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80화 귀족파의 모리스 본격 등장. 에미르 그대가 왜 여기에 있는가?
* * *
대전 회의.
재무대신으로 참여한 로널드는 굉장히 초조한 상태였다.
‘아직도 안 오시는 건가?’
대전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여하겠다는 모리스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오려는 거지?
초조해진 로널드는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모리스가 오길 기다렸다.
그때, 콧노래를 부르는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흠.”
요 며칠, 황제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로써는 알 수 없는 이유지만, 덕분에 회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대전 회의는 대부분 황제파가 주도하며 이끌어갔다.
황제와 솔라리온 공작을 견제할 지크프리트 공작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국방부의 예산 확충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라.”
지금도 솔라리온 공작이 제안한 의견에 반박을 달 귀족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명목으로는 귀족파 황제파가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상 황제파의 독주나 다름이 없었다.
황제가 기분이 좋은 건 그 때문이리라.
“오늘 로널드 백작은 입이 무겁군? 무슨 얘기라도 해보지 않겠는가?”
황제가 로널드 백작을 보며 물었다.
“소신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래도 재무대신이지 않은가? 누군가가 추천해서 올려줬지만 말이야.”
에밀리의 도움으로 재무대신을 땄다는 걸 비꼬는 거다.
말을 마친 황제가 낄낄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일국의 황제라고 하기엔 위엄이 없는 웃음이었다.
그때였다.
“폐하, 마법부 장관이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에 들어왔습니다!”
병사 한 명이 들어와 황제에게 보고했다.
“마법부 장관? 모리스 드미트리가 말인가?”
“그렇습니다!”
큰일이 있지 않고서는 대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마법부라는 특수성 때문에 회의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이기도 했는데.
그런 인물이 이제 회의에 참여하겠다고?
황제를 포함한 대전에 있는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로널드만을 제외하고.
“들라하라.”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고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남자가 우아하게 발을 내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들어왔다.
최강의 마법사, 제국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라는 위명을 가진.
모리스 드미트리였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나는 황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마법부 장관이 무슨 일이지? 오늘은 장관이 따로 올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폐하께 보고드릴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들렸습니다.”
“중요한 일이라?”
“예.”
“그게 뭐지?”
나는 입을 열기 전에 주위를 살폈다.
황제파의 거두 솔라리온 공작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로널드를 제외한 귀족파 귀족들 역시 비슷한 눈빛이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마법부 장관.
제국의 전쟁영웅.
이 사람이 대체 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 황제이신 류클리드 폐하께서 저지른 만행을 보고하기 위해섭니다.”
“뭐?”
나를 내려 보는 황제의 눈꼬리가 씰룩거렸다.
방금 전까지 여유롭게 미소를 짓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지? 장관?”
“제가 직접 입으로 말하는 것보단, 이게 더 편하겠군요.”
나는 품에서 작은 마나석을 꺼냈다.
그래서 감히 황제를 능멸하고 짐을 농락하려는 저 혀를 잘랐네. 이 세상 밖의 것을 보았다는 눈을 멀게 하고, 이계의 것들을 들었다던 귀를 멀게 했네. 그리고 지하 감옥에 가뒀었네.
과거 황제가 내게 했던 말이 마나석을 통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왔다.
황후를 어떻게 했는지, 자기 입으로 고백하는 말이었다.
황제가 황후에게 저지른 수많은 고문들을 들은 귀족들이 경악했다.
황제가 악독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황후를 스스로 해하다니!
뒤이어 근위대들에게 던졌다는 이야기를 듣자, 여기저기서 분노와 안타까움의 탄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찌.”
“무슨 일입니까?”
“저 이야기가 사실인가요?”
“황제 폐하의 목소리지 않소.”
“허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이곳은 황궁입니다. 마나가 통하지 않는…….”
마나가 통하지 않는 황궁.
그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마나의 균열이 가득한 황궁은 마법은 물론이고 마나석도 제대로 발동이 되지 않는다.
그래. 마나석이 발동되지 않는다.
“오류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황제파의 귀족이 내게 의문을 던졌다.
황제는 말이 없었다.
내게만 말했던 비밀을 이 자리에서 내가 토해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배신감에 사로잡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류라고 생각하나?”
나는 의문을 던진 귀족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새로운 마나석을 꺼냈다.
“같은 물건이네. 녹음장치지.”
오류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나석이 빛나며 방금 귀족의 말이 튀어나왔다.
“어, 어째서?”
모두가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보았다.
서큐버스의 초월체, 릴리스의 던전에 갔을 때 발견했던 수많은 서적들.
과거 소실되었던 마법들 중에 마나 균열에서도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마나석이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그걸 찾아서 황제가 황후에게 저지른 짓을 고백할 때, 남몰래 녹음을 해둔 것이 지금 이 마나석이었다.
“어, 어떻게?”
명확하게 드러나는 마나석의 성능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당황한 모습으로 나를 보았다.
“이 목소리로 부족하다면 관련 증거도 내어드리지요. 폐하.”
“황후는 어디에 있지?”
황제가 이를 깨물며 나를 노려봤다.
“이제 걱정되십니까? 자신이 찢고 부쉈던 황후폐하가 말입니다.”
“말하라. 어디있냐고 물었다!”
“지금은 요양을 위해 수도 밖에서 잠시 쉬고 계십니다.”
“모리스 드미트리! 이 개 같은 새끼가!”
쾅!
황제가 왕좌를 내리쳤다.
나를 보는 그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했다.
“네놈이 나를 배신해?”
배신에 대한 분노가 사무쳤던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치부가 들켰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황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검을 뽑으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이런 격한 반응.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인정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내가 추가적으로 증거를 내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폐하!”
솔라리온 공작이 다급히 일어나 황제를 말렸다.
“고정하시옵소서. 보는 눈이 많사옵니다.”
“솔라리온 공작! 비키는 것이 좋을 거야. 나는 지금 저 반역자를 죽일 생각이니까!”
“폐하!”
황제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저 핏줄이 솟아 붉어지는 눈.
자주 보았지.
보통은 분노보단 흥분에 가까웠긴 했지만.
“폐하, 역대 황제 중에서 그 어떤 자도 자신의 손으로 황후폐하를 해한 이가 없습니다. 황제폐하가 제국의 태양이라면 황후폐하는 제국의 달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황제에게 말했다.
“제국의 달을 해한 것은 아무리 황제 폐하라고 하셔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바. 철저하게 조사하고 형벌을 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리스! 너는 내 손으로 죽이겠다!”
“폐하, 그동안 잘 즐기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벌을 받으셔야죠.”
이 일로 황제가 폐위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나 이번 일로 황제파의 내부에선 수많은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황제라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황제의 배필인 황후를 건드리는 것.
황제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고, 이탈하는 자들 역시 생기리라.
그건 황제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게 바로 이번 고발의 목적이었다.
앞으로 내가 황제의 적이 되었다는 걸 귀족들에게 밝히는 것과 동시에 황제파의 내분을 일으키는 것 말이다.
“어떤 놈들이 감히 제국의 황제에게 벌을 내릴 것이냐!”
황제는 이성을 잃은 듯 검을 휘두르며 패악질을 부렸다.
옆에 있던 솔라리온 공작이 그 검을 막지 않았다면, 귀족 몇은 벌써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솔라리온 공작.”
“무엇을 말이오?”
내게 말하는 솔라리온 공작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실려 있었다.
“황가를 조사하는 특별 조사대를 만드는 건 솔라리온 공작의 담당이 아닙니까? 설마 황제파라고 해서 이번 일을 묵인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모리스 자네는 지금까지 검을 숨기고 있던 건가.”
“물론입니다.”
특별 조사대 창설을 거절한다면 황제파의 명분은 바닥까지 추락하리라.
최악이냐 차악이냐.
솔라리온은 그 중에 더 나은 걸 선택해야만 했다.
“좋소. 창설해서 조사해보도록 하지.”
“솔라리온 공작, 네놈마저!”
이미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황제는 솔라리온의 선택에 악을 쓰며 소리쳤다.
“조사대에 지원할 테니, 명단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알았네.”
이걸로 내 볼일은 끝났다.
이 무기를 더 모았다면, 황제를 폐위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로도 쓸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황제파 내부 세력을 흔들 필요가 있었다.
‘폐위시킬 무기는 새롭게 얻으면 그만이다.’
지금보다 더 강한 무기를 찾아오면 될 테니까.
귀족파의 수장으로 첫 걸음은 성공적이었다.
“회의를 더 진행할 상황은 아닌 거 같군요.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요.”
나는 방방 뛰는 황제를 뒤로하고 대전을 나섰다.
로널드가 나를 따라 나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눈치 빠른 귀족파 다수의 귀족들이 그 뒤를 쫓았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는 알았을 거다.
새로운 귀족파의 수장이 누구인지.
***
긴장이 풀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머리가 아프군.”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를 타던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움켜쥐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는 거다.
앞으로 귀찮은 일들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무사히 저택에 돌아온 나는.
“음?”
정원을 지나쳐, 우리 저택의 현관에 있는 에미르를 발견했다.
“무슨 일이지?”
“어, 어?”
저택 앞에서 꼼지락거리며 주저하던 에미르가 나를 보자,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날이 아니었나?”
“그, 그게……. 들어가지 않기로 했어요.”
“왜지?”
에미르가 대답을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그것도 잠시.
“강해지는 거,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가르쳐줄 수 있다고.”
“아.”
“그래서 왔어요.”
“바트람이 있는데도?”
“바트람 씨보다 모리스님이 더 강하니까요.”
“솔라리온과 드미트리는…….”
“검을 배울 때는, 제 신분을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모리스님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라고만 여겨주세요.”
“그게 그대의 결론인가?”
“예.”
나는 에미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밤새 고민을 했던 것인지, 눈 아래 다크서클이 짙었다.
이 말을, 이 결정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평생을 솔라리온으로 살아온 그녀였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다.
“알았다. 솔라리온 공작이 반대할 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건, 방법이 있어요.”
“알았다. 그럼 내일부터 검을 배우도록 하지.”
“예, 알겠어요.”
에미르의 얼굴이 밝아졌다.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갈 텐가? 피곤해 보이는데.”
“아니에요. 오늘은 이 말을 하러 왔어요. 진도는 차근차근 나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알았다. 그리 하도록.”
돌아가는 에미르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콧노래가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에미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창문에 몸을 기대 나와 에미르를 노려보는 세리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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