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4화 (4/174)

〈 4화 〉 3화. 모리스 드미트리

* * *

<3/>

오랜만에 불편한 아침을 맞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저택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세리아 때문.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걸어둔 마법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혹 그녀가 밖으로 도망칠까 경보까지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름 현실 파악은 할 줄 안다는 거지.

신분 처형을 당한 세리아였다.

지크프리트가 그녀를 버리지 않을 거라 바락바락 외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고 있을 거다.

지금 그녀에게 밖은 말 그대로 지옥이라는 걸.

“옷이 어울리는군. 마음에 드는가?”

나는 하녀복을 입은 세리아를 보며 물었다.

세리아는 입술을 깨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첫 날보다는 다소 누그러들었지만, 여전했다.

꺾이지 않은 자존심.

“마음에 드나보군.”

처음엔 옷을 다 벗긴 채로 지내게 할 까 고민했다.

알몸으로 지내는 것보다 낡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것이 그녀에겐 더 큰 굴욕일 거다.

그녀의 신분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으니.

늘 그녀의 몸을 치장하던 악세사리는 없고, 그 자리엔 푸른 마나석이 박힌 초커가 대신했다.

초커가 달린 목이 새빨갰다.

밤새 저걸 떼어 내려고 고생한 흔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소용없을 거다.

내가 직접 풀어주지 않는 이상, 저 초커는 벗길 수 없을 테니.

“아침은 어떻게 됐지?”

나는 분명 어제 자기 전에 그녀에게 아침을 만들라 주문했다.

그러나 식탁에는 아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세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아.”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이전 신분에 대한 미련이 남은 건가? 아니면 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건가?”

“나는 지크프리트야. 제국의 긍지 높은 공작 가문 지크프리트의 장녀, 세리아 지크프리트! 내가 너를 위해 음식을 차리라고? 말도 안 돼!”

세리아가 눈을 치켜떴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나.’

이래서는 곤란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어제 말했을 텐데. 세리아 지크프리트는 죽었다고.”

자존심이 강한 그녀였다.

원작에서도 그런 성격 때문에 몇 번이고 문제를 일으켰다.

이젠 원작이 끝난 시간대.

저 성격부터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꺄아악!”

내 마나에 반응해 초커에 달린 마나석이 빛났다.

흐르는 전류에 세리아가 몸을 떨었다.

“그, 그만 해!”

옅은 전류가 그녀의 몸을 자극했다.

그녀의 몸을 자극하는 전류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전신의 신경구조를 자극하는 전류.

베테랑 전사도 눈물이 줄줄 새게 만들 수 있는 고문이었다.

세리아가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은 아니었다.

저 마력이 통할 때만큼은, 그녀의 몸은 그녀의 것이 아니게 된다.

세리아가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외쳤다.

“제, 제발 그만!”

그러나 나는 전류를 멈추지 않았다.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전기에 고통을 받았을까.

“미, 미안해요. 그러니 제발 그만!”

몸부림치던 그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부족해. 더 진심을 담아야지.”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나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 알겠나?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널 지켜줄 사람이 없다. 빨리 깨닫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더욱 고통스러울 테니까.

나는 마지막 말을 삼켰다.

“아침을 먹고 싶군.”

“…….”

“한 번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릴 건가?”

내가 손을 들자, 세리아가 흠칫 떨었다.

주저하던 그녀는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의 정점을 찍은 뒤부터는 아침을 따로 챙겨먹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아침을 주문한 건, 그녀의 신분을 자각시키기 위해서였다.

귀족 아가씨가 아닌, 물건이라는 걸 자각시켜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 그녀에게 쏟을 시간을 아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를 감상했다.

허둥거리는 듯,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스스로 씻는 것도 못 하는 여자였다.

아침은, 당연히 못할 거다.

그러나 모든 건 필요한 절차였다.

쨍그랑!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꺄악!”

비명도 들렸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내가 부엌에 들어간 건.

화르륵!

부엌에서 심상찮은 연기가 새어나올 때였다.

“하아.”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주방은 엉망이었다.

식재료들이 여기저기 엎어져 있었고, 그릇도 사방에 깨져 있었다.

후라이팬에서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생각한 것보다 심하군.’

나는 수식을 펼쳐 물을 장막을 펼쳤다.

공기 중의 산소를 차단하자, 뜨겁게 타오르던 불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치이익!

불이 꺼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놀라 자빠진 세리아를 보았다.

세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얼굴부터 닦아라.”

나는 세리아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나는 손을 휘둘러 깨진 그릇과 엉망이 된 식재료를 치웠다.

“다시 준비해라.”

“예?”

“아침을 준비하라고 했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빨리 해주길 바란다. 하녀 때문에 지각하기는 싫으니까.”

세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비척거리며 다시 후라이팬 앞에 섰다.

치이익!

한참이 지나서, 반쯤 타버린 계란 후라이가 아침으로 나왔다.

용케도 지각은 면했다.

* * *

마탑.

제국의 모든 마법의 정수가 담긴 지식의 보고이자, 제국 마법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제국의 마법부를 비롯해서 마법에 관련된 중요한 단체는 전부 마탑에 존재했다.

제국 마탑은 모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도 있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마탑에 달린 저 수많은 포탈을 보라.

포탈 하나면 세상 구석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장관님 오셨습니까?”

“그래.”

나는 수많은 마법사들과 직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최연소 신임 마법부 장관이 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그럼에도 90도로 인사하는 마법사들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존경을 담아.

누군가는 시기 질투를 담아 인사를 건넸다.

차관일 때랑은 대접이 천지 차이였다.

‘하긴.’

제국에서 모리스의 명성은 높았지만, 그 이유가 좋지만은 않았다.

제국 최고의 전투 마법사.

그리고.

제국 최악의 고문 마법사.

그게 바로 모리스 드미트리에게 붙는 수식어였다.

차관 때야 나를 견제하는 장관이 있었으나, 내가 장관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시선이 더 강렬하군.

‘암살자라도 보낸 건가?’

고개를 숙이는 이들 중에서 내 존재를 껄끄러워 하는 이들이 반이었다.

마법부 내에서도 엄연히 파벌이 존재했으니.

현 황제를 따르는 젊은 마법사들로 이뤄진 황제파.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마법사들로 이뤄진 마탑파.

따지고 보면 나는 황제파에 가깝겠지.

나를 노리는 적이 없을 리가 없었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오, 장관님!”

“새드릭인가?”

새드틱 볼파르트.

내가 마법부 장관으로 승진하면서 새로 마법부 차관이 된 마법사였다.

장기가 불 마법이었던가.

원래는 평마법사였던 걸로 알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케이스로 황제파에 편들면서 전공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간 마법사였다.

황제파 중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강경파 인물이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인간이지.’

황제가 법이고 신이라고 생각하는 광신도 중에 하나였다.

“여전히 차갑네요. 장관님 일은 괜찮으십니까?”

“다를 거 없다. 차관 때 다 하던 일이니.”

“대단하네요. 전 아직도 적응을 못하겠던데.”

“전투가 마법의 전부가 아니니까.”

“하하, 전 실전파라서. 차라리 차관을 달지 말걸 그랬습니다.”

새드릭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시끄러운 녀석이다.

옆에 있으면 괜히 더 귀찮아지는 스타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참, 어젯밤은 어떠셨습니까?”

“뭐가 말이지?”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선물 있잖습니까? 그 지크프리트의…….”

아.

그거 때문인가.

오늘 마탑에 들어오자마자 짙게 느껴지던 시선이 말이다.

“전 장관님이 부럽습니다. 황제 폐하의 선물로 전 약혼녀인 세리아 지크프리트를 하사받다니.”

“새드릭.”

“예?”

“세리아 지크프리트는 죽었다.”

“아차, 제가 실수를 했군요.”

새드릭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렸다.

“이놈의 입이 문제입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항상 입을 조심하라고 하셨지요.”

“새드릭.”

“예?”

“시끄럽다.”

“아, 죄송함다.”

띠링!

마법부 차관실이 존재하는 72층에 도착할 때까지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수고하십쇼.”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놈의 뒷모습을 보았다.

‘위험한 놈이야.’

다른 의미로 마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놈 중에 하나였다.

3년간 마탑과 마법부에서 살아남은 경험으로는, 저런 놈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하다.

어디 하나 나사 빠진 놈들 말이다.

띠링!

마법부 장관의 사무실인 89층에 도착했다.

89층 전부가 장관의 사무실이었다.

“오셨습니까?”

미리 출근해 있던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밤에 별 일은 없었나?”

“예, 동부 엘프 숲에서 화재가 일어난 것과 북쪽 숲에서 드래곤이 난동을 부린 것, 도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황제폐하의 대관식 이후에 술렁이는 국경을 침공하려는 남부 야만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찮은 거 말고는 별 일 없습니다.”

“별 일 없군.”

연례행사처럼 있는 일들이 전부였다.

보고를 받고 출동해도 대단찮은 일이 대다수였다.

나는 비서를 내려다보았다.

전전대 마법부 장관 때부터 장관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는 메리 제인이었다.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미녀였다.

원작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캐릭터였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예?”

“평마법사들도 그렇고 새드릭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모두 나를 보면 묘한 웃음부터 짓는군.”

“아, 들켰나요?”

제인이 베시시 웃었다.

“빨리 말해라. 현기증 나려고 그러니까.”

“지금 장관님을 볼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세리아 때문이죠.”

“자네도 궁금한가?”

“뭐, 제국의 가장 아름다운 미녀를 하사받은 남자가 간밤에 그녀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제인이 귀를 쫑긋 세웠다.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는군.”

“장관님도 저였다면 궁금해 했을 걸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정말요? 미녀를 덮치는 야수는 없었나요? 강제로 겁탈하라며 명령을 내리지도 않으셨어요?”

“안 했다.”

할 생각도 없고 취미도 없었다.

그녀는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조금 더 자극적인 소식을 원하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간밤에 그녀가 교성을 지르는 일도 없었던 건가요?”

지르긴 했다.

목욕을 하다 내지른 교성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셨군요?”

제인의 녹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녀의 눈은 사람의 말에 깃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었다.

“난 말하지 않았네.”

“방금 침묵은 거의 긍정이었죠!”

“하아,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네만?”

“그건 장관님이 금방 처리하실 수 있잖아요.”

“제인, 난 능력 없는 비서를 두고 싶지 않아. 게으른 비서는 더더욱 싫고. 탑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업무부터 시작하게.”

완고한 거절에 입술을 비죽 내밀며 물러섰다.

“오늘 신경 써야 할 스케줄은 뭐가 있지?”

“하나 있습니다.”

“뭔가?”

“황제 폐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호출?”

“예.”

황제가 먼저 마법부 장관을 호출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서면으로 보고를 받거나 수정구를 통한 화상회의가 보통이었다.

아니면 장관이 보고를 위해 황궁을 찾아가거나.

‘뻔하군.’

오늘 받았던 수많은 시선들.

세리아에 대한 이야기 때문일 거다.

* *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