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네 방에서 잠을 잘거니?"
소파에 앉은 지혜가 방으로 들어가려던 민수에게 말했다.
"........"
엄마의 말에 멈칫 했으나 민수는 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여자를 이렇게 오래 동안 방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게 아닐까?"
아들의 멈칫거리는 태도를 보며 고개를 돌리며 지혜가 말했다.
"제 여자요?"
"........"
"누가요?"
민수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지혜도 고개를 돌려 둘의 시선은 마주쳤다.
"누굴 것 같니?"
"엄마는 변했어요."
"호호~~~~~ 그래.. 나 변했어. 아주 많이 변했어."
"아버지 오늘 나갔어요."
"그래서?"
".........."
"나에겐 오래 전부터 남편이 없었어. 아니 처음부터 없었어. 너는 아버지가 있었을지 몰라 도 나에겐 남편이 없었어."
"........."
민수의 눈은 어느새 엄마를 노려보는 것으로 변했다.
"들어 갈래요. 안녕히 주무세요."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 민수는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언제까지 피할 거지?"
"........."
"먼저 시작한 것은 네가 아니었니? 왜 계속 나를 피하는 거야?"
"그래요. 먼저 시작한 것은 저였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 것을 후회해요."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니?"
여전히 아들을 바라보며 지혜가 말했다.
"책임요?"
"그래....."
"지금의 엄마.. 모습을 아세요?"
"........?"
"제가 엄마의 어떤 것을 책임져야 하죠?"
"..........."
순간, 보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책임하구나...."
"무책임...요? 하하.... 어떤 것이요? 아버지가 계시는 데에도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오는 엄 마를 피해서요? 아니면 아버지가 떠나는 것을 잡지 않아서요?"
".........."
"그것도 아니면 엄마의 달아오른 육체를 안아주지 않아서요?"
"그렇게 말하지마!!!!!!!"
지혜의 음성에 노기가 서렸다.
"그래요. 차라리 화를 내세요. 지금의 엄마 모습에서는 그 것이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니까 요. 아니 제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중에 인간다운 모습이라곤 화내는 모습뿐일 거에 요."
민수의 음성도 거칠었다.
"난.. 그래도 엄마가 멋진 분이라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
"지금 나에게 원하는 게 뭐죠? 제 몸요? 하하.... 그래요 원한다면 드리죠. 지금 당장 엄마 의 몸을 안아 드릴까요?"
지혜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어때요? 이 아들이 착한 아들이 되어 자기 엄마의 몸 속에 자지를 넣어 드릴까요? 엄마 의 보지를 빨아 드릴까요? 그래서 임신이라도 시켜 드릴까요?"
민수는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마구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는지 몰라도 지금 민수는 몹시 화가 났다.
"그래.. 그렇게 해줘..."
가만히 아들의 말을 듣고 있던 지혜는 갑자기 일어서서 아들에게 걸어가며 말을 계속 이었다.
"그렇게 해봐. 그래 내 말은 그런 뜻이었어. 나를 가졌으니 내 육체를 책임지라는 거였어. 그러니 책임져. 네 아버지가 내 육체를 책임 졌듯이 너도 나를 책임지란 말이야!!!"
"........."
"어서.........책임져....."
아들의 앞에서 선 지혜는 실내복 앞을 풀어헤쳤다.
"........."
"왜 가만히 있는 거니?"
".........."
"네 말대로 엄마의 몸을 안으라니까!! 엄마의 보지를 빨든, 네 자지로 쑤시든 맘대로 해봐 해 보란 말이야!!"
-짝.................-
지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민수의 볼에서는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충격이 너무 세어서 민수의 고개를 획 하니 돌아갔다.
"나쁜 놈............"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고서 지혜는 몸을 돌렸다.
"그래요. 나 나쁜 놈이에요. 이제 아셨어요? 제가 나쁜 놈이 아니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 겠어요?"
".........."
"자신의 엄마에게 육욕을 느끼고, 이성으로서의 사랑도 느끼고, 엄마로서의 사랑도 원하 고.... 제가 나쁜 놈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원하겠냔 말이에요."
지혜는 아들의 말이 끝나자 걸음을 떼어 자신의 방 문 앞으로 갔다.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세요?"
".........."
아들의 말에 잠시 멈칫 했던 지혜는 이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지혜는 문에 등을 기대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고개를 숙인 지혜의 코에 눈물이 굴러 내려와 맺혔다.
"............."
지혜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지혜는 사랑에 서툴렀다. 사랑을 할 줄 몰랐다. 이성간의 사랑이든, 자식에 대한 사랑이든...
갓 태어난 아기가 대소변 가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느꼈구나........]
아들의 말을 떠올린 지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들의 기분을 풀어준다는 것이, 연인에게 사랑의 시선을 보낸 다는 것이 엉뚱하게 상대방에게 전해졌었다.
흉내내는 사랑이 아닌....
스스로 능동적으로 자신만의 사랑을 시작한 지혜의 사랑은 어쩌면 서툰 사춘기 사랑이었다.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던..... 단지 그 것뿐이었는데.......]
스스륵 지혜의 몸은 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민수는 화끈거리는 볼을 주먹으로 비볐다.
"............"
멍한 시선.
침대에 걸터앉은 민수는 그렇게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엄마에게 뺨을 맞은 충격도 충격이거니와 자신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말에 놀라있었다.
[내가 미친 걸까.........]
차마 해서는 안될 말.
민수는 그 말을 해 버린 것이었다. 단지 말....언어...그 뿐이건만, 그건 비수보다 더 사람을 잔인하게 헤친다.
[유린.............!!]
"크크크....큭......"
음산하다고 할까. 민수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렀다.
유린.
함부로 짓밟는 것.
"단지....... 말로 말이지? 큭........."
우스웠다.
엄마와의 성관계가 떠오르면서 민수의 웃음은 점점 흐느낌과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갈께요..."
깔끔하게 옷을 다시 차려입은 보경이 동식을 보며 말했다.
"정말 바래주지 않아도 되겠어요?"
"예..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
동식은 미안한 표정으로 보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은 취기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다소 충혈 되어 있었다.
"전화하세요."
"제 전화 기다리지 마시고 주무세요. 피곤해 보여요."
"풋~~ 걱정에 잠이 올까 그게 걱정인데요."
"핏~~~"
보경은 가볍게 웃고는 뒤로 돌아 아파트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 보경의 작은 체구를 동식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동식은 낯선 주변 환경을 한 번 돌아보고 문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실내.
보경이 종일 정리를 하였기에 그런 대로 정결하였으나, 어딘지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좁은 곳을 구할 것을......."
혼자만의 온기로는 채워지지 않을 듯한 커다란 실내를 보며 동식이 나직이 말했다.
피로가 밀어닥치는 데도 정신은 더욱 맑아져만 가는 그는 거실의 소파로 조용히 다가가 앉았다.
-틱......-
탁자에 있는 담배를 베어 물고서 불을 붙였다.
"후.................."
담배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지난 한달 여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득한 옛 일처럼 느껴졌다. 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 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지옥.
아직도 그 지옥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부정한다고 지옥을 벗어나는 게 아니란 것을 이제 그는 안다. 부정하고, 무시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욱 늪 속으로 빠져버린 다는 것을....
그렇다고 인정해 버릴까...
그러기에는 동식이 알아왔던 사랑에 대한 미련이 너무 깊었다.
"사랑........."
실내에 퍼지는 담배 연기 속으로 아들과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모습이.......
따뜻한 봄날의 가족 나들이...
찌는 듯한 한 여름에 찾았던 어느 산 골 시원한 골짜기.
단풍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 놓았던 어느 가을날의 산.
눈이 곱게 내리던 어느 겨울날 산장의 벽난로에서 보내었던 시간.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아들의 웃음소리만큼이나 깊었던 행복의 향기가 묻어나지 않는 기억이 없었다.
".........."
지난 시절을 떠올리던 동식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졌다.
너무나 그리운 시간.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시절...
"........."
생을 마감하는 사람 마냥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 모든 것이 혼자만의 사랑이요,
혼자만의 착각이란 것이 밝혀졌지만....
버릴 수 없는 사랑이고, 버리지 못하는 기억이었다.
혼자만의 사랑.
짝사랑이라 불리는 이 사랑을 흔히 사람들은 조롱하며 놀리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이를 바보취급 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 정도로 하찮은 사랑일까?
영양가 없는 사랑.
그래 어쩌면 영양가 없는 사랑일 것이다.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받는 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랑.
부모님의 내리 사랑, 그 역시 영양가 없는 짝사랑이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애인에게 버림받았으며, 사회에서 천대받은 남자가 군인으로서 국가에 충성하는 것도 영양가 없는 짝사랑일 것이다.
영양가 없기에, 무시당하기에 하기 싫은 사랑.
그래도 어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애초부터 사랑이라 이름 짓지도 않았을 것을.
"............."
담배 불을 끄며 동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되었든 아내와 아들을 떠나 집을 나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 * * * * *
서먹한 기운이 아침 식탁을 내리 눌렀다.
같은 실내를 이용하기에 아침에 몇 번이나 마주쳤건만 지혜와 민수, 서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약발라야 되는 것 아니니?"
아들의 볼에 약간의 피멍이 든 것을 아침 일찍 보았건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지혜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괜찮아요."
"그래......."
용기를 내어 애써 미소를 머금으며 아들에게 말했던 지혜는 자신을 처다 보지도 않고 말하는 아들을 머쓱하니 처다 보다가 이내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식탁에서는 딸그락거리며 식사하는 소리만 약하게 났다.
침묵 속의 식사.
그 것은 그리 낯선 식사 풍경은 아니었다. 예전 동식이 없을 때면, 종종 있어왔던 풍경이었다. 그래도 그 때는 어색함과 서먹함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저.........."
"죄송해요..."
지혜가 무슨 말을 하려 말문을 열었을 때, 민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응.......?"
".........."
지혜는 아들의 말에 아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식사에만 열중하였다.
"아냐... 괜찮아."
".........."
"어제는 나도 심했어."
살짝 웃으며 지혜가 말했다.
"그런데... 내 얼굴을 좀 봐 줄 수는 없는 거니?"
".........."
"많이 화났나 보구나..."
"............"
민수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지혜는 식탁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노력할게요."
"오늘 도서관 갈거니...?"
".........."
"일찍 들어올래?"
"예..... 알았어요. 잘 먹었습니다."
어느새 식기를 비운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곤,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벗어나 거실에 있던 가방을 들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민수는 아파트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파트 복도에 선 민수는 긴 숨을 내 쉬었다.
숨이 막혔다.
민수는 버스 정거장으로 가며 답답한 가슴을 몇 번이나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비단 지금 뿐만이 아니라 어제 밤부터 계속된 증상이었다.
엄마의 육체를 가졌고,
이성으로서의 엄마의 사랑도 느끼고,
이성으로서 엄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도 느끼며,
여느 엄마의 사랑도 원했다.
그리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도....
"..........."
지금까지는 단지 엄마의 육체만을 가졌을 뿐이라고, 단지 육체에 관련된 사랑만을 느끼고 있을 뿐이라 여겼던 민수는 이제 자신의 문제가 그에 국한되지 않음을 확실히 알았다.
어제 아버지가 집을 나간 그 순간.
그 때부터 알 수 없이 일어났던 복잡한 분노를 이제 민수는 분명히 인지하였다. 그리고 그 분노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란 것도...
승강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출근하는 직업인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뒤섞여 웅성거리며 서성이었고, 그들의 복장은 겨울을 연상시키듯 두터웠는데, 그들의 복장에 대조되는 차림의 민수는 3월의 변덕스런 추위를 더 시리게 느꼈다.
"어머 그랬어... 호호........"
"그래...꺄르르르........"
입김을 불어내며 웃는 소녀들의 맑은 음성을 들으며 민수는 그녀들 뒤에 멀찌감치 서서 차를 기다렸다.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온 민수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조금 우습다고 해야할까...
"............"
문득, 민수는 상현이 생각나 길 건너 저편에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20분...
앞으로 20분 후면 친구는 어김없이 그 곳에서 나 올 것이다. 동생과 그가 사랑에 빠진 꼬마 숙녀를 초등학교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서 말이다.
[기다릴까.........]
시계를 보던 민수는 잠시 상현을 기다릴 생각을 하였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늘 밝은 그 친구를 만나면 지금의 이 더러운 기분은 사라질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
우려하던 문제.
오래 전부터 직감하고 있던 그 무겁기만 한 난제(難題)는 이제 눈앞의 현실.
피한다고, 잊어버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갈구하던 꿈일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꿈에 불과한 것이다.
꿈.
금기의 영역인 근친상간. 그 것이 꿈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제도의 질서, 혹은 생활의 기본 골격이 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정형화 되어있는 가족의 관계, 감정. 어쩌면 그 것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하여 웃지 않는다.
웃기는커녕 외려 신성시하며, 더욱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해 안달한다.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럴까?
"어머.. 얘... 너네 아빠 너무 골 때린다."
"그지... 내가 우리 아빠 때문에 요즘 팍팍 늙는다니까... 봐라 봐.. 내 눈가의 주름말이야."
"그래도... 너는 아빠만 그러니까 다행이다. 우리 집 늙은이들은 아주 쌍으로 나를 못살게 군다니까......"
민수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여학생의 대화 주제는 어느새 자신들의 부모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
민수는 그런 그 여학생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불만을 표시하는 여학생들.
분명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런 말들을 할 것이다. 아니 할 수밖에 없으리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어찌 불만이 없으랴...
그러나, 그 불만은 그저 [보다 낳은 것이 있다.]라는 의미.
"............"
민수의 고민도 그 곳에 있었다.
보다 낳은 것으로 선택한 엄마와의 관계. 하지만 그 것은 보다 낳은 것이기보다는 지금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될 꿈이었다.
너무 많은 것은 잃어버리게 하고...
너무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었다. 성이 개입되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이전과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엄마의 존재, 아버지의 존재, 자신의 위치......
"............"
처음에는 미처 느끼지 못하였던 그 작은 변화가 이제는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저 옛날처럼 살고 싶었다. 아무런 근심 없이, 부모를 있는 그대로 느끼며, 그들의 그늘 아래에서......
하지만, 그러기에는 돌아가지 못할 강을 너무 많이 건너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혜는 창가에 서서 버스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민수야.........]
아들이 탓을 버스를 바라보며 지혜는 속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메였다.
".........."
그러나 굳게 다문 그녀의 입과 똑바로 밖을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니 흔들림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돌아가지는 않아......]
[놓치지도 않아........]
어디로 돌아간다는 것인지, 무엇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인지 그녀로서도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으나 이전과 분명히 다른 지금의 자신이 소중했다.
"후........."
지혜는 손을 올려 자신의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심장의 박동이 손에 느껴지며 살아있음을 그녀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생명.
그 자체로 존귀하다고 한다. 아침에 기쁘게 인사를 해야하는 것은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였기에, 저녁에 기쁘게 인사를 해야하는 것은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에 그러해야 한다고 한다.
언제 어느 때 사라질지 모를 유한한 생명.
의술이 발달하고, 약이 기상천외하더라도 그 것이 생명의 보조수단인 이상 유한성을 가진 생명을 근본적으로 어쩌지는 못한다. 생명의 길고 짧음은 유한성을 가진 생명의 범위 내에서 일뿐, 영원성과는 거리가 멀다.
유한한 생명.
그러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았기에 행복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말도 안돼......."
어느새 북적이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지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거짓말쟁이들......."
지혜는 입술을 물었다.
생명을 예찬하고, 경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 분명 그 사람들은 지극한 철학적 사유를 거치고, 삶의 경험에서 오는 진수(眞髓)를 글로서 옮겨 적은 것이겠지만 그 것이 무슨 소용이랴.
정작 지혜 본인은 십 수년간 그 말을 단 한번도 이해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는데... 언제 살아있다고 행복을 느꼈던가?
"사기꾼들.....오만한 사람들........"
지난 시절 그녀가 읽었던 책의 구절 구절이 떠오를 때마다 지혜는 그 책을 쓴 저자들이 미웠다. 그들의 생각을 따르려 했던 자신이 미웠다.
지혜는 그들이 자신의 철학을 뽐내며,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는 이들로 여겨졌다. 그들의 철학과 그들이 느꼈을 행복... 그것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으니.......
"............."
지혜는 조용히 거실의 창가를 떠나 컴퓨터가 놓여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방안에 처진 커튼을 걷었다.
간단한 몇 가지 조작으로 이내 워드 화면이 켜졌고, 그 곳에 그녀가 쓰는 소설이 나타났다.
-타타타타타......-
-내 생의 최초 실수는 배운 것을 따라한 것이요. 두 번째 실수는 타인의 행복을 닮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실수는 나 자신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타타타타탁.......-
그녀의 소설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쓰는 편지를 마무리하고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소설이 어떻게 전개가 될지는 그녀 자신도 모른다. 처음 소설을 쓸 때 그때처럼 그냥 손가는 데로 글을 쓸 뿐...
자신을 찾아가는 길... 그 것이 그녀가 글을 쓰는 의미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