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7)

* * * * * * *

"상념은 집착의 부산물........"

책상에 업드린 채 민수는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사찰에 갔을 때 스님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불과 1달 이전까지 17년간의 생각 분량보다 근래 1달간 그가 생각했던 분량이 훨씬 더 많은 민수였다. 갖가지 생각들, 갖가지 결론들....일일이 나열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나 화두는 언제나 '욕망'과 '희망'이었다. 무의미하게 배웠던 그 두 단어... 너무나 쉽게 쓰고, 너무나 간단하다 여겼던 단어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민수의 머리는 타는 듯했다.

[나는 엄마에게 집착하는 걸까?]

[엄마는 나에게 욕망의 대상일 뿐일까....?]

몇 번이나 반복해서 했던 질문들이었다. 그 질문을 민수는 또 다시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겹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욕망이 강렬한 것이기에 그 만큼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질문이었다.

[나에게 욕망이 없다면, 나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되는 걸까?]

[욕망........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일까... 아님 그게 나일까....]

[내가 가진 것... 어떤 것들이 있지?]

[욕망이라는 본능, 사고능력, 감정, 육체.......]

[또 뭐가 있지?]

[그 것들을 다 제거하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건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질문들. 예전의 민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질문들이요, 쓸데없는 고민이라 빈정거렸을 질문들이다.

"아.....!"

순간, 민수는 일어나 친구인 상현이 준 편지를 바라보았다.

늘 자신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던 친구. 그가 예전에 매우 조심스럽게 꺼내던 자신의 단점에 대한 지적을 민수는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는 듯했다. 오해하지 말라는 말부터 시작한 그의 너무나 조심스러웠던 충고.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을 거야..-

한동안 미소를 잃어버렸던, 민수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런 것일지도.......]

남편이 자리를 비운 집.

지혜는 1달만에 자리를 비운 남편이 없는 빈방의 창가에 서서 아파트 단지 내 네온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초겨울의 찬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훗~~~~~~~~~"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혜는 지금 자신의 가슴속에 일렁이는 설램을 스스로 비웃었다. 아니 그것은 비웃음이라기 보다는 자학이었다.

[뭘 기대하는 거야....]

스스로에게 가하는 비난과 조롱. 불감증이라 생각하는 지혜였기에 지금 가슴속에 일어난 작은 설래임이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의 의지와 상관이 없었을 지라도, 1달 전 아들과 관계를 가졌을 때 자신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남편과는 사뭇 다른 체형에 행위방식 이었건만, 그녀는 정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남편이 강제로 읽힌 에로소설 속의 쾌감 같은 것은 남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었다.

단지, 남편과의 관계와 아들과의 성관계에 있어서 다른 것이 있었다면, 남편과 성관계를 맺었을 때에는 단 한번도 감정의 동요를 느낀 적이 없었는데, 1달 전 아들과의 성관계에서 그녀는 슬픔과 공허함을 느꼈다.

차이라면 그 것 뿐.....

"거부하지는 않아........ 세상 그 누구라도......"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딸깍-

민수가 안방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저 오늘 여기서 자도 돼요?"

"그래...."

표정과 감정 정리가 너무나 잘되는 지혜는 어느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깔아놓은 이부자리로 걸어오는 아들을 보고서 습관적으로 남편에게 하듯 이불 한 쪽을 걷고 베개의 위치를 다시 손보았다.

이러기에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라 하는 걸까? 16년간 몸에 벤 습관.

"베개가 하나 뿐이네요."

"내가 꺼낼게..."

"제가 할께요."

"아냐... 괜찮아."

지혜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들을 제지하며 자신이 일어나 장롱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베개를 꺼낸 지혜는 아들의 베개 옆에 자신의 베개를 위치시킨 다음 다시 창가로 향했다.

"조금 춥지?"

창문을 닫으며 지혜가 말했다.

"괜찮아요. 답답하시면 창문을 열어놓아도 돼요."

"아냐.... 조금 전에 닫으려고 했어."

지혜는 아들을 돌아보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상큼한 미소. 카타리나 비트라는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미소가 100만불 짜리라고 했던가? 그 것이 100만불 짜리 미소라면 엄마의 미소는 1000만불 짜리 미소일 거라고 민수는 생각했다.

"곧 따뜻해 질거야."

"예...."

아들의 대답에 미소로 답하며 지혜는 걸치고 있던 실내 까운을 벗었다. 까운 안에는 새로 구입했는지 1달 전에 민수 자신이 가위로 잘랐던 잠옷과 같은 색상의 비단 잠옷을 입고 있었다.

민수는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새로 구입했어."

아들의 반응에 지혜가 말했다.

"예...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스슥...스슷-

겨울용 이불은 깔끔한 소리를 내며 지혜의 손에 걷혔다.

"안 잘거니?"

아직 이부자리 위에 앉아있는 아들을 보며 지혜가 말했다. 조금의 어색함도 주저함도 없는 차분한 어투였다. 마치 오래 동안 한 방에서 지내온 사람에게 말하듯 아들에게 말하였다.

"자..잘 거예요."

지혜와 달리 민수는 어색했다. 민수의 기억 속에는 엄마와 같은 방을 쓴 기억이 없었다. 가장 어릴 적 기억에도 자신은 늘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잤다. 간혹 무서움에 울음을 터뜨리면 자신의 방에 온 것은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였고, 칭얼거리는 자신의 곁에 가끔이나마 함께 잠을 자 준 것도 아버지였다. 그 것이 가장 오래된 3살 때의 가물가물한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그렇다고 엄마에 대한 서운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민수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상냥한 엄마의 모습뿐이었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1년 여름 방학 때에 보았던 아침 연속극의 불륜을 저지르는 아줌마들이 너무나 이해되지 않았고, 그들이 말하는 생활의 지루함, 억울함 같은 것은 전혀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 것이 나름대로 이해가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흘러 각종 연애소설과 포르노 비디오 등을 접하고 나서였다.

여자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분명, 엄마도 여자란 것을 민수는 안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형태상의 여자일 뿐. 온전한 여자로 인식하기에는 그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나 거대하였다.

범접할 수 없는 여인.

그 것이 민수가 아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보니?"

앉아 있는 민수의 곁에 자리 잡고 누워있던 지혜가 말했다.

"그냥요..."

"........"

지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들의 심정을 그녀는 이해한다. 그가 느끼고 있을 혼란. 그것은 18년 전에 그녀가 느꼈던 것이고, 신혼기간 내내 밤마다 그녀가 남편을 보며 느껴야 했던 혼란이기도 하였다.

그런 혼란을 극복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아픔이 동반되었었다.

[극복.....?]

지혜는 아들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눈을 감았다.

그건 극복이기보다는 망각이었다. 그녀는 혼란을 극복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함께 묻어버렸을 뿐이었다. 진정 혼란을 극복하였다면, 지금 이렇게 아들에게 아무런 방법도 알려주지 못한 채 이끌려 가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을 아세요?"

민수의 말이었다.

"아니......."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지혜는 가볍게 말했다.

"그럼 저를 사랑하지 않겠군요."

"그럴지도...."

"왜죠?"

"모르니까."

"......."

민수 역시 예상했던 엄마의 대답이었다. 지난 1달의 시간을 허송세월 하였던 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민수의 입가에 다소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다만......"

"....?"

"사랑이 있을 거라 믿었던 시절은 있었어."

".....!"

"그리고 그 시절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지혜는 아들의 눈을 응시하였다. 향수 가득한 눈빛으로.

"네게도.....그런 시간이 존재하길 바래. 그건 남아있는 나의 유일한 욕심이야."

"과거... 네요"

"용기가 없으니까."

"그래서 저를 받아들인 건가요?"

"....."

지혜는 말없이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아들의 손을 잡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잘 몰라."

"......"

"다만, 지키려 노력할 뿐이야. 나와의 약속을...."

지혜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네가 나에게 왔을 때, 나는 죽었어. 죽어버린 나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어. 단지 누 구라도 나를 가질 수 있을 뿐이야. 그게 너일지라도."

"되살릴 수는 없나요?"

"용기가 없어."

"10년 전과 같은 대답이군요."

10년 전, 민수가 7살이 되던 해에 지혜는 유서를 썼다. 지금의 이 아파트로 이사를 한 후 10일째 되는 날부터 쓰기 시작한 유서는 두꺼운 노트로 2권 분량이었다. 오랜 시간 고민한 혼란을 정리하며 써내려 간 유서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과 남편과의 일, 그리고 아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그녀가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 것은 그녀가 이 세상에 가계부와 함께 남기는 유일한 기록이었다. 그 작은 흔적을 지혜는 아들이 자신을 범 한지 3일째 되는 날 건네주었었다. 자신이 살아있을 적에는 절대 꺼내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어기고서...

"........."

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은 어떠했나요?"

"몰라..."

방안에는 어느새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초겨울의 냉랭한 기운은 온데 간데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을 세차게 몰아치던 그 찬 기운이었건만...

"재미있는 게 있어요."

"...?"

"여기요..."

민수는 엄마의 시선을 응시하곤 이내 자신의 성기 부분으로 시선을 보내었다.

"....."

아들의 시선을 따라간 지혜는 말이 없었다.

"재미있지 않나요?"

"........."

여전히 무표정한 지혜였다.

성 본능. 하나의 지식으로서 그녀는 성 본능을 안다. 그러나 그건 이성으로만 알 뿐, 그녀이 마음에서나 육체는 받아들이기도 전에 상실하였다.

"저는 재미있어요. 아주 많이 말이죠....."

"......"

"이렇게 어렵고, 힘겨운 대화를 하는 중에도 제 자신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 것이 미치도 록 재미있죠."

민수의 얼굴에 미묘한 감정이 교차되었다.

"....!"

지혜는 놀랐다. 자신은 한번도 고민한 적이 없는 것을 말하는 아들에게. 과거 남편도 지금 아들과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지혜는 무시했었다. 하지만, 지금 아들의 말은 왠지 지혜에게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말이 왜 이렇게 차이 나게 들리는 것일까?

"엄마......."

"....응?"

"엄마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조금은 알겠어요. 그 리고, 그러한 엄마의 입장이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죠."

"......"

"자신 범한 나를 엄마가 그런 입장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잘 알면 서도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흘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요. 가슴을 칼로 도려내 는 것같이 아파요."

민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엄마를 엄마로서 사랑했었어요. 내가 믿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엄마로서....엄마 는 내게 하나의 성녀였고, 천사였죠."

".........."

"도저히 가까이 잘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존재로서의 그런 엄마예요. 그건 예전이나 지금 이나 저자신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의미죠."

"......"

"그렇게만 알고 지내었더라면..... 그 것을 지키며, 파생된 작은 마음으로 엄마의 얼굴과 마 음과 몸가짐에 대한 동경으로 내 이상형을 그리며 그렇게만 계속 지낼 수 있었으면 너무 나 좋았을 텐데..."

민수는 고개를 숙이고는 손을 이마에 대며 눈을 가렸다.

"운명의 장난인지... 저는 샤워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죠.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일그러 졌어요. 엄마에 대한 강렬한 욕망. 그건 단순히 이성에게 느끼는 성적인 욕망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죠."

"........"

"저는 미쳤어요. 미쳐서 엄마를 범했어요. 내게 너무나 소중한 엄마를 제가요."

"........"

"그래요. 그 것만으로 끝이 났다면, 단순히 성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끝이 났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제 안에 피어나는 다른 감정. 그것은 저를 더욱 가혹 하게 학대하고 있어요. 엄마를 엄마로서 사랑하는 저의 깨어지지 않는 마음만큼이나 강 하게 자라나는 생소한 그 마음. 그 두 개의 마음은 너무나 모순적이죠."

"......!!"

순간 지혜는 가슴에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차라리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의 성 욕망이라면 이처럼 힘들지는 않을텐데..."

"......."

"저의 또 다른 마음. 그 것이 순간의 욕망이라면, 엄마를 엄마로서 사랑하는 제 마음 역시 순가의 욕망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또한 제가 배웠던 다른 모든 도덕들도 같은 것이겠 죠."

"나를 원하니?"

"예... 엄마의 모든 것을...."

눈을 가린 민수의 손 아래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망치로 맞은 듯한 가슴은 이제 쎄-하니 쓰려왔다. 지혜의 눈에도 물기가 맺혔다.

[나는 이 애의 무엇을 이해하였던가?]

지혜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아들이 치르는 혼란이란 홍역에 대하여 선배로서 이해를 한다는 듯한 묘한 자신의 우월감을 끊어지지 않는 모성애의 발로라 믿었던 그녀는 자신 앞에서 아파하는 아들을 끌어당겨 안았다.

따스한 아들의 체온이 지혜의 가슴에 퍼져나갔다.

민수는 엄마의 품에 안겨 그렇게 한동안 울다가 잠이 들었다. 아주 어릴 적에나 경험해 보았을 포근함을 느끼며.....

지혜는 잠든 아들을 자신의 다리에 눕히며, 최대한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기고는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마만 일까.......]

지혜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 기억을 아무리 애써 떠올려 보려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아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 기억이 있었을 텐데....

그저 기억나는 것이라곤, 울며 칭얼대는 기억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 심통 난 얼굴, 기쁨에 들뜬 얼굴... 모두 깨어있는 아들의 얼굴뿐이었다. 그 마저도 자세히 본 얼굴이 아니라 스치듯 지나가는 얼굴들 뿐.

"미안하다."

자신도 모르게 지혜의 입에서 그런 말이 새어나왔다. 그리곤 다시 가슴이 아팠다.

고운 눈에 이슬이 고이고...

이슬은 방울 되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의 생명이었다.

"나를 닮았구나......"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는 슬픈 미소가 번졌다.

"사람들이 볼 줄 아네...흐...흐..."

웃음인지 흐느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 내 아들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렇게....."

손끝이 떨리고,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지혜는 정말로 울었다. 아주 조용하게 몇십 년만에.....

마음과 이성과 세포 하나 하나까지....

그녀가 울었다.

* * * * * * *

지혜는 아침을 좋아한다. 어떤 주부들은 아침이 귀찮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침이 좋았다. 시작을 알리는 아침은 그녀가 스스로 가둔 지난 세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찾으려 한 적도 없었다. 그냥 좋을 뿐...

아침 햇살이 거실의 창을 넘어 지혜의 몸을 감싸안았다.

바다를 생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그럼 햇살은 생명의 근원이다.

지혜는 태초의 생명이 광합성을 하듯 아침 햇살을 몸 안 가득 담았다. 몸 구석구석 그 생명의 힘을 받아들였다.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

"........."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다가왔다.

아직 미약한 내부의 미동을 지혜는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던 그녀에게 생긴 작은 변화. 그 것이 아무리 작을 지라도 인지할 수밖에 없는 변화였다.

무엇 때문에 생긴 변화일까...

어제 밤의 울음 때문인가?

[무슨 상관........]

지혜는 이마를 거실 창에 대었다.

아직 민수는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어제 밤 지혜의 품에서 잠든 민수는 지금까지 깨어남이 없이 자고 있다.

학교로 향할 시간이건만, 지혜는 아들을 깨우지 않았다.

-딩동...-

차임벨이 울린 것은 지혜가 막 주방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녀의 느낌대로 그 차임벨의 주인공은 남편이었다.

"수원에 급한 일이 생겨서 어제 밤에 그 곳으로 갔다가 오는 길이야... 다시 나가봐야 돼."

지혜가 묻기도 전에 동식이 말을 하였다.

"예....."

"아침을 먹지 못했는데... 준비 좀 해줘."

동식은 상당히 서둘렀다.

"알았어요."

동식은 아내의 대답을 귓등으로 듣고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남편을 지혜는 잠시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향했다. 이미 준비된 아침 식사 준비기에, 그녀는 국과 밥을 떠 놓는 것으로 남편의 아침식사 준비를 마쳤다.

"저 녀석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서류뭉치를 식탁에 내려놓고, 와이셔츠 소매를 잠그며 동식이 말했다. 자신과 아내의 방에서 잠을 자고있는 아들에 대한 말이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여전히 차분한 지혜의 음성.

"그래......? 얼굴이 온통 눈물 자국이던데...."

"......."

지혜는 남편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달래주길 바래."

동식은 상황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아내가 어제 밤에 아들의 고민을 상담해준 것으로 이해했다.

틀리지 않은 짐작. 차이가 있다면, 그 깊이의 차이일 것이다.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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