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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60화 (60/174)

〈 60화 〉 59화 에밀리, 아니 이미르. 세실리아를 사랑했던 남자.

* * *

“무슨 일이죠?”

에밀리가 저택에 찾아왔다. 그녀를 호출한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따라와라. 보여줄 게 있다.”

“왜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요? 무섭게.”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눈치 챈 걸까.

에밀리는 입을 닫고 나를 따라왔다.

“말이라도 해줘요. 뭐 때문인지.”

“직접 보는 게 나을 거다.”

나는 치료실의 문을 열었다.

온갖 마나석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로 충만한 방이었다.

진한 마나를 통해 몸의 회복을 도와주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런 치료실의 중앙에 원작 여주인 세실리아가 누워 있었다.

처음 이곳에 올 때 입었던 거적때기 옷은 전부 벗기고 고급 실크 속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하늘을 보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세……실리아?”

에밀리가 당황해 하며 자리에 누워있는 세실리아에게 다가갔다.

“세실리아, 이, 이게 무슨?”

그는 끊임없이 세실리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세실리아, 나야 이미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황궁에서 황제 놈과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밀리는 과거 자신의 본명을 말하며 세실리아를 마주보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를 보지 못했다.

“말 좀 해봐. 내가 떠나서 실망했던 거야?”

에밀리가 조심스럽게 세실리아의 손을 잡았다.

“아…….”

세실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경계했다.

그 모습에 놀란 에밀리가 나를 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죠? 설명을 해줘요. 세실리아가 지금 무슨 상태인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황제가 세실리아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혀를 잘랐다.”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예?”

“말한 그대로다. 지금 세실리아는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고 앞을 볼 수도 없다.”

“그, 그게 무슨? 황제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할 수 있어요?”

“황제 본인에게 들었다. 세실리아를 치료해줬으면 하더군.”

“아, 아……. 어, 어째서…….”

에밀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침대보를 움켜쥔 에밀리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이유가 뭐라고 했나요? 세실리아를 이렇게 만든 이유가…….”

“말할 수 없다.”

소설 속 세계라고, 자신이 빙의자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이런 꼴을 당했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류클리드, 이 빌어먹을 개자시익!”

에밀리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여자로 성을 바꾼 뒤로 단 한 번도 뱉지 않았던 욕을 뱉었다.

“이 모가지를 비틀어 뒷골목의 시체로 던져버려도 시원치 않을 새끼!”

에밀리의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 심지어 실핏줄이 터져 피가 고였다.

“아아……. 세실리아. 네가 행복하길 원해서 포기했는데, 류클리드 개새끼와 행복하기만을 바랐는데……. 어째서 이런 꼴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그녀는 울먹거렸다.

여자의 말투는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소설 속에서 보았던 이미르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이러라고 널 보낸 게 아닌데…….”

에밀리가 세실리아의 손에 얼굴을 비비며 울먹거렸다.

처음에는 놀라 움찔거리던 세실리아가 에밀리가 있는 곳을 보았다.

“이이으…….”

“세실리아,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 너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에밀리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해줘. 치료할 수 있어?”

거친 남자의 말투가 에밀리의 입에서 나왔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옛날 말투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뭔데? 뭐가 문젠데. 돈?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다 만들어줄 테니까.”

“마법으로 인공 혀와 눈 그리고 고막을 만드는 건 어려운 작업이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면 황후도, 아니 세실리아도 앞을 볼 수 있을 거다.”

황후라는 단어가 입에 오르자, 살벌하게 노려보는 에밀리의 눈빛에 세실리아를 지칭하는 단어를 바꿨다.

“다 가능하다며, 무슨 문제인 건데?”

“세실리아의 정신의 문제다. 생각보다 그녀가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 커. 이건 하루아침에 나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무슨 일을 겪었는데.”

근위병에게 당한 사실을 말할까 고민하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그녀가 나아지면 얘기하도록 하지. 내가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혀가 잘리고 눈이 머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라는 거네.”

빠드득!

에밀리가 이를 가는 소리가 선명했다.

“괜찮아. 세실리아가 원래대로 돌아오는지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 내가 옆에 있어줄 거니까. 이번엔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 거니까.”

“알았다.”

“그럼 왜 이 사실을 내게 알려준 거지? 설마 중립파의 대장이 너라는 걸 비밀로 해달라는 건가?”

“아니.”

“그럼?”

“복수하고 싶지 않은가?”

“……. 뭐?”

“세실리아를 이렇게 만든 황제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반역인가?”

“아직은.”

“……. 대체 왜? 너는 황제가 임명한 마법부 장관이야. 황제가 없으면 너도 없는 거라고.”

“그래. 모리스 드미트리 혼자는 그렇지. 하지만 대륙 제일의 상인인 이미르를 뒷배로 만든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나.”

“대륙 최고의 황금을 너의 편으로 만들겠다고?”

“그래.”

“내가 널 따를 거라고 보는가? 지금 황제에게 가서 네 지금 계획을 발설할 거라고는…….”

“세실리아를 치료하라고 황제가 내게 직접 보냈다.”

“그게 뭐?”

“싱싱한 장난감이 가지고 놀기 좋다면서 말이다.”

“류클리드 빌어먹을 자식. 하아, 하아.”

가슴을 움켜쥐던 에밀리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실리아가 황제에게 다시 돌아가는 걸 원치는 않을 테지.”

“내가 너의 편에 들어도 세실리아가 황제에게 돌아가는 건 똑같아. 차라리 황제에게 그녀를 괴롭히지 말라고 내가 직접 얘기한다면…….”

“너와 세실리아 모두 황제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게 도와주지.”

그녀가 눈을 끔뻑거렸다.

“진심이야?”

“그래. 너만 원한다면.”

“하, 하하. 하하하하.”

에밀리가 힘없이 웃었다.

“너는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거는 구나.”

“참고로 말하지만, 내가 손해 보는 장사다.”

허나 에밀리 급의 정치적 파트너를 얻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에밀리가 파르르 떠는 다리를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 미친 계획에 한 번 참여해 보지. 그 미친 짓은 어떻게 시작할 거지?”

“우선 귀족파부터 포섭할 거다.”

지크프리트는 끝내 추수감사절 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제국 최고의 행사이자, 사교장에 말이다.

귀족파는 불아해졌을 거고, 황제파는 의기양양했으리라.

황제가 황후를 전면에 내세우고 내게 그녀의 치료를 부탁한 것도 귀족파의 수장인 지크프리트가 영영 정계에서 떠날 거라 보았기 때문이겠지.

‘이번 추수감사절은 황제파의 축제의 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방심했고.

그렇기에 내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크프리트가 빠진 귀족파의 새로운 수장이 되겠다?”

“당장은 내가 아니지.”

로널드 백작. 그리고 에밀리.

이 두 사람이 신 귀족파의 머리가 될 거다.

나는 그 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조커가 될 거고.

내가 등장하는 건 신 귀족파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나서부터.

“하, 그래. 그렇겠지. 나도 놀랐나 보네.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걸 보면.”

“이해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자.”

“말해라.”

“만약 정말 만에 하나, 신 귀족파의 힘이 황제파보다 더 강해진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에밀리가 피가 고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귀족파가 황제파보다 강해진다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으니까.

“더 좋은 결말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지.”

“결말이라……. 네가 미리 생각한 끝이 있어?”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아질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세리아는 말이 없었다.

그저 한참동안 나만을 바라볼 뿐.

“좋아. 알았어. 모리스, 네 말대로 하지.”

에밀리가 활짝 핀 가슴을 두드렸다.

“너의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주겠다. 대신 그 조건은 세실리아가 무사히 제국 밖으로 도망가는 것.”

“걱정 마라.”

“얼마나 걸리지?”

“최소 3달은 걸릴 거다.”

“그 사이에 무조건 황제가 찾아올 거야.”

“알고 있다.”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지?”

에밀리가 손을 내밀었다.

“물론.”

나는 그런 에밀리의 손을 맞잡았다.

“그나저나 이제 가식적인 웃음과 교태는 하지 않으려는 건가?”

“그럴 필요가 있어? 우린 이제 정치적 파트너잖아?”

한 번 깨진 가면을 다시 쓸 생각은 없는 건가.

나 역시 굳이 그녀에게 다시 여자인 척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공식 석상에서는 조심하도록.”

“걱정 마.”

악수를 마친 에밀리가 세실리아를 본 채로 내게 물었다.

“잠깐 둘 만 있을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거사가 치뤄지기 전까지 볼 수 없을 테니까…….”

그녀의 눈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지.”

에밀리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말없이 자리를 피해줬다.

남자였던 한 여자의 처절한 비명과 울음소리가 저택을 흔들었다.

그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어, 나는 회복실 주위로 퍼지는 모든 소음을 차단했다.

그게 내가 에밀리에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친절이었다.

***

세리아는 세실리아의 몸을 씻겨주기 위해서 회복실을 찾았다.

그녀도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슬피 울던 에밀리의 모습을 보았다.

‘불쌍한 사람…….’

세실리아 역시 그녀처럼 황제를 사랑해서 불행해진 여자였다.

어쩌면 신분을 잃어버린 자신보다 훨씬 더 불행할 거다.

황제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여자.

고작 신분을 잃은 그녀와 비교하면 훨씬 비참한 신세였다.

‘얼마 전까지는 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싸웠던 연적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세리아는 알 수가 없었다.

황제를 사랑했던 것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 아닐까.

그 때문에 불행해진 것이 아닐까.

세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시원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세실리아의 몸을 닦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질투를 접어두고 세실리아를 바라보니, 제국의 꽃이라 불렸던 자신만큼이나 아름다운 외모와 몸을 가진 여인이었다.

거기에 아무런 후광도 없이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의지의 상징.

“당신도 나도 참 남자 보는 눈이 없네요.”

세리아는 세실리아의 몸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들을 수 있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젠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어.’

세리아는 속으로 다짐했다.

***

“루이스.”

나는 멀어져가는 에밀리의 마차를 보며 되뇌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던 시선.

황제의 암살단인 홍련단의 대장 루이스였다.

“다 보았겠지?”

“예.”

“어떻게 할 건가? 황제에게 보고할 텐가?”

“그래야겠죠.”

“그게 널 죽일지라도 말인가?”

“제가 죽지 않을 방법이 있습니까? 보고하지 않으면 황제 폐하가 절 죽이실 겁니다.”

“딱 하나 있다.”

“하나 말씀이십니까?”

“너도 죽지 않고 나도 널 죽이지 않아도 되는 방법.”

나는 내 뒤에 선 루이스를 돌아보았다.

“날 믿어 보겠는가?”

“…….”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성공한다면……. 그 때의 그것, 해주시겠습니까?”

루이스의 뇌를 일깨웠던 그 때의 쾌감을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이다. 몇 번이고 해주지.”

“알겠습니다. 그럼 뭐라고 보고 드리면 되겠습니까?”

“귀족파의 귀족이 발견한 토리몽 산맥의 철광산을 매입하기 위한 회동을 벌였다고 보고하라.”

“그게 통할까요?”

“귀족파의 귀족이 일방적으로 뜯기는 계약이라면 황제도 좋아할 거다. 그 역시 탐내던 철광산이었으니.”

“……알겠습니다.”

루이스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세력이 필요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강인한 세력.

웅크리는 건 그때까지만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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