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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72화 (72/174)

〈 72화 〉 71화 진성 마조 홍련단 엘리스, 거기에 루이스. 홍련단은 이상한 애들 천국인데?

* * *

“나쁘지 않군.”

로널드 백작의 저택에 도착한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택 앞 정원의 꽃들은 아름답게 펴 있었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저택의 외관을 깔끔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방비가 허술해.’

저택 한 가운데에 내가 서 있음에도 아무도 등장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로널드를 죽이기 위해 온 암살자라면, 로널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거다.

“주의가 필요하겠어.”

뚜벅뚜벅.

나는 정원을 지나쳐 저택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럴 때까지 그 누구도 나를 막지 않았다.

덜컹!

저택 안에 들어가자, 사용인들이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모, 모리스 장관님?”

“로널드 백작은 어디에 있지?”

“지, 지금 응접실에 계십니다.”

“알았다.”

아무도 저택 안을 누비는 나를 막지 못했다.

응정십의 문을 거칠게 열자, 그 안에는 로널드 백작이 옷을 보며 감상하고 있었다.

“흠, 이건 조금 디자인이……. 어? 모리스 장관님?”

“지금 뭐 하는 건가?”

“여러 귀족들과 거래하기 위해서…….”

“하아, 역시 파악하지 못했나보군.”

“무슨 일 있습니까?”

로널드가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보았다.

“주위 사람들을 물러줬으면 좋겠군.”

로널드의 옷을 맞추던 제단사와 집사를 가리켰다.

“잠시 물러나주겠나?”

로널드의 신호에 주위에 자리하던 신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위의 인기척이 전부 사라진 걸 느낀 나는 입을 열었다.

“황제가 신 귀족파의 귀족들을 전부 노린다는 정보를 들었다.”

“정말입니까? 노린다면 어떻게?”

“암살.”

그 말을 들은 로널드의 눈이 커졌다.

“황제가 우리를……, 암살한다는 뜻입니까?”

“그래.”

“미친 거 아닙니까?”

“정치적으로 당연한 거 아닌가. 상대가 더 강해지기 전에 막는다.”

황제는 그걸 위해 귀족들을 암살하려는 거다.

“암살 대상은 누굽니까?”

나는 말없이 로널드 백작을 보았다.

눈빛만으로도 그 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군요.”

“그대를 포함해 이번에 신 귀족파로 합류한 중립파 귀족들 중 입김이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타겟이다.”

“누가 오는 겁니까?”

“홍련단.”

“하아……. 제국 최고의 암살단이라, 죽었다고 봐야겠네요.”

“그대는 죽지 않을 거다. 내가 왔으니.”

로널드는 신 귀족파의 리더다.

내가 전면에 설 때까지 신 귀족파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인물이었다.

쉽게 잃을 수는 없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에밀리가 어떻게든 처리할 거다. 우리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할 테니.”

그러나 모두를 지킬 수는 없을 거다.

홍련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한계가 있으니.

“이렇게 직접 와도 됩니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로널드를 지키는 것만큼은 직접 나서도 될 거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를 했으니.

***

어둑한 밤.

거리는 달빛 하나 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다.

엘리스와 미셸 그리고 레이첼은 발걸음 소리도 내지 않고 거리를 걸었다.

‘로널드 백작의 저택이야.’

목적지를 확인한 엘리스는 함께 온 동료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경비병은 보이지 않아. 담을 넘어서 안으로 공략하자.

두 사람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너무 조용해.’

그녀의 주인인 모리스는 연락이 없었다.

황제가 귀족파의 요인들을 암살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그녀에게 어떤 언질을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아니라면.

‘나를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생겼다.

그렇다고 모리스의 명령 없이 따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계속 홍련의 일을 하라던 모리스의 말을 따르기 위해서 로널드를 암살하기 위해 왔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내 손으로 동료를 죽여야 할지도 몰라.’

그녀는 검을 역수로 잡았다.

­이제 들어간다.

엘리스는 수신호로 미셸과 레이첼에게 진입하라고 전달했다.

고개를 끄덕인 두 암살자가 담을 넘었다.

동료 둘이 먼저 넘어간 걸 확인한 엘리스는 뒤따라 올라갔다.

“흐읍.”

담을 넘어가는데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에 경계할만한 적들은 없었다.

엘리스는 양 옆을 살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함정 또한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모리스님이 못 보신 건가?’

정보가 중간에 샌 걸까.

엘리스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지잉!

귀를 긁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한 줄기 빛이 번쩍거렸다.

엘리스는 오른쪽을 보았다.

머리가 사라진 미셸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쿵.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미셸을 본 엘리스와 레이첼은 두 눈을 부릅떴다.

“움직임은 좋으나, 들어오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심장을 옥죄는 서늘한 목소리가 엘리스의 귀에 맴돌았다.

몇 번이고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엘리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엘리스님?”

레이첼이 주저앉은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엘리스의 눈은 레이첼에 향하지 않았다.

그늘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장신의 남자.

제국의 마법부 장관이자, 가장 강한 마법사.

모리스였다.

“아, 아아…….”

모리스님이 왜 여기에?

그러나 엘리스는 단어를 제대로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녀의 옆에서 놀란 눈으로 상황을 살피던 레이첼은 서둘러 무기를 꺼냈다.

그러나 날이 바짝 선 단검을 제대로 휘두르기도 전에.

한 줄기 빛이 레이첼의 몸을 꿰뚫었다.

마나로 저항해보려고 했으나.

모리스의 마법은 레이첼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

심장이 뚫린 레이첼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아아…….”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박. 사박.

“움직이는 실력은 많이 늘었군.”

모리스의 몸에서 풍기는 진득한 살기에 엘리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 전체를 휘감은 공포와 동시에 느껴지는 흥분감에 제대로 있지를 못했다.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오줌을 지렸다.

언젠가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맞아.

모리스가 처음으로 그녀의 정체를 알고 노려봤을 때 느꼈던 것보다 더 강한 죽음의 공포였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러다간 모리스에게 죽지 않고, 숨을 쉬지 못해 죽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엘리스는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일어설 수도 없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그, 그, 그, 그게…….”

“설마 배신하려는 건가?”

“아, 아니에요. 절대 아닙니다! 제, 제가 보냈던 메시지…….”

그녀가 필사적으로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시끄럽다.”

“흐, 흡!”

나는 그녀가 배신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허나 굳이 이렇게까지 엘리스를 몰아붙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엘리스의 특수한 성벽을 채우기 위해서.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엘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헤, 헤헤……. 죄, 죄송합니다.”

눈물이 맺혀 있는데다가 공포에 질려 있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실실 올라가 있었다.

맞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죽을지도 없는 이 상황을 말이다.

“좋은가?”

“에……?”

“이제 그만 즐기고 일어나라.”

“예?”

“일어나라고 했다.”

엘리스를 이곳으로 보낸 건 나였다.

루이스를 통해서 엘리스를 여기에 배치했다.

로널드의 암살을 막기 위해 내가 직접 손을 쓰기 위해.

이 상황을 거짓으로 증언해줄 대원이 필요했으니까.

로널드의 호위 기사가 그녀와 함께 온 두 명의 암살자를 죽였다고 말이다.

“자, 잠깐만요.”

멍한 머리로 상황파악을 완료한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데.

다리가 부르르 떨리는 지, 일어나지 못했다.

“앉은 채로 말하라.”

나는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췄다.

“설마 루이스 그년이 일부러 보낸 건가요?”

잠깐이지만, 표독스러운 눈빛이 드러났다.

“내가 시켰다.”

“예?”

“내가 루이스를 시켜 너를 여기로 오게 시켰다고 했다.”

“대체 왜?”

“돌아가서 루이스에게 로널드의 호위기사에게 당했다고 보고해라.”

나와 눈을 마주친 엘리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서, 설마 이건 루이스 대장과 처음부터 얘기가 되어 있던 건가요?”

“연락은 하고 있었지.”

홍련단의 대원인 엘리스와 달리, 루이스는 홍련단의 대장이자, 황제와 독대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상황에서 누가 더 쓸모가 많냐고 묻는다면 역시.

엘리스보단 루이스겠지.

“그런데 왜 제겐…….”

연락이 없었냐는 질문이었다.

일부러 그녀를 황궁으로 복귀시킨 뒤에 단 한 번도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의도적이었다.

무심한 태도가 엘리스에게 훨씬 더 통할 거라 생각했으니.

지배받는 것을 좋아하는 엘리스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다.

“너 같은 년한테까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하나?”

소름이 돋게 하는 차가운 말투였다.

내 한 마디에 엘리스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하, 하아아…….”

눈을 마주친 엘리스의 표정이 녹아내렸다.

정답이었다.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그녀.

속옷을 입지 않았는지 그녀의 옷에 가려진 유두가 톡 하고 튀어나왔다.

"설마 기대하고 속옷을 벗고 온 건가?"

"그, 그게 아니라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서……."

"내가 설마 네년의 몸을 취할 거라고 생각하나?"

"에, 에?"

“너 같은 년은 그런 걸 기대하지 말고 그냥 내 명령에 따르면 그만이다.”

한동안 엘리스를 범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대접마저도 만족한 것인지,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모리스님.”

엘리스는 입을 벌리며 자신을 깔아보는 모리스를 올려보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를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보는 모리스의 모습이 너무나도 거대해 보였다.

압도적인 존재감에, 엘리스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모리스에겐 그녀는 개미만도 못한 존재이리라.

‘아아, 모리스님.’

이렇게 막 쓰이는 것도 좋아.

나를 막 대해주셔도 좋아요.

오히려 쓰레기처럼, 아니 그보다 더 못한 존재처럼 더 막 대해줘도 될 텐데.

허나 모리스는 그 이상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엘리스가 오르가즘을 느끼긴 충분했다.

그가 보냈던 그 진한 살기와 강함, 거기에 존재감.

모리스를 본 엘리스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극한의 흥분에 시야가 아득해졌다.

***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보는 듯, 멀리 허공을 보는 엘리스를 내려보았다.

머리의 쾌락 신경을 살리는 것으로 흥분하는, 루이스.

지배당하는 것에 진정한 기쁨을 느끼는 극 마조, 엘리스.

‘홍련은 이상한 여자들만 받는 암살단인가.’

사람을 죽여야 하는 단제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라고 스스로 납득했다.

분명 내 손에 죽은 저 두 여자들도 어디 하나 나사가 빠진 이들이었을 거다.

“그러니 잘 보고하도록.”

“예, 걱정마세요. 모리스님, 무조건 수행할게요.”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면 믿음이 가진 않지만, 그래도 쓸모가 많은 여자였다.

이젠 그녀가 돌아가서 루이스와 함께 황제를 잘 속이기를.

기다릴 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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