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27)

팔의 뻐근함을 느끼며, 동식이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동식이 낯선 방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그러나 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자신의 팔을 베고,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잠을 자고 있는 친구의 아내 이보경의 존재였다. 더구나 이 불 속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감촉은 분명 자신과 그녀가 알몸이라는 감촉이었다.

그 사실을 동식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동식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아무리 기억을 해 내려 하여도 그의 기억 속에는 보경의 집을 나서는 데까지의 기억 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필름이 끊긴다는 말. 지금까지 그 말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였는데, 동식은 생에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친구의 아내와 이런 상태로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동식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한 동안 그렇게 동식은 천장을 보면서 멍하니 있었다. 단 한번의 외도도 없었던 그였다. 아니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던 동식은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동식은 스탠드 불이 켜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스탠드가 있는 낮은 가구 위에는 두 개의 종이가 놓여있었다. 동식은 무의식적으로 그 종이를 향해 왼팔을 뻗었다.

편지였다. 하나는 지금 자신의 팔을 베고 잠을 자고 있는 보경이 자신에게 쓴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친구인 현우가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동식은 의아한 표정으로 친구인 현우가 쓴 편지부터 읽었다.

현우의 편지는 동식에게 아주 충격적이었다. 현우가 동식에게 부탁한 것은 아내와 자신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의 안녕을 지켜달라는 말로 시작한 그의 편지는 아내의 부탁에서는 아내의 육체까지 자신을 대신하여 책임을 져 달라는 것으로 맺었다.

"........!"

동식은 정신이 더 멍청해졌다.

도무지 평소에 자신이 알고 있던 그런 친구가 쓴 글이라 믿을 수 없었으나, 필체가 그의 것이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멍한 정신으로 동식은 보경이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그 글에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 지금 수면제를 먹었어요.

** 저는 남편을 사랑해요. 그리고 그 사랑은 영원할지도 몰라요.

** -보경-

황당한 글.

처음 보경의 글을 읽었을 때, 동식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아니 더 나아가 미친 여자라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리고 부부가 똑같이 미첬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음이 진정되어 갈 무렵 동식은 어렴풋하게 친구의 부부가 자신에게 말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존재할까?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이란 무엇일까? 50년? 100년? 아니면 철학적 사유의 영원?

인간이 위대한 것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인간이 고귀한 것은 감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것은 결코 끝없는 위대함도, 무한한 고귀함도 아닐 것이다. 물론 종교에 따라서는 인간에게 한계를 달리 정의한다. 불교에서는 무한한 위대함과 고귀함을, 기독교에서는 그 무한대는 오직 신만이 가지는 것이며, 그 신이 인간에게 구원의 선물로 끝없는 고귀함과 위대함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 깨달음을 얻거나, 믿음을 가지는 것도 인간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곳임은 역사적으로 수 없이 증명이 되었다.

"............."

동식은 고개를 돌려 보경을 바라보았다. 새근새근 자신의 몸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

남편을 하늘로 떠나 보낸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인. 그 여인이 남편의 절친한 친구였던 남자의 품에 안겨 이렇게 편안히 잠을 잔다는 것을 결코 세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남편을 사랑한다는 글까지 남겨 놓은 채...

[두려움...........]

동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몸에 안기어 자고 있는 그 여인은 두려움에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먼저 하늘로 떠나버린 친구가 자신에게 그런 편지를 남긴 것은 남아있는 아내가 느낄 그 두려움을 걱정하여 쓴 글이라 생각하였다.

"두려운 가요.......?"

동식은 보경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깊은 잠에 빠진 보경은 고른 호흡만 내 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랑을 잃을까... 사랑이 변질될까 두려운 거군요."

나직하게 동식은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과 그 친구.... 정말 나쁜 사람들이네요....."

동식은 몸을 옆으로 하여 보경을 안아주었다. 보경의 작은 체구가 동식의 몸 안으로 폭 들어왔다. 아내를 안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

".......!!"

동식은 왠지 모를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자신이 안아주어 보호해야만 할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참 무심합니다. 요즘 들어 생과 사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보던 이들의 죽음. 몇 일 전까지만 해도 보았건만, 자고 일어난 아침에 들려온 부음 소식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99년 한해로도 부족하여 2000년에도 생과 사는 여전히 이어지네요.

산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어떤 회의마저 들고 있습니다. 비단 죽음뿐만 아니라, 고통에 아파하는 병원에 있는 병자들의 모습은 더 지켜보지 힘들더군요. 그저 바라만 보는 저일 뿐이건만, 왜 제가 이렇게 힘이 빠지는지...

이 번 글은 저번에 썼던 일정 부분을 다 삭제하고 새롭게 썼습니다. 어쩌면 이전에 올린 레드로멘스와 조금 다른 분위기일지 모르겠군요. 이상하게 심경의 변화가 글에도 투영이 되는 것을 보니 아직 갈 길이 먼 작가인가 봅니다. 일단 글을 올립니다..........................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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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제 3. 갈등(葛藤)의 이어진 부분입니다.)

인간의 생이란 정해진 것.

담백질과 수분, 그리고 소량의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고, 외부에서 주입된 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동작하는 인간의 몸이 가진 한계. 인간의 생각에는 범위가 없으며, 마음에 한계가 없을 지라도 물질덩어리 육체가 가진 한계는 그 생각과 마음의 한계도 정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나갈 것 같은 사고, 그 누구라도 끌어안을 수 있거나 영원히 미워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눈 녹듯 사라져야만 하는 이유는 아마 그 곳에 있을지 모른다.

"..........."

동식은 보경을 자신 쪽으로 당겨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는 산뜻한 비누 향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코와 기관지를 거쳐 폐로 들어간 보경의 향기는 동식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동식은 십 수년 전, 정신을 잃어버린 아내의 어린 몸을 떠올렸다.

채 성숙되지 않은 17살 소녀의 풋풋한 살내음과 비누향.

맑고 깨끗한 눈망울을 가진 한 소녀의 향기.

동식은 그때로 돌아간 착각에 빠져들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결코 깨트리지 않았을 싱그러운 미소가 동식의 감은 눈 안에 형상화되었다.

"흠................."

깊은 신음이 동식의 목에서 울렸다.

그 시절....

그 때는 동식에게 있어서 가장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욕정에 사로잡힌 사랑으로 인해 불구가 되어버린 사랑을 간직하여야 했고, 지금까지 그 불구가 된 사랑으로 인해 가슴 시리도록 아파해야만 했었다.

".........."

어느 샌가 동식의 감은 눈가엔 물기가 서렸다.

동식은 한 소녀가 보고싶었다. 욕망의 화신이 된 자신이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나버린 그 소녀를 보고싶었다.

잠시 떠난 것이라 여겼던, 곧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그가 사랑한 소녀를....

사람의 육체가 생각과 마음처럼 영원한 것이었다면...

사람에게 시간이 영원히 존재하였었다면, 어쩌면 그 시절 동식은 욕망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이다.

이슬을 머금고 햇살을 받아 싱그러움을 발산하는 막 피어난 꽃이 자신을 보아줄 때까지..

하지만, 동식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곧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날 것만 같은 소녀가 그를 조급하게 하였고, 미치게 하였다. 그래서 잡아야만 했었다. 떠나버리기 전에 잡아서 자신의 곁에 두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떠오른 가장 확실한 방법.

문제는 그 것이었다.

나약해진 그를 유혹한 가장 비열한 그 것은 욕망이었다. 동식이 자신이 사랑한 소녀가 자신의 그 욕망으로 인해 떠나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이 난 후였다.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것은 그저 껍데기일 뿐.

욕망.

그 하나의 단어는 지난 십 수년간 동식을 괴롭힌 화두였다. 이리저리 다 방면으로 접근해 보건만, 어느 곳에서도 동식은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식이 알고있는 진실은...

욕망은 사랑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본능이라는 것 그 하나였다.

".........."

동식은 몸을 약간 움직여 보경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단 한 번도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본 적은 없었지만, 동식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품에 안긴 보경이나 고인이 되어버린 친구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일 지도 몰랐다.

"당신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해 주어야만 하는 건가요?"

몸을 더욱 뒤로 빼고서 보경의 얼굴을 보며 낮은 음성으로 동식이 말했다.

"........."

그 것은 확실히 고민거리에 해당하였다. 지금 답을 해주어야 할지 아니면 깨어있는 그녀와 대화를 통하여 답을 해주어야 할지.

어느 것이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

그 수단 중에 언어는 가장 확실한 의사소통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그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도 때론 오류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은 생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일 거다. 분명하게 표현된 언어를 오판하여 당사자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명확하게 사용된 언어마저도 그러할 진데, 보경이 동식에게 쓴 글은 오죽하랴. 불분명한 언어가 때론 가장 정확하게 사람의 뜻을 표현한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불분명한 표현은 불분명하게 뜻을 전하는 법.

"............."

동식은 선택을 하여야 했다.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아내가 자신에게 해 온 질문에 대한 답을 표현하는 방법을. 친구의 아내의 몸에 흔적을 남김으로서 답변을 할 것인가, 아니면 언어를 사용한 대화로서 보다 분명하게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확실하게 할 것인가를...

[어찌 되었든.... 도움을 주어야 겠지.]

동식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생각들의 전제를 다시금 상기하였다. 어차피 도덕적으로는 어느 것이나 용납될 수 없기에 그 전제를, 자신의 기본적 결정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흐흡............."

동식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길게 내쉬며 보경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흔적......]

동식은 지금 친구의 아내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답변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아무리 언어가 발달하였다고 하여도 서로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

--스윽....사라락......----

손으로 밀어 보경의 몸을 바로 눕히자 이불이 소리를 내며 여인의 몸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동식의 몸은 바로 눕혀지는 여인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자신의 육중한 체구를 여인의 몸에 실을 수는 없기에 동식은 양 무릎과 한 팔로서 자시의 몸을 지탱하였다.

"............"

보경은 여전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분홍빛 스탠드 반사되는 그녀의 피부가 아주 고와 보였다. 동식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그녀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우리 앞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보경의 얼굴을 바라보며 동식이 독백처럼 말했다.

"그냥... 이렇게 지내요."

말을 마치고 동식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친구의 아내를 덮고 있는 이불을 걷었다.

이불이 걷히자 보경의 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그 것은 충격이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의 몸. 그 것도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아내의 몸은 동식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지금까지 동식은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아내 외 다른 여자의 나체를 직접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불륜.........]

순간, 동식의 뇌리에는 아내의 모습과 함께 그 단어가 떠올랐다. 보지 말아야 할 아내 외 다른 여인이 몸. 그 것을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왔던 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방을 둘러보았다.

".......?"

방을 둘러보던 동식은 누워있는 보경의 머리맡에 있는 작은 소반을 보았다. 그 곳에는 예전에 현우가 딸인 주영에게 받은 생일 선물인 재떨이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입구만 뜯겨있는 담배와 라이터가 놓여있었다.

재떨이... 그 것은 동식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2년 전, 자신의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온 주영은 아빠인 현우에게 갖은 신경질을 부렸고, 그로 인해 현우는 늘 집에 오면 집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워야만 했었다. 그 것은 친구 집에 놀러간 동식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렇게 근 두 달을 보내던 어느 날.. 그날은 현우의 생일이었다. 동식은 현우의 초대로 그의 집에 몇몇 회사 동료들과 함께 갔었다. 그리고 그날 친구의 큰딸은 편지와 함께 포장된 작은 상자를 자기 아빠에게 주고는 황급히 방을 벗어났다.

그 작은 상자 속에는 지금의 자신이 보고있는 그 재떨이가 들어있었고,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를 피는 아빠의 모습은 더 보기 싫어. 그래서 내가 아빠의 생일을 **맞아 특별히 용서해주는 거야. 이거 뽀미를 깨서 산 거니까 고맙게 생각해야 돼.

어린아이다운 필체로 쓰여진 그 편지는 방안에 있던 우리들에게 한 바탕 크게 웃게 만들었고, 아들 보다 딸이 키우는 재미가 더 있다는 말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날로 친구의 안방에서나마 금연이 해제되어 그날 모인 사람들은 주영이 선물해준 재떨이에 담배 재를 털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었다.

그날 동식은 그 재떨이에 재를 털며 피웠던 담배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우는 그 재떨이를 자신의 보물 제2호로 삼을 테니 보물 3호로 밀려난 것에 서운해하지 말라며 동식에게 장난처럼 말을 했었다.

".........."

친구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재떨이를 보자 동식은 새삼 자신이 하려는 행동을 의식하게 되었다. 더구나 소반 위에는 작은 성행위에 필요한 오일과 콘돔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작은 주전자에 컵까지....

어정쩡한 자세로 동식은 그 것들을 바라보았다.

"..........."

숙취로 멍하던 머리가 맑아지며, 마치 환상에서 깨어나 듯 현실이 급격하게 인지가 되었다.

그 것은 양심의 가책이었다.

건넌방에서 동생과 달콤한 잠을 자고 있을 친구의 어린 혈육. 그 애들의 모습이 동식이 바라보는 허공 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 고인이 된 친구와 그의 부인이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아이들이 뛰었다. 약해 보이는 팔 다리로 지상을 차고, 허공을 가르며 동식 자신에게로 맑은 눈망울을 빛내며 뛰어왔다.

"..........!!!!"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동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후............."

보경의 옆으로 내려와 앉은 동식의 입에선 긴 숨이 흘렀다.

[현우...... 나에게 무엇을 원한 거지?]

[또.........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거지?]

동식은 여전히 잠을 자고있는 보경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왠지 모를 울화가 동식의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동식은 고개를 돌렸다.

차마 친구가 그토록 사랑했던 친구의 아내가, 친구가 한없이 사랑하였던 아이들의 엄마가 자신의 곁에서 발가벗고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눈에 띠인 것은 조금 전에 멍한 정신으로 읽었던 친구와 그의 아내가 자신에게 쓴 편지였다.

동식은 그 편지를 주워 들었다.

"............."

같은 내용. 그 편지들은 처음 읽었을 때와 여전히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다만, 동식이 하나 더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친구는 자신과 거래를 요청한 것이란 것.. 그 하나를 더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적이 없던 친구. 가족을 제외한 만나는 모든 이들을 친구로 사귀었던 그가 동식에게 거래를 요청한 것이다. 자기 친구였던 이들의 비밀에 자기의 가족을 조건으로 한...

[왜..........?]

이미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바이지만, 동식은 그렇게 새삼스레 화를 내 듯이 속으로 외쳤다.

정신이 맑아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동식은 자신이 해야할 일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이 친구의 자식들에게 해 주어야할 일과 친구의 아내에게 해 주어야 할 일, 친구의 아내가 자신에게 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해 주어야 할 일이....

시계는 어느 덧 새벽 4시를 향하고 있었다.

"............"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기회를 놓치고 말 것임은 분명하였다. 지금 분명하게 답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임은 자명하였고, 친구가 자신에게 남긴 유언은 쓰레기 뭉치로 변할 것이다.

동식은 몸을 옮겨 소반 위에 있는 오일을 집어들었다.

"......."

빨리 끝내야 할 것이다. 잠든 친구의 아내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빨리.

결심이 선 동식의 마음은 급했다. 지금 이 순간, 아니 관계를 맺는 도중에 친구의 아내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물론, 관계를 가지게 되면 어찌 그녀가 깨어나지 않을까 마는 그녀 역시 자신이 깨어났다는 것을 동식에게 알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하여 잠을 자는 척하며 정말로 잠을 청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의 시간이 짧아야만 했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내일도... 모래도... 앞으로도...]

동식의 머리 속에 많은 같은 의미를 뜻하는 단어들이 열거되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서로가 언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일과 오늘의 감정, 서로의 생각들을........]

[마치,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그렇게 지내야 할 터....]

생각을 정리하며, 동식은 빠르고 조심스럽게 손을 놀려 자신의 성기와 친구 아내인 보경의 다리를 벌리고 그녀의 음부에 오일을 발랐다. 너무 많이 사용한 오일은 자신의 성기에서 뚝뚝 흘러내렸고, 보경이 음부에서도 흘러내렸다.

준비는 끝났다.

애무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동식의 친구의 아내인 보경의 벌어진 다리 사리로 몸을 옮기고서 오일에 번들거리는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잡았다.

동식의 가슴은 터질 듯이 요동쳤다.

어찌되었건, 동식에게 있어서는 보경은 그의 생에 두 번째 여자였다. 더군다나 절친했던 친구의 아내.

금기의 것을 깨트리는 흥분이 동식을 휩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

동식의 입에서 더운 숨이 새어 나왔다.

동식은 몸을 낮추어 보경의 음부를 향하여 다가갔다. 음모가 거의 없다 싶이한 자신의 아내와 달리 보경은 음모가 짙었다. 그 음모는 오일에 젖어 번들거렸고, 동식이 오일을 바르면서 양옆으로 잘 정리하여 주었기에 음부 전체는 다소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동식은 친구의 아내 몸 입구에 자신을 성기를 대었을 때 전해져 오는 느낌에 전율을 느꼈다. 손으로 느꼈던 까칠한 음모의 감촉과 음부 살결의 감촉과는 전혀 다른 느낌.

스탠드의 위치가 좋았기에 동식은 자신의 성기 귀두 반까지 친구의 아내 몸 속에 들어간 것을 눈으로 확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고, 두 눈에 힘을 주고서 동식은 천천히 자신의 성기를 밀어넣었다. 약간의 빡빡함이 전해져 왔으나 동식의 성기는 동식이 허리에 힘을 가하는 대로 천천히 보경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치골이 보경의 음부에 맞닿았다.

".........!!"

강력한 느낌이 동식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친구의 아내 몸 속에 들어왔다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완전히 자신의 성기가 보경의 몸 속으로 삽입이 되자 동식은 자신과 친구의 아내의 붙어있는 하체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보경의 얼굴을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그녀의 눈동자는 눈꺼풀 아래에서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지만, 꿈을 꾸고 있다고 보기에는 눈꺼풀 아래 눈동자의 움직임이 너무 느렸고, 작위적인 냄새가 났다.

[어떠랴......]

동식은 보경의 가슴 양옆 바닥 짚고서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좌에서 우로 돌리고, 우에서 좌로 돌렸다. 그건 아내와 관계를 할 때 그의 습관이었다.

동식이 허리를 놀릴 때마다 보경의 몸이 조금씩 흔들리고, 그에 따라 탐스런 유방이 약간씩 움직였다. 동식은 그 유방의 움직임이 왠지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유방에서 시작된 관심은 처음으로 보경의 몸으로 번졌다.

약간의 주름이 잡힌 목이었지만, 고운 피부라 그런지 가늘어서 그런지 보경의 목선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목 아래에는 갸냘픈 어깨선이 이어지고, 가슴에 이르러서는 약해 보이는 선과는 대조적으로 탐스런 유방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방 위에는 검붉은 유두와 주위의 붉은 피부가 하얀 피부에 원과 점을 찍고 있었다. 동식의 눈에 그 것은 인상적이었다. 아내의 유방과 유두는 핑크 빛으로 소녀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는데 반하여 보경의 유두와 그 주변에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유륜은 보다 강렬한 색을 띠고서 그녀가 자식을 둔 어머니임을 알렸다.

어디 그 뿐이랴.

동식의 아내인 지혜와 달리 보경의 복부에는 다소 적당한 살집이 있었는데 이 역시 지혜와는 다른 면이었다. 운동을 한 듯한 팽팽한 아내의 복부에서 느끼지 못하였던 푸근함과 또 다른 매력을 동식은 느꼈다.

"흐흠........."

친구의 아내 몸을 눈으로 보았을 뿐이지만, 동식은 손으로 매만진 이상의 느낌을 가졌다. 더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보경의 몸에서 동식의 성기를 정기적으로 조여왔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을 동식에게 전해주었다.

그 느낌을 더 즐기며 보경과 함께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될 것.

지금 함께 성행위를 즐긴다면 그 쾌감은 배가 될 것이나, 절정 후의 허전함도 배로 느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그랬다. 동식은 아직 보경과 함께 성행위를 즐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아내와 관계를 가지면서 늘 소망해왔던 함께 하는 성행위지만 아직은 함께 즐겨서는 안 된다고 동식은 판단하였다.

이성과 감성의 분리. 그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

동식은 자신의 몸 속에서 뜨거운 것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동식의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보다 묵직하게 보경의 하체를 압박하고, 짓누르면서 동식은 허리를 돌렸다. 그에 따라 보경의 몸도 그 흔들림이 강해졌다.

그로부터 동식이 절정의 쾌감을 느낀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 였다.

"허억............."

동식은 온 몸을 경직시키며 절정에 도달하였다. 절정의 기운이 동식의 온 몸을 휩싸며 소용돌이 쳤고, 보경의 몸 속에 들어간 성기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동식이 보경의 몸 위에서 떨어져 나와 자리에 누운 것은 절정의 순간이 지나간 직후였다.

[끝났나............]

보경과 자신의 몸 위로 이불을 끌어 덮으며 동식은 그런 체념의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른함이 온 몸을 덮쳤다.

다시금 취기와 피로가 몰려옴을 느끼며 동식은 팔을 뻗어 스탠드 불을 끄려 팔을 뻗쳤다.

그 때였다.

".......!!!"

동식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동식은 몸을 돌려 보경의 머리맡에 있는 소반을 보았다.

[콘돔........!!!]

그 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

하나는 성병이 의심날 경우 남자가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이 '가임기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으음..........."

동식의 목에서 신음이 흘렀다.

분명, 보경은 가임기간이란 뜻으로 콘돔을 준비했을 것이라 동식은 생각하였다. 켜진 스탠드 불, 머리맡 눈에 잘 띠는 곳에 준비된 피임기구. 그리고 그녀가 동식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신뢰감.

"......."

동식은 맥없이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어이가 없었다.

[아냐... 주영이 어머니 나름대로 준비를 했을 거야....분명....]

이미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동식은 보경에게 희망을 걸며 팔로 눈을 가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깨워 물어보고 싶지만 그런 추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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