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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4화 (14/174)

〈 14화 〉 13화 반란 진압을 위해 북부로

* * *

“아, 보셨군요. 얼마나 제게 어필을 하시던지. 호호, 질투가 날 정도였다니까요.”

에밀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녀와 날 연결시킬 생각이라면 접게. 그럴 마음은 없으니.”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네요. 제국에서 제일가는 미녀……. 아, 이미 미인을 거머쥐셨군요.”

에밀리는 시치미를 떼며 눈웃음을 지었다.

내가 영애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의문인데.

“나에 대한 좋은 소문이 없는데 왜 이리 많은 이들이 청혼하는 건가?”

“흐음, 그게 궁금하신 거예요?”

“한 번 정도 드는 생각이었다. 솔라리온 공작가의 아들도 미남이라고 소문났고, 크렐토 백작, 마사리오 변경백도 능력과 외모가 출중하지 않은가.”

그들은 명성이 자자한 귀족들이자, 미남들이었다.

이 넓은 제국에 능력과 외모 둘 다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반면 나는 잔혹한 소문들이 많았다.

고문의 마에스터.

사람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냉혈한.

최악의 전투 마법사.

등등.

좋은 소문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아, 그거요?”

에밀리가 별 거 아니라는 얼굴로 말했다.

“장관님이 악명이 높긴 하죠. 그런데 그걸 상회하는 외모와 능력이 있잖아요.”

“그런가.”

“미남에 능력 있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앞으로 차대 권력자. 후계자도 아니고 가주의 자리를 차지한 남자. 영애들이 어찌 싫어할까요? 거기다가 잘 생겼잖아요?”

잘생겼다는 말을 2번이나 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인가?”

“당연하죠.”

생각보다 싱거운 이유였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 같았는데 말이지.

“그 영애들이 정말 장관님을 사랑하는지는 글쎄요?”

그녀는 능글맞게 웃었다.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귀족들의 결혼은 대부분 정치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거니까.

“그런데 왜 중매를 하고 있는 거지? 자네 정도되는 상인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텐데.”

“중매요? 이것도 인맥을 만드는 단계인거죠. 귀족들 사이에서 상인으로 살아남으려면, 꽤나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예전과 같이 잘생긴 남자 포지션이 사라졌으니까요.”

“그런가.”

생각보다 바뀐 성별에 잘 적응한 그녀였다.

“이렇게 제가 노력하는 것도, 장관님과의 인맥을 위해서인 것처럼요.”

인맥이라.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주는 것이 편하다.

아닌 척, 뒤에 흉수를 감춘 이들이 이 궁에 얼마나 많았던가.

“나랑 인맥 맺으려면 꽤 난이도 있을 거다.”

“알고 있어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장관님.”

“그것도 영애들 사이에 퍼진 내 별명인가?”

“그럼요. 더 있는데 말해드릴까요? 얼음 공자, 우아한 흑표범, 절벽 위의 흑수정…….”

“그만하게.”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민망한 별명들이었다.

“그것보다 에미르가 명단 안에 있는 건 그대가 의도한 건가?”

“비밀입니닷.”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내민 책자를 밀어냈다.

“지금은 쓸모없다. 아직은 생각이 없으니……. 나중에 필요하게 된다면 따로 부탁하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다음에는 더 건설적인 얘기를 했으면 좋겠네요.”

에밀리는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북부로 가기 전에 챙길 물건이 있었다.

한여름에도 추위 때문에 얼어 죽는 사람이 있는 척박한 땅이었다.

대비는 필요하겠지.

“장관니이이임!”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제인이 소리치며 난리를 쳤다.

“왜?”

“사건이에요. 사건!”

이게 무슨.

“무슨 사건이지?”

“이거 보세요!”

제인이 신문을 펴들었다.

제국에서 유명한 연극배우의 열애설이 적힌 가십뉴스였다.

“엉엉, 이제 다 끝났어요. 제 최애가 열애설이 나버렸다고요. 설마 했는데, 우리 오빠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이제 다 끝났어요. 오빠아아, 흑흑.”

그녀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이봐, 이 배우는 네 본래 나이를 생각하면…….”

“장관님! 거기까지. 숙녀의 나이는 말하면 안 된다고욧!”

제인이 황급히 내 입을 막았다.

마치 부끄러워하는 어린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아온 초월체였다.

맞다.

황궁에 존재하는 균열.

제인 역시 그 균열을 만든 초월체 중 하나다.

그 당시 전투의 여파로 마탑에 묶여버렸지만 말이다.

“알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네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역시 농담이 통하는 분이 아니시네요.”

제인이 한숨을 내쉬며 신문을 접었다.

“30분 전에 남부에서 마력 폭풍이 일어났어요.”

“마력 폭풍?”

성질이 다른 강력한 마나들이 부딪히면 일어나는 마법 재앙 중 하나다.

푸른색의 폭풍은 지나가는 공간을 모조리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꽤 오랜 시간 자연의 마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근처에서 마법을 썼다가 평생 마법을 쓰지 못하는 폐인이 되는 일도 많았다.

남부에는 제국에 4개밖에 없는 아카데미 지부 또한 위치했다.

“심각한가?”

“아뇨. 아직 인명피해는 없어요. 아카데미와도 거리가 있고요.”

“원인은 파악했나?”

“아뇨. 지금 제게도 잡히지 않았어요.”

지금은 마탑에 묶인 신세지만, 능력만큼은 여전했다.

내 전음을 파쇄할 정도로 강력한 마법 재능을 가졌으며, 그 재능을 이용해 대륙 전체의 마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모든 걸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어도, 그녀가 마음을 먹고 어디를 감시하고자 한다면 대륙의 끝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제인이 호기심이 많은 건 이러한 능력 때문이리라.

그런 제인도 파악하지 못할 사건이라면.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겠군.”

“그래야 할 거 같아요! 그런데 황제는 왜 부른 거예요?”

“너라면 알 텐데?”

“최근 제국 전역에 일어난 반란군 때문인가? 아니면... 세리아?”

그녀가 음흉하게 웃었다.

“세리아는 왜 그 여자처럼 안 하시죠?”

“그 여자?”

“베로니스요.”

“보았는가?”

“그럼요. 제가 장관님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서요.”

“감시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헤헤, 그래도 장관님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 보지 않잖아요. 사생활은 지켜주는 여자입니다.”

“내가 쳐놓은 마법진 때문잖은가.”

“헤헤.”

제인은 뒷머리를 긁으며 혀를 내밀 뿐이었다.

“자꾸만 관음하길래 보지 말라고.”

“궁금한 걸 어떡해요.”

“전임 장관에게도 그랬나?”

여태껏 보여주지 않은 혐오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에이, 설마요. 탐욕 가득한 늙은이에겐 관심 없다고요. 제가 관심 있는 건 고고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고요.”

“나는 대상이 아닌 거 같은데.”

“자기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네요. 후훟.”

“헛소리 말고 마력 폭풍의 진행방향부터 분석해라.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도록, 우선 반란군을 진압한 다음에 확인하는 것으로 하지.”

“알겠어요.”

토벌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나는 사무실 창고에 마련해뒀던 불사조의 심장을 쥐었다.

진짜 심장은 아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새빨간 보석.

이글거리며 열기를 내는 모습이 불사조의 심장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따뜻한 온기가 보석을 손에 쥔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나는 포탈을 타고 이동했다.

휘이이잉!

피부를 그대로 얼릴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불사조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온기가 내 몸을 덮었다.

일부러라도 챙겨 온 보람이 있었다.

“재밌군.”

북부는 처음이었는데, 자연현상이 매우 신기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 사이사이에 얼어붙은 마나가 섞여 있었다.

자연현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이런 추위를 만들었다는 뜻.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보통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게 반란군을 퇴치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기에.

나는 북부 제국군을 지휘하는 장군을 찾아갔다.

“오셨습니까.”

북부 제국군을 지휘하는 로메로 후작이 나를 맞이했다.

하얀 콧수염이 인상적인 귀족이었다.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현재 반란군 5천과 야만족으로 구성된 기병 2만 명과 대치중입니다.”

“수가 꽤 많군요. 우리 병력은?”

“1만 7천입니다.”

숫자부터 불리했다.

“적은 현재 발트 성을 거점으로 삼아서 남하를 계획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전서구로 쓰는 새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한 마리만 빌리도록 하죠.”

나는 전서구로 쓰이는 매에게 패밀리어 마법을 걸었다.

시야를 공유할 수 있는 사역마로 만드는 마법이었다.

­삐이익!

매가 하늘 높이 날았다.

매의 눈을 통해 우리는 물론이고 반란군의 군세의 위치가 한눈에 보였다.

성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있는 반란군.

성과 이어지는 절벽 사이 협곡에 진을 치고 있는 제국군.

양측 모두 먼저 공격하기엔 어려운 형세였다.

이대로 가다간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 뻔했다.

국력을 낭비하기 딱 좋지.

나는 패밀리어 마법을 해제하고 매를 불러들였다.

­삐이익!

“정면돌파는 서로 무리겠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저희는 수비를 중심으로 짜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될 경우.

자칫하다간 발트 성이 야만족의 손에 넘어간다.

북부 수비의 코어나 다름없는 성이 넘어간다면, 앞으로 야만족이 끊임없이 침공해 올 것.

반드시 저놈들을 쫓아내야만 했다.

“저들은 발트 영주를 중심으로 모였겠죠?”

“그렇습니다. 해당 영지군은 백작이 죽으면 와해될 것입니다. 문제는.”

“야만족이겠군요.”

“예.”

“그렇다면 두 세력을 갈라줄만한 대책은 있습니까?”

“음.”

후작은 잠시 고민했다.

“있긴 합니다.”

“뭡니까?”

“야만족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받기 위해 내려오는 겁니다. 아마 일정 이상의 땅을 얻는다면 물러나겠죠.”

“그건 사양입니다. 제국의 땅을 주는 건 안 됩니다.”

황제에게 모가지를 날아갈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만약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영주에게 약속된 땅을 받지 못한다면? 저들은 이 싸움을 하려고 할까?”

“아마 피할 겁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겠군.”

“어떤 가능성 말씀입니까?”

“반란군으로 야만족을 내쫓을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적의 진영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살을 얼리는 북부의 바람보다도 차갑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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