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30화 머리 마사지인데 왜 그러지? 설마 느끼기라도 한 건가?
* * *
“마, 마사지?”
“그렇다. 손님이 왔으면 대접을 해야지.”
루이스가 조금은 머뭇거렸다.
“걱정은 마라. 이상한 마사지는 아니니까.”
가볍게 머리를 주무르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조금은, 과격해질지도 모르지만.
“알겠어요.”
잠시 고민하던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여기서 도망치고 싶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말을 잘 듣고 싶을 거다.
“그럼 여기에 앉게.”
피곤한 루이스를 위한 푹신한 소파였다.
“저, 정말 아무 짓도 안 하시는 거죠?”
“내가 한 말은 지킨다. 걱정 마라.”
루이스는 불안해하면서도 소파에 앉았다.
“지금부터 간단한 마사지를 할 테니, 몸을 맡겨라.”
아주 가벼운 머리 마사지였다.
머리를 마사지해주는 것만으로도 여러 피로들이 풀리고, 다양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 마나와 마법을 잘 섞는다면.
‘사라진 신경을 부활시킬 수도 있지.’
소파에 앉은 루이스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눈은 감는 게 편할 거다.”
“예.”
나는 손가락으로 루이스의 머리를 매만졌다.
두피를 쓸어 올리며, 손가락 하나하나가 머리에 지나다니는 중요한 혈을 마사지했다.
꾸욱 꾸욱.
내 손가락이 지나갈 때마다, 루이스의 표정 변화가 눈에 보였다.
“편하게 내 손에 몸을 맡기게.”
나는 루이스에게 속삭이며 마사지를 이어갔다.
방금 전까지 불안하게 경직되었던 몸이, 사르르 풀어졌다.
머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불안한 심리를 진정시키는 것에 큰 효과가 있었다.
“아프면 말하게. 힘을 뺄 테니.”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계속해서 주물렀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내 손가락은 루이스의 머리를 천천히 마사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루이스의 온몸이 풀어진 게 보였다.
그녀가 모든 긴장을 풀고 내게 몸을 맡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이군.’
나는 은밀하게 손가락에 마나를 실었다.
극소량의 마나가 내 손을 타고 루이스의 머리에 흘러들어갔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녹이는 마사지에 안심하고 있던 그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처음 그대로 내게 몸을 맡길 뿐.
“편한가?”
“예.”
그녀는 마치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다행이군.”
효과는 좋았다.
마사지는 계속되었고, 나는 루이스의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손가락에서 새어나오는 마나가 그녀의 머리카락에 스며들었다.
사라락.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기분은 어떤가?”
“좋아요.”
“불편한 곳은 없는가?”
“예,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엔 힘이 빠져 있었다.
한올 한올 머리카락에 마나가 담길 때마다, 그녀의 눈썹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내가 뽑아낸 마나의 실들이 온통 루이스의 머리를 뒤덮었다.
앞으로 저 마나들이 그녀에게 새로운 감각을 열어줄 거다.
나는 루이스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받침대에 올려놓은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완성됐군.’
수술로 사라진 쾌감이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리라.
아무리 작은 감각이라도.
모든 걸 잊었던 루이스에게는 크게 느껴질 터였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정수리 주위를 꾹 눌렀다.
“앗.”
루이스가 움찔 떨며 신음을 내었다.
“무슨 일이지?”
나는 태연하게 질문했다.
갑작스러운 느낌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불편하면 얘기해라.”
“네.”
루이스는 이상함을 느꼈다.
마법부 장관의 마사지에는 특이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매만지고 마사지하는 것일 뿐.
그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몸을 맡긴 루이스의 몸이 절로 풀어졌다.
여태까지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마사지 한 번에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더 있고 싶어.’
조금 더 몸을 맡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얻었던가.
홍련의 대장으로 지켜야 하는 권위.
미친 것 같은 황제의 상대.
수많은 암살단들에게 노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장관에게 몸을 맡긴 이 순간에는 안 좋은 것들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심지어 장관에게 들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마저 잊었다.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감촉에.
그녀는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즐겼다.
언제부터였을까.
장관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오랫동안 잊었던 감각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그의 후두부를 마사지할 때에는 마치 가슴을 직접 만지는 듯한 기분이었고.
정수리 주위를 주무를 때마다, 회음부를 애달프게 건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분명 평범한 머리마사지일 텐데.
그녀의 몸은 왜 점점 달아오르는 걸까.
‘자, 잠깐만.’
몸이 바들바들 떨었다.
십 수 년 만에 찾아온 쾌감에 적응하지 못한 몸이 제멋대로 떨고 있었다.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고.
“아, 아…….”
얼굴이 조금씩 화끈거렸다.
그녀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이대론 안 된다.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잊었던 쾌감을 한 번 맛 본 몸은 그녀의 이성을 목소리를 따르지 않았다.
“괜찮은가? 많이 아파 보이는 군.”
귀에서 들리는 장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마치 설탕을 듬뿍 뿌린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녹여버리는 목소리였다.
“괜……찮아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괜찮지 않은데.
벗어나고 싶은데.
조금 더 있고 싶다는 욕망에 거짓말을 했다.
“조금 더 해주세요.”
홍련의 대장이라는 명패를 모두 잊은 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루이스가 애원함과 동시에.
“아니, 이제 됐다.”
모리스는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이 정도면 손님에게 해줄 서비스는 충분히 해준 것 같군.”
“에?”
루이스가 힘이 풀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자네가 찾던 사람이 오지 않았는가.”
나는 열린 문으로 우리를 보고 있던 엘리스를 가리켰다.
“엘리스 이, 이건…….”
당황한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보려고 했지만.
털썩!
“꺄아악!”
오랜만에 맛 본 쾌락에 힘이 빠져있던 몸은 그녀의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저런, 몸이 좋아 보이지 않군. 오늘은 이대로 돌아갈 텐가?”
“아, 아…….”
나는 바닥에 쓰러진 루이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게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과 다리를 휘젓는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는군. 엘리스, 자네 손님이니 자네가 배웅해주게.”
“알겠……습니다.”
엘리스가 루이스를 부축하며 저택 밖으로 나갔다.
굳이 루이스를 마사지해서 그녀에게 쾌감을 찾아준 이유는 간단했다.
‘황제의 암살단, 홍련.’
저들을 내 편으로 만든다면 언젠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황제의 뒤를 노릴 수 있는 무기가 생기기 때문.
무슨 일이든 대비해야지.
‘1단계는 내게 의지하게 만드는 것.’
오랫동안 수녀처럼 생활했던 그녀였다.
‘수녀는 아니지. 그간 수많은 여자들을 따먹은 여자지만.’
본인은 단 한 번도 쾌락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부하와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 쾌락을 연기했을 뿐.
한 번 쾌락을 맛본 그녀는 내게 매달리게 될 거다.
나는 열매가 스스로 떨어지길 기다리면 그만.
***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응……. 고마워.”
엘리스는 루이스를 부축하며 저택의 정문까지 도착했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제 발로 설 수 있었다.
“무서운 남자야. 너도 조심하도록 해.”
루이스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엘리스는 멀어지는 루이스를 보았다.
홍련의 암살자들에겐 언제나 여왕 같은 여자였다.
그녀는 지배자였고.
그들만의 여왕이었다.
항상 절대적인 강함으로 부하들을 희롱했고.
암살단원들은 언제나 루이스의 발아래에서 복종했다.
‘그런 대장님이 저런 꼴로…….’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던 걸까.
멀리서도 루이스가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만약 내가 저렇게 당했다면.’
엘리스는 솟아오르는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배당하고 싶었다.
루이스의 머리를 주물렀던 모리스의 두꺼운 손이 자신의 목을 조이고.
그의 거대한 물건이 자신의 안을 휘저어주길 바랐다.
그녀를 희롱하고 멋대로 사용해서 그의 욕망을 자신에게 쏟아 내주길 바랐다.
“하악, 하악.”
생각만으로도 서 있는 것이 힘들었다.
“저 여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엘리스는 멀어지는 자신의 대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엘리스.
그녀는 심각한 마조였다.
홍련에 입단하게 된 것도 자신의 상스러운 욕망을 해소하기 위함.
홍련의 대장인 루이스는, 그런 면에선 완벽한 여자였다.
루이스는 언제나 엘리스를 만족시켰고.
그녀의 발밑에 기는 건 엘리스에게 축복이었다.
그러나.
여왕인줄 알았던 여자가 사실은, 자신과 똑같은 개새끼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녀를 보는 눈은 한없이 차가워졌다.
루이스가 심었던 홍련의 비술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엘리스는 저택으로 돌아갔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당연히.
모리스가 업무를 보는 집무실이었다.
똑똑.
“들어와라.”
문 안에서 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옅게 몸이 떨렸다.
엘리스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안에는 모리스가 서류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아까 일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태연했다.
저택에 몰래 침입했던 그녀는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찾아왔는지.
어떤 관계인지.
무단침입자에 대해서 물어봐야 할 것들이 많을 텐데도.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루이스가 이곳에 왔다는 걸 들켰을 때, 자신은 얼마나 심장이 내려앉았던가.
모리스를 보자마자 다시 느꼈다.
그와 자신의 격의 차이를.
엘리스는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인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무슨 일이지?”
“차를 들고 왔습니다.”
“아, 여기에 놓게.”
“그리고 아까 저희 언니 때문에…….”
“그 일은 됐다. 이미 지난 일이니.”
“아, 네.”
이게 끝인가?
내게 묻는 말은 더 없는 건가?
왜 더 얘기를 해주지 않는 거지?
추궁하고 고문해서 그녀의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건가.
‘아.’
엘리스는 깨달았다.
저 남자는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았던가.
엘리스가 홍련의 멤버라는 것을.
루이스가 홍련의 대장이라는 것도.
그녀가 오늘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도.
저 남자는 다 알고 있을 거다.
압도적인 정보의 차이.
생각만으로도 가버릴 거 같았다.
‘저 남자에겐 내가 쓸모없는 패인가?’
괴롭힐 가치도 없는?
아니야.
그래선 안 돼.
‘가치가 없으면, 만들어야지.’
엘리스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남자가 가장 좋아할 것은?
너무 깊게 머리를 굴린 탓일까?
엘리스는 자신의 손에 쟁반이 들려있고, 그 쟁반이 앞으로 기울어져 차와 주전자가 모리스를 향해 쏟아진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결국, 쟁반이 엎어졌고.
촤악!
모리스의 옷을 적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