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1화. 세리아 지크프리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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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남녀의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최유준, 아니 모리스.
3년간 마법부 차관으로 개고생 하다가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구나.
“모리스 드미트리 차관.”
남주이자 이 제국의 황제인 류클리드가 나를 불렀다.
“예, 폐하.”
“그대는 나를 도와 이 제국을 지키는 것에 힘썼으니, 그대를 마법부 장관으로 임명하겠네.”
“예?”
갑작스러운 선언에 나는 황제를 올려다봤다.
금발에 청안을 가진 수려한 외모의 황제는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어차피 돌아가는 마당에 이게 뭔가 싶다가도.
“감사히 받겠나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고생해주게. 장관.”
내가 돌아가면 모리스는 좋아하겠군.
장관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던 놈이었으니.
모리스는 원래라면 작품의 중간에 죽었어야 할 놈이었다.
장관이 되고 싶어 악역 영애에게 붙어 그녀의 계획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왔으니 말이다.
‘죽을 수는 없어서.’
그 짓을 포기했다.
그 덕에 현생에 돌아가기 전에 선물까지 안기고 갈 수 있었다.
‘돌아가기 조금 아깝긴 하네.’
마법사라는 거, 참 편했는데.
그나저나.
언제 돌아가는 거지?
* * *
결혼식이 끝나도,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도 나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뭔데?”
진짜 못 돌아가는 거 아니야?
이러면 조금 많이 곤란한데.
그때였다.
“장관님.”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황실 기사단입니다.”
“열려있네.”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목례를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오늘 처형당한 죄수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오늘 처형당한 죄수라.
한 명 있지.
세리아 지크프리트.
‘악해피’의 악역 영애이자, 여주와 남주를 끝까지 괴롭히던 지크프리트 공작가의 영애였다.
그녀의 죽음은 곧 이 소설의 마지막을 뜻했다.
아, 못 간 이유가 그 때문이었지.
“지크프리트 영애가 처형당하는 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지?”
책잡히지 않기 위해 그녀와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황실 기사가 찾아와서 할 얘기라는 것이 대체?
“말보다 보여드리는 게 빠르겠군요.”
그러고 보니, 기사의 손에 쇠사슬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손에 힘을 주자.
절그럭.
쇠사슬이 튕기며 문 너머에 서 있던 사람이 들어왔다.
저벅저벅.
알몸의 여자가 쇠사슬에 목과 팔이 묶인 채로 걸어 들어왔다.
“음?”
그 모습을 본 내 눈가가 찌푸려졌다.
저 여자가 왜?
“오늘 처형된 세리아입니다.”
“그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신분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지크프리트 가의 사람도, 귀족도 아닙니다. 사람도 아니라고 해야겠군요.”
제국에서 처형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말 그대로 목숨을 앗는 것과.
사회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
전자는 일반적인 처형.
후자는?
조금 특별했다.
인간이었을 때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빼앗기고 황제가 지정한 이의 물건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신분 처형이었다.
“설마 나보고?”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마법부 장관이신, 드미트리 님을 지목하셨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원작에서 세리아는 처형대에서 목이 떨어지는 결말을 맞이했다.
그녀가 죽고 모든 것이 끝났어야 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결말이 뒤틀렸다.
최대한 원작과 비틀리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내가 악역 영애와 만나지 않는다.
그거 하나만 빼곤 말이다.
‘설마 그거 때문인가?’
만약 여기서 내가 그녀를 죽인다면?
나는 쇠사슬에 구속된 채 서 있는 세리아를 보았다.
허리까지 오는 백금발은 이전의 빛을 잃은 채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는 여전했다.
나는 알몸의 세리아를 찬찬히 훑었다.
잔털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 부드러운 어깨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크네.’
분홍색 유두에서 시선을 내리니 사타구니에 보이는 자그마한 균열.
그녀가 태어났을 태고적 모습이 선명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만큼 매혹적인 몸매였다.
잡힌 뒤에 고문을 받았던 것인지, 고운 피부 곳곳에 붉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아까워.’
이대로 죽이기엔 정말 아까운 인재였다.
나는 그녀를 죽이려는 생각을 접었다.
‘여기서 죽인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이미 한 번 뒤틀린 결말.
여기서 그녀의 목을 날린다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걸 보장하지 않는다.
젠장.
“앞으로 이년을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나를 보는 기사의 눈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한 때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불렸던 세리아였다.
아무도 딸 수 없는 얼음 절벽의 결정.
류클리드가 내게 이 여자를 보낸 건 내 공을 기리는 선물이었을 거다.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차라리 돈으로 주지.
“나가 보게.”
“알겠습니다.”
축객령으로 기사를 쫓아낸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나 세리아는 자리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노려보고 있을 뿐.
“죽여 버릴 거야.”
“나를 말인가?”
“너를 포함해서 황제, 그리고 내 모든 걸 다 뺏어간 그년까지.”
빠드득!
세리아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이크.’
급히 침묵 마법을 두르지 않았으면 귀찮아질 뻔 했다.
“그 요망한 년과 붙어먹은 마법사 놈!”
세리아가 내게 달려들었다.
만약 이 소설에 들어온지 며칠 안 됐던 나라면 허둥댔을 거다.
그러나 여기 들어온 지 3년이나 지났고.
마법부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전투를 치뤘다.
제국 내전에서는 선봉에 서면서 수없이 많은 적들을 죽였다.
그럼에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 얘길 왜 하냐고?
독이 잔뜩 올랐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그녀에게 할 짓은 일종의 화풀이었다.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어?”
마나가 휘몰아쳐 세리아를 감쌌다.
내게 덤비던 세리아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꺄악!”
“내가 싸우는 모습을 분명 봤을 텐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설마 전장에 나오지도 않았던 건가?”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이 쓰레기 같은 놈!”
그녀가 부들거리며 몸을 떨었다.
“제국의 누구도 손 댈 수 없는 고고한 꽃, 아직도 네가 지크프리트라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풋.
아,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아주 재밌는 농담이었어.”
“뭐?”
“네가 신분처형을 당한 건, 네 아버지가 널 버렸다는 뜻이다. 지크프리트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알고 있었으리라.
제국의 법에 대해선 빠삭하게 꿰고 있는 그녀였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부정했던 것일 뿐.
“지금 너는 내가 황제 폐하께 하사받은 물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내가 너를 가지고 어떤 시험을 하던, 너를 부랑자들에게 던지던.”
잠시 말을 멈춘 나는 그녀에게 한 발 더 다가갔다.
“설사 이렇게 너를 희롱해도.”
나는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읏.”
“너는 반항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녀는 내 손가락을 피하기 위해서 버둥거려보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니 허튼 저항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마법으로 그녀를 옥죄고 있던 쇠사슬을 풀었다.
그러고는 목에 푸른 마나석이 박힌 초커를 감았다.
“이제 그 초커가 너의 신분을 증명할 거다.”
“…….”
쇠사슬에서 해방됐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정신을 못 차리고 다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따악!
“흐으읏!”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몸을 떨었다.
“무, 무슨 짓을!”
“내 신호에 따라 전기충격을 가하는 마법이 담긴 구속구다.”
“이 개자식!”
딱!
“꺄아악!”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아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옅은 전류에 세리아가 움찔거렸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골렘으로 만들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앞으론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