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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85화 (85/174)

〈 85화 〉 84화. 황제가 움직이고 있다. 에미르의 수련, 세리아의 질투

* * *

로널드 백작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초조한 듯 책상 위에 올린 손을 툭툭 두드렸다.

“무슨 일이지?”

“아, 장관님.”

“이렇게까지 찾아올 정도면 작은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제국 남부와 서부에서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마 황제가 병력을 움직이려는 거 같습니다.”

“황제가 미친 건가?”

황후 학대와 고문 혐의로 조사대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병력 이동이라니.

내전이라도 생각하는 건가?

“아마도……. 서부와 남부의 귀족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부는 솔라리온의 손아귀에 있으니까?”

“예.”

“북부는 야만족 대비 때문에 차마 움직이지 못하는 거 같고.”

“그렇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로군.”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게 뭐지?”

로널드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황제가 마법부 장관의 자격을 논란삼아 장관을 바꾸려고 한답니다.”

그는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럴만도 하지.

마법부 장관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니까.

제국 전역에 있는 마법사들의 전장 소집권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마탑에 존재하는 각종 마법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마법사 모두가 소집권을 따르는 건 아니지만.’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마탑으로 출세하고 싶은 마법사는 제국에 차고 넘쳤으니까.

만약 내가 장관의 자리에서 내려간다면 그런 힘을 전부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올릴 때는 마음대로지만, 내릴 때는 아니다.’

황제가 마법부 장관을 해임하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현 장관보다 서클이 같은 마법사와의 마법 대결.

그리고 마탑에 묶인 초월체인 제인의 허락.

이 두 가지가 모두 맞아 떨어져야 마법부 장관의 해임이 가능했다.

제국 전역을 뒤져본다면 8서클 마법사가 없지는 않으리라.

속세를 버리고 떠난 대마법사가 어디 한 명은 있을 테니까.

그러나 황제가 간과한 한 가지.

‘내가 제인과 맹약으로 묶인 사이라는 것.’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교체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바라지 못 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벌써 8서클 마법사를 찾았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8서클 마법사의 등장이라.

‘미리 준비라도 한 거 같은 움직임이군.’

“걱정하지 마라. 괜찮다.”

설사 제인이 마법부 장관 교체에 찬성한다고 한들, 내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입니까?”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친 로널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알겠습니다. 장관님의 말을 믿죠. 장관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으니까요.”

“서부와 남부에는 혹시 모르니, 귀족들의 규합을 요구하는 게 좋겠군.”

“하지만 그럴 경우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넋 놓고 당할 수는 없지.”

로널드 역시 동의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추가적인 상황이 생긴다면 보고하러 오겠습니다.”

“알았다.”

***

로널드 백작을 보내고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

이번엔 에미르가 저택을 찾아왔다.

내가 검을 가르쳐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에미르는 평소보다 훨씬 활동성이 좋은 옷을 입고 왔다.

훈련용으로 쓰이는 밤색의 긴 바지와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전부 신축성이 좋으며 땀 흡수가 잘 되는 마법 섬유로 만든 옷이었다.

“각오는 됐겠지?”

“물론이에요.”

에미르가 침을 꿀꺽 삼킨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전부 해낼 수 있다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우선 간단하게 검을 휘둘러 봐라. 우선 그대의 수준을 파악해봐야겠다.”

“알겠어요.”

에미르가 검을 쥐고 마당에 자리한 들판에서 검을 휘둘렀다.

솔라리온의 패도적인 검격이 그녀의 손에서 펼쳐졌다.

후웅!

검이 바람을 가르고 공간을 찢었다.

에미르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강한 검격이었다.

나는 그런 에미르의 검을 말없이 지켜봤다.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두르지만, 인상 깊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준은 높으나, 거기까지다.’

솔라리온의 패도적인 검술을 전부 다 이해하고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듣고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 같은 교과서적인 움직임.

결론은, 검이 에미르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아, 하아. 어땠나요?”

검술 시연을 마친 에미르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흠, 나쁘지 않다. 그러나 부족한 곳이 많군.”

나는 말을 마치며 뒤에 서 있던 세리아에게 손짓했다.

“솔라리온 영애에게 수건을 가져다주도록.”

“알겠습니다.”

에미르가 수련하는 동안 그녀의 시중은 세리아가 담당할 거다.

세리아가 에미르에게 수건을 건넸다.

수건을 건네는 세리아의 표정은 태연했다.

나는 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는 에미르에게 말했다.

“솔라리온의 검은 패도적이다. 검은 강하지만, 그 검로가 너에게 맞지 않는다.”

“…맞지 않다고요?”

“그래.”

“하지만 제가 배운 건 솔라리온의 검이 전부인데.”

“알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아예 새로운 검을 배우는 것은 무리겠지.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나는 미리 준비했던 연습용 목검을 들었다.

“솔라리온의 베이스는 그대로 유지한 채, 네게 맞는 방법으로 응용할 거다.”

“그게 가능해요?”

“결을 조금만 이해하면 되는 거니까. 물론 내가 솔라리온의 모든 검술과 비기까지 아는 것은 아니지만.”

후웅!

나는 몸을 풀기 위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내가 알고 있는 솔라리온의 검로 중 일부를 응용해서 알려주도록 하겠다.”

“…좋아요. 이 자리에서 모리스님이 제 선생님이니까요.”

“나머지 응용은 너의 몫이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내가 알고 있는 솔라리온의 검로에서 조금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검을 휘두르면서 단 한 번도 흐름이 끊어지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춤사위처럼, 나는 검을 계속 이어갔다.

쐐애액!

검을 부드럽게 휘두르고 있으나,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매서웠다.

부드러움 속에 들어있는 날카로움.

그게 에미르에게 알려줄 새로운 솔라리온 검의 묘리였다.

“와…….”

내가 검을 다 휘둘렀을 때, 에미르가 넋을 잃고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검을.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말이지?”

“검도 잘 쓴다고요? 마법사면서?”

“마법과 검 역시 극에 다다른다면 같은 거다. 더 효과적으로 상대를 이기는 것.”

“……. 아무리 그래도.”

“해보겠는가?”

에미르가 다시 검을 들었다.

“처음부터 알려주세요.”

“알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에미르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물론 한 번에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

이해한다.

“몇 번의 시범을 보여줬으니, 하나 씩 배워가도록 하지.”

“고마워요.”

이제 에미르가 검을 휘두를 차례.

내가 보여줬던 검무를 따라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 같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거기는 조금 더 부드럽게.”

“무조건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검을 이리 휘두르는 지 이해가 필요하다.”

수십, 수백 번을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전에 그녀가 배웠던 솔라리온의 검이 짙게 남아 있어, 그걸 빼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꽤 오래 걸리겠군.’

허나 괜찮다.

얼마가 걸리든 내게 배운다면 금방 사라질 나쁜 버릇일 테니.

“몸이 뒤틀리잖은가.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체구가 작기 때문에 위에서 내리치는 거나, 크게 휘두르는 것보단 최대한 빠르게 적을 노리는 게 좋다.”

“빠르게라면?”

“이렇게.”

나는 목검을 빠르게 찔렀다.

군더더기 없는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공기를 찢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는 못하겠지만, 쓸데없는 움직임을 줄인다면 비슷하게는 할 수 있을 거다.”

“와.”

짧게 감탄한 에미르가 내 동작을 따라해 보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후우.”

나는 에미르에게 다가갔다.

“검을 조금 더 부드럽게 쥐어라. 부드럽게 감싸쥔다는 느낌으로.”

나는 검을 쥐고 있는 에미르의 손을 감싸며 검을 쥐었다.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훨씬 더 좋으니까.

하는 순수한 의도였는데.

두근두근.

어디선가 심장소리가 들렸다.

에미르의 것인가?

아니.

내 심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미치겠군.’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고, 피가 빠르게 온몸을 돌았다.

피가 돌면서 다양한 신체 반응이 일어났다.

허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을 굳혔다.

내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는 그런 스킨십에도 격하게 반응했다.

“잘 알았는가?”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에미르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터질 듯이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미치겠군.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영애, 집중해라.”

“아, 예.”

에미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집중해라.”

이건 에미르에게 하는 것과 동시에, 내 몸에 하는 경고였다.

“알겠어요.”

에미르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고 휘둘렀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

훈련을 받는 에미르의 시중을 들기 위해 따라온 세리아는 가슴 속에서 치솟는 질투심 때문에 이를 악물었다.

‘부러워! 부러워! 부럽다고.’

그러나 그 질투를 에미르 앞에서 보이긴 싫었다.

솔라리온의 영애.

과거 그녀가 모리스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니까.

에미르의 질투 역시 보았다.

지금 세리아는 그 때 에미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여기서 자신이 그녀를 질투한다는 걸 보이면, 그녀가 얼마나 비웃을지.

에미르가 자신을 보며 승리감에 취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수건을 준비했다.

‘대체 왜 솔라리온 여자가……. 주인님과는 분명 적일 텐데.’

모리스가 귀족파의 수장이 되어 정계에 나갔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귀족파의 적인 솔라리온의 영애가 검을 배우러 찾아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세리아는 땀에 젖은 에미르의 모습을 보았다.

땀 흡수가 잘 되는 마법 섬유도 그녀의 흐르는 땀을 전부 흡수하지 못했다.

하얀 셔츠는 땀에 젖어 딱 달라붙어 속옷 라인이 드러났다.

하얀 색과 대비되는 검은 속옷.

바지는 또 어떤가.

활동성 좋은 바지도 마찬가지로 땀에 젖었다.

딱 붙은 엉덩이에 속옷이 비쳤다.

에미르 역시 제국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땀에 젖은 모습이라니.

왠만한 남자들은 저 모습에 홀려 눈길을 뺏기리라.

‘분명 노리고 입은 거야.’

어떻게든 모리스님을 유혹하려고!

얌전한 줄 알았는데.

저 여자 역시 위험한 상대였다.

‘주인님은?’

세리아는 태연한 척 모리스를 보았다.

‘어?’

그는 세리아에겐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마치 곤란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는 것이.

꼭 에미르를 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이이익!’

질 수 없었다.

질투하는 티를 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대로는 넘어갈 수 없었다.

세리아는 물을 가져다주는 척, 에미르에게 다가갔다.

“앗!”

세리아가 어설픈 연기를 선보이며 넘어졌다.

그녀가 들고 있던 물이 하늘 높이 날았다.

이제 저 물이 세리아의 옷을 적시리라.

그러나.

자신의 몸을 적셔 관심을 끌겠다는 그녀의 목적은 이뤄지지 못했다.

우웅.

하늘로 날아간 물병이 그대로 멈췄고.

모리스가 넘어지려는 세리아를 그대로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하녀가 이렇게 무능해서야. 가주의 면이 살지 않을 거 같은데?”

말하는 모리스의 눈에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아, 아……. 주인님. 죄, 죄송…….”

그녀가 아는 모리스는 사용인의 실수에 엄한 사람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질투에 사로잡혀서 가장 중요한 걸 잊다니.

이렇게 멍청할 수가.

그때, 모리스가 귓가에 입을 갖다대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귀엽군. 그리 내 관심을 끌고 싶었나?”

“에?”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질투가 나도 참거라. 네가 해결해야 할 마법을 곧 알려줄 테니까.”

“아…….”

그녀를 내려 보는 모리스 표정은 여태껏 그녀가 봤던 그 어떤 때보다 나긋했고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제 3자가 보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세리아의 눈이 반짝거렸다.

마법을 배우겠다는 열망 또한 커졌다.

그녀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면 되니까.

될 거니까.

모리스가 무슨 마법을 배우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뭐든 해낼 수 있었다.

‘이 표정을 볼 수 있다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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