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8화 (8/174)

〈 8화 〉 7화 리자드맨 진액

* * *

“물건이라, 마법부 장관님께서 필요하신 물건이 어떤 걸까요?”

이미르, 아니 이제는 에밀리가 고개를 숙였다.

“대단한 건 아니다. 마법상인인 그대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지.”

그녀는 가만히 나를 보았다.

“골렘의 핵, 고양이의 숨결, 대장간의 불꽃…….”

“마지막은 엘프의 숲에 존재하는 세계수의 겨우살이이겠군요.”

“잘 아는군.”

“전부 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네요.”

에밀리가 입맛을 다셨다.

“구할 수 있나?”

“어렵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걸 대체 왜?”

“쓸 데가 있다.”

고문의 마에스터, 최고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장관님께서 만들어야 하는 아이템이라. 어떤 물건일지 궁금하네요.”

“깊이 알려고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얼마나 걸리지?”

“준비하면 바로 댁에 갔다드리지요.”

“이왕이면 빨리 줬으면 좋겠군.”

“내일이면 되겠습니까?”

“물론.”

“혹시, 얼마 전에 받으셨던 하사품 때문인가요?”

세리아를 말하는 거리라.

말을 하는 에밀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황후가 된, 여주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세리아였다.

서브남주였던 이미르, 아니 에밀리가 그녀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리가 없었다.

설사, 성별을 바꿔 완전한 여자가 된 지금도 말이다.

“내가 거기까지 말해야 하나?”

“아닙니다.”

“주문한 물건이나 잘 가지고 오길 바라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장관님.”

“또 할 얘기가 있나?”

“아뇨. 최근에 궁중에서 장관님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어서요.”

“무슨 뜻이지?”

“이제 슬슬 결혼 상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모리스의 나이는 이제 22.

이 세계에서는 결혼 적령기이기도 했다.

“최근에 중매를 하는 인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자네였나?”

“남자이기도 했고, 이제는 여자니까요. 남자와 여자의 감정을 모두 이해할 수 있거든요.”

남자였을 때도 궁중 내부에 유명할 정도로 인싸였던 에밀리였다.

“웃기는 소리.”

“아무튼, 많은 영애들이 장관님을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리스트를 원하시면 책 다섯 권 분량은 나올 겁니다.”

“생각 없다.”

에밀리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푸른 머리가 찰랑거렸다.

누가 저 여자가 몇 달 전까지 남자였으리라 생각할까.

커다란 가슴을 강조하듯 모으며 선 자세까지.

“나를 유혹하는 거라면 한참 부족하다.”

“쳇.”

에밀리가 혀를 찼다.

남자였던 여자에게 홀릴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제가 매력이 그렇게 없나요?”

“그런 문제가 아니지.”

“남자였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거군요.”

“알면 나가라. 강제로 쫓아내기 전에.”

“쫓겨나가기 전에 한 말씀 드리자면, 진짜로 상대를 잡을 필요가 있어 보여요. 요즘 장관님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꺄아악!”

에밀리의 몸이 붕 뜨며 문 밖으로 날아갔다.

‘성격이 완전히 변했군.’

여자가 된 뒤로 성격이 묘하게 바뀌었다.

사랑을 잃은 것이 얼마나 슬펐으면 자신의 성을 바꿨을까.

본인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을 거다.

‘멍청한 놈.’

나는 옆에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보던 제인을 바라보았다.

“오늘 내 업무를 대신해줄 수 있나?”

“제가요? 저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걸요.”

“간단한 일이다. 여기 앉아서 올라오는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그만이다.”

“도장만 찍어도 된다고요? 제 마음대로요?”

“물론 내가 최종확인은 하겠지.”

장난꾸러기인 제인이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마냥 볼 생각은 없다.

눈을 반짝이던 제인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네요.”

제인의 붉은 머리카락이 들썩였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뭐지?”

“저기 쌓인 서류도 제가 처리하면 될까요?”

­그 아이템을 만들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이신가요?

음성과 동시에 텔레파시가 들렸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나는 담담하게 질문을 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하지 마세요! 장관 대리 업무를 잘 해낼 테니까요!”

“쓸데없이 일을 키우지 마라.”

“걱정 마세요. 저는 마탑의 마스코트잖아요!”

제인이 윙크를 하는 걸 본 나는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을 나갔다.

포탈을 타고 제국의 남부로 이동했다.

“우욱.”

마나 폭풍이 가득한 포탈을 타고 나면 느껴지는 현기증에 이마를 집었다.

“적응이 안 되는 건 여전하군.”

그래도 몇 백 킬로가 넘는 공간을 단번에 이동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었다.

“후우.”

짙은 남색의 숨결을 뱉은 나는 주위를 살폈다.

드레이크의 숲.

평범한 사람들은 숨만 쉬어도 호흡 곤란에 빠질 수 있는 드레이크의 독이 가득한 숲이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손을 저었다.

후우웅.

바람이 불어 녹색 안개를 흩어냈다.

“키륵?”

그러자, 늪지대를 걸어 다니던 리자드맨과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이다.”

“키륵?”

녀석은 혀를 내밀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온 걸까.

녀석은 나를 멀뚱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니들 잡으러 왔다.”

파밧!

내 손끝에 불꽃이 튀었다.

적의를 느낀 리자드맨이 비늘을 세우며 나를 경계했다.

그의 손에는 조악하게 만들어진 창이 들려 있었다.

내 손에서 휘몰아치는 불덩어리를 리자드맨에게 던졌다.

‘파이어 볼.’

가장 간결하면서 공격적인 마법이었다.

녀석이 반응하기도 전에 불덩어리가 녀석의 몸을 태웠다.

콰앙!

“끼이익!”

짧은 비명 이후, 녀석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수풀이 여기저기서 들썩였다.

‘그래, 빨리 와야지.’

일부러 요란한 마법을 사용했다.

내가 리자드맨을 찾아다니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니, 저들이 나를 쫓아오게끔 만들었다.

처음 죽인 몬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리자드맨들이 창을 꼬나 쥐고 덤벼들었다.

“빨리도 왔군.”

독을 묻힌 화살이 쏘아졌다.

수많은 창들이 나를 겨누며 날아왔다.

퉁!

전부 내게 닿지 못하고 힘을 잃었다.

포탈을 타기 전에 캐스팅했던 매직 실드 덕이었다.

여기서 이 실드를 깰만한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공격 마법을 캐스팅했다.

불 마법 다음으로 리자드맨에게 강한 마법이 바로 전격 마법.

파지직!

수십 마리가 넘는 리자드맨을 잡기에 가장 좋은 마법은 역시, 체인 라이트닝.

“빨리 끝내도록 하지.”

파지지직!

내 손에서 시작된 전류가 늪 위에 선 리자드맨 무리를 덮쳤다.

“께르륵!”

“끼륵!”

한참을 경련하던 몬스터들이 모두 픽픽 쓰러졌다.

“흐음. 없군.”

리자드맨들을 가만히 살펴봤다.

내가 찾는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리자드맨들을 지나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언제쯤 나오려나.’

내가 찾는 녀석은 가슴에 하얀 무늬가 있는 리자드맨이었다.

하얀 무늬 리자드맨의 진액은 마나를 응집시킬 수 있는 최상급의 재료였다.

아이템을 제작하기에 가장 중요한 재료.

그만큼 수집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내가 직접 드레이크 숲을 찾았다.

‘숲에 깔린 독 안개를 뚫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지.’

나는 독이 내게 닿지 않게 바람을 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홀로 서 있는 리자드맨을 발견했다.

‘찾았다.’

하얀 무늬를 가진 리자드맨이었다.

“이봐.”

나는 주위를 경계하는 녀석을 향해 소리쳤다.

눈이 마주친 녀석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도망치지 않았으면 하는데.”

파지직 하고 소리를 내던 전류가 녀석의 코앞에 닿았다.

“끼익!”

몸이 굳은 녀석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진액만 내놓으면 얌전히 떠나도록 하지.”

내 말을 알아들은 녀석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리자드맨이 무늬에서 진액을 뿜어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병에 진득한 녹색 진액을 담았다.

병을 반쯤 채울 때 쯤,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 정도면 됐다.”

더 착취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좋은 재료를 선뜻 건네주는 녀석을 어떻게 죽일까.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나는 병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이 말도 알아들었는지, 녀석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

리자드맨의 진액을 수거한 나는 저택으로 돌아갔다.

‘제인의 수다를 듣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아도 피곤해 죽겠거든.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세바스찬이 맞이했다.

“주인님, 마법상에서 물건을 보냈습니다.”

“벌써 말인가?”

“그래서 사람을 시켜 주인님의 연구실에 올려놓았습니다.”

“고생했네. 세리아는 어떻게 되고 있지?”

“하나부터 열까지 교육 중입니다.”

“말은 잘 듣던가?”

“다소 반항적이긴 했으나, 주인님 덕에 그리 심하진 않습니다.”

“내일까지 잘 부탁하지.”

“걱정마십쇼. 기본은 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습니다.”

연구실에 올라간 나는 에밀리가 보낸 물건을 찬찬히 확인했다.

골렘의 핵, 고양이의 숨결, 대장간의 불꽃, 세계수의 겨우살이.

“전부 맞군.”

마지막으로 내가 채집한 리자드맨의 진액까지.

재료를 전부 확인한 나는 연구실 문을 닫았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