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65화 솔라리온 습격 작전
* * *
솔라리온의 깃발을 단 마차가 길을 달렸다.
“수도는 한 달 만이네.”
단발머리를 뒤로 묶은 에미르가 마차의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아가씨. 벌써부터 공기가 다른 거 같아요.”
건너편에 앉은 하녀, 미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나는 똑같은데.”
오히려 수도가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아.”
모리스 드미트리.
자꾸만 그 사람이 떠올라서.
에미르는 창문에 올린 손을 꽉 쥐었다.
그녀의 고운 미간이 구겨졌다.
“괜찮으세요?”
미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에미르에게 물었다.
“괜찮아.”
그저 머리가 조금 아플 뿐.
가슴이 조금 욱신거릴 뿐.
괜찮다.
아직은 견딜 수 있다.
이미 그를 생각하며 났던 수많은 상처와 아픔들이 점점 아물면서 나는 통증들이라.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가씨, 너무 심려치마세요. 제국에 남자는 많고 아가씨께 혼약을 요청하는 귀족들도 많은걸요.”
“억지로 위로하지 않아도 돼.”
에미르는 애써 밝은 미소를 지는 것으로 이어지는 미사의 말을 막았다.
다시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그 고통들을 견딜 수 있을까?
“전 언제나 아가씨의 편이에요.”
미사가 에미르의 옷깃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미사,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때였다.
쾅!
“꺄아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미사가 머리를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바퀴 한 쪽이 부러진 걸까.
마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무슨 일이지?”
에미르가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끄아악!”
귀를 찢을 것 같은 비명만이 들렸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쳇!”
에미르는 마차에 타기 위해 옆자리에 놓았던 검을 뽑았다.
스릉.
‘습격인가? 습격이라면 대체 누구?’
다른 것도 아니고, 제국의 대영주 중 하나인 솔라리온의 마차였다.
어느 겁 없는 집단이 그녀의 마차를 습격할까?
그런 자신감으로 이번 행렬의 인원도 최소한으로 구성했었다.
한 대의 마차와 그를 호위할 소수의 기사가 전부였다.
그런 위명을 가진 솔라리온을 습격했다는 건.
‘단순한 도적일리는 없어.’
밖에서 구둣발소리가 들렸다.
걸음소리가 가지런한 것이 훈련된 병사의 것처럼 들렸다.
‘누구지? 반군? 아니면 설마 귀족파의 병사들인가?’
에미르는 이를 악물었다.
기사단장 바트람에게 검술을 배우고 싸움을 배운 그녀였지만, 실전은 처음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검을 들기로 한 이상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잘 할 수 있을까?’
에미르는 침을 삼켰다.
“아, 아가씨…….”
미사가 바들거리며 에미르를 올려보았다.
“쉿. 조용히 숨어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오지 마. 저들은 내가 목표인 거 같으니까.”
“예…….”
소리의 주인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드르륵!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에미르는 검을 내질렀다.
푸욱!
살이 찢어지고 뼈가 갈라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커헉!”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복면을 쓰고 있던 적이 뒤로 넘어갔다.
“뭐, 뭐야?”
쓰러진 적들의 동료들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솔라리온의 마차를 습격하다니! 간이 부었구나!”
외치는 에미르의 반짝이는 금발에 시뻘건 피가 묻었다.
“에미르 솔라리온이다!”
“모두 저년을 잡아!”
복면을 쓰고 있던 괴한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에게 향했다.
그들은 마차를 호위하고 있던 기사들의 피가 묻은 검을 들이댔다.
“같잖은 저항하지 마시고 깔끔하게 갑시다. 그게 서로서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웃기지 마라!”
복면을 쓴 적들의 수준은 전부 에미르보다 낮았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혼자서 가능할까?’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방금 저지른 살인의 감촉이 아직 손에서 선명했다.
그러나 그런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도 없이.
“빨리 사로잡아!”
복면인들이 에미르에게 달려들었다.
선두에 들어온 적이 에미르의 팔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에미르는 그런 적의 검을 빠르게 받아치며 몸을 낮췄다.
후웅!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노리며 찔러 들어온 검이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에미르의 세검이 처음 그녀를 노렸던 적의 목을 베었다.
“그르르륵!”
복면인의 목이 갈라지며 피거품이 일었다.
뒤에서 그녀를 공격하던 두 번째 복면인은 예상하지 못했던 에미르의 회피에 몸이 휘청거렸다.
에미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휘릭!
그녀의 검이 검을 쥐고 있던 복면인의 팔목을 베었다.
“끄아악!”
“저, 저게 뭐야?”
복면인들을 이끌고 있던 대장이 넋을 놓은 목소리로 되뇌었다.
보고에는 이렇게까지 강하다는 얘기가 없지 않았던가.
그래서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임무를 수락했건만.
‘이, 이게 대체?’
솔라리온의 영애가 이리 성장했단 말인가.
역시 드래곤의 새끼도 드래곤이었다.
“빌어먹을. 모두 포위진을 짜라!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대장의 지시에 복면인들이 딱딱 위치에 맞게 섰다.
정교한 방진을 본 에미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훈련받은 정규군이야.’
방심한 적 세 명을 순식간에 전투불능으로 만들었으나, 이렇게 본격적으로 덤비면 그녀도 별수 없었다.
‘정면 승부는 불가능해.’
방법은 하나였다.
도망치면서 싸운다.
그렇다면 미사는?
‘어차피 나를 납치하기 위해 습격한 이들이야.’
검에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죽이는 것이 아닌, 사로잡는 것이 목적이라면.
최대한 까다롭게 만들어야만 했다.
아직 안에 미사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으니…….
‘최대한 여기서 벗어나면서 적들을 유인하자.’
그녀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생각을 마친 에미르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적당한 퇴로를 찾았다.
마차 길 옆에 나 있는 작은 숲길.
저곳만이 유일하게 그녀가 도망칠 수 있는 길이었다.
‘좋아.’
결심을 마친 에미르는 땅을 박찼다.
“목표가 도망친다! 전부 쫓아!”
에미르는 뒤에서 들리는 복면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최대한 발을 움직였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빨리 잡아!”
복면인들의 목소리는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다.
다리가 저려오고 숨이 가빠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을 만큼 오랫동안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숲은 끝이 없었다.
여전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어?”
“빨리 찾으라니까?”
몸을 숨긴 에미르는 나무에 등을 기댔다.
“하악, 하악.”
이제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숲속으로 나 있던 길이 수도 반대방향이었던가? 수도 방향이었던가?’
보고 달릴 걸.
그녀는 조금 더 침착하지 못했던 자신을 후회했다.
주위에 머물던 복면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길, 재빠른 쥐 새끼 같으니……. 2인 1조로 펼쳐져서 찾아!”
복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던 에미르는 놈들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끄응…….”
오래 앉아 있으니, 다리가 저렸다.
최대한 추격자들과 마주치지 않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이게 무슨 냄새지?”
스프를 끓일 때 나는 냄새였다.
‘근처에 민가가 있어.’
에미르는 조심스럽게 냄새가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코를 찌르는 스프의 향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수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 에미르의 눈에 보이는 건.
숲 속에 위치한 작은 호수. 그리고 호수 옆에 지어진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스프 냄새는 저 집에서 풍기고 있었다.
‘근처에 복면인들은?’
에미르가 주위의 인기척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를 습격했던 적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오두막에 접근하려고 할 때였다.
“내 휴양지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솔라리온 영애?”
바로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잔뜩 긴장해 있던 에미르에겐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파악할 정신따위 없었다.
“히이익!”
에미르가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의 검은 끝까지 닿지 못했다.
거대한 힘이 그녀의 검을 꽈악 붙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위험한 물건을 함부로 휘둘러서 되겠나?”
“이, 이게 대체?”
그제야 에미르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었다.
“모, 모리스……. 드미트리?”
“그대가 성을 부르니 어색하긴 하군.”
모리스 드미트리 장관이었다.
“드, 드미트리 님, 당신이 왜 여기에?”
“내 휴양지에 내가 마음대로 오지도 못하는가?”
“에? 휴양지요?”
에미르는 새된 목소리로 물었다.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휴양지다. 온스타 호수지. 수도 근처에서 꽤 유명한 호수였던 걸로 아네만?”
에미르가 눈을 끔뻑거렸다.
‘내가 여기까지 도망쳤단 말이야?’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퇴로가 있어 무작정 도망친 길이었다.
살기 위해서 죽어라 달렸는데.
그 길이 끝이 이곳이라니.
“그런데 꼴이 말이 아니군. 무슨 일이 있었나?”
모리스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이 우리 마차를 습격했어요.”
“적이 솔라리온의 영애를 습격했다?”
“예, 저를 납치하려고 했던 거 같았어요.”
“납치라……. 어떤 겁 없는 놈들이 제국의 귀족을 납치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모리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는 마치 타오르는 불길처럼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제국의 귀족을……. 그들의 인상착의는 보았소? 상징이라던가 그들의 검술이라던가.”
“잘, 모르겠어요.”
“아쉽군. 우선 안에서 쉬…….”
모리스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복면을 쓴 괴한들이 오두막을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영애를 쫓아온 이들로 보이는군.”
“모리스 드미트리?”
복면인들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등장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거기 뒤에 계신 분을 내놓으시지?”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나와 솔라리온 영애가 한 때 어떤 사이였는지도.”
황제가 아끼는 마법부 장관.
제국 최고의 마법사.
복면인의 대장은 침을 삼켰다.
여기에 모인 복면인의 숫자는 열다섯.
마법사를 억제할 수 있는 마나 차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설사 마나를 차단한다고 한들 모리스를 이길 수 있을까?
허나.
목숨을 걸어서라도 에미르는 데리고 와야 한다.
…라는 상부의 명령.
눈앞에 있는 자가 황제라고 해도,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비키라고 경고했다.”
“나 역시 경고했다. 내 땅에서 꺼지라고.”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전부 돌격해! 어떻게든 솔라리온 영애를 데리고 귀환한다!”
모리스는 손가락을 튕겼다.
***
코를 찌르는 혈향에 입술이 비틀렸다.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군.”
나는 바닥에 너부러진 시체들을 내려 보며 중얼거렸다.
“자업자득이지.”
직접 경고했을 때 도망치지 않은 것은 명령을 따라야 하는 충심 때문이었으리라.
부양 마법을 시체들을 치운 나는 오두막에 기대고 앉은 에미르를 보았다.
“괜찮은가?”
“예.”
그녀는 놀란 마음을 삼키며 최대한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머리도 몸도 정돈되지 않아 엉망진창이었으나, 표정 하나만큼은 굳건했다.
“저들을 피해서 여기까지 온 건가?”
“예. 맞아요.”
“그대도 단단해졌군.”
강해졌다. 그것도 무척 많이.
“이제 굳이 내가 지키지 않더라도 혼자 잘 할 수 있겠군.”
“맞아요. 이제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요. 저 혼자도……. 물론 오늘은 도움을 받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어도 내 몸은 지킬 수 있을 거예요.”
에미르는 의도적으로 내 눈을 피했다.
두근.
그 모습에 내 심장은 왜 이리 아픈 건지.
“수도까지는 내가 데려다주겠네. 아무래도 혼자인 거 같으니.”
“아, 아직 남은 사람이 있어요.”
“누구지?”
“미사라는 하녀인데, 현장에서 숨어 있을 거예요.”
“그런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 현장으로 가보는 걸로.”
“……고마워요.”
“감사 인사는 됐다. 그저 영애의 운이 따랐다고만 생각하는 게 좋아.”
나는 그녀를 데리고 처음 마차가 습격당했던 장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를 품에 안고 하늘을 날아갔으니.
마차로 돌아가니, 이미 도착해 있는 솔라리온의 기사들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었다.
“고, 공작님 저길 보십쇼!”
기사 한 명이 나와 에미르를 가리켰고, 분노와 슬픔에 차 현장을 지휘하던 솔라리온 공작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 오오! 에미르!”
내 품에서 내린 에미르가 솔라리온 공작에게 와락 안겼다.
“아버지!”
“하마터면 너를 잃는 줄로만 알았다.”
감격스러운 모녀의 상봉이 끝나고, 솔라리온 공작이 내 손을 잡았다.
“무슨 말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 저번에도 그렇고 지금도…….”
“인사는 됐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니까요.”
“겸손하기까지! 하하, 정말 자네는…….”
나를 보는 솔라리온 공작의 눈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 시선이 이미 사망한 하녀, 미사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에미르에게 향했다.
‘이런 짓은……. 적응이 되지 않는군.’
여전히 에미르를 사모하는 모리스의 몸은 그녀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 끝이 파르르 떨리며 그녀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허나 최유준의 의식은 여전히 그녀를 가까이 하는 것을 거부했다.
정치적인 이유와 더불어 에미르를 거절했던 이유.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거 같아서.
최유준이라는 내가.
모리스라는 몸에 잡아먹히는 것 같아서였다.
에미르의 대한 마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모리스의 육체에게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나는 자꾸만 그녀를 밀어냈다.
허나 이 몸은…….
내 생각을 따라 줄 의지가 없어 보였다.
자꾸만 에미르에게 향하려는 발걸음을 막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보지 않기로 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에미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잘 됐어. 여기까지 왔다면 다 온 거야.’
마지막까지 잘 견디자.
“그런데 어찌 둘이 있었나?”
“휴양지에서 쉬고 있었는데 에미르 양이 찾아왔습니다. 적에게 쫓기고 있다는 건 뒤늦게 알았습니다.”
“호오, 그런가?”
딸이 살아남았다는 감격이 가라앉자, 의심의 눈초리가 조금씩 드러났다.
“원하신다면 마나의 맹약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하하, 됐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네.”
“자세한 건 에미르 양이 알려줄 겁니다.”
“자네의 말이 맞겠지……. 혹, 조사를 도와줄 수 있겠나?”
솔라리온 공작이 물었다.
“제가 도울 것이 있다면 뭐든지.”
“이들의 소속을 알아봐야 할 거 같네. 아무래도 어지간한 귀족들은 아닌 것처럼 보여.”
“제 휴양지에도 같은 무리들이 있으니, 확인해보십쇼.”
“알겠네.”
***
“체크 완료. 솔라리온 공작과 접촉까지 완벽하네.”
기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에밀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방금까지 모리스의 모습을 비추던 수정구슬이 꺼졌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로널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성공이 맞습니까?”
“조만간 솔라리온은 이번 납치극이 우리 짓이라는 걸 알아챌 거고, 황제파는 새로운 귀족파의 존재를 눈치 채겠지.”
“이게 정말 우리 기사의 정예들을 희생시킬 가치가 있는 일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리스 님 손에 죽었습니다. 아군끼리의 싸움이라니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인 거지.”
“그들은 모리스님이 우리 사람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몰라야지. 그래야만 확실하게 속일 수 있으니까.”
“누굴 말입니까.”
“너랑 나, 그리고 모리스를 제외한 모두.”
“…….”
한참 입을 다물던 로널드가 물었다.
“정말 모리스님이 허락하신 겁니까?”
“응. 그 사람도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인정했어. 설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
에미르 솔라리온 영애 납치극.
말 그대로 납치극이었다.
납치하는 척, 에미르를 몰아넣고 에미르가 도망치게끔 놓아준다. 그리고 모리스와 마주쳐 위기에 빠진 그녀를 구한다.
모리스가 그녀를 구하는 건 우연의 일치여야만 했다.
‘거기까지 몰아넣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에미르를 모리스의 휴양지까지 몬다고 목이 터져라 기사들을 지휘했다.
덕분에 제대로 성공했지.
‘솔라리온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죽은 건 아쉽지만…….’
미사라는 이름으로 잠입했던 스파이가 죽은 건 정말 슬픈 일이었다.
‘솔라리온 공작가에 스파이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지.’
조만간 납치범에 대한 정보가 드러날 거다.
납치범은 신 귀족파의 신흥 세력인 로널드와 에밀리.
그들의 필사적인 납치를 막은 모리스 드미트리.
그는 이보다 더 신뢰를 얻을 거다.
‘황제는 처음에 의심하겠지만, 그건 잠깐이겠지.’
에밀리는 혀를 찼다.
“솔라리온 영애를 납치한다고 얘기할 때 나를 노려보는 눈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백작은 모를 거야.”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우리 신 귀족파가 등장하는.”
복수에 눈이 먼 에밀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