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7)

4. 대립(對立)

대한(大寒)의 추위는 거세었다.

뉴스에는 한강이 완전히 얼어붙어 꼬맹이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어른들이 얼음낚시를 즐기며 연인들이 한강 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며 보도하고,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주는 뉴스는 노숙자들의 동사(凍死) 소식이었고, 추운 겨울을 힘들게 나고잇는 빈곤층의 소식.

어느 지역의 폭설이 내려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 뒤에 산에 핀 눈꽃이 장관(壯觀)이라며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영상을 보여준다.

참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자연현상이 개개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니 말이다. 자연은 언제나 절대 평등과 상대적 평등을 가장 완벽하게 실시하건만, 사람들은 그 것이 차별이라 느낀다.

그래서 만들어낸 각종 사람들 간의 약속, 혹은 사회적 약속...

그 것들은 '인간애'라 불리기도 하고, '사람의 도리'라고 불려지기도 하며, '도덕, 윤리'라고도 불린다.

재미있지 않은가?

자연에 반항하며 만들어낸 인간들의 질서가...

생명이 귀중하기에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려는 노력, 굶어죽는 사람 보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잘 사는 사람 재산 빼앗아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 등등....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걱정을 하고, 인류 공멸의 경고까지 한다.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란 언제나 문제점이 덕지덕지 붙은 모순 덩어리....

그 감정 하나...

특이한 감정 하나를 가짐으로 위대하다던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곤 언제나 문제 거리들.

"풋~~~~~~!"

지혜는 TV화면을 지켜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왜 그래요?"

민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그냥... 재미있어서.. 푸하하하하하~~~~~~~~!"

갑자기 지혜는 큰소리로 웃으며 몸을 소파에 기대며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웃었다. 그런 엄마를 민수는 다소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말릴 수는 없었다. 너무나 시원스럽게 웃는 엄마를 민수로서는 말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진정으로 웃는다면, 진정으로 웃기에....

미쳐서 웃는 거라면, 미쳤기에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지혜는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그렇게 웃고 난 그녀의 눈 주위에는 웃음으로 인한 눈물이 맺혀 있었고, 그녀는 그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왜... 그랬어요?"

민수는 조금 전의 질문을 다시하였다.

"그냥... "

"......?"

"재미있어서..."

"뭐가요......?"

"떠오른 생각이...."

"........."

한동안 엄마를 바라보던 민수는 고개를 돌려 다시 TV로 시선을 보내었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 전에 어렸던 긴장이 풀어져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뭘까?"

지혜가 갑작스런 질문을 했다.

"예....?"

"너는 무엇을 알고 있니?"

"......"

민수는 엄마의 아리송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알고있다는 것이 과연 정말 알고있는 것에 해당할까?"

난해한 질문을 연속적으로 하는 지혜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감돌았다. 그 것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인형같이 굳어져 있던 표정, 혼란을 잔뜩 머금은 눈을 가졌던 그녀에게서 살아있는 생기가 흐르고 있음을 민수는 알았다.

"순식간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너무 웃긴다고 말이야."

"........"

민수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의 표정에도 점차 봄의 기운 같은 변화가 찾아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믿는 다고 말하는가 하면,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도 하며 눈빛을 반짝이잖아."

지혜는 어느 덧 허공에 시선을 보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언제나 문제점 투성이 이고, 하는 일마다 문제를 발생시키면서 뭐가 옳은 거고, 뭐가 그르다며 논하는지...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은 옳았는데 타인이 탓으로 돌리거나, 상 황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하지. 그래서 책임자를 사람들 사이에서 가려내는 거야. 그래서 뭐가 해결되는데? 민수가 정말로 해결되기는 하니?"

"........"

"왜 책임자를 찾아내야 하고, 그를 추궁해야 하지? 왜 그래야 하니?"

지혜는 강한 어조와 시선으로 민수에게 물었다.

"그...글쎄요... 아마 더 낳은 발전을 위해서가 아닐까요."

갑작스런 엄마의 질문에 얼떨결에 민수는 답했다.

"발전이라고? 푸풋~~~"

"..........?"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가학적 쾌감을 향유하는 것은 아니고?"

"가학.......요?"

"그렇잖아. 어차피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실수하는 거야 당연한 건데... 그 바보가 바보니 까 한 실수를 가지고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하는 게 그런 가학적 쾌감 외에 다른 뭐를 더 줄 수 있을까?"

지혜의 음성은 이전의 것과는 달랐다. 그녀는 다소 흥분한 듯 하였다.

"그러니까...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반성하고 발전하려는 의미에 서..."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편에 서서 엄마에게 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민수의 말에 대한 지혜의 말은 의외였다.

"신이 되려고?"

"예...?"

"신이 되려고 반성하고 발전하는 거니?"

"..........."

황당한 말이랄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말에 민수는 입을 다물었다. 논리의 점프가 너무나 급했다.

"이전 보다 낳고, 이전 보다 발전하고..... 그래서? 그렇게 하면 뭐가 되는데? 신이 되니?"

".........."

민수는 속에서 약간의 화가 치밀었다. 최근에 기독교란 종교를 가짐으로서 약간의 마음의 평화를 가졌던 그였건만, 지금 엄마는 그 자신의 마음에 다소나마 위안이 되고 있는 신의 존재를 모독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인간의 죄를 사(赦)하여 준다는 기독교의 신(神).

그 신과의 만남은 이수미란 한 여학생의 전도에서 발생하였다. 자신의 친구가 짝사랑했던 그 여학생의 소개. 비록, 친구와는 잘 되지 않았지만, 민수는 교회를 찾았다. 집과 도서관 그 어느 곳도 가기 싫은 날 저녁.

수미는 그 곳에 있었다.

"안녕..."

교회의 계단을 올라서는 민수에게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수미가 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그녀는 다른 말없이 그와 함께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들어주실 거야."

그날 수미는 인사 외에 그 한마디만 하였다. 오직 그 뿐.

그러나 그 말은 민수의 뇌리에서 두고두고 잊어지지 않고 위안이 되고 있었다. 복잡하며, 치밀어 오르던 울화가 서서히 가라앉을 정도로...

"신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민수는 엄마의 눈을 응시하며 도전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지혜는 아들의 눈길을 무시한 채 고개를 뒤로 젖히며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했다.

"그러니까..... 인간이란 바보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무지를 스스로 학대한다는 거야... 자기 스스로도 학대하고, 남이 학대해주기도 하고... 말이야.....푸~하하하하하~~~~~~~"

지혜는 다시금 시원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큰 웃음소리. 듣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할만 한 것이건만, 민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

민수는 할 말이 없었다. 아직 많은 부분에서 약하기만 한 민수의 종교적 신념이었다. 그러기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엄마의 말에 민수는 그 신념이 흔들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삶이란 신의 농간*

그런 생각마저 민수의 뇌리 속에 스쳐지나 갈 정도로...

"민수야............."

한참을 웃고 난 지혜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예......."

민수는 나직이 대답했다.

"나...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걸까?"

"........?"

다시금 엉뚱한 말. 민수는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내가 왜..........흐흐흐흑......."

말을 맺지 못하고 지혜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뽀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

민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세 번째 자신과 관계를 맺은 그날처럼. 돌변하는 엄마의 감정기복에 민수는 다시금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 잘 못되어 가는 걸까?

그 생각이 민수의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집안에서는 가족의 즐거운 음성이 들려왔다.

오늘 하루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와 이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밝은 웃음소리.

깔깔거리고, 호호거리는 그 가족 웃음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었다.

".........."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가정의 문을 두드리려든 동식은 손을 거두었다.

무슨 생각으로 자신이 이 곳까지 왔는지 동식 자신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정도로 행복에 넘치게 살아가는 가정의 모습에 동식은 왠지 기가 눌렸다.

"풋~~~~~~~~~~!"

실소를 터뜨린 동식은 몸을 돌려 하늘을 올려 보았다.

검은 하늘.

별 몇 개가 간신히 떠 있는 도시의 맑은 하늘이었다. 그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그런 별. 시골에서라면 그 별들이 가장 밝게 보이련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그 별마저 꺼져 가는 별이었다. 희망과 자존심의 상징인 현대의 도시. 온갖 좋은 제도와 온갖 좋은 기술을 다 동원하였기에 가장 좋아야 하건만 별도 안보이고, 공기도 탁하고, 소음에, 범죄에......

나쁜 것이 외려 더 늘어나는 곳이 도시.

".........."

아직 자신의 행동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동식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때 였다.

--덜컹.....--

"어머........."

보경이었다.

"안녕하세요...."

동식은 얼른 입에 물린 담배를 손으로 잡아 내리고 인사를 건네었다.

"예...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

"금방....요...."

쑥스러워진 동식은 약간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의 행동이었다.

"훗~~"

"왜요........?"

"아니에요. 들어오세요."

지혜는 한 쪽으로 비켜서며 동식을 안으로 초대하였다.

"예...."

어쩔 수가 없게된 동식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저번의 조금 어수선함은 사라지고, 깨끗하고, 화사하게 바뀐 실내에는 향긋함이 가득했다.

"분위기가 달라졌네요."

"예... 그 동안 집수리를 했어요. 애들아~~~~"

동식의 말에 간단하게 답한 보경은 아이들을 불렀다. 보경의 소리에 계집아이들이 방에서 나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계집아이들은 동식을 보자 제 각각 반응을 나타내었다. 어린 주희는 마치 동식이 아빠라도 되는 냥 안아달라는 듯 달려왔고, 주영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꾸벅하였다.

"오 그래... 주영이 잘 지냈니? 우리 주희도 잘 지냈고?"

동식은 서 있는 주영과 자신의 팔에 안긴 주희를 번갈아 보며 그들의 반응에 화답하였다.

"아저씨 왜 이제 왔어?"

주희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말했다.

"응... 바빠서.... 왜 주희는 아저씨가 보고 싶었나 보지?"

"네...!!"

주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런 아저씨가 그런 주희 마음을 몰랐네... 미안해라... 그래서 선물을 사왔으니 선 물 받고 용서해 줄래?"

"선물?"

주희가 눈을 반짝이며 확인하듯 말했다.

"그래.. 선물.. 볼래?"

"응!!!!"

"자 그럼 우리 내려서 볼까?"

동식은 주희를 내려놓고 바닥에 있던 종이가방을 뒤졌다. 그리곤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꺼내어 주희에게 건네주었다.

"와...... 아저씨 이거 뭐야?"

"글세.... 풀어보면 알지...."

"알았어..."

주희는 선물에 정신이 팔려 동식 곁을 후다닥 떠나 거실 가운데 있는 탁자 쪽으로 가 선물을 풀기 시작하였다. 그런 주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동식은 이내 주영에게 시선을 돌리곤 가까이 오라고 눈짓을 했다.

"..........."

주영도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동식에게 다가왔다. 그런 주영에게 동식은 귓속말로 뭐라 작게 이야기하며 작은 주희 보다는 작지만 조금 묵직한 선물 상자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주영은 씩 웃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선물을 가지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12살 소녀 티가 제법 나는 아이...

그 소녀를 위해 동식은 특별하게 주영의 선물을 구입했다.

"무엇인데요?"

보경은 방으로 들어가는 딸아이를 보다가 동식에게 물었다.

"별 거 아니니, 걱정 마세요."

"........ 참 저녁 식사 하셨어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보경이 동식의 저녁을 물었다.

"아뇨.. 실은 아직... "

"그래요. 그럼 거실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식사 준비할게요."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합니다."

동식은 보경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며 보경은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

생각과 달리 편안하다. 동식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고심하며 찾아온 곳.

몇 일이나 고민을 하였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너무 편안하다 못해 익숙한 듯한 착각마저 동식은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들 가족의 구성원이었던 것처럼...

"공사한 흔적이 보이던데.... 의상실을 하는 건가요?"

수저를 들며 동식이 말했다.

"예... 아무래도 의상실밖에 달리 방도가 없어 보였거든요."

"그렇군요. 오픈은 언제인가요?"

"갖추어지는 대로 할 생각이에요. 아마도 2-3일 후가 되기 싶어요."

동식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보경의 얼굴에는 다소 흥분의 빛이 감돌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잠깐 본 동식이지만, 보경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잘 될 것 같네요."

"고마워요."

보경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최이사님 일도 잘 되나 보네요?"

"예.....?"

"안 그러신가요?"

"........."

동식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일이 잘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단지 일만.... 그 외, 그의 또 다른 고민은 아직 출발선 상에도 머뭇거리고 있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과연 일이 잘 되고 있는 것인가?

동식의 미소에는 꽤 복잡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단순히 두 가지 사건일 뿐이지만, 그 두 가지의 의미는 너무나 상충되는 것. 섞일 수 없는 새것과 헌 것.

"궁금해요..."

".......?"

"그 미소...."

"......!"

동식은 가슴이 뜨끔하여 음식물을 씹던 입을 멈추었다. 마치 치부를 누군가에게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미소 속에 저도 포함되어 있나요?"

".........."

동식으로선 할 말이 없었다. 장난스럽게 보일 수 있는 보경의 표정이지만, 그에겐 그 모습이 전혀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동식은 보경을 바라보던 시선을 이내 식탁으로 떨구곤 식사에 열중하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보경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들 좀 보고 올게요..."

보경은 주방을 떠나 들릴 듯 말 듯한 걸음소리만 내었다.

[이 보 경.....]

이상하게 보경에게 신경이 쓰일수록 동식은 그녀 이름만 생각이 났다. 고민 중에서도 단지 불륜이라는 단어가 더 강하게 작용하였건만 지금은 그 것이 점점 퇴색되어만 가는 듯 했다.

동식은 어딘지 자신의 식사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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