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29화 홍련대 대장은 쾌감 신경이 전부 죽었다는데, 마사지라도 받고 갈 텐가?
* * *
“장관님, 끝나셨습니까?”
업무를 끝내고 마탑을 나가자, 입구에서 마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출퇴근을 담당하는 마부였다.
하녀를 내게 배치할 때 황제가 함께 보낸 사람이었다.
사람은 굳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사람을 쓸 필요가 있다고 붙였다.
“빨리 이동하지.”
저택과 마탑을 오갈 때 말고는 함께할 일도 없는 마부였지만, 나름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 해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경쾌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지크프리트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군.’
내가 저지른 일을 보고 바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신분처형을 당했지만, 엄연히 지크프리트의 딸이었다. 그런 그녀를 내가 모욕했으니, 뭔 짓을 하긴 할 텐데.
‘도발을 더 해야 하나.’
지크프리트 공작 본인을 데리고 와야 할까 고민할 때였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저, 장관님.”
마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밖으로 나오셔야 할 거 같습니다.”
“무슨 일이지?”
나는 마나를 퍼트려 마차 밖의 상황을 살폈다.
짙은 살기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이제 해가 지는 도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은밀한 골목.
뻔했다.
암살자들이었다.
‘누가 보냈지?’
내게 감히 암살자를 보낼 놈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가장 유력한 건 역시.
‘지크프리트인가.’
뻔한 대처에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자, 장관님……?”
마부의 떨리는 목소리가 상념을 끊었다.
저 불쌍한 마부는 살려야겠지.
“알았다. 내가 나가지. 자네는 마차 안으로 들어와 있게.”
“가, 감사합니다.”
나는 마차에 간단한 배리어를 치며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밖에는 복면을 쓴 암살자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제국이 통일되고 마법으로 수도가 뚫린 이 시대에 복면을 쓴 암살자라. 너무 구시대적 사고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거군.”
나쁘지 않다.
나 역시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바로 시작하지. 심문할 놈은 한 명이면 충분하니까.”
딱!
손가락을 튕겼다.
가장 기본적인 매직 미사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법이었다.
심플하고, 파괴적이지.
마나의 중첩.
수식의 중첩.
기술의 중첩.
중첩, 중첩, 중첩, 중첩.
무려 8단계나 중첩된 마법.
한 번 중첩될 때마다 마법의 위력은 배수로 강해졌다.
2의 8배수.
무려 256배나 강화된 매직 미사일.
여기에 있는 암살자들을 전부 박살내기엔 충분하리라.
‘조금 과했을지도 모르겠군.’
내가 매직 미사일을 사방으로 쏘아냄과 동시에.
“마방진을 개방하라!”
암살자들 사이에서 마나의 흐름이 일어났다.
마법사까지?
꽤나 돈을 많이 썼는걸?
매직미사일 중 절반이 힘을 잃었다.
그럼에도 마법의 힘은 충분했다.
콰과광!
“끄아악!”
암살자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됐다. 마법 봉인 2단계 주문을 펼쳐라!”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지시에, 마나의 흐름이 격해졌다.
“하, 흑마술이군.”
시체가 흘린 피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피가 매개체가 되어 흑마술의 마력이 주위를 감쌌다.
외부의 마나가 완전히 차단되었고.
마차 주위는 오로지 마력만이 남았다.
평범한 마법사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상태.
“이제 놈은 마법을 쓰지 못한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모리스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의 뒤에 따라왔던 마법사들이 마력을 움직였다.
녀석들의 손에서 피처럼 붉은 창이 생성되었다.
“마법을 쓰지 못한다라…….”
웃기는군.
“고작 이런 걸 준비해서 나를 죽이려고 했다니.”
나는 손을 펼쳤다.
봉인진 밖의 마나를 억지로 끌어 모았다.
화르륵!
그러자, 손끝에서 검은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저게 무슨?”
나는 내 심장을 노리는 붉은 창을 불꽃으로 막아냈다.
창을 흡수한 불꽃은 그대로 비슷한 모양의 창이 되어, 마법사들의 가슴을 꿰뚫었다.
“크허억!”
마법사들의 몸이 무너지며 한 줌의 재로 화했다.
흑마술의 대가였다.
봉인진을 펼쳤던 마법사들이 모두 죽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간단했다.
주위를 가득 메웠던 마력은 불안정하게 휘몰아쳤고.
“크아악!”
“사, 살려줘!”
“어, 엄마아아악!”
불안정하게 휘몰아친 마력은 나와 대장을 제외하고 모두를 집어 삼켰다.
모두 시체 하나 남지도 않고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내가 이런 곳에서 마법을 쓰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그랬다면 너무 순진하군.”
“괴물 같은 자식!”
드디어 대장이 검을 꺼냈다.
푸른 검기가 선명했다.
저 마력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건, 마스터 급 검사라는 뜻.
꽤나 힘든 상대였다.
겉으로 여유로운 척을 했지만.
‘마나를 거의 다 썼다.’
마력의 봉인진에서 억지로 일으킨 마나의 후유증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어떻게든 네놈을 죽인다!”
대장이 검을 뽑아 덤볐다.
소드마스터 특유의 푸른 검이 주위를 밝혔다.
“쳇.”
나는 급하게 만든 매직 미사일로 검의 경로를 바꿨다.
후웅!
검은 허공을 갈랐고.
나는 급히 손을 휘저었다.
두 개의 매직 미사일이 녀석의 급소를 노렸다.
캉! 캉!
역시 마스터급 기사.
상대가 쉽지는 않았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나는 조금씩 뒤로 밀렸다.
대장은 점점 나를 몰아세우며 앞으로 전진했다.
나는 수세로 전환했고.
녀석은 매섭게 공세를 몰아쳤다.
“후욱, 후욱.”
마나를 거의 다 썼다.
이마에 땀이 송골거리며 맺혔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의 입꼬리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라 본 걸까.
아님, 마나를 잃고 무방비해진 마법사가 상대라 안심한 걸까.
아주 조금 방심한 그 찰나의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다 됐다. 이제 죽어라. 괴물!”
푹!
살이 찢어지는 섬뜩한 소리가 귀를 찢었다.
“미안하지만, 죽는 건 네 쪽이다.”
“이, 이게 대체…….”
피로 만들어진 거대한 창이 대장의 가슴을 뚫었다.
아까 흑마술사가 만든 것과 똑같은 모양의 창이었다.
“네, 네놈……. 흑마술을?”
“이것까진 보여주긴 싫었는데 말이지.”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아름답지 않으리라.
내가 하는 심문의 고통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종류가 아닐 테니.
나는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대장의 머리에 손을 댔다.
심문은 간단했다.
머리 안으로 들어가 기억을 읽으면 되니까.
이 방법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상대의 정신이 박살난다는 것.
“으그그극!”
그게 아무리 마스터 급 검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대장은 경련을 잃으키며 눈을 까뒤집었다.
내가 모든 기억을 읽었을 땐, 녀석의 입에서 피거품이 일어났다.
“차라리 다행이군.”
완전히 미쳐버리기 전에 숨이 끊어졌다는 것이 말이다.
덕분에 암살자를 보낸 놈들을 알아냈다.
예상대로 지크프리트였다.
‘선물을 보내줬으니, 답을 해야겠지.’
그 전에 우선 씻어야겠다.
몸이 피와 먼지로 더러워졌다.
“마부.”
“예, 옙!”
“저택으로 돌아가자.”
“아, 알겠습니다.”
***
같은 시각.
“엘리스.”
“루, 루이스님?”
“우리 귀여운 고양이가 혹시 다른 주인을 섬기는 게 아닐까 확인하려고 왔어.”
루이스는 드미트리의 저택에 몰래 잡입해 들어왔다.
목적은 부하인 엘리스의 배신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배신이라니요.”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 대단한 마법부 장관의 저택에 쉽게 들어갔다는 게 말이야.”
“아닙니다. 대장님.”
“그래? 그럼 확인해 볼까?”
루이스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엘리스의 앞에 섰다.
엘리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루이스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왜 자꾸 내 눈길을 피하는 걸까.”
“그, 그렇게 보시면…….”
“몸이 달아올라 미칠 거 같아?”
루이스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엘리스의 드러난 어깨선을 쓸었다.
하얀 엘리스의 피부에 새빨간 선이 새겨졌다.
“대, 대장님.”
“귀여운 고양이는 이렇게 상처 주는 걸 좋아했었지?”
“그, 그러지 마세요.”
엘리스가 루이스를 밀치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런 엘리스의 팔을 낚아챘다.
“꺄악!”
“거칠게 해주는 걸 좋아했지.”
루이스는 엘리스의 팔을 낚아채자마자, 기습적으로 그녀의 입을 맞췄다.
엘리스의 따뜻한 혀가 루이스의 혀를 휘감았다.
“정말 싫으면, 나를 밀쳐 봐.”
그러나 엘리스는 그녀를 밀칠 수 없었다.
“그래. 너는 영원히 내 것이어야 해.”
엘리스는 루이스를 올려보았다.
자신을 깔아보는 시선.
사람이 아닌, 도구로 보는 그녀의 눈빛.
평소였다면 그 시선에 몸을 떨었겠지만.
‘부족해.’
모자랐다.
그날, 모리스를 보며 느꼈던 흥분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다.
물론 루이스의 시선과 애무는 엘리스의 아랫도리를 적시기 충분했다.
까득!
“하아앙!”
루이스는 반쯤 멍한 표정을 짓던 엘리스의 아랫입술을 거칠게 깨물었다.
엘리스의 입술에서 흐른 피 냄새가 입 안에서 느껴졌다.
‘다른 곳을 보고 있어.’
반응이 약했다.
원래라면 더 괴롭힘 당하고 싶어서 먼저 무릎을 꿇고 옷을 벗었을 거다.
‘봉사하겠답시고 내 보지를 혀로 핥아댔겠지.’
루이스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귀여운 고양이의 애교를 사랑스럽게 내려봤을 테고.
그러나 엘리스는 멍한 눈으로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마치.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것처럼.
“엘리스.”
“네, 대장님…….”
“너는 누구지?”
“저는 홍련의 암살자, 엘리스입니다.”
엘리스는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루이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는 누구지?”
“홍련의 대장이시자, 저의 주인님이신 루이스님이십니다.”
아직은 괜찮다.
그녀에게 넣어놓은 암시가, 제대로 작동했다.
루이스는 한시름 놓은 채, 귀여운 고양이의 볼을 손톱으로 긁었다.
“잘했어.”
***
‘상태가 이상해. 한동안 지켜봐야겠어.’
드미트리 저택의 담을 넘던 루이스는.
“너는 누구지?”
“히익!”
뒷문으로 들어오던 모리스에게 들켰다.
‘마법부 장관이 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보통은 매번 정문으로 다니는 사람이!
마법부 장관의 상태는 굉장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얼굴과 몸엔 피와 땀 그리고 흙으로 얼룩졌다.
설마.
자신이 정문에 올 상태가 아니라서 뒷문을 이용한 거야?
운이 나빴다.
“……어, 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루이스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 저택에서 나오는 사람이라면 둘 중 하나겠지.”
마법부 장관이 루이스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초대받은 손님이거나, 아님 빌어먹을 도둑년이겠군.”
“아.”
“그대는 누구지?”
“…….”
“손님인가 아니면 도둑년인가?”
루이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남자는 날 시험하고 있어.’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상대를 잡아먹고 삼킬 것 같은 기세.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는 장관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이런 눈빛을 가진 남자를 한 명 알고 있었다.
‘황제.’
지금 눈앞에 이 남자는 그만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 손님입니다.”
“그런가? 그럼 같이 안으로 들어가지. 손님에게 담장을 넘으라 강요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마법부 장관은 그 누구보다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루이스는 알고 있었다.
저 웃음이, 그녀에게 내리는 사형선고라는 것을.
***
피곤했다.
집에 가자마자 잘 생각 가득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니, 웬 불청객이 담을 넘고 있었다.
민첩한 움직임이었지만, 마침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고는 얼어붙은 듯, 옴짝달싹도 못했다.
손님이라고 하기에, 데리고 들어왔다.
당연히 손님은 아니겠지.
‘홍련의 일원일 텐데.’
내 마법감지를 피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아마 홍련의 대장, 루이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가 이렇게 생겼던가?’
갈색으로 태닝된 섹시한 피부, 검은 머리는 거의 남자처럼 짧게 쳤으며,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는 남자가 보아도 감탄할 정도로 탄력이 넘쳤다.
엘리스에게 보고를 받으러 온 건가.
뭐 상관은 없지만.
그녀를 데리고 들어온 건 단순 호기심 때문이었다.
홍련의 대장, 루이스는 특수한 수술을 통해 모든 쾌감 신경이 잘린 인물이었다. 그녀에겐 어떤 독도, 어떤 고문도 통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라는 소설 속 묘사 때문에.
정말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하는 마법사의 호기심이 돋았다.
“내 사용인의 손님을 너무 기다리게 했군.”
“아닙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마나가 전부 회복된 건 아니었으나, 상대는 모른다.
내가 방금 전까지 소드마스터가 포함된 암살단과 격전을 벌였다는 것을.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고…….”
나는 모르는 척 그녀에게 물었다.
“마사지라도 받고 갈 텐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