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89화. 부족장을 건 신성한 대결.
* * *
우드득!
벤단크루가 몸을 풀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덮었던 망토를 던졌다.
크루이 족의 왕임을 상징하는 망토가 그의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함께 울룩불룩한 벤단크루의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근육에는 새빨간 피로 그린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 주술, 오랜만에 보는군.”
“네놈을 이기려고 연구한 주술들이다.”
말을 마친 벤단크루가 왕좌 옆에 꽂혀 있던, 사람 키보다 더 큰 대검을 쑤욱! 뽑았다.
몸보다 훨씬 더 큰 검을 한손으로 들고 건들거렸다.
“사제!”
“예.”
“지금부터 이 신성한 대결을 주관하도록.”
“알겠습니다.”
모피 가죽을 입고, 벤단크루와는 다른 문신을 그린 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루이 족의 족장 벤단크루와 그의 딸 백설! 누가 전통성을 가진 지도자인지 결정하기 위한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마나를 담은 목소리로 외친 주술사의 선언에 부족 마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유목 민족 중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가진 그들.
순식간에 수백, 아니 수천 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이전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벤단크루의 선언과 함께.
지이이잉!
그의 전신에서 열기가 치솟았다.
새하얀 수증기가 벤단크루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전신에 새겨진 문신들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파이어볼. 6중첩.
64개의 파이어볼이 한순간에 허공을 뒤덮었다.
“시작부터 살벌하군.”
벤단크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휘우우우웅!
영창을 마친 파이어볼들이 벤단크루를 향해 끝없이 몰아쳤다.
“쳇!”
벤단크루가 대검을 바로 앞에 꽂았다.
그는 대검을 방패삼아 쏟아지는 파이어볼을 받아쳤다.
지글거리던 불꽃들이 벤단크루를 덮쳤지만, 그의 몸은 약간의 그을림을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안 됐지만, 그건 이제 통하지 않는다.”
벤단크루가 낮게 웃었다.
“새로운 주술 효과인가 보군.”
“네놈 덕에 마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벤단크루가 낮게 웃었다.
마법을 접할 일이 적은 크루이 족은 마법 저항력이 낮았다.
저 몸에 새긴 문신 중에 마법 저항력을 강화시키는 주술이 있으리라.
‘성가셔.’
그렇지 않아도 강인한 크루이 족의 육체에 마법 저항력이라.
상당히 귀찮은 상대였다.
쏟아지는 불꽃이 끝나고.
“이게 다 인가? 생각보다 별 거 없군!”
벤단크루가 몸을 날렸다.
“글쎄.”
나는 벤단크루의 착지점에.
바인드.
속박 마법을 시전했다.
“가소롭다!”
부우욱!
벤단크루는 그의 발목을 잡기 위해 솟아오른 뿌리들을 걷어찼다.
“모리스 드미트리!”
거대한 대검이,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나를 덮쳤다.
그러나.
후우웅!
“쳇!”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블링크 마법으로 벤단크루의 뒤를 잡았다.
“그대가 이렇게 준비했으니, 나도 선물을 줘야겠지.”
드드드드!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벤단크루의 도약을 막기 위한 지진 마법이었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쾅!
벤단크루가 바닥을 박차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허공에 몸을 띄운 벤단크루가 마치 운석처럼 내게 쇄도했다.
“쳇.”
이것도 통하지 않나.
나는 손가락을 튕겨 베리어를 쳤다.
베리어 8중첩.
반투명한 마나막이 나와 벤단크루 사이를 갈랐다.
쩡! 쩡! 쩡!
벤단크루가 중첩된 베리어를 3개나 깼지만, 그게 고작이었다.
“이 빌어먹으을!”
콰아앙!
베리어에 매달린 벤단크루가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마나와 대검이 맞부딪치며 거대한 충격파가 터졌다.
“어어억!”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왔던 사람들 일부가 뒤로 날아갔다.
벤단크루가 몇 번이고 검을 내려쳤으나, 네 번째 베리어는 깨지지 않았다.
“이게 전분가? 생각보다 실망스럽군.”
“뭐?”
벤단크루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쾅!
“커억!”
베리어에 올라 타 있던 벤단크루가 저 뒤로 튕겼다.
에어밤(Air Boom).
공기를 터트려 만든 충격파로 적을 공격하는 마법이었다.
다른 마법과 차이가 있다면, 단순 마법 충격 뿐 아니라 공기가 터지면서 생기는 물리력이 동반한다는 것.
아무리 마법 저항력을 높여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 주문들로 내 모든 마법을 다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아이스 스피어.
주위의 얼음 결정들이 들러붙으며 거대한 얼음창을 만들었다.
“물리력을 가진 마법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
나는 자세를 다잡고 있는 벤단크루에게 얼음창을 날렸다.
“이제부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거다.”
북쪽의 혹한이 만든 거대한 얼음창.
벤단크루는 검을 휘둘러 창을 막았다.
카직!
얼음을 부순 칼날의 이가 나갔다.
“이게 무슨?”
벤단크루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이럴 수는 없다.
이 검이 어떤 검인가.
크루이 족의 족장을 상징함과 동시에 북부 한철로 만든 검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바위를 갈라도 멀쩡한 검이었다.
그런 검이 이가 나가다니.
얼음 한 번 갈랐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각오하라고.”
모리스가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으드득!
벤단크루는 이를 갈았다.
혹시 모를 모리스와 싸움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던가.
수십, 아니 수백의 주술사를 갈아서 주술을 그의 몸에 새겼다.
마법을 무효화하고 자신의 육체를 더욱 강화시키는 주술들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주술들을 새겼음에도.
자신의 검은 모리스의 털끝도 닿지 못했다.
모리스의 저 여유로운 표정을 봐라.
지금 저게 싸우고 있는 자의 얼굴이 맞는가.
“날 비웃는 것이냐?”
“물론이다. 노력이 가상하나, 노력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서.”
“이 새끼가아!”
후웅!
닿지 않았다.
후웅!
이번에도.
후우웅!
아무리 휘둘러도 그의 검은 모리스에게 닿지 못했다.
“이 개 같은 자식!”
압도적으로 강한 마법을 쓴 것도 아니었다.
파이어볼, 바인드, 아이스 스피어 등등.
대부분 평범한 마법사들도 쓸 수 있는 가벼운 마법이었다.
그럼에도 벤단크루는 벽을 느꼈다.
지금의 그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말이다.
‘방법이 없다.’
저번처럼 승부를 내지 않고 물러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족장 자리를 건 대결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꽂혀 있었다.
물러서는 것?
불가능했다.
여기서 진다면 그는 족장의 자리에서 내려갈 것이고, 지금껏 그가 가졌던 영광은 모두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절대 질 수 없다.
크루이 족의 절대자로서.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했던 전사로서.
이 패배를 용납하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백설……. 이 빌어먹을 년.’
모리스를 꼬셔서 그의 씨를 받아오라 보냈던 딸이 부족과 가문을 배신하고 돌아왔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가슴을 찌르는 배신감에 이를 악물었다.
“네놈들을 전부 박살내주겠다.”
벤단 크루의 몸이 점점 부풀어올랐다.
그의 눈에 붉은 안광이 서렸고.
하아.
내뱉는 숨결에 지독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온몸에 그렸던 새빨간 문신들이 검붉게 빛나고 있었다.
선천진기.
벤단크루는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다.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아악!!”
그가 모리스를 덮쳤다.
***
“쿨럭 쿨럭.”
바닥에 엎드린 벤단크루가 피를 토했다.
참혹했다.
잘린 오른팔이 바닥을 굴렀고 온몸에 상처들이 벌어져 피를 쏟고 있었으며, 자랑스러웠던 근육들은 마치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선천진기를 모두 쓴 부작용이었다.
벤단크루의 검은 저 멀리 꽂혀 있었다.
사위가 조용했다.
오로지 벤단크루가 헐떡이는 소리만이 마을을 덮었다.
“커억, 내……패배다. 이제 나를 죽여라.”
나는 말없이 그를 내려 보았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입고 있던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나 역시 군데군데 검에 베인 상처가 생겼다.
꽤나 위험했으나, 이긴 건 나였다.
‘아깝군.’
만약 아군이었다면, 선봉에서 적들을 도륙할 수 있는 인재였다.
허나 아군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부수는 것이 상책.
‘혹시 모를 위협은 줄여두는 것이 좋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이 대결을 주관했던 사제를 보았다.
“결과 발표는 아직인가? 아니면 내가 이자의 머리를 떨어트려야 승리를 선언할 건가?”
나는 얼음으로 만든 칼을 만들며 물었다.
태연하게 목을 자른다는 말에 사제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승부가 났습니다! 승자는 백설님의 대리자로 나온 모리스님입니다! 그러므로 크루이 족의 족장은…….”
“그만!”
벤단크루가 외쳤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제의 선언을 막았다.
“어찌……. 직접 싸우지 않고 대리자를 보낸, 년이 족장이 된다는 것이냐……. 이 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
숨을 헐떡이던 벤단크루가 바닥에 꽂힌 자신의 검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남아있는 왼 팔로 검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벤단크루, 다 끝났네. 너의 패배야.”
“너는 우리의 왕이 될 수 없어. 어찌 제국의 개 따위가 우리들의 왕이 될 수 있느냐!”
“그러라고 보낸 거 아닌가?”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백설에게 다가갔다.
“백설을 말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았다.
백설은 싫지 않은 얼굴로 나를 잠깐 보더니, 마찬가지로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끄아아악! 내가! 네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아! 그깟 사랑에 빠져서 부족을! 가문을 버리다니!”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벤단크루에게 백설이 입을 열었다.
“부족을 버린 게 아니에요. 족장님, 아니. 이젠 벤단크루라고 해야 하나?”
“뭐?”
“모리스님이 왕이 되는 것이 오히려 우리 부족을 더 강하게 만들 거예요.”
“개 같은 소리…….”
“지금도 봐요. 크루이 족 중에 가장 강하다는 당신도 모리스님을 이기지 못했잖습니까.”
“네년! 애비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모리스님께 선물로 보내진 뒤로, 제게 가족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백설이 내게 훨씬 더 가깝게 달라붙었다.
“진정한 남자에게 안기는 것이 여자의 행복 아니겠어요?”
행복하게 미소를 짓는 백설과 달리, 벤단크루는 얼굴을 구기며 이를 갈았다.
“승자는……. 모리스님, 그러므로 앞으로 모리스님이 우리들의 족장이며 지배자가 될 것입니다!”
사제가 외치는 소리를 듣자, 백설이 또각또각 앞으로 걸어갔다.
“벤단크루.”
그녀는 부족장의 상징인 망토를 손에 들었다.
“이제 이 자리는 제가 가져가겠사옵니다.”
모든 힘을 다 잃은 벤단크루는 저항도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백설은 벤단크루의 피가 물든 망토를 내게 걸어주려고 했다.
“아니.”
“입으셔야 합니다. 이건 부족장의 상징이니까요.”
“이 망토를 입는 건 내가 아니다.”
나는 망토를 백설에게 걸어주었다.
“이 망토는 앞으로 네가 입을 것이다.”
백설에게 망토를 입힌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앞으로 백설이 내 대리인으로 크루이 족을 지배할 것이다. 그녀는 내 권한을 모두 일임할 것이며, 앞으로 그녀가 이곳의 부족장이 될 것이다.”
나는 현장에 모인 모든 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나오도록. 대신, 내 결정을 번복할만한 실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할 거다.”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이곳은 백설 네가 지배하게 될 거다.”
백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그러면 저는 모리스님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 부족은 곧 장벽을 넘어서 아래로 내려올 테니. 그리고…….”
나는 백설에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그립지 않도록 남은 기한동안은 네 곁에만 있으마.”
백설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승리하신 모리스님의 선언에 힘입어, 백설님이 정식으로 적임자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사제의 말을 끝으로 백설은 크루이 족의 부족장이 되었다.
“자, 그럼 부족장님. 이 자는 어떻게 처분하면 좋을까?”
“…….”
백설이 벤단크루를 내려 보았다.
그녀는 주위에 있던 전사들에게 첫 명령을 내렸다.
“마을 밖으로 쫓아내세요.”
“하지만 족장님의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아니. 이제 내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야. 이 땅을 떠나 제국으로 갈 때부터.”
백설의 날카로운 목소리.
북쪽의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내가 네 아버지다!! 너를 낳고 키운 아비란 말이다!”
벤단크루의 절규에도 백설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전사들에게 끌려가는 벤단크루의 비명이 멀어지고.
백설이 내 목을 감싼다.
“여기서 이리 애정행각을 해도 되는가?”
“왜 안 되나요? 어차피 저들은 이제 감히 제게 아무 말도 못하지 않습니까.”
“변했군. 그날 이후로.”
릴리스와 함께 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게 싫으신겁니까?”
“아니. 좋다.”
솔직해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녀의 귀를 매만졌다.
부드러운 귓불을 만지자,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 기다려주겠나? 볼일이 있어서. 족장의 텐트에서 기다려줬으면 좋겠군.”
“키스해주신다면 보내드리겠사옵니다.”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그녀가 입을 맞췄다.
***
“내가……. 반드시, 네놈들을 다 찢어 죽여 버리겠다.”
벤단크루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눈밭을 걸었다.
차라리 살려줘서 다행이다.
“놈들은 모른다.”
우리들의 고대 유물에는 선천지기를 다 뽑아낸 몸을 다시 원래대로 만들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는 걸.
“분명 내가 꼼짝없이 죽었다고 방심하고 있겠지.”
힘을 다시 되찾으면 그런 백설의 모가지를 따고 족장의 자리를 되찾은 뒤, 모리스를 치기 위해 병사를 움직이겠다.
신성한 대결?
아무리 천하의 모리스여도 머릿수는 이기지 못하리라.
“크크킄, 크크크큭, 용서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모리스를 떠올리자,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나왔다.
“그리 좋은가?”
“뭐?”
모리스였다.
“감히 뱉어선 안 되는 말을 지껄이는 거 같던데.”
“대, 대체 어디에서?”
“마법사에겐 공간은 의미가 없다는 거 모르는 것 같군.”
“나는 모든 걸 잃었다네. 이제 와서 무엇을 하려고…….”
모리스의 차가운 눈이 벤단크루를 찔렀다.
“백설이 너무 착해 제 아비를 직접 죽이지는 못하는 것 같더군.”
“뭐, 뭐라?”
“그래서 후환을 대비해 직접 마무리하기 위해 왔다.”
“네놈 설마?”
“그래.”
모리스의 손에 마나가 넘실거렸다.
“내, 내가 이대로 죽을 거 같으냐!”
그는 최후의 최후를 대비해 가지고 있던 단검을 꺼내 모리스를 찔렀다.
푸욱!
“커억!”
마법을 시전하던 모리스의 목이 꿰뚫렸다.
그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환부와 벤단크루를 올려다보았다.
“이, 이게 대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벤단크루를 보던 모리스가 바닥에 쓰러졌다.
“허, 허허……. 내, 내가 성공한 건가?”
그는 비틀거리며 쓰러진 모리스를 보았다.
툭툭 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리스는 북쪽의 차가운 바람에 금세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해, 해냈다. 내가 해냈어…….”
이제 남은 건 그 빌어먹을 년. 백설을 죽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왕좌를 되찾는 거다.
“크크크큭, 크크크크큭. 내가 해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그리 돌아왔는가. 크크크.”
벤단크루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크루이 족의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왠지 모르게 실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
“크, 크크킄……. 크크크킄.”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실없이 웃는 벤단크루를 내려 보았다.
북쪽을 지배했던 강인한 전사가 무너지는 것.
안타까운 광경이었으나.
“백설이 진짜 부족장이 되기 위해선 필요한 희생이지.”
나는 방금 시전한 마법의 능력을 재점검했다.
상대가 가장 바라는 환각을 꿈처럼 보여주는 매혹 마법이었다.
환각이 얼마나 현실적이냐면.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적혀 있었다.
이 역시 릴리스의 던전에서 발견했던 마법이었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실험을 위해 벤단크루에게 걸어봤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허나 전투용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꿈 마법을 그렇게 결론지었다.
바닥에 꿈틀거리며 웃어대는 벤단크루.
무슨 환상을 보고 있는 걸까.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가. 잘도 웃는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