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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27화 (27/174)

〈 27화 〉 26화 내기의 결과, 스파이 엘리스

* * *

“으음…….”

세리아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정신은 아직도 붕 뜬 상태였다.

오래 묵혀둔 쾌감이라 더욱 심했다.

오랜만에 그녀는 좋은 꿈을 꿨다.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다.

꿈 속 남자의 든든한 팔에 안겨 있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을 전부 잊을 수 있었다.

“어?”

그리고 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완전히 알몸 상태인 걸 깨달았다.

‘왜?’

그제서야 천천히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모리스와의 내기로 고통받았던 5일.

벗어날 수 없는 쾌락에 결국 몸을 맡겼고.

그녀는 애원을 하고 아양을 떨며 모리스에게 안겼다.

‘꿈이……아니었구나.’

세리아는 모리스에게 패배를 선언했다.

다시 지크프리트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거다.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버틸 수 없었다는 자괴감이 그녀를 지배했다.

‘미쳤어.’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

어떻게……. 그런 말을 내 입으로 뱉었을 수가.

스스로가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황제에게는 버림받고 결국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남자에게 안기다니.’

여자로서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었던 처녀마저 빼앗겼다.

눈물이 고였다.

그녀가 처녀성을 상실했다는 걸 증명한 이불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지 오래였다.

세리아는 눈물을 참았다.

‘이건 뭐지?’

그런 그녀에게 아랫배에 새겨진 반투명한 문신이 보였다.

배꼽 아래, 그리고 골반 바로 위에 새겨진 하트 모양의 문신.

‘언제 이런 걸?’

내기에 졌으니 각오하라고 하던 모리스가 떠올랐다.

‘징표인 건가.’

내가 그에게 굴복하고 모든 걸 포기했다는 그날의 증거.

이걸 보고 치욕을 느끼라고 새긴 것이 분명했다.

‘추잡한 남자.’

세리아가 이를 갈 때였다.

“일어났나?”

옷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리스가 침실을 열고 들어왔다.

반면 세리아는 속옷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곤히 자더군. 어제 그리도 기분이 좋았나?”

모리스가 손등으로 세리아의 볼을 천천히 쓸었다.

“만지지 마……요.”

그녀는 이불보로 몸을 가리며 자신의 볼을 쓸어내리는 모리스의 팔을 쳐냈다.

“이제 와서 부끄러워 할 필요가 있나?”

그는 담담하게 말하며 커피를 마셨다.

“이미 다 본 사이 같은데.”

“나는……. 당신한테 진 게 아니야……요.”

“고집은 여전하군.”

“어제 일은……. 실수였을 뿐이에요. 어제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었으니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네가 처녀를 잃은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모리스의 눈이 세리아의 아래에 향했다.

쥐고 있던 이불에 주름이 깊어졌다.

“명심해라. 넌 내기에 졌으니,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지크프리트를 건 내기였으니. 패배한 너는 완전히 잊어야겠지. 안 그런가?”

이죽거리는 저 남자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알몸임에도 목에 걸린 초커는 벗지 못하는 무력한 물건. 그게 바로 너의 자리다. 그걸 명심하도록.”

자신을 깔보는 발언에도 대꾸할 수 없었다.

“시작부터 제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그 건방진 말투는 고치도록. 언제까지 어리광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알, 겠습니다.”

“그럼, 할 말은 다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게.”

“이 상태로요?”

“그럼 내가 옷이라도 입혀줘야 하는가? 원한다면 촉수 옷을 입혀주지.”

“그, 그것만은…….”

“이불로 몸을 가리는 건 허락하지.”

“…….”

“인사가 없군? 주인님이 배려를 베푸는데. 감사 인사는 해야하지 않나?”

“감사합, 니다.”

“이만 나가라.”

세리아는 이불로 몸을 감싼 채로 밖으로 나갔다.

걸을 때마다 아랫배가 큥큥 울렸다.

‘난 정말 미친 걸까.’

이런 와중에도 어젯밤에 있던 일을 떠올리다니.

자꾸만 아래가 달아올랐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안달내고 애태우는 고문과는 달리.

안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세리아의 깊숙한 곳까지 채우는 든든함.

그의 물건이 빠져나갈 때마다 허전함을 느꼈다.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다시 모리스의 물건을 갈망했다.

신분이 처형된 뒤, 혼자였던 그녀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 뿐이야.’

내가 그날 그에게 무너진 건, 내 정신력이 그 순간에만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내가 쾌락에 무너져서 그에게 아양을 떨었을 리가 없어.’

세리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더는 현혹되지 않는다.

근데 왜 자꾸만.

나가면서 보았던 모리스의 아랫도리가 생각이 나는 걸까.

‘단단했지.’

근육으로 단련된 가슴과 팔뚝 뿐 아니라.

커다란 물건까지도.

‘미쳤나봐.’

세리아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커져가는 그날의 기억을 지우는데 한참 걸릴 것만 같다.

***

“흠.”

나는 그녀의 몸에 새겨뒀던 음문을 보았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투명했지만, 조만간 음문은 힘을 채울 거다.

그 때가 되면 세리아도 깨닫겠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그 건방진 표정이 무너지는 것을 다시 상상하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미치겠군.’

확실히 괴롭히는 맛이 있었다.

“장관님, 계십니까?”

그때 붉은 머리의 하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스였다.

황제가 보낸 스파이.

내게 정체가 들킨 스파이였다.

“어쩐 일이지?”

“낮에 만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요 며칠 만나주질 않으셔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처음 그녀가 내게 들켰던 밤.

그 다음날 낮에 만나자고 했던 약속을 뒤늦게 떠올렸다.

“아. 그랬군. 자네와 만나기로 했었지.”

만나기로 했던 당일은 세계수에 핀 유리꽃 때문에.

그 다음날은 마나폭풍과 에미르와 데이트 때문에.

그 다음에는 백설과의 관계와 밀린 마법부의 일 때문에.

요 며칠은 세리아의 조교 때문에.

그녀와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뤘었다.

잊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찾아왔군.’

초조한 건가?

내가 자기를 어떻게 할까 봐?

그녀는 오른손으로 왼팔의 삼두 쪽을 매만졌다.

“무슨 일이지?”

나는 모른 척 되물었다.

“그, 그것이 일전의 일 때문에 왔습니다.”

“일전의 일? 아아, 그거 말인가?”

나는 여유롭게 몸을 기댔다.

“잊고 있었군. 최근에 바빠서 말이지.”

“그러셨군요.”

“길게 얘기할 필요 있나. 본론부터 들어가지. 황제폐하께서 왜 그댈 보내신 거지?”

“자, 장관님.”

엘리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럴 필요 없다. 근처엔 몰래 듣는 놈도 마법 장치도 없으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

잠시 우물거린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선 장관님을 감시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이유는?”

“세리아……. 아니, 황제께서 하사하신 물건을 잘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내 말을 믿지 못하신 건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어찌 태양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너는 왜 이리 순종적으로 대답하는 거지?”

“그것이.”

그녀가 잠시 입을 오므렸다.

“고문의 마에스터라고 불린 장관님에게서 자백하지 않는 이는 없다고 압니다. 아무리 저라도…….”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역시, 홍련의 스파이로군. 상황 파악이 빨라.”

“예?”

“짧은 손톱, 손가락 마디에 난 굳은살. 여성들로만 이뤄진 살수 집단. 주 전투 기술은 격투술이라고 하지? 멤버 전원이 레즈비언이라고 했나?”

“어, 어떻게?”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거라 보는가?”

황제가 애용하는 살수단이었다.

이거 때문에 여주와 남주가 서로 다퉜던 적이 있지.

여주의 질투를 유발하는 소설적 도구 중 하나였다.

너무 자주 쓰여서 외울 정도다.

내가 말한 홍련의 특징은, 소설에서 묘사된 어구를 그대로 따라 뱉은 거였다.

“……역시 장관님이시군요.”

나는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이제 어쩔 셈이지? 황제의 스파이가 들켰다. 자결이라도 할 셈인가?”

“어떻게든 살리실 거잖습니까. 정보를 얻으시려고.”

“물론이다. 네가 혀를 자르고 죽는다면 혀를 이어붙일 것이고, 극독으로 자살할거라면 최고위 해독주문을 써주지. 목을 자를 생각도 하지 마라. 떨어져도 붙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소름 돋는 말이었다.

그러나 엘리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했다.

“알겠습니다.”

“결국 너 역시 황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거군?”

“예. 맞습니다.”

강제로 기억을 빼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당장 필요한 패였으니.

“그렇다면 저번에 보았던 걸 황제에게 보고하라. 내가 그녀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식으로 조교하는지 말이다.”

“진심이십니까?”

“이왕이면 내가 그 여자의 처녀를 따먹었다는 소리도 해줬으면 좋겠군. 애걸복걸하게 만들어서 말이야.”

“그건, 보았습니다.”

하긴, 매일 발정난 얼굴로 몸을 덜덜 떨며 일에 집중을 못하는데 어찌 모를까.

정원에서 모두가 들으라고 박아달라 소리를 지르는데 어찌 모를까.

어제의 섹스는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었을 것이다.

소음 차단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역시 그런가?”

“예.”

“그럼 그것도 보고하라. 그리고 황제의 반응을 보고해.”

“이중첩자…가 되라는 말씀이시군요.”

엘리스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중첩자.

이건 홍련은 물론이고 황제를 배신하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모든 걸 버리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게 네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지.”

모리스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순간, 엘리스는 오줌을 지릴 뻔 했다.

과거 현 황제의 호위로 전쟁에 참여했을 때, 봤던 얼굴이었다.

‘귀족파 반군을 몰살시킬 때, 저 표정이었어.’

여기저기서 울리는 비명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철혈의 마법사.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떨렸다.

잊고 있던 피식자의 본능이 살아났다.

살아야 한다.

저 남자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의 살벌한 표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고개를 더 깊게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나가보라.”

“예.”

축객령에 엘리스는 밖으로 나갔다.

돌아가던 그녀는.

팬티가 젖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오줌이 아닌.

느껴서 나온 체액이었다.

‘아.’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방금 오줌을 지릴 뻔 했던 건, 공포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 느꼈던 쾌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배당하고 싶다는 욕구가 엘리스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피어올랐다.

‘내 몸과 마음은 대장의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분만이 자신을 완전하게 지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를 가볍게 압도하는 분이 나타났다.

홍련의 대장도 저 남자 앞에 선다면 한낱 초식동물에 불과할 거다.

‘버릴 수 있어.’

버리고 싶어.

완벽한 지배자의 모습을 한 저 분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저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지배해주시고 괴롭혀주신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 해도 가볍게 가버린 엘리스였다.

***

그리고 다음날.

“그, 장관님 조사하셨던 연구 결과입니다.”

키미히가 마탑을 찾아왔다.

그는 내게 연구 결과를 내게 내밀었다.

제인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옆에서 지켜봤다.

“흥미롭더라고요. 장관님이 주신 물체가 여성의 애액이었다니.”

“애액이요? 진짜 애액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유리꽃이 오줌과 애액으로 만들어졌다니, 엘프들이 알면 자존심 상하겠네요. 잠깐, 그 저택에서 애액을 뿌릴만한 여자는 설마.”

키미히의 말에 제인이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제인, 거기까지.”

“아, 넵!”

제인이 양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키미히, 거기까지 알라고 분석을 시킨 게 아니다.”

“아차차, 실수했군요. 아무튼 분석을 끝마쳤습니다.”

“어떻게 나왔나?”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성분 분석에 인간이 아닌 것이 나왔습니다.”

나는 키미히에게서 자료를 받았다.

“이게 사실이라고?”

“예. 저도 놀랐습니다. 이런 건 처음이었거든요.”

성분 분석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간 50% 초월체 50%

세리아는 초월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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