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6화 지크프리트
* * *
“들어오게.”
하얀 머리를 멀끔하게 넘긴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바스찬.
선대부터 드미트리가를 모시던 충직한 집사.
이 세계에서 모리스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저 없는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니.”
세바스찬의 시선이 내가 틀어놓은 CCTV 마법에 향했다.
“제가 비운 사이 주인님의 성벽이 바뀌셨나보군요.”
“황제가 하사한 물건이네.”
“아.”
세바스찬이 CCTV 안에서 헐떡이는 세리아를 보았다.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벌써 자네 고향에까지 닿았나?”
“수도에 들어오면서 들었습니다. 황제께서 백작님께 대단한 선물을 하사하셨다는 소문 말입니다.”
“대단한 선물이지. 그리고 폭탄일세.”
“조심히 다뤄야겠군요.”
그는 말없이 CCTV를 보았다.
“고문입니까?”
“굳이 따지자면, 성고문에 가깝지.”
“백작님도 이젠 후사를 생각하셔야 하긴 하지만, 너무 맛들이지 마십시오. 선대 가주님께서도…….”
“알고 있네.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일찍 왔네.”
“생각보다 몸이 금방 나아져서요.”
세바스찬이 양 팔을 들어 올리며 근육을 자랑했다.
“건강하긴 하군.”
나는 손가락을 튕겨 CCTV 마법을 껐다.
“앞으로 잘 교육시키길 바라겠네.”
“하녀교육을 시키면 됩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정리는 제게 맡겨주십쇼.”
“알았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부하자면.”
세바스찬이 손가락을 들었다.
“너무 심하게 다루지는 마십쇼. 주인님께서 진심을 다하신 사람들이 얼마나 망가지셨는지…….”
“잔소리는 그만하게. 잘 알고 있으니.”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세바스찬이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 좀 한시름 놓일 거 같았다.
집안일과 앞으로의 일은 잘 가르치겠지.
***
다음날 아침.
“죄송합니다. 주인님. 물건을 씻기는 건 주인님께서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세바스찬의 얼굴에 새빨간 세로줄이 새겨져 있었다.
“노력했지만, 제 스스로 몸을 씻으려고 들지 않습니다.”
“하아.”
고집통이 거의 오거 힘줄 수준이었다.
“내가 맡지.”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세리아가 눈을 내리깔았다.
“왜, 왜 온 거야?”
고생한 보람은 있네.
“세바스찬에게 곤란한 짓을 했더군.”
“그, 그건!”
“이 집에서 서열은 세바스찬이 더 위다. 지크프리트는 안 통한다는 거 알 텐데.”
그녀는 반박하지 못했다.
“내 말을 잘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나는 입술을 깨무는 그녀를 번쩍 들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몸에 닿았다.
“그럼 목욕을 시작하지.”
“뭐, 뭐라고?”
“알잖은가. 첫 날에 했던.”
“그, 그것만큼은…….”
세리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군.”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필수라서 말이야.
내 손에 파란 빛이 돌았다.
***
마법부에 출근한 나는 도착하자마자, 새드릭을 찾았다.
“어쩐 일이십니까?”
“지크프리트 공작을 호출해주게.”
“공작을 말입니까?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습니까?”
녀석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마치 내 의도를 심문하려는 듯한 눈빛.
황자의 난 이후, 완전히 귀족파의 우두머리가 된 지크프리트였다.
즉, 현재 황제의 가장 강력한 적.
그런 인물을 만난다니, 경계할 수밖에.
‘황제의 끄나풀.’
귀찮은 상대였다.
“간단하다. 일전에 있었던 내전에 대한 배상금 문제 때문이다.”
“그건 재무장관이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상 물건 중 마법 물건이 상당 수 있으니, 장관인 내가 파악해야겠지.”
“제가 맡겠습니다.”
귀찮군.
자꾸만 말꼬리를 잡는 꼴이 보기 싫었다.
“새드릭.”
“예, 장관님.”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것인가?”
나와 눈이 마주친 새드릭이 시선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잔말 말고 호출하게.”
“예, 알겠습니다.”
목례를 마친 새드릭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자,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제인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왜 새드릭인 거예요? 다른 사람들 많잖아요. 부차관이라던가 아니면 수석 마법사라던가, 정 없으면 나도 있는데요?”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랬냐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게 나는 한 마디만 툭 던질 뿐이었다.
“황제 들으라고.”
내 말을 들은 제인은 마치 아침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을 본 시청자처럼 눈을 빛냈다.
***
지크프리트 공작이 집무실에 도착했다.
“반갑소, 드미트리 장관.”
“오랜만입니다. 공작님.”
나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지크프리트 공작을 반겼다.
그는 세리아와 똑같은 백금발을 깔끔하게 뒤로 넘긴 채였다.
수염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엔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장관이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대답하기 전에, 공작의 뒤를 따라온 기사를 보며 물었다.
“호위가 생각보다 많네요?”
“제국 최고의 마법사를 만나는데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 않겠소.”
“쓸데없는 짓입니다.”
나는 곧 그들에게 시선을 거두었다.
“부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전에 대한 배상금 때문이죠.”
“이미 다 해결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크프리트 봉토의 3분의 1, 예하 귀족들의 절반에 가까운 봉토가 황가에 반환되었죠.”
“말고도 많습니다. 장관님.”
“누가 모르겠습니까. 귀족파 여러분들이 성실하게 납부하셨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나는 목소리를 낮춘 채 물었다.
“딸을 살리고 싶습니까?”
“내게 이젠 딸이 없소만?”
침착한 척 말을 뱉지만,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분 뭐 같겠지.
그렇지 않아도 소중한 딸이 내 소유로 넘어갔으니.
당장이라도 죽여서 되찾고 싶은 마음일 거다.
하지만, 패장은 말이 없는 법.
그저 웅크리고 다음 기회를 노릴 뿐이었다.
“아, 미안합니다. 까맣게 잊어버렸군. 뭐 아무튼, 내가 물건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공작이 귀하게 여기던 물건입니다.”
다시 한 번 딸을 들먹였으나, 이제는 표정 관리를 성공했다.
생각이 많을 거다.
대체 내가 왜 신분 처형을 당한 세리아의 이야기를 하는지.
반역의 마음을 떠보는 건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가?
생각해라.
생각이 많을수록, 내게 이득이니까.
“나름대로 적응시키려고 노력하는데 고집이 세서 말이죠.”
“…….”
“좀 도움을 받고 싶은데?”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공작가를 살리고 싶지 않소?”
딱!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일국의 공작 앞에서 보이는 건방진 행태에 분노한 기사 하나가 검집에서 검을 뽑았거든.
“엇?”
기사는 자신의 손에서 맥없이 빠져나가는 검을 보며 얼빠진 얼굴을 했다.
“감히 마법부에서 검을 휘두르다니, 교육이 필요하겠소. 공작.”
내가 하대를 하기 시작했음에도 공작은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이를 갈며 나를 바라볼 뿐.
“헛짓거리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나는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기사들의 장검부터 그들이 숨겨왔던 단검에 암기까지 모조리 허공을 날았다.
“진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나와 눈이 마주친 기사 하나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공작은 그런 기사를 보며 혀를 찼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세리아와 지크프리트의 완전한 단절.”
“그것이 전부요?”
“물론이지. 세리아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저택에 보내시오.”
“그러면 되겠소?”
“사람만 보낸다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선택에 용이해지도록 텔레파시를 전달했다.
황제가 원하는 건 세리아의 고통이오. 만약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공작가까지 멸망시킬 각오를 하고 있소.
공작가와 세리아 모두 살리고 싶다면 내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요.
그대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라지.
마탑에서 내 텔레파시를 뚫을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던 지크프리트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내 장관의 말을 따르리다.”
그는 주저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들이 그를 따라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나는 한숨을 퍽 내쉬었다.
“힘들군.”
모리스 드미트리로 사는 거, 무진장 힘들다.
진이 빠진다.
이 성격대로 살다간 얼마 못 가 죽을 거다.
얼굴을 쓸던 나는 옆에서 나를 보고 있던 제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열렬한 시청자 모드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만약 공작이 말을 안 들었으면 황제가 진짜 멸문시켰을까요?
다 들었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마탑에서 내 텔레파시를 뚫을 ‘인간’은 없다.
관심 꺼라.
나는 지크프리트가 나가자마자, 사라지는 시선들을 느꼈다.
저들에겐 마법부 장관과 재무장관의 업무 이야기로 들릴 테지.
‘의심 많은 건 여전하군.’
마탑도 황제의 눈이 여기저기 존재했다.
궁금하겠지.
내가 왜 지크프리트를 불렀는지.
‘실컷 궁금해 해라.’
지크프리트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히 황제의 말만 따르는 체스말이 되기 싫어서였다.
모리스의 빌어먹을 성격 때문이다.
다른 이의 밑에서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하는 이 성격.
그 상대가 설사 황제라도 말이다.
‘애초에 나도 황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
내가 소설에서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따로 있거든.
똑똑.
“들어오라.”
“장관님, 부르셨습니까?”
문을 열고 푸른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가 들어왔다.
한 때 「악에서 찾는 해피엔딩」, 악해피의 서브 남주였던.
지금은 이뤄지지 못할 사랑에 절망하고 자신의 성별을 바꾼 등장인물.
과거엔 이미르라 불렸던 대 상인.
현재는 에밀리가 된 여자였다.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