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0화 에미르와 우연한(?) 만남
* * *
콰과과광!
변형된 마력의 충돌로 생긴 푸른 소용돌이가 숲 전체를 뒤덮었다.
소용돌이에는 불이 타올랐고, 얼음이 얼었으며 번개가 내리쳤다.
말도 안 되는 현상이었다.
‘성질은 불과 얼음, 거기에 전기까지.’
2개가 아닌, 3개 속성의 충돌.
정말 드물게 생기는 충돌이었다.
불과 얼음이 충돌하는 건 종종 있어왔다.
저 북쪽의 거대한 마나 기류가 남하해서 충돌하는 경우.
이렇게까지 거대한 규모로 커진 건 처음이었다.
확실히 인위적이긴 하군.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기존의 마나폭풍의 2배, 아니 3배는 될 거다.
푸른색의 폭풍은 지나가는 공간을 모조리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런 규모의 마력 폭풍이라면 평범한 마법사는 짙은 영향을 받았다. 심각한 경우, 평생 마법을 쓰지 못하는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후유증이 꽤 오래 남겠군.’
나는 혀를 찼다.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마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손끝에 불을 피웠다.
파지직!
불꽃 끝에서 얼음이 얼어붙고, 전기가 튀었다.
마나가 불안정하다는 뜻.
불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에, 나는 마나를 흐트러트렸다.
두 개 이상의 성질이 뒤섞여 광폭하게 변한 마나가 쉽게 폭주했다.
‘최대한 빨리 진압해야겠어.’
멀지 않은 곳에 꽤 규모가 큰 마을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폭풍이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12시간이었다.
더는 마음대로 움직이게 놔둘 순 없지.
숲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저 마나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2가지였다.
하나는 저 폭풍을 구성하는 마나보다 거대하고 강력한 마나로 폭풍을 감싸는 것.
다른 하나는.
충돌한 속성들의 속성을 다시 정돈시키는 거다.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저 마나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내가 드래곤도 아니고.’
폭풍을 전부 감싸기엔 절대적인 마나량이 부족했다.
두 번째 방법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 거대한 마나를 통솔할 수 있는 마나 컨트롤과 감응력이 필요했다.
거기다가.
시전자는 배리어로 몸을 보호하고, 폭풍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나도 섣부르게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마법사를 몇 봤다.
우우웅.
나는 주위에 배리어를 쳤다.
반투명한 배리어가 내 몸을 보호했다.
“몇 번이나 느끼는 거지만, 마력 폭풍은 뭐 같군.”
멀미를 한 것처럼 심장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심장에 위치한 서클이 제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마력 폭풍에 휘말리면 생기는 부작용, 마나 폭주.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제멋대로 휘몰아치는 마나와 서클을 바로잡았다.
[마법의 마에스트로]
[마나와 마법에 대한 이해가 극에 달한 자]
특성이 발동되며 심장의 서클을 진정시켰다.
‘끄응.’
간신히 멀쩡해진 심장의 서클.
쿠르르릉!
나는 매섭게 휘몰아치는 폭풍 안으로 들어갔다.
콰과광!
폭풍에 휘말린 수많은 쓰레기들과 물건들이 제멋대로 떠다녔다.
쿵!
“크윽!”
그러다가 내가 친 베리어에 맞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외부의 충격을 받아 요동치는 배리어와는 다르게 내 걸음걸이는 평온했다.
[완벽주의자]
이럴 때는 특성의 영향이 고맙다.
자신은 완벽하다고 느끼는 모리스의 기본 성정 때문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나는 휘몰아치는 폭풍과 나를 연결하기 위해 마나를 뻗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마나를 나와 완벽하게 연결해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내 몸과 폭풍을 연결하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극한의 마나 이해도를 바탕으로 마력폭풍의 마나를 분석하고.
[분석자가 발동됩니다.]
폭풍과 나와의 연결구조를 설계했다.
[설계자가 발동됩니다.]
우우웅!
크르르릉!
마구잡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마나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한 지 몇 시간.
‘됐다.’
폭풍의 마나들과 내 서클이 연결되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나 탓에, 서클 역시 제멋대로 흔들렸다.
‘중심을 잡는다.’
여기서 실패하면 꼼짝없이 죽는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서클을 안정시키고, 그 다음으로.’
엉킨 마나들을 풀어낸다.
폭주하듯 돌아가던 서클을 다시 한 번 진정시켰다.
전신에 흐르는 땀으로 몸이 축축해졌다.
깨문 입술에서 한 줄기 피가 흘렀다.
“후우.”
서클의 정돈, 그리고 마나의 재정립.
혼란스러운 마나의 안정과 속성의 분할.
다른 마법사들은 이론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도전하고 있는 거다.
감은 내 눈앞에 마력 폭풍에 존재하는 마나의 흐름이 보였다.
자기들끼리 제멋대로 꼬인 모습이 꼭.
주머니에 오랫동안 넣어뒀던 이어폰의 줄 같았다.
‘차근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빠르게.
이제부터 중요한 건 속도였다.
나는 가장 먼저 불의 마나에 손을 댔다.
뜨거운 감각이 마나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화르륵.
정신을 집중해 불의 마나를 저 혼돈의 카오스에서 빼내는 작업을 시행했다.
하나씩, 하나씩.
내 움직임에 따라 꼬였던 마나가 조금씩 풀려났고.
휘이잉!
혼란스럽게 폭풍을 불태웠던 마나가 사라졌다.
폭풍이 한차례 잠잠해졌다.
그러나 아직 꼬인 마나가 있었다.
‘방심하지 말…….’
쾅!
“크읏!”
배리어에서 느껴지는 형용할 수 없는 충격에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간신히 마나의 끈을 부여잡은 나는, 다시금 남은 마나를 풀었다.
얼음.
하나를 풀면, 남은 마나는 알아서 풀릴 거다.
나는 꼬인 마나를 천천히 풀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불의 마나를 풀어내면서 이 폭풍의 구조를 전부 이해했다.
훨씬 더 빠른 시간 안에 꼬인 마나를 해석해서 풀어낼 수 있었다.
화아아.
마구잡이로 흔들리던 얼음이 가라앉고, 곧이어 번개도 가라앉았다.
폭풍이 멎었다.
제멋대로 꼬였던 마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후우.”
이 정도면 후유증 없이 완벽하게 막았다 볼 수 있었다.
나는 서클과 연결되어있던 자연의 마나를 해제했다.
그러나.
완전히 모든 마나가 자연으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역시.’
자연의 마나 일부가 서클이 있는 심장에 가라앉았다.
[마법의 마에스트로 효과가 발동됩니다.]
[마나를 받아들입니다.]
[이해도 : 마에스트로 120%]
[기준치보다 높은 마나 이해도로 흡수율이 빨라집니다.]
[기준치보다 높은 마나 이해도로 효율이 높아집니다.]
심장에 남은 자연의 마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온전히 내 마나가 될 거다.
이게 모리스의 마법 재능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숲을 엉망으로 만들던 폭풍은 사라지고 잠잠해졌다.
확인을 위해 작은 불꽃을 태웠다.
화륵.
깔끔하게 피어오른 불은 내 주위를 밝혔다.
“됐군.”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내 볼을 간지럽혔다.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비라도 내릴 모양이군.”
너무 많이 내리지만 않으면 좋겠다.
그때, 허리춤에 달린 통신 수정구가 반짝였다.
장관님 마력 폭풍의 반응이 사라졌어요! 장관님이 하신 거 맞죠?
제인이었다.
“방금 제거했다.”
어떤가요? 다른 증거는 있나요?
“탐색을 해봐야겠지.”
나는 엉망진창으로 변한 숲을 내려 보았다.
마나의 족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누구의 짓인지.
그리고 어디서 이런 짓을 벌였는지도.
나는 탐색마법을 펼쳤다.
폭풍의 중심이었던 자리에서 진한 마법의 향기가 느껴졌다.
인간의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놈들은.
‘초월체.’
아니면.
드래곤이었다.
‘성가셔지겠어.’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다.
***
마력 폭풍을 해결한 뒤.
나는 아카데미 남부 지부로 행선지를 옮겼다.
당연히, 세리아의 자리에서 나왔던 유리꽃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분석을 위한 장비와 전문가가 남부 지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왔다.
겸사겸사 얼굴도 비추는 거지.
‘남부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오시는 건 어떤가요? 아카데미 총장의 요청입니다.’
아카데미로 간다는 말에 제인의 통신이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잼병인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내가 가르치는 방법은 하나다.
몸으로 익히기.
마법을 얻어맞으면서 방어 마법의 기초를 배우고.
자신의 몸을 혹사하면서 공격 마법을 배운다.
아카데미 학생들에겐 전혀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카데미가 있는 롤랑에 도착했다.
남부 지방다운 화사한 분위기에 따뜻한 햇살.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도시였다.
화사한 도시의 분위기 속을 걷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유럽 여행을 온 기분이군.’
제국에 무려 3년이나 살아왔지만, 이런 분위기는 또 처음이었다.
제국 남부에 올 일이 있었어야지.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아카데미로 향할 때였다.
“어? 모리스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화사한 외출용 드레스를 입은 에미르가 새하얀 양산을 쓴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늘 에미르를 따라다니던 하녀가 함께였다.
“솔라리온의 영애가 여기엔 어쩐 일이지?”
“하, 하하. 남쪽에 좋은 향수가 많다고 들어서 찾아왔어요.”
그녀가 내 시선을 피하며 대꾸했다.
“이상하군.”
나는 터벅터벅, 에미르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향수가게가 아닌데?”
“기, 길을 잘못 들었어요. 그렇지? 넬피?”
에미르의 뒤에 서 있던 하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길치라 아가씨께 길을 잘못 안내해드렸거든요.”
“그런가?”
수상쩍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저택에 찾아오지 말라 했다고, 이렇게 남부까지 찾아 올 줄은 몰랐군.”
“모리스님을 찾아온 게 아니에요. 그냥 향수를…….”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하지. 나도 오히려 그 쪽이 더 편하니까.”
나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거리던 에미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호,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아직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같이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좋은 집을 알아봤거든요. 남부에서 제일 좋다는…….”
“에미르, 난 현재 마법부 장관으로 업무를 위해서 롤랑에 온 거요. 다른 짓은 하기 힘드오.”
완곡한 거절에 에미르가 침울해졌다.
“그렇군요.”
나는 에미르를 지나쳐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갔다.
입을 달싹거리던 그녀가 뭔가 말하려는 거 같았지만,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
“강의를 해주시지 못하신다는 게 참으로 아쉽습니다.”
총장이 진심으로 아쉬운 목소리를 내었다.
“가르치는 건 잼병이오. 이렇게 행사라도 했으니, 됐다고 생각하시오.”
“물론입니다. 장관님. 남부 아카데미의 생도들 모두 장관님의 말씀에 감동했을 겁니다.”
“나중에 볼 수 있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5시간이나 뺏겼다.
나를 맞이한다고 쓸데없는 행사를 계획했더라.
분명 조용히 왔다 갈 생각이었는데.
아주 내가 여기있다고 대대적인 홍보까지 할 기세였다.
총장 같은 사람은 피곤하다니까.
손바닥에 열이 날 정도로 아부하는 총장의 말을 뒤로한 나는 연구소로 향했다.
롤랑에 위치한 아카데미 남부 지구의 자연학 연구소.
“오, 모리스님! 아니 이제 장관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어쩐 일이십니까?”
플라스크 앞에서 안경을 치켜 올리는 연구원이 내게 물었다.
비쩍 마른 몸매에 피부는 하얗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박혀 있었으며, 머리색은 연주황 빛이었다.
키미히.
과거 내가 마법을 배웠을 때부터 함께 했던 마법 동료 중 하나였다.
지금은 자연마법과 과학을 연구하는 수석 연구원이자, 자연 마법 교수다.
능력 하나는 확실했다.
“오랜만이군. 조사를 맡기려고 왔다.”
“오호. 이건 또 귀하군요. 모리스님의 의뢰는 언제나 절 설레게 만들었으니까요.”
“이걸 분석해줬으면 한다.”
나는 세리아의 피, 머리카락, 피부조직을 각각 담은 병을 내밀었다.
“호오, 누구 건가요?”
“알 거 없다. 이걸로 종족을 판별해줬으면 좋겠군.”
“하프인가 인간인가 그런 거 말씀이시죠?”
“그래. 그리고.”
직접 채취한 세리아의 애액이 담긴 애액이 든 병을 꺼냈다.
애액은 여전히 마나를 머금고 있는 채로 빛났다.
“오오. 이건 마나수인가요?”
“그건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성분을 분석해줬으면 하는군.”
“역시, 신비한 물건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또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내민 건 유리꽃이었다.
“이건, 세계수의 유리꽃이군요.”
“정확한 성분과 마나의 종류 등을 분석해주기 바라네.”
“무슨 현상인지 연구하실 모양이십니다?”
“얼마나 걸리겠나?”
“일주일이면 됩니다. 그보다 길어질 거 같진 않네요.”
“알았다. 그러면 맡기도록 하지.”
“옙!”
키미히라면 확실한 결과를 내줄 거다.
“아, 혹시 강의는 안 하십니까? 총장님께서 요청하셨다고 들었는데.”
“안 한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명강의를 놓치고 말았네요.”
“키미히, 칭찬이 과하다.”
“하하하, 진심입니다.”
키미히에게 물건을 전달한 나는 미련 없이 아카데미를 나섰다.
이제 마탑으로 돌아가면 되겠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긴 순간이었다.
“아, 모리스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미르였다.
그녀가 내게 도도도 다가왔다.
“운이 좋네요. 모리스님을 하루에 두 번이나 만나다니!”
에미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