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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86화 (86/174)

〈 86화 〉 85화 세리아의 변신 마법(1)

* * *

큰일 날 뻔 했다.

에미르의 가벼운 스킨십만으로 몸이 반응을 했다.

아랫도리가 단단하게 서는 감각을 간신히 억눌렀다.

억지로 마나를 둘러 억누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를 거다.

특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속옷까지 드러났을 때는.

이걸 참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다.

인내심을 끝까지 끌어올려 시선이 가는 걸 막았다.

그때 나는 세리아가 어설픈 연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뭐랄까.

에미르에게 질투를 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게 귀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귀엽다고 해야 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던 세리아가 끝내 평정심을 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서 세리아를 잡아챘을 때 그녀를 보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짧았지만 모리스가 아닌 최유준이 되어 세리아를 보았다.

오랜만에 지은 솔직한 미소라 어색했으나.

나를 보는 세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누가 그 도도하던 지크프리트 가문의 아가씨라고 볼까.’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이대로 뒀다간 질투심에 더 큰 일도 저지를 것 같았기에.

“질투가 나도 참거라. 네가 해결해야 할 마법을 곧 알려줄 테니까.”

“아…….”

세리아가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녀를 바로 세운 나는 마법으로 구한 물병을 에미르에게 건넸다.

“이제 좀 알겠나?”

“예.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아요.”

“한 번 복습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대의 검은 아직 불안정할 테니까.”

“알겠어요.”

주먹을 불끈 쥔 에미르가 물을 마시며 땀을 닦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번뇌를 잊기 위해서 넘어지려던 세리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앞으로는…….”

“예.”

물을 마신 에미르가 내 눈을 마주쳤다.

“조금 더 옷을 단단히 입고 와라. 눈을 둘 곳이 없군.”

“설마 저를 여자로 보시는 겁니까?”

“…….”

나를 도발하려는 건가?

의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온 자신감 때문인지.

에미르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했다.

“무슨 뜻이지?”

“저는 제자이지 않나요? 모리스님은 제 스승이구요.”

“그렇지.”

맞는 말이다.

검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스승이 되는 거니까.

나름대로 나를 안달나게 하려고 한 말인 거 같은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스승이기 때문에 제자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려는 거다.”

“잘못된 길이 무엇입니까?”

“스승을 사랑하는 일 같은 걸 말하는 거겠지.”

말을 마친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농담이 심하십니다.”

내뱉는 말은 단호했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말하고 싶은 지 얼굴 근육들이 움찔움찔거리며 움직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훈련은 여기서 끝이다. 몸이 다 젖었는데 씻고 갈 텐가?”

“…….”

에미르는 모리스가 한 씻고 가겠냐는 말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했다.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씻고 가라는 뜻?’

‘설마 수업 첫날부터 진도를 나가는 걸지도?’

‘모리스님이 그럴 리가. 날 계속 거절하셨던 분이잖아.’

‘그래도 씻고 가라는 의미를 모르실 분도 아니고…….’

온갖 망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제사보다 제삿밥에 관심이 많은 에미르였다.

아마 모리스가 그녀의 생각을 알았다면 당장 돌아가라고 말했으리라.

“설마 이 꼴로 저택에 갈 생각은 아니겠지?”

“……예?”

“마차를 타고 왔든 말을 타고 왔든 이대로 가면 길거리 시민들도 다 그대의 꼴을 볼 걸세. 그 모습은 그냥 못 두지.”

“아, 그……렇죠?”

에미르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섞였다.

모리스의 말에 방금까지 차올랐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여자로 봐주길 바랐던 건가?”

“예?”

“방금 말하지 않았나. 여자로 대하지 말라고.”

“아…….”

에미르는 뒤늦게 모리스가 자신을 놀렸다는 것을 알고 얼굴을 붉혔다.

모리스가 자신 때문에 당황했다는 묘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내뱉은 말이 이렇게 바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너무하십니다.”

“빨리 씻게. 이러다가 드미트리가 솔라리온의 영애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겠어.”

나는 이 상황을 지켜보는 세리아에게 말했다.

“솔라리온 영애의 목욕 시중까지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세리아의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건 기분 탓일까.

***

“흠.”

세리아가 에미르를 씻기러 가는 동안, 나는 세리아에게 낼 마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과연 어떤 마법을 내야, 세리아가 어려워하면서도.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세리아가 스스로 마법을 배우겠다고 말했을 때, 여러 번 고민했다.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것이 맞는 일인가.

‘만약 마나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면.’

폭주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내게 최강의 전력이 되어 줄 거다.

절반은 초월체이지 않은가.

그것도 서큐버스인 릴리스의 유전자를 지닌 동료가 되어주겠지.

그럼에도 걱정되는 건.

‘그 때가 되어도 세리아가 내 명령을 들을까?’

만약 내 말을 거부하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세리아를 컨트롤해야 할까?

그와 동시에 세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솔라리온 영애의 목욕을 다 마쳤습니다. 이제 모시고 나갈까요?”

가만히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아까 에미르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흥분을 느꼈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감에 기분을 다스릴 수 있었다.

‘아까도 그랬지.’

에미르의 몸에 나도 모르게 흥분을 느꼈을 때, 세리아를 보고 욕구가 가라앉았다.

이건 서큐버스의 매혹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매혹향에 홀려 덤벼들 정도로 마나의 깊이가 얕지도 않은 데다가.

매혹향이 발동한 거라면 끓어넘치던 성욕이 터졌을 지도 몰랐다.

‘설마.’

세리아는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기운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건가?

나는 세리아의 배꼽이 새겼던 음문을 떠올렸다.

“세리아, 지금 치마를 들춰보겠는가?”

“예?”

“치마를 들춰보라고 했네.”

“지, 지금 말인가요?”

갑작스러운 요청에 세리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꼭 싫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주인님도 엉큼하시네요. 아직 해가 이렇게 뜬데다가 솔라리온 영애님도 계신데.”

목소리에서 승리감도 느껴졌다.

잠시 부끄러워 하던 세리아가 조심스럽게 치마를 들췄다.

검은 끈 팬티가 드러났고.

그 위에 잘 빠진 복근과 귀엽게 들어간 배꼽이 보였다.

그러나 분명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세리아의 배꼽 아래에 새겼던 음문.

마치 그녀 스스로 치료했다는 듯.

배꼽 아래에서 사라져 있었다.

“왜, 왜 보고만 계시나요?”

세리아가 몸을 배배 꼬며 나를 보았다.

마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해도 받아낼 수 있다는 듯, 눈짓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유혹하는 모습이었다.

“아니다. 됐으니, 이제 치마를 내려라.”

“……. 진짜요?”

“그래. 설마 내가 이 시간에도 여자의 몸을 탐할 사람이라 생각한 건가?”

“그건 아니지 않은데.”

“그 말은 꽤 충격이군. 나름 신사적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치마는 왜 올리라고 하셨나요?”

결국 군말 없이 치마를 내린 세리아가 물었다.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런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세리아가 심통난 얼굴로 나를 보았다.

“화는 내지 마라. 덕분에 생각이 정리됐으니.”

“뭔가요?”

“네가 내게 보여줘야 할 마법을 정했네.”

“정말이요?”

이제 어려운 일이 시작되는 건데,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세리아가 반색하며 외쳤다.

“그래.”

“어떤 마법이에요?”

“변신 마법이다. 어떤 변신이냐면…….”

잠시 뜸을 들이고,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변신 마법이다.”

“……변신이요?”

“나를 한 번에 유혹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신해라.”

“그게 다 인가요?”

“그래. 무엇으로 변신해도 상관없다. 그 모습으로 나를 유혹해낸다면 마법을 가르쳐주겠다.”

“정말이죠?”

“물론 네가 변신 마법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는…….”

“할게요! 할 수 있어요!”

“괜찮겠나?”

“물론이죠!”

이 문제의 난이도를 모르는 거 같지만, 괜찮다.

결국 이 마법을 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재능이 없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음문이 사라졌다는 건.’

절반이 초월체인 세리아의 몸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음문이 서큐버스들의 장기인 환각과 쾌락에 관련된 주문이니 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참고용 서적이다.”

나는 릴리스의 던전에서 획득했던 변신 마법의 책을 세리아에게 건넸다.

“여기서 한 번 읽어봐라. 솔라리온 영애는 내가 배웅하고 오지.”

“알겠어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다.”

“믿어주세요!”

의욕 넘치는 세리아를 뒤로하고 에미르를 배웅하기 위해 로비로 나갔다.

에미르는 말끔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가지고 왔던 여벌 옷으로 갈아 입은 상태였다.

“오늘 유익한 배움이 되었어요.”

“앞으로 이틀에 한 번 이 저택에서 훈련을 계속할 거다. 내게 배울 때는 내 말이 언제나 절대적이라는 걸 명심해라.”

“알겠어요.”

“정말로 고생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에미르는 내가 봤던 어떤 기사보다 열정적이었다.

미래가 창창한 기사가 노력까지 겸한다라.

그 어떤 기사보다 강해질 거다.

나는 에미르를 배웅하고 다시 저택 안으로 돌아왔다.

그때였다.

퍼어엉!

“꺄아아아악!!”

응접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세리아의 비명소리까지.

“세리아!”

나는 다급하게 응접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요란한 폭발음이었다.

혹시 마법을 시도하다가 잘못된 걸까?

반쯤 각성했다는 건 내 착각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혹시 세리아가 잘못되었다면…….

‘그것만은 안 돼.’

나는 섣불렀던 내 행동을 후회하며 전력을 다해 달렸다.

추가적으로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세리아! 괜찮은가?”

쾅!

나는 응접실 문을 거칠게 열며 외쳤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전신의 마나를 가동시켰다.

“흑, 흑, 주인님…….”

응접실 책상 앞에서 세리아가 울상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진한 매혹향이 퍼지고 있었다.

무리하게 마법을 시전하려다가 뭔가 잘못된 걸까?

나는 다급하게 세리아의 몸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괜찮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세리아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보았다.

백금발 머리카락 사이에 솟은 검은 고양이 귀와.

엉덩이에 돋아난 검은 꼬리를.

“주인님, 이거 이상하다냥. 없어지지 않다냥.”

세리아는 고양이 수인으로 변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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