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78화 황후 탈출작전, 에미르의 마지막 사교 파티
* * *
“모리스 드미트리!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아십니까? 제국의 황후를 납치한 겁니다! 이건 류클리드에 대한 반역입니다!”
정신을 차린 황후, 세실리아는 계속 이 상태였다.
혀와 눈, 귀까지 전부 다 나은 세실리아는 마치 이전에 황제에게 당했던 기억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모종의 이유로 마법부 장관인 내게 납치를 당한 뒤, 이제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내 옆에 있던 에밀리를 보자,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이, 이미르 당신이 어째서……. 설마 당신도 류클리드를 배신할 생각인가요?”
“하아, 세실리아.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기억이라니요.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건 감히 황후를 납치하고 뻔뻔하게 고개를 든 마법부 장관과, 친구라고 생각했던 배신자밖에 없어요.”
눈에 불을 켜고 외치는 세실리아의 말에 에밀리가 이를 갈았다.
빠드득!
“어째서 너는…….”
에밀리는 나만 들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되뇌었다.
“감동의 상봉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황후께서도 지금은 푹 쉬면서 안정을 찾으십시오.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돌아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길 바랍니다.”
나는 세실리아의 팔다리를 침대에 묶고 회복실을 나갔다.
잠시 세실리아를 보던 에밀리도 내 뒤를 따라나왔다.
“설마 기억을 잃은 거야?”
“그래, 정신이 받아낼 수 없다고 판단해 그녀의 무의식이 황제에게 당한 기억을 전부 지운 모양이다.”
“불쌍한 세실…….”
에밀리가 고개를 하늘로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내일 점심에 솔라리온 저택에서 축하 파티가 있다고 했지?”
“맞다.”
“업무를 봐야 할 낮에 파티라. 류클리드 그 새끼는 제정신이 아니네.”
“덕분에 예정보다 일을 진행하는데 훨씬 수월할 테니, 고맙게 생각해야지.”
내 말에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세실의 몸에 추적 마법이 걸려 있다면서.”
“맞다. 움직일 때마다 황제에게 보고가 가는 시스템이지.”
세실리아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몸에 새겨진 마법진을 찾아냈다.
시전자에게 실시간으로 위치를 알려주는 마법진이었다.
의심 많은 황제가 새긴 것이 분명했다.
“그럼 어디든 움직이면 들킨다는 뜻이 아닌가?”
“맞다.”
“그럼 세실리아를 데리고 도망을 쳐도 소용없는 거잖아?”
“가능한 방법이 있다.”
“뭔데?”
“마법진에는 차단 마법을 걸 생각이다. 추적마법이 발동해도 황제에겐 닿지 않을 거다.”
“언제까지 가능한 건데?”
“네가 준비한 은신처에서 마법사가 수술로 마법진을 해제할 때까지.”
“그게 가능해?”
“물론이지.”
“소드 마스터까지 속일 수 있는, 난이도가 있는 환각마법이라고 들었다. 그 마법을 시전하면서 차단마법까지 가능하다고?”
“너희를 숨길 투명화마법도 시전할 거다.”
“…….”
에밀리가 입을 쩍 벌렸다.
“버틸 수 있겠어?”
“이 마법들을 유지하느라 다른 마법은 쓰지 못하겠지만, 버틸 수 있다.”
마나도 간당간당할 거지만 괜찮다.
오늘을 위해 몇 번이고 연습을 해오지 않았던가.
“미쳤군.”
“가능하지 않았다면 계획조차 짜지 않았다.”
제국의 황후를 데리고 도망치는 거다.
이 계획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거다.
“은신처는 잘 준비했겠지?”
“물론이야. 거기까지 갈 루트도 다 짜놨어.”
“좋다.”
“떨리네. 실패하면 사형이야.”
“각오했던 거 아닌가?”
“물론이지.”
나 역시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그럼 내일 용병왕과 함께 오도록 할게.”
에밀리가 로브를 깊게 눌러썼다.
나는 그녀의 몸에 환각 마법을 둘렀다.
저기 입구를 지키고 있는 황제파 소드 마스터가 눈을 부릅뜨며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지.”
내 환각 마법에 감싸인 에밀리는 그런 소드 마스터 옆을 태연하게 지나갔다.
그녀가 바로 지척에 닿았음에도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
다음날, 솔라리온의 저택에 있을 축하 파티 시간에 맞춰 에밀리가 찾아왔다.
“후우, 떨리네.”
나는 옆에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에밀리를 보았다.
활동성이 좋은 바지와 사냥용 복장으로 입은 그녀는 몇 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녀의 옆엔 용병왕이 떡 하고 서 있었다.
떡대 때문일까. 존재감이 꽤나 대단했다.
두 사람이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세실리아를 데리고 나왔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이봐요! 모리스 드미트리! 대답을……. 이미르? 그 옆에 사람은 누구?”
내 손에 끌려온 세실리아가 에밀리와 용병왕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미르, 이제 정신 차리고 저를 다시 류클리드에게 데려다 줘요.”
“그럴 순 없어.”
에밀리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다시는 너를 그 놈의 손에 넘기지 않을 거야. 내가 너를 포기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야. 절대 같은 실수는 두 번 하지 않아.”
“이미르!”
“그딴 놈 옆에서 고통 받아야 할 여자가 아니라고.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게.”
“제발…….”
세실리아가 울먹였지만, 에밀리는 듣지 않았다.
그 대신 용병왕에게 손짓하며 세리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 불필요한 소음이 생길 수 있으니까. 미안 세실, 오늘은 조금 힘들 거야.”
필요한 멤버가 모두 모였다는 걸 확인한 나는 세 사람에게 어제와 같은 환각 마법을 걸었다. 그와 동시에 세실리아에게는 추가로 차단 마법을 시전했다.
“앞으로 그 누구도 너희를 볼 수 없을 거다.”
소드마스터는 물론이고 수도에 있는 모든 경비병들도.
세실리아의 몸에 걸린 추적 마법도.
전부 속일 거다.
“그럼 움직이지.”
솔라리온 저택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시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넷은 전부 마차 위에 올라탔다.
세실리아가 발버둥쳤지만, 거대한 덩치를 가진 용병왕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문 밖을 나서자, 입구 근처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마차를 막았다.
“어딜 가십니까?”
“폐하께서 초청하신 파티에 가려고 솔라리온 저택에 간다. 따라오겠는가?”
“잠시 실례를 하겠습니다. 장관님의 저택에서 나가는 마차는 엄하게 검사하라고 하셔서.”
“원하는 대로 해라.”
세실리아를 내게 맡긴 뒤로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기사들을 저택 앞에 세웠다.
전부 나를 감시할 생각으로 둔 거 같은데.
‘쓸모없는 짓이지.’
나는 기사들이 내 마차를 뒤지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소드마스터 역시 적극적으로 내 마차를 뒤지지만.
“이상 없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소드마스터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장관님, 실례가 많았습니다.”
“수고하게.”
기사들이 수색을 하는 동안 내 옆에서 숨을 참고 있던 에밀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죽는 줄 알았네.”
소드마스터의 기감으로도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마법은 확실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말하지 않았나. 성공할 거라고.”
소드마스터 급의 강자까지 속일 수 있는 환각 마법을 펼치느라 실시간으로 마나가 빠져나가는 걸 느꼈으나.
한 점 흐트러지지 않는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이제부터 황제에게 가는 건가?”
“그래.”
“황제가 눈치 챘을까?”
“아마 못챌 거다. 하지만.”
“하지만?”
“세실리아가 수도를 떠나면 그 때는 본능적으로 느끼겠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그 정도인가? 아무런 단서도 없는데 그걸 느낀다는 게 가능한 거야?”
“그게 황제의 집착이지.”
“그래. 그랬었지.”
에밀리는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 역시 알 거다.
서브 남주로서 몇 번이고 상대해 봤을 테니까.
“괜찮겠어? 황후가 도망갔다는 걸 알면, 너를 죽이려고 들 거다.”
“절대 들키지 않는다. 내가 들키는 건 전제에 없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마차는 계속 움직여, 수도의 남부 시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서 내릴게. 여기부터는 우리 스스로 갈 수 있어.”
“그래.”
에밀리와 용병왕은 세실리아를 데리고 마차에서 내렸다.
세실리아는 여전히 에밀리에게 배신감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 사람이 떠남과 동시에 마차 역시 출발했다.
“후우.”
이제 지긋지긋한 연극도 마지막이다.
***
솔라리온 저택에 들어가기도 전에 왁자지껄한 소리로 저택이 소란스러웠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도 찾아온 귀족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모인 이들은 전부 황제파 귀족들.
파벌이 다른 귀족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나가 계속 빠져나가는 것을 숨기며 저택의 정원을 걸었다.
내가 들어가자, 방금까지 수다를 나누던 이들의 눈이 내게 꽂치는 걸 느꼈다.
“역시 왔네요.”
“전 약혼녀가 신전에 들어간다는데 무조건 와야죠.”
“막으려고 왔을까요?”
“설마요. 이미 끝난 사이 아닌가요?”
“그래도 드미트리 장관님도 결혼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마음이 있는 거 같은데.”
귀족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가십거리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귀찮다.
나는 가장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던 에미르를 보았다.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머리에 백장미로 만든 장식을 차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에미르를 꼽으리라.
그리 생각했다.
에미르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숨을 삼키며 한동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늘 그랬듯 에미르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답군.”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밖으로 나왔다.
“그러십니까?”
에미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건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나름 신경을 썼습니다. 마지막이지 않습니까.”
에미르는 마지막을 강조했다.
“마지막이라…….”
그 말에 가슴이 아파왔다.
분명 마나를 많이 사용해서, 심장을 압박하는 서클의 힘이 약해진 상태일 텐데.
왜 마지막이라는 말에 이리 가슴이 아픈 걸까.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에미르가 대꾸하려던 찰나였다.
“왔는가?”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국의 태양을 뵈옵니다.”
나는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내가 제일 늦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늦은 사람이 있었군.”
“업무에 밀려 다소 늦어졌습니다.”
“흠, 그런가?”
황제가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그 때 내 귀에서 에밀리의 통신이 들렸다.
현재 수도 성문을 지나칠 예정.
“세실리아의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황제가 물었다.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내가 기한을 준 건 내일까지인데……. 가능하겠는가?”
“촉박하긴 하지만, 가능합니다.”
“그래? 흠…….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말이야. 어째 오늘 뭔가 이상하군?”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말이지.”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도 느리고, 묘하게 차분하지 못한 거 같단 말이지. 사랑하는 이 앞이라 그런가 싶으면서도…….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단 말이지.”
놀라운 직감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텐데도 직감 하나로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 챘다.
표정 연기에 신경을 더 썼어야 했나?
“여기 모인 이들을 위해 마법이라도 하나 보여줄 수 있나?”
“마법…….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대가 잘 하는 마법들을 보고 싶군.”
이미 다른 마법을 시전하느라 내가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걸 직감한 것이라도 한 걸까.
황제가 내게 직접 마법을 보여달라 원했다.
“설마, 마법을 쓰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겠지?”
황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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