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3화 서큐버스는 절정하면 마나를 뿜어낸다지? 실험을 해보고 싶군.
* * *
“미흡하구나.”
내 말에 에미르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바보 같은 대답.
에미르라면 짓지 않을 얼굴이었다.
“내 욕망에 초점을 맞추느라, 네가 변한 여자의 진심을 파악하지 못했어.”
에미르는 솔라리온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어쩌면 세리아보다 훨씬 더.
“가문을 버렸다는 그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너에게 홀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손가락으로 에미르의 이마를 밀었다.
팡!
손에 담긴 마나가 터지며 에미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엔.
백금발에 연보랏빛 눈동자를 한 갈색 피부의 서큐버스가 서 있었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역시.
그녀의 허리춤에 달린 박쥐 모양의 날개겠지.
문헌에 나오는 서큐버스와 똑같은 생김새였다.
“어, 어떻게?”
“말했잖은가. 그대가 실수했다고.”
“이렇게 된 이상!”
서큐버스가 허공을 날았다.
화르륵!
그녀의 손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감히 내 앞에서 마법을 쓰다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디스펠.
타오르던 불이 꺼지고, 날아올랐던 서큐버스의 몸이 떨어졌다.
던전과 연결된 마법진마저 한순간에 꺼졌다.
“이, 이게 어떻게?”
“내가 그냥 들어왔는 줄 아느냐?”
던전을 걸어오며 마법진의 분석과 해석을 전부 끝마쳤다.
무슨 원리로 움직이는지.
어떤 회로와 수식을 썼는지.
마나의 구성은 어떻게 되며, 마나 운용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전부 파악을 마치고 마법진을 해제했다.
“참으로 단순하다.”
그렇기에 내 앞에서 마법을 썼던 것이리라.
나는 마나를 잃고 바닥에 주저앉은 서큐버스에게 다가갔다.
“서큐버스는 절정하면 힘을 잃는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웃기는 소리!”
마구잡이로 덤비려는 서큐버스를 한 손으로 막은 뒤, 허공에 마나로 만든 딜도를 꺼냈다.
“꺄아악!”
마녀인 베로니스가 없어서 못 사는 물건이었다.
“네년에게 선물을 주지.”
서큐버스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이 필요했다.
우우웅!
“전동 기능도 추가했으니, 만족할 거다.”
“자, 잠깐! 그게 대체?”
나는 당황하는 서큐버스의 보지와 입에 마나 딜도를 쑤셔 넣었다.
우우웅!
“으그긋!”
바인드 마법으로 생겨난 나무줄기들이 서큐버스의 몸을 구속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을 지켜봤다.
앞으로 서큐버스 공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메모를 위해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으윽! 윽! 으그극!”
입에 문 딜도 때문에 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서큐버스를 보며 나는 그녀의 반응을 하나하나 메모했다.
“마나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군. 진동에는 약하나 치명적으로 보이진 않아. 절정하면 마나가 빠져나가는지도 확인해 봐야겠군.”
딜도의 쾌감에 벗어나기 위해서 꿈틀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으극!!”
서큐버스가 몸을 꿈틀거렸다.
가벼운 절정.
그와 함께 서큐버스의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꽤 많은 양이었다.
“호오.”
절정 하면 마나가 빠져나간다는 건 꽤 괜찮은 기록이었다.
‘애널은 어떻지?’
마나 딜도를 하나 더 만들어 그녀의 엉덩이 구멍에 꽂았다.
타고난 명기여서일까.
그녀의 애널은 거부감 없이 딜도를 뿌리까지 삼켰다.
“좋군.”
약간의 괘씸죄였다.
감히 세리아와 에미르로 변신해 나를 유혹하려고 했다는 것에 대한.
“이제 건방진 소리는 안 하겠지?”
나는 입에 물린 딜도를 뺐다.
“네놈을 죽일 거야! 파이어……. 으겍!”
쓸데없이 주문을 외려고 해서 다시 입에 딜도를 물렸다.
기도까지 제대로 막은 채로 위아래로 동시에 울리는 진동.
서큐버스인 그녀도 쉽게 느끼지 못한 감각이리라.
거기다가 마나에 민감한 그녀들.
정순한 마나로 만든 마나 딜도가 닿는 것 자체만으로 서큐버스에겐 강렬한 쾌감으로 느껴질 거다.
“으그극!”
마나 딜도에 얼마나 오랫동안 꽂혀 있었을까.
반항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던 서큐버스의 눈동자에서 힘이 사라졌다.
계속된 쾌감 때문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
“연구 결과도 적당히 나왔으니 이쯤 하도록 할까?”
마나에 민감하다는 것과 절정을 할 때마다 힘이 빠진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그녀의 입과 보지, 그리고 애널에 박힌 딜도를 뺐다.
“하악, 하악.”
가련하게 쓰러진 서큐버스가 숨을 달싹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죽일 거야. 힘을 찾으면 네놈을 죽일 거야…….”
“하찮은 악마의 복수심 따윈 관심 없다. 내가 궁금한 건 하나야.”
나는 서큐버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릴리스, 서큐버스라면 이 이름은 들어 봤겠지?”
릴리스의 이름을 말하자, 서큐버스가 몸을 크게 떨었다.
“릴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할 테니.”
“이익!”
서큐버스가 도망가기 위해서 급히 일어났지만.
“어딜 가는가?”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꺄아악!”
“말해라.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그러나 서큐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년은 릴리스의 딸인가?”
나는 단순히 릴리스가 서큐버스의 초월체라고만 생각했다.
서큐버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허나 만약.
릴리스가 서큐버스의 어머니이자, 시초라고 한다면?
그녀는 후손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초월체였다.
그 뜻은 동시에.
‘자기 힘을 다른 방식으로 키워서 초월체에 걸린 제약을 풀 수도 있다는 소리.’
세리아에게 빙의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리라.
“…….”
마지막 경고에도 서큐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겠다?”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 각오, 잘 받도록 하지.”
나는 서큐버스의 이마에 손을 댔다.
기억을 읽는 것 따위 할 생각은 없었다.
정신을 매만져 정보를 빼내는 것 같은 고도의 컨트롤 또한 필요 없었다.
이미 내 제안을 거절한 상대에게 그런 자비는 필요 없다.
나는 서큐버스의 이마에 댄 손에 마나를 집중했다.
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며 내 손에 검은 기운이 모였다.
서큐버스의 영혼이었다.
자신보다 격이 낮은 이들의 영혼을 착취할 수 있는 스피릿 드레인.
마법부에서 정식으로 금지한 3대 마법 중 하나였다.
영혼을 잡아 뜯는 것의 잔혹함 때문이었다.
끼아아아악!!
서큐버스가 눈깔을 뒤집으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영혼을 갉아먹는 것 같은 비명을 무시하며, 서큐버스의 영혼을 잡아 뜯었다.
으드드득!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렸다.
내 손에 검은 영혼이 둥둥 떠다녔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영혼에 직접 타격이 가는 고통으로 존재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 죄악의 마법이었다.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고통.
악마 역시 쉽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악마를 상대로 그런 배려까지 해 줄 이유는 없지.’
꺄아악! 아파! 아파! 아파아아!!
서큐버스는 영혼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반면.
“…….”
몸은 마치 동상처럼 허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비명을 질렀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영혼을 잃은 몸뚱어리.
지금 서큐버스의 상태였다.
나는 초점을 잃은 서큐버스의 몸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지?”
“……저는 서큐버스, 나모리라고 합니다.”
서큐버스의 몸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대답했다.
육체와 나뉘어졌으나, 이 서큐버스는 대답하고 있었다.
영혼이 없어, 자아가 사라졌으나. 이 몸이 가졌던 기억은 여전했다.
그러면 컴퓨터에 입력하면 나오듯.
내 질문에 모든 것을 대답하게 된다.
“인간들에게 불리는 이명 말고 진명을 고하라.”
말하지 마! 절대 말하지 마아악!
나모리의 영혼이 발악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러스리아입니다.”
그녀의 몸은 솔직하게 내 질문에 대답했다.
악마들에게 진명은 절대 밝혀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진명을 아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멸할 수도 있기 때문.
그런 질문마저 대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스피릿 드레인이었다.
모든 걸 말한다는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릴리스에 대해서 아는 걸 모두 말해라.”
안 돼! 말하지 마! 그걸 말하면 난!
영혼이 옆에서 발악했다.
잠시 움찔거리던 나모리의 몸이 내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분은 저희들이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
“……예, 그 분께서는 인간의 마나를 모아 저희를 창조하셨습니다.”
“초월체는 후손을 만들지 못한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안 된다고오! 꺄아악!
나모리의 영혼이 크게 흔들렸다.
“……어머니께서는 다른 존재들의 마나와 어머니의 마나를 이용해서 자기 분신을 만드셨습니다.”
“너는 무엇이 섞인 거지?”
움찔거리던 그녀의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저는, 와 와이, 번과 으극! 마법, 사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소재이며, 어머니의 가장 강력, 한…….”
몸에서 거부 반응이 강하게 일어났다.
릴리스가 건 맹약이겠지.
아…….
어느 순간부터 영혼의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모든 서큐버스가 릴리스의 딸인가?”
“……그, 그렇습니다. 서큐버, 스는 어머니께서 만드, 신 작품입니다.”
“그렇군.”
서큐버스의 입에서 피거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내가 뜯어낸 영혼은 어느새 사라졌었다.
나모리의 영혼이 죽은 거다.
나는 나모리의 몸을 통해 들은 정보를 정리했다.
초월체는 자손을 만들 수 없으나.
인공적으로 자기 복제품은 만들 수 있다.
‘어쩐지.’
자세히 뜯어보면 묘한 차이가 있었으나 백금발에 연보랏빛 눈동자만큼은 세리아를 닮았었다.
얻을 정보는 얻었다.
‘분신이라.’
그건 세리아도 마찬가지 일 거다.
허나.
왜 이 서큐버스에겐 릴리스가 빙의하지 않았는가.
나모리도 릴리스의 딸 중에 하나일 텐데.
그건 차차 알아갈 수 있을 거다.
돌아가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나는 서큐버스를 바라봤다.
코피를 흘리고 거품을 흘리고 있었으나, 숨을 쉬고 있는 듯 숨을 내쉬고 있었다.
마치 석상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곧 침입자가 오겠지.
서큐버스가 힘을 잃었으니, 이 마법진 역시 아무런 환각 효과를 내지 못하리라.
그녀의 미래는 뻔했다.
각성한 서큐버스의 몸은 튼튼하다.
지금 며칠 물을 마시지 않고 쓰러져 있어도 한 달은 살아 있을 거다.
던전을 돌아다니는 헌터에게 주워질지.
근처 몬스터에게 발견되어 모판이 될지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분명 그러할 텐데.
유독 세리아와 비슷했던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눈에 밟혔다.
‘기분이 더럽군.’
나는 서큐버스를 마법진 중앙에 옮긴 뒤, 마나를 돌렸다.
전력으로 돌려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전에 해석했던 수식과 분석했던 회로의 역순으로 마법진을 재조립했다.
우우웅!
마법진이 빛을 내며 움직였다.
사람의 정기를 흡수해서 자기 몸에 흡수했던 것과 정반대의 효과를 냈다.
그녀가 던전에 침입했던 사람들과 몬스터에게서 정기를 뺏어 흡수했듯이.
이번에는 그녀의 정기와 마나가 흡수되어 던전 전체에 퍼졌다.
서큐버스에게 마나의 방출은 곧.
절정을 뜻했다.
마법진의 중앙에 있던 나모리의 몸이 거세게 떨렸다.
몸이 수차례 절정을 느끼자.
그녀의 허리가 한계까지 꺾이며 움찔거렸다.
화아앗!
몸에서 뿜어지는 빛과 함께.
서큐버스 나모리는 순삭간에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던전에는 충만한 마나가 차올랐다.
우르릉.
그와 동시에 던전이 흔들렸다.
마법진을 구성하던 마나까지 모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던전을 벗어났다.
쿠그긍!
던전이 무너지고, 마나가 사방으로 퍼졌다.
‘한동안 이 근방이 기사들의 수련지가 되겠군.’
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저택으로 돌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