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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46화 (46/174)

〈 46화 〉 45화 무너지는 지크프리트, 세리아 릴리스 딸이에요.

* * *

멀리 보이는 지크프리트 공작을 본 세리아가 흠칫거리며 놀랐다.

이렇게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지크프리트의 대문이 열리고.

지크프리트 공작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지금까지의 악연 때문에, 그의 눈빛엔 살기가 드리웠다.

“이게 무슨 짓인가! 드미트리 장관! 그대는 날 능멸할 셈이야!”

“오랜만이군. 지크프리트 공작.”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분노하는 지크프리트와는 달리 내 목소리는 태연했다.

지크프리트는 나를 노려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말해주지 그러나?”

“그냥 인사 차 왔지. 나는 황제 폐하의 내각의 핵심 아닌가. 그리고 지크프리트 공작은 귀족파의 핵심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내뱉는 지크프리트 공작.

그간 고생이 심했던 걸까.

백금발이었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샜다.

주름도 조금 늘었군.

지크프리트 공작은 내 옆에 선 세리아를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손님을 너무 오래 세워뒀군. 안으로 들어가지.”

이를 아득바득 갈며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까지 나는 아무런 말없이 걸었다.

옆에 있던 세리아가 몸을 애처롭게 떨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부터 나는 의도적으로 세리아를 무시할 계획이다.

나는 오늘 악마가 될 거다.

제국의 세력 균형을 고민하는 모리스는 없다.

릴리스를 어떻게든 박살내려는 모리스만 남아 있을 뿐.

“뒤에 하녀는 왜 데리고 왔지?”

지크프리트 공작이 물었다.

“내 하녀를 내가 데려오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지, 공작?”

“궁금해서지. 그저 궁금해서.”

응접실에 도착한 나는, 지크프리트의 하인이 내온 차를 마셨다.

마시는 순간 혀끝이 아렸다.

“음, 골드릭 차로군. 마법사에게 치명적인 마나 실링 독을 섞었어. 설마 이런 차에 탄 독으로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눈을 감으며 호로록 차를 마셨다.

골드릭과 마나 실링을 섞는 것은 마법사에게 치명적인 독이었다.

물론 7서클 미만의 마법사들에게만 통하는 방법이었다.

독살이라.

재밌는 계획이로군.

릴리스 때문에 서클 2개가 상했다고 하더라도, 8서클 마법사였다.

이 정도 독의 해독은 쉬었다.

‘서큐버스가 발정하며 방출했던 마나로 일부 회복도 되었고.’

7서클까지는 무리 없이 가동이 가능했다.

“아. 미안하네. 내 하인이 실수를 했나보군. 최근에 내가 자주 애용하는 차라서 말이야. 기사들에겐 정력 증진에 도움이 많이 되거든.”

마법사를 제외하면 공작의 말대로 정력에 도움이 되었다.

밤새 물건이 서서 가라앉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보네.”

후르릅.

혀가 아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허나 그 실수를 바로잡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의도했다고밖에 볼 수가 없어.”

“걱정하지 말게. 허허. 내 해결하도록 하지.”

“고맙군.”

호로록.

다시 한 입 마셨다.

차를 준비했던 하인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아마 저 친구는 내일부터 볼 수 없을 거다.

불쌍한 것.

어쩌겠는가.

그게 이 세계인 것을.

“드미트리 장관, 그럼 온 이유를 말하도록.”

“릴리스.”

나는 서큐버스의 이름을 말했다.

세리아의 어머니이자, 초월체 서큐버스.

이 이름의 뜻을 모르지 않으리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모르겠군. 처음 듣는 이름이네.”

“아카데미의 증빙 자료를 꺼내게 만드는군.”

나는 한 뭉치의 서류를 꺼냈다.

세리아가 초월체 릴리아의 후손이라는 걸 증명하는 조사자료였다.

“설마 아카데미의 위상을 건드릴 발언은 하지 않겠지? 그건 마법부와 직접 대립하겠다는 뜻으로 알겠네.”

잠시 나를 노려보던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까지 알고 왔지?”

“릴리스가 직접 찾아와서 나와 이 하녀가 모두 고생했다는 것까지만 말하도록 하지.”

공작이 세리아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역시…….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꽤나 마음고생이 심했나보군.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로터의 출력을 최고로 올렸다.

“으읏!”

세리아의 신음이 뒤에서 들렸다.

“무슨 일이지?”

지크프리트 공작이 먼저 세리아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든 말을 걸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

“신경 끄게. 하찮은 하녀의 일이니.”

나는 고개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공작을 막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발이 저려서.”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하는 지크프리트를 가만히 바라볼 뿐.

“귀축…….”

세리아의 시선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이 선명하게 들렸다.

그런가.

‘귀축이라.’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그러나 나쁜 울림은 아니었다.

전, 아버지의 앞에서 몰래 딸을 희롱하고 있으니 말이다.

딱 지금의 나와 어울리는군.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여기까지 참지 않았다면 오지 않을 일이었다.

절반 이상은 그녀의 잘못.

내 잘못은 10프로 미만이었다.

“하아, 숨길 수도 없군.”

공작이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지크프리트가 악마와 연관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황제가 참 좋아하겠군.”

“……. 비밀로 해줄 수는 없는 건가?”

공작의 눈이 세리아에게 향했다.

“악마와 내통했다는 범행을 인정하는 건가? 그렇게 되면 자신의 딸을 팔아서 지킨 가문이 곧 사라지겠군. 그대의 가문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가문으로 전락할 거고.”

악마로 보일 것이다.

“네 이놈!!!! 어디 앞이라고 그 입을 지껄이는가!”

지크프리트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네가 공작이라서? 아니면 지크프리트가 유서 깊은 가문이라?”

나는 다리를 꼬았다.

“자기 딸을 팔아서 지킬 가문이라면 없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이노옴!!”

먼저 덤빈 건 지크프리트의 뒤에 선 소드마스터 머스크였다.

허나 그의 검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공기 중의 마나가 머스크의 검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었다.

“공작가 근위대장 머스크, 지금 이 자리는 자네가 낄 일이 아니라네.”

나는 싸늘한 눈초리로 머스크를 노려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는 그의 눈가에 핏물이 맺혔다.

“이렇게 보니, 마치 내가 악역이 된 거 같군.”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건 다른 놈인데 말이지.”

불끈 쥔 공작이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리스……. 드미트리!”

“내 이름을 부른다고 해결될 일은 없네만?”

공작의 눈이 세리아에게 향했다.

“말하겠다. 적어도 세리아는 이 방에서 나가게 해주게.”

“지크프리트, 또다시 실례를 저지르는군. 내 하녀야. 세리아가 아니라. 감히 내 하녀에게 멋대로 이름을 붙이지 말게.”

지크프리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방금 전까진 적개심이 가득했던 모습에서 힘이 쭉 빠진 상태였다.

“실수였어. 마법부 장관이 된 그대를 찾아갔던 것이 내 실수였어.”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되뇌었다.

“말하라. 한 번 버린 것, 두 번이 어려울까?”

“자네는……. 악마야.”

“지크프리트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응접실엔 한참이나 침묵이 가라앉았다.

풀썩.

공작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싸울 의지를 모두 잃었다.

여기에 있는 누구도 나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다.

“그건 하룻밤의 실수였네.”

“실수라?”

“그래. 내가 아직 혈기를 갖고 있었을 때, 릴리스를 만났지. 그 때는 몰랐어. 그녀가 서큐버스였다는 걸.”

지크프리트는 릴리스와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나는 지크프리트의 공작이었다. 후계자도 존재하며 공작 부인까지 지닌. 탄탄하게 가문을 운영해갔지. 우리 가문은 제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가문이었네.”

“지크프리트는 그랬지.”

“나는 후계구도를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언제나 피임을 철저히 했다네. 피임을 해주는 약초를 매번 여자들의 질에 발랐지. 그건 아내도 예외가 아니었어.”

세리아를 제외한 남자 아이 둘.

그게 과거 지크프리트의 후계자들이었다.

전부 장성해서 각자 요직을 차지했었다.

그랬었다.

“그래. 지크프리트의 공자는 2명이 있었지. 지금은 없지만.”

지크프리트 공작의 눈빛이 공허했다.

“그래. 세리아는 막내였지.”

“아마 후처였지? 릴리스는.”

“그래. 원래는 후계를 낳지 않기로 했어. 그랬었지. 그런데 그날따라 피임 약초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실수라고 한 건가?”

“그래! 세리아는 실수로 낳은 딸이야. 전혀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고! 악마와의 계약 같은 것도 아니었네.”

횡설수설.

악마와의 계약을 맺었다는 혐의가 두려워서일까.

어렵게 되찾은 가문을 다시 잃게 될까 무서워서일까.

총기를 잃어버린 공작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지껄였다.

지금 이 자리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저런, 실수로 생겨난 딸이라. 저세상으로 간 아이가 참 슬퍼하겠어.”

나는 세리아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았다.

두 번 버려진 가녀린 딸의 얼굴을 하고 있겠지.

슬픔일까? 아니면 분노일까?

그 표정은 내 앞에 앉은 지크프리트의 공작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분노로군.’

지크프리트의 시선은 내 뒤에 있는 세리아에 닿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딸이라 생각했다네!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잊지 못하고 있다고!”

이번에도 지크프리트 공작의 눈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는 뻔했다.

공작의 얼굴이 짧은 순간, 몇 년이나 폭삭 늙었다.

나는 세리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짐작은 가나. 쳐다볼 수는 없었다.

그 분노의 대상이 나에게도 향하고 있을 테니까.

굳이 듣기 싫은 비밀을 듣게 한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겠지.

그 대신 제국의 공작에서 마지막 남은 딸에게마저 버림받은 평범한 아버지로 전락하는 순간을 지켜봤다.

모든 것을 잃은 눈에는 의지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공작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던 딸을 되찾겠다는 의지 역시 사라졌겠지.

“슬픈 가족 이야기야. 눈물 없인 들을 수 없군. 허나 그대의 혐의는 풀렸네. 서큐버스와의 실수는 있을 수 있지. 그것이 초월체라면 더더욱.”

참을 수 없었을 거다.

오늘 지크프리트 공작이 평생을 숨겼던 정보를 얻었다.

세리아가 릴리스와 지크프리트 공작이 정을 통해서 낳은 자식이라는 거다.

즉.

다른 서큐버스처럼 복제가 아니라, 자기의 배를 아파서 나은 자식이라는 거지.

‘재미있군.’

때문에 릴리스는 다른 딸들보다 세리아와 훨씬 더 깊게 연결되었다.

이제 알겠다.

왜 릴리스가 세리아에게 빙의할 수 있었는지.

동시에.

그 빌어먹을 서큐버스 초월체를 죽일 방법 또한 생각이 났다.

릴리스를 죽일 방법은 세리아에게 남아 있다.

‘굳이 다른 서큐버스를 찾을 필요는 없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듣고 싶은 건 전부 다 들었다. 정보 고맙다. 이 일은 우리만의 비밀로 붙이도록 하지. 가문을 지키려는 그대의 노력을 잊지 못할 거야.”

“돌아가도록 하지. 아직 일이 많다.”

나는 저택에 와서 처음으로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지크프리트 공작을 쏘아 보고 있었다.

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리 그래도…….”

나는 당신의 딸인데.

차마 뱉지 못하고 입으로만 벙긋거리는 말을 나는 보았다.

‘의지력이 대단해.’

어찌 이리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쾌감을 참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곧이어 나를 노려보았다.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좋아.

나는 텔레파시로 세리아의 머리에 전했다.

“돌아가지.”

나는 세리아의 몸에 손을 댔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패배했음을 인정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녀는 절정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나는 반칙을 쓰기로 했다.

세리아의 몸에 닿은 손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진정 마법.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사그라들며, 그녀의 몸에 안도감이 휩싸였다.

분노가 사라지면서.

잊었던 쾌감이 몰아쳤다.

“꺄아악!”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쾌감에 순간 정신을 잃었다.

“저런. 몸이 많이 아픈 모양이군.”

“무, 무슨 일이오?”

나를 올려다보는 공작이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물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딸을 버렸던.

그것도 두 번이나 버렸던 공작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아무리 지크프리트라도 분노와 경멸에 가득 찬 얼굴로 보는 딸의 얼굴을 정통으로 받은 뒤엔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알 필요 없소. 내 하녀의 일이니.”

필부가 되어버린 공작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아……. 세리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그럼 가보도록 하겠소. 조만간 한 번 더 찾아오도록 하지.”

지크프리트 공작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는 저주에라도 걸린 듯,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세리아……. 아비가 미안하다…….”

***

정신을 잃은 세리아의 눈엔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그녀가 매번 자고 일어나던 그 방이었다.

‘이건 대체…….’

분명 지크프리트의 저택에 있었는데.

그녀는 마지막에 모리스가 자신의 몸을 건드렸다는 걸 떠올렸다.

“내가 내기에서 이겼군.”

옆에서 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반칙이에요.”

“허나 내가 이겼지. 그대는 이 저택에 돌아올 때까지 견디지 못했고.”

궤변이라는 걸 알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세리아, 너는 내가 싫은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허나 이건 기억해라.”

“…….”

“가문에게 버려진 네가 기댈 건 나밖에 없다는 건.”

세리아는 후회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이 남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세리아의 눈초리가 사나웠다.

“어쨌든,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까 그대로 가야겠지.”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제 의견은 들어주실 생각이 없으셨을 테니까.”

“네가 그리 대답할 줄 알고 이미 새겨놨다.”

모리스가 세리아의 음문이 새겨진 배꼽 아래를 쓰다듬었다.

아직 쾌감이 남아있던 걸까.

그가 그곳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엄청났었네. 네가 서 있던 자리가 심하게 젖어서 방을 정리하는 하녀는 눈치 챌 수도 있겠더군.”

세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쉬어라. 내일은 새로운 조교를 시작할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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