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8화. 지크프리트 단절 작전
* * *
“흠.”
나는 완성된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세계수의 겨우살이를 엮어 만든 한 쌍의 팔찌가 완성됐다.
겨우살이의 마법적 기능을 개화시키기 위해 에밀리가 준비한 재료들을 전부 쏟아 부었다.
팔찌에서 마나의 기운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놓인 붉은 핵.
나는 팔찌를 점검하기 위해 팔찌 중앙에 위치한 핵을 작동시켰다.
우우웅.
핵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이 팔찌 전체를 휘감았다.
‘됐다.’
제대로 작동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흰 무늬 리자드맨에게서 채취한 진액에 담그면 된다.
이 진액은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
섭취하거나 피부에 바르기만 해도 환각을 볼 정도로 효과가 확실한 물건이었다.
나는 2개의 팔찌를 진액이 들어간 통에 담갔다.
지이잉.
빛을 띄던 팔찌를 집어 넣기가 무섭게, 진액이 부글거리며 끓었다.
팔찌에 진액의 힘이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좋군.”
30분 정도 진액에 담군 뒤, 팔찌를 꺼냈다.
녹색을 띄었던 겨우살이가 하얗게 변색되었다.
‘완성되었군.’
착용자에게 환각을 보여주는 팔찌였다.
나는 이걸 세리아와 지크프리트에서 보낸 사절에게 채울 생각이었다.
이 팔찌에는 두 가지 마법 술식이 새겨져 있는데.
1. 내가 설정한 이미지를 사용자에게 환각으로 보여준다.
2. 환각 마법은 같은 쌍의 팔찌를 찬 사용자끼리만 적용된다.
평소에는 스위치를 끈 것처럼 환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쌍의 팔찌를 찬 이를 보면 환각마법이 발휘되게 설정했다.
팔찌를 찬 상대가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말이다.
‘원래는 이걸 가지고 세리아를 교육할까 싶었지만.’
내 취향이 아닐 뿐더러.
큰 효과가 나지 않을 거다.
단순히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는 편이 더 끔찍하지 않겠는가.
‘소드마스터라도 환각에 걸리도록 만들어 놨으니.’
지크프리트에서 누굴 보내더라도 마법은 적용이 될 터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아티팩트에 재료들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 하루를 꼬박 세웠다.
“피곤하군.”
경지로 오른 마법사이기에 지칠 일은 많이 없는 그마저도 오늘은 다소 지친 상태였다. 그만큼 오늘 작업이 어려웠다는 뜻.
“잠시 쉬어야겠어.”
라고 생각할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문 밖에선 잠시 말이 없었다.
“……세리아, 입니다.”
의외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두드렸다라.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세리아가 쟁반을 들며 들어왔다.
그녀가 들고 온 쟁반에는 붉은 와인과 함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귀족이었을 때의 영향이었을까.
테이블에 음식을 놓는 세리아의 손짓엔 기품이 서려있었다.
여전히 도끼눈을 뜨고 있었지만, 군말 없이 음식을 차리는 모습에서.
세바스찬의 고생이 느껴졌다.
“건방지군.”
그녀는 말없이 나를 노려봤다.
“그래도 제대로 배우는 중이군.”
나는 그녀가 가지고 온 와인을 마셨다.
깔끔하고 깊이 있는 맛이었다.
“주, 줄리아 산 와인이에요. 줄리아 지방의 공법으로 담긴 옅은 마나가 풍미를 더해줄 거예요.”
“세바스찬이 알려줬나?”
“…….”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시늉을 하자.
“예.”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세리아는 내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옆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토와 지방의 돼지고기로 만든 안심 스테이크, 이에요.”
나는 조곤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마쳤다.
여전히 존댓말은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세리아.”
식기를 정리하던 세리아가 나를 보았다.
“내가 싫은가?”
“당연하지……요.”
“그러겠지. 날 저주하고 싶을 거다. 네 눈에는 내가 악마처럼 보이겠지. 그런데 말이다.”
“……?”
“황제나 네 아버지인 가주는 어땠는가.”
“뭐?”
“누가 널 이곳에 보냈지? 내가 보냈나? 아니, 널 이곳에 보낸 건 황제야. 내가 너와 네 가문의 연을 끊었나? 아니, 그건 지크프리트 공작이 그랬지.”
나는 그저 그들이 보낸 결과물, 세리아를 받았을 뿐이다.
황명이라는 이유로.
“그런데 너는 왜 나를 미워하는 거지?”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건 너잖아.”
세리아는 다시 옛날 말투로 돌아왔다.
“그런가.”
나는 입 안에 맴도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나도 살고 너도 살아야지 않겠는가.’
굳이 말해봤자, 그녀는 받아들지 못할 테니 말이다.
차라리 지금은.
“그러게 왜 황제를 노렸는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나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 것이 낫다.
“이익!”
내 말에 식기를 정리하던 세리아가 손을 들어 덤볐다.
당장이라도 내 뺨을 치려는 시도는 시도로 끝났다.
“꺄아악!”
나는 마법으로 떨어지는 유리잔과 식기를 공중에 띄움과 동시에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이거 안 놔?”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 지금 입장을 이해시켜야 할 거 같군.”
“뭐?”
나는 세리아의 팔목을 쥐었던 손을 놓았다.
내가 잡았던 손목에는 하얀 팔찌가 채워졌다.
“이, 이건 뭐야?”
목에 걸린 초커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팔찌를 보는 그녀의 얼굴엔 공포가 가득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뺄 수 없을 거다.”
내가 빼지 않는다면 벗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
“볼일은 다 끝났으니 나가라.”
퉁!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몸이 붕 떠서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쟁반에 식기를 올려 쫓겨나간 세리아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앞으로는 깨트리지 마라.”
엄중한 경고과 함께.
***
“오랜만이군.”
지크프리트에서 보낸 사람이 도착했다.
저택의 입구에 도착한 사람을 본 나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군.’
지크프리트의 공작가 근위기사단장 머스크였다.
제국 내에 7명만 존재하는 소드마스터.
귀족가의 가장 큰 비대칭 전력무기였던 머스크.
전장에서 싸웠을 때 나를 가장 곤란하게 만든 상대이기도 했다.
“네가 올 줄은 몰랐다.”
“공작님을 곤란하게 한 모양이던데?”
“물건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서.”
“건방지군.”
“왼팔은 괜찮은가?”
나는 어깨까지 날아간 왼팔을 가리키며 물었다.
“누구 덕에 여전히 욱신거려서 말이지.”
나는 기나긴 싸움 끝에 녀석의 왼팔을 날렸다.
그날 패배 이후, 머스크는 늘 검은색 갑주를 입고 다녔다.
패장은 밝은 색을 쓸 수 없다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소드마스터를 보냈다는 건.
‘내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일 텐데.’
이걸 어쩌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지크프리트와 완전한 단절이다.”
“끄응.”
머스크는 침울한 얼굴로 어깨를 들썩였다.
“어쩔 수 없지. 살릴 수만 있다면.”
그는 유일하게 남은 오른팔을 불끈 쥐었다.
“그래도 내가 모셨던 분이다. 얌전한 방식으로 부탁한다.”
“될 거 같은가?”
“뭐?”
“너도 겪었을 테니 잘 알 텐데? 그렇게 해서 먹힐 사람이었으면, 지크프리트에게 부탁하지도 않았다.”
머스크는 이를 악물었다.
“적당히 어울려라. 네가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아끼는 아가씨가 죽을 거다.”
황제한테 말이지.
“알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머스크의 오른팔에 팔찌를 채웠다.
“이건 뭐지?”
“이번 계획에 꼭 필요한 물건.”
“수상한 건 아니겠지?”
어깨를 으쓱거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네가 할 건, 간단하다. 지크프리트가 세리아와 완전히 연을 끊었다는 걸 공인하는 걸.”
“…….”
“매몰차게 하라.”
“걱정 마라.”
두 쌍의 팔찌가 모두 주인을 찾았다.
앞으로 할 일은 간단하다.
팔찌를 찬 세리아와 머스크를 만나게 하는 것.
진액의 환각과 내 마법에 걸린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최악의 상황을 볼 거다.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겠지만.
세리아는 하녀가 된 자신을 머스크가 경멸하는 모습을.
근위기사단은 세리아가 내게 겁탈당한 모습을 보겠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팔찌는 내가 설정한 이미지를 보여줄 테니까.’
팔찌에 은은하게 빛이 나는 걸 확인한 나는 머스크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럼, 시작하지.”
나는 머스크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어, 어서오…… 어?”
나를 맞이하던 세리아가 뒤따라 온 머스크를 보며 눈을 키웠다.
“머, 머스크?”
세리아를 본 머스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리스…….”
“들어가지. 아, 그리고 옷은 이 친구에게 맡겨.”
나는 세리아를 가리켰다.
머스크는 그녀를 차마 보지 못하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입고 가지.”
머스크는 나름 예의라고 생각했겠지만, 세리아에겐 완벽한 무시로 느껴졌을 거다.
자신을 늘 따르던 기사의 무시.
자의식이 강한 세리아라도 버티기 어려우리라.
“모리스!”
알현실로 따라 들어온 머스크가 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을 넘지 않았나!”
“뭘 말이지?”
“감히! 지크프리트의 공녀를 저런 꼴로 만들다니! 감히!”
녀석은 당장이라도 검을 꺼낼 기세였다.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저런 꼴?”
“공녀를 겁탈했다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통했다.
지금 머스크의 눈엔 세리아가 반쯤 헐벗은 채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거다.
“이봐,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저 여자는 지크프리트의 공녀가 아니야. 그저 이름 없는 하녀일 뿐이지. 그런 여자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던 무슨 상관이지?”
“이러려고 우리를 불렀나? 지크프리트 가문에 치욕감을 주기 위해서?”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네 주인을 살리고 싶다면 관계를 단절시키라고.”
머스크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크읏!”
머지않아 세리아가 들어왔다.
“주, 인님……. 부르셨나요?”
그리고 나는 손을 까딱거렸다.
나는 알현실 안으로 들어온 세리아의 손을 잡았다.
“저번 밤에는 굉장했지. 안 그런가?”
“예?”
“발가벗은 채로 침대에 묶여서 신음을 지르던 네 모습 말이다.”
이 모든 건 머스크를 자극하기 위한 것.
머스크는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몇 번이고 저항했을 세리아가 조용했다.
가장 믿었던 신하의 침묵에 세리아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성적 가학성] 특성이 적용되었다.
“저항하지도 못하고 쾌감을 받아들이는 네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지. 밤새 짐승처럼 울어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내 시선을 피하며 몸을 파르르 떠는 모습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아랫도리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후우.’
정신차리자.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세리아를 희롱하던 나는 눈을 감은 머스크에게 물었다.
“참, 공작님께선 잘 지내시나?”
“그렇습니다.”
“딸을 잃으셔서 참 슬프시겠어.”
“딸이라니요. 저희 가문에는 오로지 적통을 이으실 공자님밖에 없습니다.”
미리 정해둔 대본대로 말을 이었다.
“저런, 내가 실수했군. 지크프리트의 자식이 한 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
머스크는 가만히 눈을 떠 나를 노려보았다.
세리아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였다.
주군의 따님이 헐벗은 모습을 보지 않겠다는 일념.
굉장한 충심이었다.
평범한 때라면 그 진심이 전해졌겠지만.
리자드맨의 진액에 의해 환각을 보는 세리아에겐 그렇지 못했다.
연이은 무시와 자신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행동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제 쐐기를 박을 때.
나는 세리아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꺄악!”
“최근에 들여온 하년데, 맛이 참 좋아. 자네도 한 번 맛 볼 텐가?”
아무리 생각해도 찰진 연기였다.
[성적 가학성]이 빛을 발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세리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걸었던 제약이 빛을 발한 거다.
건방진 생각을 하면 몸에 전류가 통하는 제약.
머스크는 그 모습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마치 내가 가슴을 만지는 것으로 세리아가 느낀 것처럼 보였겠지.
“모리스 드미트리! 감히 지크프리트를 욕보일 셈인가!”
참다못한 머스크가 검을 뽑았다.
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