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해가 진 뒤였다.
7시...
시계는 그렇게 알리고 있었다. 낮잠치고는 상당히 오래 동안 잠을 잤다.
".........!!"
순간 뇌리에 교회와 수미가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오늘 수미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부모님과 어디로 간다고 하였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교회에 수미 때문에 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간절히 기도할 대상이 사라진 지금 그가 굳이 교회에 목을 멜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교회에서는 사탄이 아니던가.
--딸그락.....--
주방에서 작은 소리가 민수의 귀에 들리고, 음식의 향이 코를 찔렀다.
"으으음.............."
기지개를 길게 펴자 절로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개운한 기분이 전시에 쫙-하니 퍼져나갔다. 기분이 상쾌하였다.
일요일 오후에 느끼는 기분으로선 마치 처음인 듯하였다.
늘 이때쯤이면, 다음날 학교에 갈 생각에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
민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맛있는 향이 나네요..."
"어머.. 일어났니?"
민수의 말에 놀랐는지 지혜는 흠칫하였다.
"예.. 방금요...."
"응.... 깨우려다가 네가 너무 곤히 자기에... 그만 두었는데.........."
아들의 양해를 구하려는 듯 지혜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교회... 말이야......."
"아... 괜찮아요. 오늘 그렇지 않아도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 다행이다..."
지혜는 마음이 놓이는 듯 살짝 웃었다.
"잘 잤니?"
"그럼요... 모처럼 푹 잔 것 같아요."
민수는 팔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 아들을 지혜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저.. 씻고 올게요... 지금 너무 배고파요."
"그래.. 금방 준비 할 테니... 씻고 오너라....."
민수가 빙긋 웃으며 욕실로 향하는 것을 보고서 지혜는 준비하던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와... 맛있겠다..."
자리에 앉으며 민수가 말했다.
"그러니? 그럼 많이 먹어라......."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민수는 전에 없이 식사 인사를 하였다. 그런 아들을 보며 지혜는 웃기만 하였다. 얼마만에 보는 아들의 밝은 모습일까...
새삼 지혜는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와.. 이 계란 말이 정말 맛있네요.."
"많이 먹어..."
"예... 오늘 밤 힘이 넘치겠는데요... 하하......"
기분에 덜 떠서 일까? 민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는 말을 했다. 점심시간이나 어디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남성의 정력에 좋은 음식이 나올 때면 친구들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때는 그저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웃기만 하였는데, 오늘은 자신이 직접 그 말을 하였다.
"........."
지혜는 아들의 말에 조용히 시선을 보내었다. 사회 경험이 전무한 그녀... 방송을 본다지만 실제 인간 관계라고는 남편과 아들이 전부이기에 그런 흔한 농담도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앗......."
민수는 자신의 말실수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런 아들을 보며 지혜는 피식 웃었다.
"아냐... 괜찮아.."
"........"
"나... 사람들을 만나야 할까봐... 농담도 진담으로 듣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하하....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미소를 지으며 지혜가 말했다.
"근데.. 그거 100% 농담만은 아닌데...."
"응......?"
"........"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씩 웃고는 반찬을 집었다.
"그랬니.....?"
".........."
민수는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차분히 식사를 계속하였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렇게 행동했다.
이상하게 잡혀버린 분위기......
그 것을 지나치게 의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수저를 움직였으나, 음식이 목으로 매끄럽게 내려가지 않았다.
"기다릴게...."
말없이 식사를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지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
민수는 숨간 숨이 턱 막히는 듯 했다. 어쩌면 기다린 말이지만, 그 말을 직접 들을 때의 느낌은 상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런 느낌은 예전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니... 예전과 어찌 같을 수가 있을까?
욕망에만 사로잡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던 때와 어찌 지금을 비교하랴...
욕망에 눈이 어두워 자기 자신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엄마의 마음도 읽지 못하고, 아버지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던 그때와 지금이 어찌 같으냔 말이다.
"알았어요......."
한참 만에야 민수는 엄마의 말에 답을 했다. 그러나 그 말도 한참을 고민하여 한 말이었다. 무슨 말로 답을 해야할지 머리 속에서 굴리고, 굴려서 겨우 선택한 말이 '알았어요...'란 말이었다.
좀 더 근사한 말이 없을까?
고맙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몇 시에 갈까요? 라며 할까? 그 것도 아니면 엄마도 기다렸죠? 하며 말을 했어야 할까?
그러나 그런 수많은 생각 중에 그가 선택한 것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의 말인 '알았어요.'란 말이었다.
"계란 말이만 먹지 말고 다른 것도 먹어라..."
"예.....?"
"다른 것도 먹어야 건강하지....."
아들이 집은 계란을 보며 지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엄마의 말에 민수는 그때서야 자신이 계란 말이만 죽자 사자 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하....예....... 그런데.. 계란 말이가 정말 너무 맛있어요."
쑥스러운 듯 민수는 다른 한 손으로 뒷목을 매만졌다. 그런 아들을 보며 지혜는 미소를 머금으며 밥을 입에 넣었다.
그런 그녀...
아까부터 반찬도 먹지 않고 밥만 먹고 있었다.
"주영이니....? 엄마야....."
'엄마.. 어디야?'
전화기 저편에서 소녀의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주희랑 밥은 먹었니?"
'응... 조금 전에 먹었어... 엄마는...?'
"그래.. 엄마는 먹었어...엄마 걱정은 말고 동생 너희들이나 잘 지내..."
'응.. 알았어.. 근데.. 엄마 언제와?'
"응... 아무래도 좀 늦을 것 같아.. 그래서 전화한 거야.. 문단속 잘하고 있어..."
'응... 알았어.. 걱정마.. 근데.. 일찍 와.....'
"그래.... 일찍 갈 테니까 문단 속 잘하고..."
'응.......'
주희는 짧게 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12살이 된 주희. 9살이 된 주영... 보경은 그 딸들이 대견스러웠다. 아버지의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외려 충격에 잠시 흔들렸던 자신을 잡아주었던 딸들...
물론, 그 어린애들이 무슨 큰 위로를 했을까 마는...
자신의 곁에서 웃고, 조잘거리는 것만으로도 보경으로서는 큰 힘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남편을 잃은 충격을 쉽게 이길 수 있었다.
"........"
보경은 동식이 누워있는 방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그녀가 알고 있던 동식이 아닌 다른 사람이 누워있었다. 그녀가 아는 동식은 늘 자신감에 차 있고, 절도가 있는 지조가 꼿꼿한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동식의 모습은 변해갔다.
어딘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그는 힘이 없었다.
[그의 가족......?]
괜한 분노...
또 다시 그 괜한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건만, 그 일만 생각하면 보경은 화가 났다. 그리고 한없이 동식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믿었던 가족의 배신...
그가 목격한 자신의 아내와 아들의 근친상간의 현장은 단순한 성행위의 현장이 아닌, 철저하게 동식의 믿음과 사랑을 배신한 현장이었다. 동식의 동의를 얻지 않고, 그들이 성행위를 하였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동식의 사고에 대한 배려가 없었기에 그러하다고 보경은 생각하고 있었다.
동식에 대하여 그의 가족들이 조금만 배려하였다면....
"흐흡............"
보경은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가수가 요즘 인기 있는 가수이니?"
화면 속에서 현란한 춤을 선보이고 있는 여가수를 지목하며 지혜가 말했다. TV는 가수의 현란한 춤만큼이나 카메라 각도도 자유자재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것 같다고?"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횟수를 따지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거죠.."
별 관심이 없는 듯 민수가 말했다.
"너는 좋아하지 않는가 보지?"
그렇게 말하는 지혜의 눈에는 열광적으로 피켓과 손, 머리, 몸 할 것 없이 흔들어 대는 팬들의 보습이 보였다.
"글쎄요.. 그저 그래요... 그냥..."
"음....."
"왜..요? 저 가수가 마음에 들어요?"
"아니... 그냥... 환호성을 지르는 애들을 보니까 생각나서 말해 본 거야."
"하하... 참 격렬하죠... 저도 저 애들을 볼 때면 신기해요."
민수는 피식 웃었다.
"네 또래들 아니니?"
"그럴 걸요..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어떤 이질감이랄까...."
"왜.. 그런...."
"사람마다 틀린 거니까요. 방송에서는 신세대니, N세대니 하며 새대 별 문화와 정서를 말 하지만, 저는 솔직히 별로 공감하지 못해요."
"그렇긴 하지... 나도 가끔 방송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니까....."
".........?"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민수가 엄마를 처다보았다.
"저런 화려한 방송을 보내다가 이내 참혹한 영상을 보여줄 걸... 결식아동이니 빈곤층이니 하며 말이야..."
"..........."
"그런 문명의 이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문화와 정서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가지고 있겠죠..."
"그러니까... 방송에서 말해 주는 새대 별 문화, 우리 나라 정서에는 언제나 특정 부류들의 문화와 정서만을 보여주며, 그 것이 대표라고 해... 그 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 치 문맹인 것처럼 간주하고..."
자신의 생각..
지혜는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혼잣말도, 소설에 표현하는 간접적 생각도 아닌 사람에게 말이다. 수동적이기만 했던 그녀의 모습은 이제 과거의 모습이 되어버린 듯 했다.
"화려한 문명의 이기의 혜택을 어쩔 수 없이 받지 못하거나, 혹은 그 것을 싫어하는 사람 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문화와 정서가 있을 텐데.......방송에서 그들은 언제나 소외되지."
"맞아요... 소외만 되는 게 아니라, 언제나 동정을 받고, 타인들에게 도움만을 받아야할 사 람들 일 뿐이죠."
민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우린 비난을 절대적으로 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
갑작스런 화재 전환에 민수는 다소 놀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조심해야겠지...?"
"........."
"저 바보들은 외눈박이들이니까..."
지혜는 살짝 윙크를 하였다.
"외눈박이...? 하하........"
--후두둑....--
약하게 빗소리가 들렸다.
".......?"
창 밖을 내다본 민수의 시선에 빗방울이 보였다. 빛에 반사되는 것은 몇 개의 빗방울뿐이었지만, 분명 어둠에 가려진 수많은 빗방울이 있을 거란 것은 그 소리와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는가 봐요..."
"응.....?"
아들의 말과 시선에 지혜도 고개를 돌려 거실의 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도 약한 몇 가닥의 빗줄기가 보였다.
"정말..... 저녁이 될 무렵부터 날이 무겁더니....."
지혜는 조용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스륵..--
창에 힘을 주자 곧 창은 양옆으로 부드럽게 밀려났고, 비의 향기가 곧 실내로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지혜의 볼을 타고 흘러 민수에게로 달려갔다.
봄 비..
지혜에게 있어 그에 대한 이미지는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봄 비'하면 떠오르는 것은, 노란 띠가 둘러 쳐진 하늘색 장화에 아주 작은아이가 노란 비옷에 노란 우산을 쓰고서, 막 되살아나는 화단에서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는 모습이었다.
[그 비야.....]
조용히 내리는 비를 보며 지혜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기분이 좋은가 봐요?"
지혜 곁에 서면서 그녀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 민수가 말했다.
"빗소리가 듣기 좋아..."
"........."
민수는 엄마의 말에 밖을 내다보며 그 소리를 들으려 했다.
"좋지 않니?"
"좋아요......."
솨아아아------
마치, 비가 쌓이는 듯한 소리가 시끄러운 TV소리를 가르며 들렸다. 눈이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면, 비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TV를 끌까요?"
"그래....."
엄마가 짧게 답하자, 민수는 곧 TV로 다가가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이내 빗소리만 실내를 채우는 정적이 감돌았다.
[음악......?]
시끄럽다가 조용해 져서일까? 그는 음악 기기에 시선을 보냈다.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한 그 기기는 LP판을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전축..
동식은 그 것을 그렇게 불렀다. 필요에 의해서 구입한 것이었지만, 동식이 차를 구입한 이후로 전축에서는 더 이상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았었다.
"........."
엄마의 의사를 물어보려다 그만 두고, 민수는 비치되어 있는 LP판을 살폈다. 트롯트, 클레식, 흘러간 팝송... 음악적 지식도 없고, 음악에 관심이 없는 그였지만, 그 것들이 얼마나 촌스런 것인가 하는 것쯤은 직감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시대와 상관없는 것이 있다면, 명곡으로 불리는 클레식 음악 정도....
민수는 표지에 검은 복장을 하고서 지휘봉을 들고있는 것을 골라, 전축에 올려놓았다. TV에서 몇 번 보았을 뿐, 실제로 작동시켜 보는 것이 처음인 그였다. 전원을 넣자 마자 곧 음악이 실내에 퍼졌다.
"............"
음악 소리에 지혜가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내 시선을 밖으로 보내었다.
창의 한 편에 기대어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매력적이었다.
민수는 그런 엄마의 모습에 뒤에서 끌어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용히 다가가 허리에 팔을 두르며 엄마의 볼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향을 맡고 싶었다.
[그래도 될까...?]
민수는 망설여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몸과 마음을 개방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적 정서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그는 쉽사리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결심을 한 듯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서 엄마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엄마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자신의 몸을 엄마의 몸에 밀착시켰다.
"괜찮아요...?"
미처 키스하는 것을 빼먹은 민수는 엄마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런 그의 말이 지금 자신의 행동과 음악 선곡 중, 어느 것에 대한 것인지 그 자신도 명확하지 않았다.
".........!!"
지혜는 잠시 흠칫하였다. 그러다 이내 그녀는 아들의 몸에 등을 기대었다.
"그래....."
자신의 볼을 아들의 머리에 밀며 지혜는 짧게 답했다.
"..........."
민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엄마의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몸의 느낌이 민수의 몸에 전해져 왔다. 봄비의 향과 서늘한 기운 때문일까? 엄마와 맞닿은 부분의 따뜻함이 확연했다.
"무슨 음악이니....?"
침묵을 깨며 지혜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알 리가 없었다. 손가는 대로 선곡한 것이었고, 영어로 쓰여진 제목에 신경 쓰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듣기 좋구나..."
"........."
민수는 대답대신 엄마의 몸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지혜는 그런 아들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난... 이렇게 좀 더 있고 싶은데......."
"............?"
"급하니....?"
지혜는 자신의 엉덩이에 느껴지는 아들의 팽창된 성기를 느끼며 말했다. 그 말의 뜻을 민수는 약간의 생각을 한 후에야 알았다.
"아... 죄송해요.. 불편한가요?"
그렇게 말했지만, 민수는 여전히 엄마를 안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네가 힘들지나 않을까 해서...."
"그런 것 없어요."
민수는 더 몸을 밀착시켰다. 엉덩이를 뒤로 뺀다는 생각 같은 것은 억지로라도 하지 않았다. 민수 역시도 지금 이대로의 느낌이 좋았다.
"엄마의 향이 너무 좋아요..."
얼굴을 지혜의 목 부위에 묻으면서 민수가 말했다. 부드러운 살결이 안면 전체에 느껴지고, 여인 특유의 향이 전해져 왔다.
"간지러워....."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저는 너무 좋은 걸요.."
민수는 입술로 목의 살결을 물었다.
"호호... 그러지마...."
지혜는 몸을 움찔하였다.
목에 성감대가 있다고도 한다. 아니 여인의 몸 모든 부분이 성감대라고 한다. 하지만, 그 것은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니라, 여성이 분위기에 잡혀있을 때에나 그러한 것.
지금 지혜는 어떤 성적인 감흥을 느끼기에는 봄비의 감흥과 음악의 선율에 깊이 잠겨 있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엄마의 목에서 민수는 얼굴을 떼었다.
"풋....다행이다..."
아들이 자신의 목에서 떨어지자 지혜는 장난기가 섞인 음성으로 말하며 한 손으로 자신의 목에 대었다.
"그 말이 쥐약이네......"
지혜는 아들의 머리를 자신의 머리로 살짝 콕 찍었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
민수는 그제야 엄마의 말뜻을 헤아렸다.
"그럼 이 자세도 풀어야 겠네요..."
"응......?"
"그리고.... 저 번에 여기에서 치마를 걷어올린 사람이 누굴까...?"
".......!!"
지혜의 할 말을 잃었다.
보기 좋게 아들에게 한 방 먹은 그녀였다.
"내가.... 그랬나...? 기억에 없는데......."
지혜는 천연덕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하하... 정말 기억에 없어요......?"
"없어... 누가 그랬을까.. 망측스럽게...."
"흠... 그러게.... 그게 누구일까요..."
"모르지... 어떤 바보 같은 여자겠지...푸풋~~"
지혜는 몸을 뒤로 기대었다.
"그 여자.. 왜 그랬을까?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면 될 것을..........."
"자연스럽게.......?"
"그래.. 자연스럽게..."
지혜는 고개를 돌려 아들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가져갔다. 그런 엄마의 행동을 느낀 민수는 엄마의 몸을 감고있는 팔에 힘을 뺐다.
두 번째 키스.
작년 겨울 눈오는 날의 공원 이후로, 성행위로 관련이 없는 키스로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가 어떤 운명의 힘 같은 것에 의하여 강제로 이루어 진 것이라면, 지금의 두 번째는 봄에 새싹이 돋아야 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혀와 혀가 엉켰다가 풀리고, 다시 엉켰다.
유일하게 사람의 몸밖에 드러난 딱딱한 뼈와 뼈 사이를 혀가 유영하듯 자연스레 통과하였고, 그런 혀의 이동에 따라 서로의 타액이 각자의 입에 흘러들었다.
".........."
지혜는 눈을 감고 있었다.
소녀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황홀한 키스에 대한 갈망. 그 것이 이루어지는 이 순간에 어찌 눈을 뜨고 있으랴.
눈을 감은 이 순간 지혜는 소녀였다.
"..............."
그러나, 민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어느 재미있는 통계에서 밝힌 눈뜨고 키스하는 많은 수의 남자 중 한 명이 그였다.
그는 눈을 감고 키스할 수 없었다.
키스의 황홀함에 빠진 엄마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것이 그를 더욱 행복하게 하였다.
언제 보아도 고운 선을 가진 엄마. 그린 것 같은 눈썹, 너무나 길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기에 보조기구가 필요 없는 속눈썹, 그 어떤 미인의 코 보다 예쁘고, 아기보다 더 고운 뽀얀 살결을 가진 여자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키스를 끝낸 지혜와 민수의 입가는 서로의 타액이 약하게 묻어있었다.
"흘렸네...."
지혜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손으로 아들의 입 주위에 묻은 타액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입가를 닦았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
"어떤 것을.....?"
"응....?"
지혜의 반문에 민수는 슬쩍 시선을 밖으로 보내었다.
"훗..... 그것도 조심해야지..."
"비겁해요."
".........?"
"나 보고는 조심하고 하면서... 자신은 할 것 다하고..."
"푸풋~~~~~~!"
지혜는 곱게 웃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시간에 따라 다소 굵어지기도 하고, 조금 더 가늘어지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봄 가뭄을 이번에 해갈(解渴)시켜 주려는 듯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우리를 보기는 할까...?"
지혜가 나직하게 말했다.
어느새 지혜와 민수는 처음 그 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들킨다면요...."
"어떻게...?"
"혹... 우리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망원경으로 남의 집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우리를 발견 한다던가 해서......"
"망원경...........?"
"예.........."
"그런 경우도 있니..?"
지혜는 다소 놀란 듯한 음성이었다.
"취미 삼아 그렇게 남의 집을 훔쳐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
"........."
지혜의 몸은 다소 경직되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이제 그녀에게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꿈틀거렸다. 세상 속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다.
글도 쓰고, 명예도 얻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너무 걱정 말아요..."
".......?"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니까요."
민수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지혜의 봄비 감상의 흥은 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