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27)

몸이 붕 뜨는 듯 가벼워졌다.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가 푹신한 구름 같았고, 서로의 몸은 뼈가 없는 것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포근했다.

어디에선가 향기가 퍼져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향기를 쫓아 구름을 타고 둘은 날아갔다. 거칠 것이 없고, 가로막는 것이 없는 무한의 공간

이 이어졌다.

"..........."

"........."

지혜와 민수는 서로의 몸을 비볐다. 몸의 구석구석을 몸으로 확인하고, 피부로 보았다. 눈은 머리에도 달렸고, 손끝에도 달렸으며, 발에도 달렸다.

"이 곳이에요... 이 곳......"

"그래... 그래....."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보이는 곳은 같았다.

열기는 모든 것을 태울 듯이 둘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열기로 인해 흘러나온 땀은 윤활유가 되어 서로의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매끄럽게 마찰시켜주었다.

--쩝.....쩍......찍....--

피스톤 운동을 할 때와는 다른 소리가 서로의 성기가 맞닿은 곳에서 흘렀다. 허리를 돌리는 듯 빼내고, 다시 집어넣고......

"으으음.........."

"하아........."

둔탁한 동물적 신음이 아니라, 이제 둘의 신음소리는 감미로운 선율을 탔다.

[계속......이대로.........]

뜻 모를 간절한 기원.

지혜는 무엇인가를, 누구에게 인지도 모르는 대상에게 빌었다. 이대로 좋았다. 이대로 아들과 하나가 되길 갈망했다.

설령 되지 못한다면, 아들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아니 아들의 다른 어떤 것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으음.......후.........헙........아..........."

"허억..........윽........"

호흡은 가빠오고, 지혜와 민수의 행위는 점차 힘이 들어갔다. 계속된 서로의 마찰 부위에서 통증인지, 쾌감인지 모를 느낌이 몰려오고, 서로의 성기에서는 절정이 임박했음을 알려왔다.

"나......하아......하아.... 어떻게 해......."

아쉬운 듯 지혜가 간절하게 말했다.

절정이 몰려오고 있었다.

무한 공간의 입구가 보이고, 그 곳에 천계(天界)가 있다.

그 곳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

"나......나..........아윽...................."

"엄마..................."

몸이 경직되었다.

끌어 모았던 기(氣)를 한꺼번에 방출하듯 민수는 자신의 정액을 엄마의 몸 속 깊숙이 힘껏 쏟아 부었다. 너무나 힘찬 분출에 밀려나지 않으려는 듯 민수는 엄마의 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자신의 몸 속을 치고 들어오는 아들의 정액. 그래서 일까? 지혜의 몸 속이 떨렸다. 그리고 그 것은 몸의 울림으로 번졌다.

[괜찮아... 계속... 어서 들어오렴.......]

절정의 기쁨.

절정의 환희.

무엇 때문에 그리 기쁘고, 즐거울까? 서로의 성기를 집어넣고, 받아들여서? 아니면 마찰로 인해 근육이 성을 내어서? 그 것도 아님 그로 인한 결과물이 존재하기에?

"하....하............하........"

절정의 폭풍이 지나가고 민수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런 민의 아래에서 지혜도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민수의 몸에 눌려 그녀의 호흡은 힘들어 보였다.

언제가... 민수는 이 자세로 잠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이렇게 엄마의 몸 위에 누워 성기를 빼지 않고 나른한 피로를 느끼며 곤한 잠을 잤었다.

".........."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냘픈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을 하는 엄마에게 죄송스러웠다.

민수는 슬며시 몸을 일으키며 옆으로 누우려했다.

"아니....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

"............"

민수는 행동을 중지했다. 그러나 체중을 엄마에게 실을 수는 없기에 팔꿈치로 체중을 지탱하였다.

"왜... 그래.....?"

여전히 눈을 감은 체 지혜가 말했다.

"..........?"

"아까 그대로......"

"그럼 엄마 힘들잖아요...."

"괜찮아......"

지혜는 아들의 몸을 당겼다. 민수는 엄마가 당기는 대로 몸을 맡기면서 다시 몸을 밀착시켰다.

"음.........."

아들의 체중이 실려오자 지혜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도 안다.

이대로 잠이 들면, 예전 그 때처럼 아들의 성기를 자신의 몸에서 빼내기 힘들 것이란 것을.. 그러나 잠시라도 이대로 있고 싶었다.

자신을 누르고 있는 아들의 몸 아래에서 조금 더 그 아들이 준 절정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아직도 계속되는 자신 몸 속의 떨림... 적어도 그 떨림이 사라질 때까지 만이라도 이대로 아들의 몸에 안겨있고 싶었다.

여성의 절정과 여운은 남자보다 길었다.

흔히 여성의 몸은 가마솥에 비유하고, 남자의 몸은 양철냄비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 비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평범한 진리.

시각적 자극만으로도 남자의 본능은 발현하며, 그 본능에 사로잡혀 일사천리로 본능의 끝을 찾아간다. 그러기에 남자들이 성의 본능 끝이 허무하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

그에 비하여 여성은 몸과 마음, 사고가 일치되었을 때 비로써 본능이 발현하며, 그 본능은 몸과 마음, 사고라는 삼각형의 세 개의 꼭지점이 마모되어 삼각형이 둥근 원이 될 때까지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고, 그렇게 되었을 적에 본능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끝에 도착하더라도 가속도가 붙은 원이기에 한참을 더 굴러간다.

지혜의 호흡은 점차로 고르게 되었다.

민수는 그런 엄마의 호흡에 역으로 맞추어 그녀가 호흡하는데 조금이라도 쉽게 하도록 했다.

"풋~~~ 힘드니...?"

지혜는 아들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그렇게 말했다. 민수는 엄마에게 몸을 밀착시키기는 했으나 자신의 체중이 과하게 실리지 않게 하려고, 다리와 팔에 적정히 힘을 분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사로 인해 체력이 상당히 소모된 상태에서 그런 자세로 오래 동안 있기에는 힘들었다.

"..........."

"그렇게 있지 않아도 되는데....... 이제 내려와도 돼...."

지혜는 아들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예......."

민수는 엄마의 음부에서 자신의 성기를 빼내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몸을 쭉 폈다.

"힘들었나 보구나......."

지혜도 조금 불편했던 다리를 바로 하며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외려 엄마가 힘들지 않았나 걱정인데요...."

"나는 괜찮아....."

지혜는 아들의 얼굴에 맺혀있는 땀을 가볍게 훔쳐내었다.

"아..... 이대로 자고 싶어....."

"그럼 이대로 자렴......"

"하하... 씻어야 하죠..."

가볍게 웃으며 민수가 말했다.

"괜찮아.... 내일 이불을 세탁하지 뭐......"

"그래도...."

"그럼 가만히 있어봐... 내가 수건으로 닦아줄게......"

지혜는 몸을 일으켰다. 머리맡에 놓여있는 수건을 집어 한 장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 다른 것은 다른 손에 들었다.

"아... 아니 괜찮아요."

민수도 황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감추었다.

".................?"

"괜찮아요......"

"풋~~~~"

"왜 그러세요...?"

"너.......무엇 때문에 감추는 거니?"

지혜는 아들의 하복부에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그거야............"

"부끄러운가 보구나.....?"

"........."

"그러면서 엄마 것은 보려고 해.....?"

엄마의 말에 민수는 쑥스러운 미소를 띠며 한 손으로 뒷목을 긁었다.

"네가 할래.........?"

"예........"

"그래... 하지만... 나 저 번에 이미 네 것을 보았어.. 우연이었지만..."

".........?"

"그러니까.. 언제지... 음... 너와 내가 두 번째로 관계를 가졌을 때 같네..."

"이런........."

민수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지혜는 재미있다는 듯 소리 없이 웃었다.

"저.. 그럼... 엄마와 저 서로 몸을 닦아주기로 해요..."

".........?"

"예......?"

"싫어...."

지혜는 눈을 가볍게 흘기고는 수건으로 자신의 가슴을 힘주어 가리고 이불을 당겨 자신의 하체마저 가렸다.

"불공평해...!!"

엄마의 그런 행동을 보며 민수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뭐가 불공평하니...? 너 몇 번이나 내 것을 만졌잖아... 어디 손뿐이었니? 입으로도 했지 않니......"

"그래도 그림자 때문에 어두워서 보지는 못했어요."

"그 때도 이 정도 어두웠어.."

"남자랑 여자랑 같아요...? 남자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신체상의 차이잖니.......후후...."

지혜는 아들을 놀리고 있었다.

"하....하......"

민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정말 어이가 없을까? 그 것은 아니었다. 비록 어리지만 어렴풋하게 나마 남녀관계가 주고받는 관계는 아니란 것은 안다.

"그럼 저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

"오늘... 아무 것도 입지 말고 그대로 자요..."

"입지 않고.....?"

"예... 저도 그 우연이란 기회를 잡아야겠어요."

"뭐라고...? 호호호호.........."

아들의 말에 지혜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래... 그러자.. 하지만, 쉽지 않을 텐데.... 네 말대로 남자와 여자는 신체상의 차이가 있 으니 말이야..."

"예........?"

"아마.. 네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면, 내가 잠에서 깨어날 거야.."

"하하... 그 것은 걱정 말아요. 처음에도 성공했는데요 뭐....."

"처음........?"

"예.. 엄마와 제가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을 때 말이에요. 그때 엄마는 한 참이나 지나서 잠에서 깨잖아요."

"음... 그래.. 그랬어....."

지혜는 그때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그런 엄마를 보며 민수는 다소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그 때는 내가 무척이나 피곤한 날이었었어.. 근 일주일이나 몸을 혹사한 마지막 날이었거든..."

"..........?"

"어떻게 하지? 나 오늘은 그 정도로 피곤하지 않은데... 더구나 내 잠귀는 밝고 말이야.."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 우리 벗고 자요..."

민수는 다소 기운이 빠졌으나,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의 음부를 본다는 희망.

그러나 그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예전 엄마와 나체로 함께 잠을 자기는 했으나, 그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니 자신이 나체였다는 기억밖에 없었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 잠을 잔다는 것.

민수의 기억 속에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 엄마와 함께 그렇게 잠을 잔다는 것은 묘한 흥분을 주었다. 민수는 가볍게 성기를 닦고 자리에 누웠다.

"잠시 돌아누워..."

지혜가 말했다.

"예........"

아들이 돌아눕는 것을 보고서야 지혜는 수건으로 자신의 음부를 닦았다. 잠시 동안 앉아있어서 인지 상당한 양의 자신의 음액(陰液)과 아들의 정액은 자신의 엉덩이 아래에 있었던 속옷과 이부자리에 떨어져 그 것들을 축축하게 적신 뒤였다.

지혜는 자신의 음부를 가볍게 닦아낸 후, 자신의 엉덩이 아래에 깔려있는 자신의 속옷을 꺼내어 수건 속에 넣고 개었다. 그리고 가볍게 이부자리를 훔치고서 한 번 더 수건을 갠 후 옆으로 밀어 놓았다.

"다 되었어요...?"

엄마가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와 눕는 것을 느끼며 민수는 돌아누웠다.

"그래...."

"그럼 기대하고 주무세요......."

"풋~~ 그렇게 보고싶니..?"

"예... 꼭 볼 거예요.."

".........."

지혜는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기며 눈을 감았다. 다시금 나른한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막 성의 절정을 느끼고 났을 때의 충족감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성의 욕망이 반복되는 것은 그래서 일까?

행복과 불행이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 일까?

그 어느 것도 영원히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이기에.......

"나.. 안아 줄래...?"

나직하게 지혜가 말했다.

"........."

바로 누워있던 민수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다가 몸을 세우고, 그녀를 끌어 당겼다.

--스슥....--

이불이 바스락 그리며, 지혜는 아들의 품속으로 달리 듯 들어가 안겼다.

포근함.

반대로 자신이 아들을 안아 주어야 할 것이건만, 지금 그녀는 아들의 품속에 안겨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들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그 소리는 언젠가... 아주 어릴 적 그녀가 그녀의 엄마 품에 안겨서 잘 때 들었던 그 소리와 같았다.

12시 20분..........

동식의 숨이 고르고, 편안해 졌다.

".........."

보경은 동식의 이불을 조용히 손보고서, 전등을 끄고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 나왔다.

시간이 늦었다.

동식에게 밥을 먹이고 나서 집에 간다는 것이 이렇게 시간을 흘러가게 할 줄은 몰랐다. 보경은 거실에 놓여있는 핸드백과 외투를 집어들고서 동식의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

비가 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던 하늘에 달이 떠있었다.

보름달이었다.

달빛에 보여지는 하늘을 아주 맑았다. 간간이 조각 구름 몇 점이 있기는 했으나, 그 것은 밤의 정취를 한껏 돋구는 장식품이었다.

"오늘이 보름이구나......."

아침에 딸인 주영이 '경칩이 뭐야?'라며 물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보경은 미소를 지었다. 경칩이란 것을 설명을 해주면서도 오늘이 보름이란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었다.

"............!!"

보경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이런 정신하고는........"

무엇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비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동식의 집에서 우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낯에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동식의 집에 우산 없이 외투만을 가지고 갔던 그녀였다.

비가 그쳤으니 다행.

그치지 않았더라면, 다시 동식의 집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밤이 깊었는데도 거리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사람이 많은 도시. 직업이 다양하기에 그런 것일까?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 도시...... 예전에는 도시가 미처 그런 곳이란 것을 보경은 몰랐었다. 그저 집에서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다소 간의 짜증을 남편과 자녀들에게 풀어내며 편안히 생활하였었다.

[편안했었지..............]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밤 공기는 차가웠다. 더구나 비가 내린 밤 공기였다. 한기가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남편의 그늘......]

보경은 언젠가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남편의 그늘이 그리워...'라며 말하던 친구. 똑똑한 커리어 우먼으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친구의 말을 당시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너무나 활기차게 살아가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왠지 괜한 분위기에 빠져 하는 그냥 그런 말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안다. 남편의 그늘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말이다.

아침에 홀로 일어날 때,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받아줄 때, 집안의 자잘한 일거리가 이전 보다 더 많다는 것을 느낄 때, 각종의 행정 구비서류를 들고 이리저리 찾아다닐 때, 텅 빈방에 홀로 있을 때..............

정말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후................."

보경은 긴 숨을 내 쉬었다.

남편이 남기고 간, 그 많은 그늘들... 비록 동식이란 존재가 정신적인 위안이 되고, 육체적 욕망을 해소시켜 준다고는 해도 남편의 그늘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잊을 수 없겠지.....]

남편이 남기고 간 가장 큰 그늘....

그 것은 남편에 대한 그녀의 그리움이었다. 부모님 보다 더 강하게 각인 되어 있는 남편의 마음. 자신을 보면 언제나 웃어주고, 드라마를 보고 괜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등을 두드려주던 남편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그의 마음....

택시의 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에는 조금 전 동식의 아파트 단지에서 보았던 사람의 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다.

더러는 빈손으로...

더러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연인처럼 보이는 이들은 서로의 몸을 한껏 밀착시키고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흐이그.... 요즘 기집애들은 도무지..... 저런 것들을 낳고 그래도 지 부모들은 좋아했겠 지.."

갑작스레 택시기사가 혀를 차며 말했다. 50대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한 아가씨를 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머리는 빨갛게 염색을 하고, 속옷인지 겉옷인지 모를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의 짧은 옷을 입고서 걸어가고 있었다.

"하긴.... 부모가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았으니까 저렇겠지... 아무튼 우리 나라는 가정교육 이 문제라니까.... 문제...... "

혼자서 문답하듯 중얼거렸다.

"손님은 어떻게 생각하슈.......?"

불현듯 기사가 보경에게 질문했다.

"예........? 무슨............"

"아.. 아까 그 아가씨 못 봤수...?"

"예에... 뭐.. 그냥... 조금만 참하게 옷을 입었으면.........."

"허허... 아까 그 모습에서 참해봐야 얼마나 참해지겠수...? 그 모양으로 돌아다닐 정도면 이미 정신까지 썩었을 텐데....."

"................"

"댁처럼 그렇게 겉모습의 변화만 가지고는 안 된다니까... 그런 년들은 정신부터 개조해야 돼... 그래야만 된다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부모들부터 족쳐야 돼... 자식을 그따구로 기른 것에 대한 죄를 물어서 우선 옛날처럼 곤장 한 100대씩 때리고 난 다음에, 그 딸년 하고 부모를 잡아서 삼청교육대 같은 데다가 집어 처넣어야 된다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고치지 못해..."

스스로 신이 나서일까? 자신의 생각을 목에 핏대를 세우며 피력하는 운전기사는 어느새 보경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삼청교육대같은 곳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되죠......."

보경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허허.... 이 아줌마가... 세상 모르는 소리하고 있군... 삼청교육대가 왜 필요 없나? 세상에 미친년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놈들은 세상에 있어봐야.. 덕되는 게 하나도 없다니 까!!! 그저 그런 놈들하고, 아까 같은 미친년들은 모조리 잡아서 삼청교육대로 보내서 새 사람 만들던가, 아님 죽이던가 해야한다니까.."

"..........!!!!!!!!"

순간, 지혜는 주먹에 힘을 주며, 이를 악 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할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삼청 교육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보경의 첫 번째 남편은 그 곳으로 끌려갔었다. 그리고, 한 줌의 재가되어 돌아왔다. 어떻게 죽었는지, 왜 끌려갔는지 아무도 그녀에게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그런 그녀를 세상의 대부분은 조롱하였고, 나머지 일부분은 그녀의 슬픔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들 행동의 정당성으로 이용하였다. 그녀 남편의 사건이, 그녀의 슬픔이 대자보의 쓰여지고, 전단에 기록되어 뿌려졌다. 슬픔에 빠진 그녀를 사람들 앞에 세우고, 슬픔을 토로하라고 하였다.

개 같은 세상....

당시 그녀가 세상에 느낀 것은 그 것이 전부였다. 세상을 구원한다고 뛰어다닌 세월, 붉디붉은 글을 쓰며 다지던 투지, 배고픔을 참고 부르던 노래, 그런 그녀와 함께 하던 친구,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한 이들, 적으로 간주한 이들.... 그들이 살고있는 세상 자체에 환멸(還滅)아닌 환멸(幻滅)을 느꼈다.

잡아가려면 자신을 잡아가야 하지 않은가. 죽이려면 자신을 죽여야 하지 않은가? 가난한 고학생인 남편의 죄라면, 자신을 사랑한 죄 뿐이었다.

구도자는 끝없는 고통의 수행 뒤에 환멸(還滅)이라는 해탈을 한다 했던가? 그러나 고통 뒤에 보경에게 남은 것은 소름이 돋는 환멸(幻滅)이었다.

어느새 보경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 보경의 상태를 백미러를 통해 본 운전기사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무슨 못할 말을 했는가 하는 심리인지 운전기사의 입술은 심술궂게 닫혀 있었다.

"................"

잊었던 옛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보경은 아이들 아빠를 떠올렸다.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가 보여준 세상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 한 세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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