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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3화 (13/174)

〈 13화 〉 12화 에미르 솔라리온(2)

* * *

솔라리온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에미르는 멍한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멋있으셨지.’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모습마저 멋있었다.

그 완벽한 기품이란.

첫 만남에서 느꼈던 그 설렘이 느껴졌다.

자신이 모리스에게 반한 건 그 완벽한 예절과 기품 때문이었으니까.

‘그년.’

모리스를 껴안은 채로 자신을 비웃듯 바라보던 세리아의 얼굴이 떠오르자, 화가 미친 듯이 솟아올랐다.

세리아는 모리스를 껴안지도, 에미르를 비웃듯 바라보지도 않았으나.

에미르는 그렇게 보았다.

사랑에 미친 여자란 그런 거다.

“꺄아아!”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화가 가시지 않을 거 같아서.

무려 2년이었다.

모리스와의 재결합을 위해 그녀가 노력한 시간.

가문에서 처음 드미트리와 파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몇 번이나 찾아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가문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는 말 뿐.

결국 파혼은 진행됐다.

에미르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얼마나 부렸는지 모른다.

식음을 전폐했다.

2주가 지났을 때, 제발 밥을 먹으라며 애원하시는 아버지의 말에 결국 그녀는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새로운 혼약을 맺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모리스를 찾아갔다.

내 마음은 다르다고.

우리는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사이라고.

나는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고.

도망가자고도 얘기했다.

그러나 모리스는 단호했다.

‘이미 한 번 끊어진 연은 맺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질 것이라는 말.

그 말을 에미르는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세리아가 보낸 암살자들에게 독살 당하기 직전.

백마 탄 왕자처럼 등장한 모리스는 그녀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줬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넓고 든든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걸 깨달았다.

에미르는 그 때 다시 결심했다.

‘이 사람과 평생 하고 싶어.’

그래서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에미르가 청혼했다.

원래는 남자 쪽에서 청혼을 신청하는 규율을 무시할 정도로 그녀의 몸은 달아올랐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확실한 거절.

얼마 지나지 않아, 세리아가 신분처형을 당하고 모리스에게 하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우같은 여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젠가 그의 목적이 다 완성되면 이뤄지기 위해서 옆에서 기다렸는데.

그 자리를 그 여자가 홀랑 채갔다.

모리스가 에미르를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기품이 있고 우아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욕망을 드러냈던 적이 없었따.

전부 다 그 여자 때문이다.

‘세리아…….’

자신을 죽이려고 독살기도까지 했던 여자였다.

“모리스님은 어째서 그런 여자를…….”

문득, 세리아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치마 속에 손을 집어넣던 모리스의 손을 떠올렸다.

사실은 그 분은 욕구를 풀고 싶은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세리아의 몸은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질투가 날 정도로 완벽했다.

바디 라인이 드러나게끔 디자인 된 하녀복 아래로 보이던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 거기에 탄탄한 라인의 엉덩이까지.

모리스가 변한 건 그녀의 몸 때문일까.

‘나도 할 수 있는데.’

에미르는 자신의 가슴을 슬쩍 내려 보았다.

세리아보다는 작지만, 그녀의 가슴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양에 탄력도 좋았다.

그녀의 몸을 씻겨주는 하녀들이 말한 얘기니 확신할 수 있었다.

‘허리도.’

솔라리온 가문의 자녀는 남녀구분 없이 검을 수행했다.

훌륭한 실력은 아니지만, 게으르지는 않았다. 그만큼 탄탄하게 11자로 이뤄진 복근.

‘아니 최근엔 단 걸 좀 많이 먹어서 쪘을지도.’

에미르는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말랑.

“최, 최근에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먹어서 그래.”

이거 때문일까.

갑자기 모리스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 말이다.

“그래도 어디 가서 흉보일 정도는 아닌데.”

그녀는 우물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전부 다 그 여자 때문이야.

그런 여자에게…….

에미르는 그녀의 엉덩이를 쥔 모리스의 손을 떠올렸다.

‘망측해.’

나한테도 해준 적이 없었는데.

질투.

그리고 부러움이 그녀를 지배했다.

‘다시 되찾으면 돼. 나, 나도 연습하고 노력만 하면 되니까.’

에미르는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잡았다.

세리아, 그 교활한 마녀에게 홀린 모리스를 다시 데리고 올 거라고.

***

“어떻게 되고 있는가?”

류클리드 황제의 호출에 태양궁에 찾아갔다.

그는 푸른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내게 물었다.

말해 뭐하는가.

세리아 얘기였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예.”

“얼마 전에 지크프리트가 자네를 찾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자네가?”

황제의 얼굴에 불쾌감이 대놓고 드리웠다.

자기가 앉힌 마법부 장관이 귀족파의 대두를 만났다는 것이 불편하겠지.

“지크프리트와 세리아를 절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집이 만만치 않아서.”

“그런 이유였나. 어쩐지, 최근 공작의 표정이 썩어 있더만.”

황제가 낮게 웃었다.

그러나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상당히 충격이 상당했겠군. 그년이나, 공작이나.”

“성과가 있었습니다.”

“크크, 잘 되고 있나보군. 난 분명 말했네. 그녀의 마음이 갈갈이 찢겨지는 걸 말이네.”

“물론입니다. 허나 폐하.”

“말하게.”

“차라리 지크프리트를 완전히 무너트리면 되는 일 아닙니까?”

지크프리트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진 세리아라면, 가문이 무너졌을 때 최악의 충격을 얻을 거다.

심지어 명분도 확실하지 않았던가.

반역가문, 지크프리트.

감히 제국의 태양에게 검을 겨눴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멸문시킬 이유는 충분했다.

황제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내 말에 완전히 실망했다는 얼굴이었다.

“흐음, 그런 방법은 너무 미련하지 않은가. 예술적이지도 않아. 이왕이면 더 공을 들인 음식이 더 맛있는 것처럼 말이지. 단순한 쾌감으로 끝내기는 싫네.”

이 말을 마친 황제는 눈까지 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상황을 상상한 걸까.

황제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자네가 만들어줄 명장면을 기다리고 있네.”

역시 피폐물 남주.

머리에 나사가 빠진 게 분명했다.

“자네는 그 여자를 어떻게 가지고 놀 생각인가?”

“공을 들일 생각입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니까요.”

“흠, 틀린 말은 아니지. 시간은 음식을 맛있게 숙성시키니까.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면, 내가 의심할지도 모르네.”

나를 노려보며 웃는 모습이 사악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릴 정도였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장관, 아니 모리스. 난 그대를 아끼네. 그대가 마지막 전투에서 내 목숨을 구해준 건 아직도 잊을 수 없어. 하지만.”

푸른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만약 나를 배신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평범한 인간이 어찌 제국의 태양을 맨눈으로 보겠습니까.”

황제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말을 뱉으며 마주보았다.

“……그 말을 믿도록 하지.”

“참, 폐하, 황후폐하의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최근에 대외활동에 나오질 못하고 계시는데요.”

“아, 황후?”

그는 권태로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어떻게 로판 여주를 생각하는 남주의 표정이냐고.

“잘 지내고 있네.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누구의 아내인데.”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거렸다.

“알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보게 장관, 내가 그대를 아끼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네. 어찌 태양의 아내를 개인적으로 보려고 하는가.”

“죄송합니다.”

“나중에 볼 일이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떨떠름한 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내가 원작에서 보지 못했던 설정이 있던가.

아니.

몇 번이나 보면서 이 소설의 설정은 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무엇이며.

가슴을 옥죄는 이 불안감은 뭐지.

나는 궁금한 것들을 어렵게 떨쳐내며 황제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부르신 겁니까?”

“아, 내 일 때문에 정사를 잊고 있었군.”

황제의 눈빛이 다시금 정상으로 돌아왔다.

“제국의 내전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났네. 여전히 지방은 혼란스럽더군. 현재 지방에 존재하는 반란군을 토벌해주길 바라네.”

“지방 반군이라면,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현재 황제파에 반대하는 반군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귀족파는 시치미를 뗐지만.

아마 그들이 주도했으리라.

“서부 벵골 백작이 독립을 위해 병사를 일으켰다더군. 동부에는 대규모 산적이 병력을 이끌고 산맥을 점거하고 있고, 북부에는 반란군이 야만족과 결탁해서 남하하고 있다고 들었네.”

여전히 남아있는 귀족파의 잔여 병력이.

지방에서 난리를 부리는 거다.

“알겠습니다. 제국의 안녕은 마법부의 존재 이유이니까요.”

나는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 빌어먹을 피폐물 주인공.

궁 밖으로 어서 나가든가 해야지.

오래 있으면 이 더러운 기분에 전염되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궁 밖으로 서둘러 나갈 때였다.

“어머, 장관님.”

에밀리였다.

전 서브 남주이자, 지금은 여자가 되어버린.

그녀의 푸른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황궁에는 어쩐 일이세요? 오지 않으실 거 같았는데.”

“황제께서 부르신다면 와야지.”

“아하, 그거 참 잘 됐네요. 마침 장관님을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지?”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장관님과 혼약을 원하는 영애들이 많다고.”

“흐음.”

만약 황궁에서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녀석을 쫓아버렸을 거다.

그러나.

이곳에선 불가능했다.

그건 황제 본인마저도 마찬가지였다.

황궁 전체에 펼친 마나를 어그러트리는 파장 때문이었다.

원인은 과거 초월자들의 전쟁으로 생긴 균열 탓이라고 작가가 설정했더라.

그 초월자들에 대한 자세한 건 당연히 작품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작가 편의주의 전개.

그건 마법사들은 황궁에서 취약하다는 뜻.

나도 마찬가지였다.

“후후, 지금 저 쫓아내려는 생각 했죠?”

“잘 아는군.”

“말했잖아요. 전 남자의 마음을 잘 안다고.”

에밀리가 대놓고 몸을 가까이 붙였다.

“그걸로 될 거 같나?”

“안 되나요? 세리아는 이거보다 컸던가요?”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 말하는군.”

“솔직해지자고요. 장관님도 남자라면 욕심이 생기셨을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그런 물건들을 주문시켰잖아요.”

에밀리라면 내가 준비한 물건이 최면과 환각에 이용할 것이라는 걸 알 거다.

“후우.”

“저한테는 숨기지 마세요. 전 이해할 수 있답니다?”

에밀리가 손가락 끝을 내 가슴에 대고 원을 그렸다.

욕심이 안 생겼을 리가.

다만, 조절하는 거다.

세리아를 둘러 싼 황제의 집념이 신경 쓰였으니까.

정말 세리아를 싫어했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녀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으니까.

“모든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싶어하죠. 물론 저도 그랬답니다.”

에밀리, 그 전에 에미르는 사랑에 있어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여주를 차지하기 위해서 저 강렬한 메인 남주, 류클리드 황제와 맞상대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황후 폐하가 아직 미혼이었을 때, 저는 그녀를 원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제 가슴을 뛰게 한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진심으로 그녀를 취하고 싶었죠. 얼마나 하고 싶었냐면, 봉긋 튀어나온 가슴을…….”

“됐다. 남자의 사랑 얘기는 듣고 싶지 않군.”

“알겠어요. 하지만 그건 남자일 때죠. 여자로 변한 지금은……. 편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그녀보다 가슴은 더 크고요.”

어쩌라는 건지.

“오히려 이젠 남자의 물건에 흥미가 돋는걸요?”

그녀의 손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미안한데, 거기까지 가는 건 후회할 텐데?”

“호호, 그런가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나?”

“아마 며칠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거다.”

“진심이신가요?”

“물론이지.”

“그 진심을 느껴보고 싶다면, 들어주실 건가요?”

“네가 원한다면.”

에밀리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몇 초 정도 눈을 마주친 에밀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내게 기댔던 몸을 풀어 정자세로 섰다.

“후후,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죠. 더 좋은 자리에서 말이에요. 지금은, 보는 눈이 많네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볼일 없이 나를 부르지는 않았을 테고.”

“우리 장관님에게 혼약을 넣고 싶다는 이들입니다. 장관님은 드미트리가문의 가주이시니, 이제 슬슬.”

그리고 그녀가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에미르…….”

전 약혼녀 에미르의 사진도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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