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2화 한 번 쾌락을 알아버린 사람은 그 감각을 잊지 못하지
* * *
“모리스 드미트리는 어떻지?”
루이스는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내며 루이스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속까지 관찰하는 황제의 눈빛에 침을 꼴깍 삼켰다.
‘괜찮을까?’
그녀는 모리스의 말을 떠올렸다.
귀족파의 귀족이 발견한 토리몽 산맥의 철광산을 매입하기 위한 회동을 벌였다고 보고하라.
‘정말 통할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류클리드였다.
많은 정적들을 제거하고 황태자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그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 남자이지 않은가.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아무리 모리스 장관이라도…….’
루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황제가 속을까?
루이스는 목숨을 걸고 내미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모리스가 중립파를 이끌고 귀족파를 결성한다는 걸 고발한다면…….’
쉽게 넘길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잊을 수 없어.’
모리스가 그녀의 머리를 매만졌을 때 느꼈던 쾌감.
평생 제거되어서 느끼지 못할 거라고 감각을 그로 인해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혼자 위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때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왜 대답이 없지?”
황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그것이…….”
“빨리 말하라. 홍련이 이리 주저했던 적이 있는가?”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
“말하라.”
잠시 머뭇거리던 루이스가 무릎을 꿇으며 보고했다.
“토리몽 산맥의 철광산을 매입하기 위해 골드상단의 에밀리와 회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모리스의 편을 들기로 했다.
몰랐다면 모를까.
한 번 안 이상 그녀의 감각을 일깨웠던 쾌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토리몽 산맥의 광산이라면……. 귀족파의 귀족이 가지고 있는 광산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매입한다는 거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광산에서 나온 철의 품질을 속여서 가치를 떨어트릴 생각인 거 같습니다.”
“호오, 그런가?”
황제가 턱을 쓸었다.
눈동자가 빛났다.
‘토, 통한 건가?’
루이스는 황제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을 보고 있었다.
“역시 능력이 있어.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가.”
루이스는 놀랐다.
분명 총명했던 황제였다.
저 자리에 올라갈 때까지 단 한 번의 패배를 하지 않았던 불패의 황제.
정세를 보는 눈이 빠른 남자일 텐데, 대체 왜?
그러나 루이스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눈앞에 대업이 달성되는 것이 보인다면, 간혹 주위의 모든 일을 자신의 생각과 억지로 맞추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류클리드 황제의 머릿속에는 귀족파를 정벌할 생각밖에 없었다.
모리스 덕에 지크프리트가 무너졌고, 귀족파가 흔들리고 있다.
새드릭의 유배로 급진파 역시 힘이 약해졌으나, 그것은 황제가 밀어주면 그만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귀족파를 모두 쓸어버리고 완전한 황제로 등극하는 날이.
황제가 쥔 손잡이가 우득! 부러졌다.
“정말 좋군. 정말 좋아.”
낮게 중얼거리는 황제의 목소리엔 만족감이 가득했다.
그는 모리스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세리아와 황후 그리고 귀족파까지.’
전부 모리스의 손에 닿는 순간, 황제가 원하는 그림대로 그려졌다.
세리아는 이제 거의 무너지기 시작했고.
황후는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것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모리스가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모르지만 지크프리트가 무너지면서 귀족파도 동시에 흔들렸다.
“귀족파에게서 뜯은 영지를 새로 모아 모리스에게 새 공작위를 만들어 주는 것도 괜찮겠군.”
황제는 머릿속에서 완전한 황권을 만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멋지군.’
루이스는 그런 황제를 올려다 봤다.
‘이상해.’
과거 그녀가 보았던 황제에게선 총기가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의 황제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는 물러나보겠습니다.”
“아, 그래라.”
루이스는 서둘러 대전을 나갔다.
“허억, 허억.”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렸다.
심장을 옥죄는 긴장감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처음으로 황제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것도 개인의 쾌감을 위해서.
평생을 홍련의 단장으로 황제를 섬기며 지냈다.
그렇게 지낸 것이 십 수 년.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머리는 모르지만, 루이스의 몸은 알고 있었다.
또각또각.
‘하아, 하아.’
루이스는 모리스를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괜찮은가?”
나는 제인을 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표정은 괜찮지 않은데.”
가슴에 마법진이 새겨진 이후로 부쩍 말이 줄었다.
“그냥, 사죄의 뜻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어요.”
“그런가?”
“예.”
“그럼 됐다.”
조금은 토라진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 모습을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헤실 거리는 태도에 오해할 수 있겠지만, 제인 역시 자존심 높은 초월체였다.
나와 맹약을 맺은 것이 그녀에게 좋은 일은 아닐 테니.
며칠은 가만히 두면 되겠지.
그때였다.
쾅!
“모리스 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루이스가 들어왔다.
태닝된 피부에 짧은 머리칼의 그녀가 들어오자, 사무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루이스, 너의 표정을 보니 일은 잘 처리했나보군.”
“마, 맞습니다. 황제에게…….”
루이스가 내 뒤에 선 제인을 보며 입을 닫았다.
“상관없다. 제인 역시 내 사람이니.”
맹약으로 강제된 사이지만 말이다.
“하아.”
루이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긴장하느라 제대로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황제 폐하가……. 어딘가 홀리신 거 같던데.”
“그런가?”
아마 세리아와 황후 때문이겠지.
쾌락 때문에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을 거다.
“고생 많았다. 그런데 왜 찾아온 거지?”
“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설마 여기서 해달라는 건가? 지금 장관의 사무실에서?”
나는 뒤에 선 제인을 가리켰다.
“제인이 보고 있는 것도 상관이 없나?”
내가 가리킨 제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리고 제인의 눈이 모리스에게 닿았다.
“아.”
뭔가 깨달은 듯 탄성을 뱉었다.
매번 나를 관찰하는 제인이었다.
그녀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루이스가 나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말이다.
“괘, 괜찮아요. 자리를 비켜줄게요. 미안해요. 눈치가 없었네.”
“아니 괜찮다.”
나는 사라지려는 제인을 막았다.
차라리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나을 거다.
나는 꼼지락거리는 루이스를 보았다.
꿀꺽.
묘하게 흥분한 기색이 설마.
“제인이 있는 걸 원하는 건가?”
루이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자꾸 핥았다.
“관중이 있는 걸 원할 줄이야. 그대도 어지간히 변태로군.”
처음 그녀의 머리를 자극할 때에 엘리스가 구경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걸까.
아니면.
그냥 그녀의 성벽인 건가.
뭐가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루이스는 제 할일을 마쳤고.’
나는 그 대가를 주면 되는 거다.
루이스가 관중을 원한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주지.
“이리 와라.”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서 뻗어지는 마나의 줄기를 본 루이스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눈이 내 손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짧을 거다.”
허나 그 어떤 때보다 루이스를 만족시켜 주리라.
나는 마나가 감도는 손으로 루이스의 머리 위에 올렸다.
손을 머리 위에 두자마자, 루이스의 몸이 떨렸다.
“으으윽!”
그녀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내 손에 깃든 마나가 한 올 한 올 루이스의 머리 안을 서서히 공략했다.
그녀의 머릿 속에 잠든 감각을 하나 둘 깨우기 시작했다.
수술로 죽어 사라진 감각이 살아났고, 살아난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루이스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상상이 돌고 있으리라.
그녀가 상상하는 모든 쾌감의 이미지가 동시에 머리를 괴롭혔다.
“흐아아아앙!”
신음이 사무실에 울렸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인이 사무실 주위로 마나 방벽을 쳤다.
마나 방벽이 루이스가 내는 소음을 차단했다.
오로지 루이스와 나, 그리고 제인의 목소리만이 들릴 거다.
“자, 자까마, 으그그극!”
루이스가 눈을 까뒤집었다.
저번처럼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반응이었지만, 그녀는 끝내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쓰러지면 내가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으그그극!”
루이스의 입에 거품이 생겼다.
눈을 까뒤집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슬슬 그만 하는 것이 좋겠군.”
“아니니니요. 개개갠, 찮아아요.”
“잘못하다가는 뇌가 탈 수도 있다.”
“버어어틸 수, 이, 있어어어요,”
루이스는 꿈틀꿈틀거리면서도 말을 잇고 내뱉었다.
“끄으윽!”
루이스의 코에서 피가 주륵 흘렀다.
이미 그녀의 아랫도리에는 애액으로 흥건했다.
허벅지를 타고 진한 애액이 타고 흘렀다.
“여기까지 해야겠군.”
그녀의 목숨이 위험했다.
아직 쓸모가 많은 여자였다.
나는 루이스의 머리에 두었던 손을 뗐다.
더 느끼고 싶었는지, 손을 뻗어 내 손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늦었다.
이건 여기까지.
손을 떼기가 무섭게, 루이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노란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실금이로군.”
바닥을 적신 오줌을 마지막으로 루이스는 쓰러졌다.
나는 제인을 보며 손을 털었다.
“치워줄 수 있겠는가?”
“물론이죠. 그런데……. 괜찮으신가요?”
“뭐가?”
“이 여자는 홍련의 대장입니다.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여자인데…….”
“괜찮다. 잊고 있던 쾌감을 알아버린 사람은 그 쾌감에 종속되길 마련이지.”
그게 전부다.
내가 루이스를 내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이유.
“그런가요?”
초월체인 그녀는 알 수 없는 감각일 거다.
“왜, 제인 너도 느끼고 싶은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