠을 못이루겠군.”
경비하는 내내 물건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경비병이 졸면 안되니까요.”
“그 말도 맞다.”
나는 웃으며 백설의 옷을 벗겼다.
그녀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내 옷을 함께 벗겼다.
조금은 천천히 애를 태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도 참지 못했는지, 백설이 내게 입을 맞췄다.
츄릅, 륩, 츄읍.
“하응, 으음, 읏.”
단순히 입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한 걸까.
백설은 몸을 배배 꼬며 입술과 혀를 움직이는데 집중했다.
내 옷을 벗기던 손이 멈출 정도로.
“그리 내가 고팠나?”
“녜헤에.”
“언제부터 이리 발정하고 있던 거지?”
나는 애액으로 흥건한 백설의 아래를 만지며 물었다.
손을 대자마자 미끄러지며 보지 안에 들어갈 정도로 흘러 넘치고 있었다.
“그, 그게……. 아까 대결에서 승리하셨을 때부터요. 마법을 쓰시는 모습이 너무 멋지셔서.”
“그 때부턴가?”
“예.”
“그래도 네 아버지였을 텐데.”
“상관없잖아요. 그런거……. 이제 저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라는 것도. 아시잖아요.”
백설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럼 이렇게 젖은 상태로 일을 하고 있던 건가?”
“네……. 계속해서 생각했어요. 저 늠름한 몸으로 저를 험하게 다루면 어떻게 될까? 이제 부족장이 된 내가 모리스님께 범해진다면 어떨까…….”
말하는 백설의 눈이 몽롱했다.
얼굴과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혔으면서 아래는 이렇게 뜨겁게 달궈놨다니.
그렇게 바라는 거라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백설의 허리를 잡고, 귀를 물었다.
“끼얏!”
백설의 비명이 찢어지듯 울렸다.
***
부족장인 백설의 천막 앞.
밤중의 경비를 맡은 전사들이 화롯불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부족장이 되신 백설님, 일 하시는 거 봤어?”
“엄청나시더라.”
“하루 만에 다른 전사들을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잖아.”
“전임 부족장도 하지 못했던 거지?”
“대단하신 분이지.”
“그런데 조금 걸리지 않냐? 아무리 그래도 제국 마법사에 의해 된 부족장이잖아. 그런 사람이 정통성이 있을 리가.”
“이긴 자가 법칙이다. 그거 몰라? 제국의 마법사라도 승부에서 이겼다면 끝난 거지.”
전사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런데 역시……. 애인이겠지?”
“누가?”
“제국의 마법사랑 새로운 부족장님.”
“그러지 않을까? 원래 전대 부족장이 선물로 보낸 거잖아. 그리고 돌아왔고.”
“역시 지금 부족장님이 유혹하셨겠지?”
“그렇지 않겠어? 아니면 괜히 여기까지 와서 부족장을 처리할 이유도 없겠지. 그리고 내가 아까 엿들은 건데.”
경비병이 목소리를 낮췄다.
“남쪽으로 진군한다고 그랬어.”
“진짜로?”
“내가 어디서 들었냐면…….”
그때였다.
“하아아앙!”
천막 안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두 경비병의 시선이 천막으로 향했다.
“모리스님! 거기! 흐으으응!! 잠깐만요오옷!!!”
방음이 되지 않는 천막.
백설의 신음이 천막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귀에 고스란히 들렸다.
“바, 방금…….”
꿀꺽.
경비병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듣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교태로운 신음이었다.
“끄으윽! 억! 자, 잠깐만요! 거기는……. 하아앙!”
경비병들은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남쪽으로 전진한다니 그런 얘기들은 전부 뒷전이었다.
그저 백설의 신음을 들을 뿐.
두 남자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에 아랫도리가 압박해오는 걸 느꼈다.
불끈거리는 물건에 서로 모른 척 했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도도한 부족장님이 저렇게 울부짖을 정도라니. 대체 기술이 얼마나 좋은 거지? 아니, 물건이 큰 걸까?’
그들은 묘한 패배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운 근무시간을 보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나는 넓은 설원을 걷고 있다…….’
불순한 욕구를 떨치기 위해 온갖 상상을 다해보지만.
“끄으으극! 모리스님! 너무 좋아요오옥!!!”
백설의 목소리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경비병들은 깨달았다.
백설이 모리스를 유혹한 것이 아니라, 모리스에게 정복당한 백설이 이곳으로 그를 데리고 온 것이라는 걸.
그 차가운 통치자가 말이다.
동시에 모리스에 대한 존경심도 함께 솟아올랐다.
***
다음 날.
나는 전사들에게 퍼진 나에 대한 묘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보던 전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왜지?’
알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