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27화 초월체가 맞는 건가?
* * *
“세리아가 초월체와 인간의 혼혈이라?”
“맞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대가 실수했을 가능성은?”
“단연코 없습니다.”
파칭!
안경을 치켜 올린 키미히의 동작에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제 마법과학의 결과물은 확신하셔도 좋습니다. 단 한 번도! 틀렸던 적이 없으니까요.”
키미히는 한 번도 없다는 걸 강조했다.
“그렇지.”
초월체의 후손이라.
역사적으로 그랬던 적이 있던가.
없다.
단 한 번도, 초월체가 후손을 가졌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키미히의 결과는 백 프로 정확했다.
무엇이 맞는 거지?
“하프 초월체라뇨! 그럴 리가 없어요!”
그때 제인이 끼어들었다.
“조용히, 생각하는데 방해된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그녀의 입술을 꼬집었다.
“읍읍읍!”
그녀는 자신의 입을 막은 손을 치우려고 버둥댔다.
마법 기술은 초월체인 제인이 더 강할지 몰라도, 근력은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그녀는 자꾸만 낑낑거리며 내게 벗어나려고 악을 썼다.
‘산만하군.’
이 상태면 제대로 된 생각은 나오지 않을 거다.
“하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라.”
“푸하!”
결국, 그녀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치웠다.
“초월체의 아이라니요! 초월체는 절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그날 이후에 저주에 걸렸다고요. 장관님도 지금 황궁에 균열이 생긴 이유를 알잖아요.”
“전부 알고 있다.”
초월체간의 대전쟁.
그 이후로 황궁에는 마나 균열이 생겼고, 여러 대륙이 사라지고 수많은 나라들이 새로 태어났다.
자연의 인과율이 뒤틀리기 직전에 신이 나타나 개입했고.
‘초월체는 여러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지지.’
그 중 하나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저주였다.
“하지만 키미히의 분석 결과는 정확하다.”
“그럼요.”
키미히의 안경이 반짝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전 확신할 수 있다고요! 차라리 탐구 초월체를 찾아서 물어보자고요.”
“어디에 있는지도 초월체를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생각해보도록 하지.”
“…….”
제인은 현실적으로 부딪친 한계에 입을 다물었다.
“인과율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지 않았나?”
“마, 맞아요.”
“그렇다면 불가능하겠군.”
“네에.”
제인의 어깨가 추욱 쳐졌다.
“물론, 제인의 말처럼 초월체는 후손을 남길 수 없다. 여러 변수가 남아있으니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다.”
“인정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겠군.”
나는 키미히를 보며 물었다.
“가능하겠나? 진행하는 연구가 있다고 들었는데.”
“물론입니다. 오히려 이런 흥미로운 연구를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키득키득.
키미히가 웃었다.
“초월체도 종류가 많다. 세리아가 초월체의 후손이 맞다면 누구의 후손인지 확인할 수 있나?”
“현재로써는 불가능합니다. 허나, 당사자의 몸을 직접 살피면 알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
“예.”
연구의 확실한 결과를 특정하기 위해선 어차피 자세한 조사가 필요했다.
“좋아. 함께 우리 집으로 가지.”
“장관님의 저택엔 오랜만에 가는군요.”
***
“벌써 기대가 됩니다.”
제 몸만 한 가방을 낑낑거리며 끌고 오던 키미히는 함박 웃음을 지었다.
정원을 지나쳐,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어서오세요.”
세리아가 몸을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다른 하녀들의 복장보다 훨씬 몸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옷이었다.
그 덕에 그녀의 가슴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 옆에 분은 누구?”
예고되지 않은 손님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오면 어쩌나 싶은 거겠지만.
아쉽게도 키미히는 아카데미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던 남자였다.
세리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그 소재는 어디에 있습니까?”
키미히는 연구 소재 말고는 관심이 없는 진정한 마법광이었다.
그는 남자라면 누구나 유혹할 수 있는 세리아의 메이드복에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연구했던 연구 소재에 관심을 가질 뿐.
“네 앞에 있다.”
“앞이요?”
키미히는 세리아를 내려 보며 눈을 몇 차례 깜빡거렸다.
“아!”
그녀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는 시큰둥했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장관님이 연구를 부탁하신 분이 바로 이분이군요! 호오! 마나의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은데 어찌된 일입니까?”
“따로 연습한 흔적은 없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그랬겠지.”
“타고난 건가요.”
키미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세리아의 몸을 훑었다.
“흥미롭군요. 정말 흥미로워요.”
당장이라도 해부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이었다.
그 시선이 얼마나 노골적이었는지, 세리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
“이 소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인류의 마법적 진보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열정 가득한 마법광의 스위치가 켜졌다.
쿵!
키미히가 커다란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많은 마법도구들이 빼곡히 자리했다.
“무얼 써야 하나, 일단 주사기로 채혈부터 하고, 마나석으로 마법 테스트를 한 다음에, 이 끈과 약물로 내구성 테스트를…….”
나는 잔뜩 흥분한 키미히를 말렸다.
“그런 자질구래한 과정은 필요 없네. 아주 간단한 해결법이 있으니.”
“예?”
나는 손에 마나를 둘러 세리아의 어깨를 잡았다.
“하읏!”
“오호.”
세리아의 반응에 키미히의 눈동자가 커졌다.
“피부가 마나를 흡수하는군요. 이거 진귀합니다!”
한껏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외쳤다.
“간단하네. 마나를 흘려 넣어서 마나 분포를 확인하면 될 거야.”
“크크, 조금 구식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하죠. 알겠습니다.”
키미히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세리아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자, 잠깐, 뭘 하려는 거예요?”
그녀가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마사지를 받으면 된다.”
나는 이렇게 대꾸해 줄 뿐이었다.
“자, 이름 모를 소재 씨, 어서 가시죠!”
키미히는 벌써 의욕 만땅이었다.
“자, 누우시죠.”
“옷을 벗어야 하나요.”
“뭐든 상관없습니다. 맨살이 마나 전달이 더 좋으니, 편하겠지만 부끄러우시다면 안 하셔도 좋습니다.”
벗지 않아도 된다는 키미히의 말에 세리아는 순순히 자리에 누웠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뚜두둑!
손에 마나를 끌어올린 키미히가 세리아의 몸을 더듬었다.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괴팍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로지 연구만을 위한다는 듯, 사무적인 움직임이었다.
“앗!”
세리아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쾌감에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무언가 굉장한 손놀림도 아니었다.
그저 무뚝뚝하고 평범하게 몸을 더듬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느껴지는 거야?’
옷 너머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손길에 몸이 조금씩 기이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갑자기 느껴지는 쾌감에 그녀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로 지켜보는 모리스를 보았다.
그는 늘 그렇듯 무감정한 눈빛으로 세리아와 키미히를 보았다.
‘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거야.
설마 이것도 테스트인 거야?
내가 어떤 남자에게도 느끼는 음란한 여자라는 걸 각인시키려고?
‘웃기지 마.’
모리스 네 생각대로 반응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입술을 다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그와 나만의 싸움이야.
우우웅.
모리스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마나가 세리아의 몸 속 구석구석을 살폈다.
세리아는 최선을 다해 온몸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감각을 참아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리아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키미히의 마사지를 느끼며 생각했다.
‘견딜만 해.’
키미히의 마사지는 상냥했다.
그러나 그녀의 성에 차기엔 한참 모자랐다.
몸을 자극하는 쾌감이 연하기도 했고.
내가 이겼어.
세리아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모리스를 보았다.
무슨 꿍꿍이로 이 남자를 데려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비실한 남자로는 그녀를 무너트릴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부족해.’
그녀는 피부에서 느껴지는 이유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반면 모리스는.
‘재미없군.’
혹여 소재가 깨질까봐 조심스럽게 만지고 살피는 키미히의 모습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몰라 생길 긴급 상황을 위해 참관했는데.
이렇게 느리고 심심한 조사라니.
물론 쾌감에 몸을 움찔거리는 세리아를 보는 재미는 있었다.
‘쓸데없이 참고 있군.’
그냥 솔직하게 신음이라도 지르면 좋을 텐데 말이다.
“어허! 거 좀 가만히 계세요!”
세리아가 조금씩 몸을 꿈틀거리기가 무섭게 키미히가 그녀에게 주의를 줬다.
이런 쏠쏠한 재미는 있었다만.
‘더는 됐다.’
나는 터벅터벅 세리아에게 다가갔다.
“키미히.”
“예?”
“정신을 집중해라.”
“그게 무슨?”
“내가 네 몸을 거쳐 세리아에게 마나를 주입하겠다. 그때 생기는 변화를 직접 파악해라.”
“자, 장관님 그렇게 되면 이 소재가 깨질지도 모릅니다.”
“괜찮다. 이 여자는 견딜 테니.”
“아, 알겠습니다.”
나는 키미히의 몸에 나의 마나를 집어넣었다.
마나를 몇 겹으로 코팅해서 혹시 모를 폭주를 막았다.
키미히의 몸을 타고 지나간 마나가 그의 손을 타고 세리아의 몸에 닿았다.
그 순간.
“히이익!”
세리아가 몸을 크게 떨었다.
한 번에 몰아치는 어마어마한 마나의 양에 그녀의 몸이 재빠르게 반응했다.
키미히의 손을 타고 흐른 내 마나는 세리아의 몸에 고스란히 흡수가 되었다.
“오오오!”
모든 마나를 흡수하는 세리아의 몸을 보며 외치는 키미히의 함성과.
“흐읏, 자, 잠깐만!”
마나가 흡수되는 모든 감각이 쾌감으로 전환되어 느끼는 세리아의 교성.
그 모든 것을 보며 웃음을 삼키는 나까지.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늘어날수록, 세리아의 몸은 훨씬 더 크게 헐떡였다.
“이 정도면 됐다.”
나는 마나 주입을 멈췄다.
“어, 어, 엄청난 결과입니다!”
키미히의 눈엔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찼다.
“자세한 건 이따가 듣도록 하지. 우선 밖에서 기다리고 있게.”
“알겠습니다.”
키미히가 밖으로 나가고.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세리아에게 다가갔다.
“만족했느냐?”
“하아, 하악.”
세리아는 정신을 가다듬느라 바빴다.
“애액 쏟을 기운은 있어도, 말할 정신은 없는 건가.”
나는 그녀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았다.
“내가……. 이겼어.”
“무엇을 말이지?”
“당신이 시킨 그 남자의 마사지. 묘한 쾌락을 주는 이상한 마사지에 난 지지 않았어.”
자존심이라도 지키려는 듯, 그녀는 결의를 다졌다.
“참았다는 건가? 이 꼴이 났는데?”
나는 치마를 적신 그녀의 애액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키미히를 통해 흘러넣었던 마나의 쾌감을 버티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세리아는 얼굴이 붉어질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다.”
키미히의 연구가 내가 낸 시련처럼 구는 것이 귀여웠다.
괴롭히고 싶을 정도로.
“이건 시련이 아니다. 그저 너의 몸을 연구하기 위한 절차였을 뿐.”
“뭐, 라고?”
“네 몸에 생긴 이상 현상을 조사하기 위한 절차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시치미를 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조사는 오로지 세리아가 초월체가 맞느냐 아니냐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적인 의도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런데.
“마법 연구를 위한 성스러운 과정이 너에겐 쾌락을 주는 오락거리라…….”
“마, 말도 안 돼. 거짓말 하지 마.”
“지금껏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했던 적이 있던가?”
당연히 없었다.
나는 내 말은 꼭 지켰으니까.
“변했다는 건 알았지만, 상당히 재밌는 변화로군.”
“난 안 속아.”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세리아.
그래,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되지.
“마음대로 생각하라. 나는 더 얘기하지 않을 테니.”
나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그리고 네가 더럽힌 것들은 전부 직접 치우도록.”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나갔다.
밖에서는 키미히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사해보니 어떤가?”
“마나 분포를 확인했습니다. 조금 더 조사해야겠으나, 결과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마나를 흡수하는 체질과 분포하는 마력, 마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하프 초월체, 그것도 흡수의 초월체의 후손이 분명합니다.”
“역시 그런가?”
덤덤한 내 반응에 놀란 듯, 키미히가 되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확신을 얻고자 자네를 찾았지.”
“흠, 이거 재밌네요. 제가 연구해 봐도 되겠습니까? 진짜로 초월체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면, 그녀를 통한 연구는 앞으로 마법과학의…….”
“안 된다.”
“왜 그러십니까?”
“그녀가 초월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더 많은 조사는 위험하다.”
알려지면 어떤 놈들이 어디에서 몰려올 지 모른다.
전부 막을 수는 있겠으나.
'귀찮아지겠지.'
내가 키미히를 불렀던 이유.
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도.
어떤 고문이 와도 열지 않는 무거운 입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저번처럼 소재라도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가지.”
“아쉽네요.”
키미히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엇을 말이지?”
“제 몸을 타고 세리아 씨에게 마나를 주입하는 그 컨트롤 말입니다. 자칫하면 마나 폭주로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술이지.”
“하하, 진짜 여러 번 여쭤본 거긴 한데 말입니다. 제가 장관님의 그 수많은 지식과 기술이 담긴 뇌를 좀 연구해봐도 되겠습니까? 장관님의 뇌를 한 번 조사하면 앞으로의 마법 발전에 수많은 가능성을 열 수 있는…….”
나는 폭주하려는 키미히를 막았다.
“거기까지.”
“예?”
“품위를 지키게. 키미히.”
“아, 죄송합니다. 장관님.”
“추가 조사를 위한 소재와 재료는 조만간 마련하도록 하지.”
“하아, 아쉽군요. 좋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만약 주실 수 있으시다면 다양한 부분이 있으면 좋겠네요. 땀이라던가 눈물, 이왕이면 침도!”
“키미히, 개인의 성벽을 공개하는 건…….”
“성벽이라니요. 전 마법의 탐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알았으니, 방으로 가게.”
“그럼,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멀어져가는 키미히를 보며 생각했다.
황제가 내게 세리아를 선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는 알고 있는 거겠지.
대륙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더욱 황제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나에게 세리아를 보낸 건가.
죽을 만큼의 고통을 선사하라는 그 말과…….
관련이 있는 건가.
***
“진부하군.”
황제, 류클리드는 황궁의 알현실에 늘어선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핏대를 세웠다.
귀족파의 지크프리트.
황제파의 솔라리온.
이 두 거두를 필두로 언쟁이 시작되고 끝났다.
대부분 솔라리온의 압승.
일전의 전쟁으로 세력을 꽤 잃은 귀족파로써는 받아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황제는 그 모습이 참으로, 따분했다.
“하아암.”
다른 이를 압도하는 것은 자신만으로 충분했다.
고작 황제의 하품 하나로 싸늘해지는 지금의 알현실처럼 말이다.
“재미없군.”
“폐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이곳 모든 이들이 자신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궁전 밖으로 나가면 수많은 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황제 앞에서는 폭풍 앞의 매미였다.
약하디 약한 존재들.
그러나 딱 두 사람.
두 사람만큼은 내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구부리지 않았다.
한 명은 신분처형을 당한 세리아.
다른 하나는.
‘모리스 드미트리.’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도.
절대 내 사람이 될 거 같지 않은 남자.
가질 수 없다면 부수는 것이 그의 습성이었다.
지금의 세리아처럼 말이다.
몇 번이나 고민하고 고뇌했다.
그러나
‘아직은 기다려 봐야지.’
그놈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는 낮게 웃었다.
“오늘 정무는 여기까지 하지. 나머지는 추후에 얘기하도록.”
“예! 폐하!”
귀족들이 모두 물러갔다.
“홍련의 대장이 황제 폐하께 보고 드립니다.”
그림자 속에서 한 여성이 나타났다.
모리스에게 첩자로 심었던 스파이의, 대장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