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 클럽 2
"오빠는 나랑 이러고 나면 민아한테 미안하지 않아?"
"야, 우리 쿨하게 섹파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민아의 남자친구 민준과 역시 민아의 친구인 나연이 한 침대에서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섹파! 나연아 우리 솔직하자. 나 구질구질하면 이 관계 지속 못 해. 너도 원하던 거 아니야? 그래서 니가 먼저 나한테 꼬리친 거잖아. 너 민아한테 열등감 있다고 했지? 그래서 나 뺏어서 보상받고 싶었던 거라고. 이제 이뤘잖아. 뭐가 더 필요한데?"
"그래, 내가 먼저 오빠 유혹한 거 맞아. 근데 오빠 생각보다 너무 쉽게 넘어 온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이뻣어?"
"지랄하네. 넌 눈 없냐? 누가 봐도 민아가 백배 낫지."
"헐. 뭐야 아무리 그래도 사람 앞에 두고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야 잘 들어. 나 순진한 남자 아니야. 너 말고도 섹파 많아. 섹파 유지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서로 감정에 솔직해야 해. 무슨 연인들처럼 밀고 당기고 하면 그건 끝나는 거야. 좋으면 만나고 싫으면 안 만나는 거지. 서로 감정 꾸미면서 피곤해지지 말자. 응?"
"그래도 내가 민아보다 나은 게 있으니까 지금 이렇게 같이 있는 거 아냐?"
"아 이게 계속 피곤하게 하네. 야 이거 봐봐. 민아랑 톡 한 거. 지난 2주 동안 얼굴 한 번 못 봤어."
민준이 나연에게 보여주는 톡에는 바빠서 미안하다는 민아의 단순한 대답뿐이었다.
"이 년도 참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자기 남자 친구한테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
"그치? 니가 봐도 그렇지? 그래서 지금 내가 너랑 같이 있는 거야."
"그 말, 민아 못 만나니까 나랑 만나는 거라는 거지? 와 오빠 너무했다. 나 비참해지려 하네."
"사실을 말하는 거야. 내가 민아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널 왜 만나겠냐?"
"그럼 다시 민아랑 자주 만나게 되면 나랑은 안 만난다는 거야?"
"그건 또 아니지. 한번 길을 텄는데. 그럴 수는 없지. 크크크."
"오빠도 참 나쁜 사람이다. 나도 민아 그년이 얄미워서 오빠 꼬시긴 했지만. 아니 근데 걔 정말 이상하지 않아? 솔직히 나 같으면 그 정도 외모에 몸매에 그러면 좀 잘난 척도 하고 성격도 이기적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무슨 기지배가 얼굴도 몸매도 성격도 천사야. 지랄 재수 없어."
"야 근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친구로 지내고 있냐?"
"흥. 그건 그거고. 오빠는 그런 거 까지는 몰라도 돼. 언젠가 고 년 망신 한번 당하는 거 내가 꼭 보려고 같이 다니는 거지. 아우 짜증나. 고딩때부터 그년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알아?"
"야, 근데 민아 내가 처음이었어. 나랑 처음 한 날 피 나오는 거 내가 확인했어."
"정말? 정말? 어머 어머 기지배. 어쩜 그럴 수가 있어. 그렇게 따라다니는 남자가 많았는데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와."
"뭘 설마 해?"
"아니 남자애들이 다들 민아는 철벽이라고 하길래 설마 했었지. 우리 모르게 누군가는 만나겠지 했었지. 근데 정말이었나 보네. 어맛. 이 남자 봐라. 나름 능력자네. 오빠는 그럼 민아를 어떻게 꼬신 거야?"
"야 말도 마라. 내 평생 그렇게 시간이랑 노력이 많이 들어간 여자는 민아가 처음이다. 암튼 그런 거 까지 너한테 설명할 건 아니고. 우리 지금 졸라 웃기지 않냐? 서로 빨가벗고 누워서 다른 여자 얘기만 하네 크크."
"아우 그 앙큼한 년이 남자 밑에 깔려서 앙앙대는 꼴을 한 번 봐야 내가 속이 시원하겠는데. 지나 나나 똑같은 여자지 뭐가 달라! 재수 없는 년. 에잇."
"야 달라. 많이 달라."
"뭐가? 외모 말고 나랑 민아랑 뭐가 그렇게 달라?
"그년 나무토막이야. 난 섹스가 즐거워야 좋은데 그년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아무 맛이 없어. 근데 넌 뜨거워. 씨발 존나 맛있어. 민아보다 나연이 니가 백배는 더 맛있어. 그러니까 우리 한 번 더 하자. 야 좀 엎드려봐."
나연은 얼굴을 샐쭉거리면서도 자신이 민아보다 낫다는 민준의 말이 기분 좋은지 냉큼 돌아 엎드렸다. 민준은 속으로 그런 나연을 비웃었다. 아무리 봐도 뭐 하나 민아와 비교할 만한 게 없는 년이 맛있다고 해주니까 좋아하는 꼬라지가 우스웠다. 그나마 얼굴 안 보고 뒤에서 하는 거면 그럭저럭 할 만해서 뒤집으라 한 건데 이 년은 칭찬으로 알아들었나보다.
"아흥, 민준 오빠. 내 보지가 민아 보지보다 더 이쁘지?"
"그럼, 얼굴은 많이 딸려도 보지는 나연이 니가 민아보다 백배 더 이쁘다. 야 다리 좀 더 벌려봐.."
이제 민아와는 더 이상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즐기는 관계로만 유지하기로 작정한 민준에게 스스로 다가온 나연은 좋은 유흥 거리였다.
2주 전. 민아는 Z 클럽에서의 충격적인 경험 이후 며칠을 집에서 칩거하며 괴로워했다. 자신이 한 행동이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다. 마지막 사장실에서의 선택은 돈을 받고 팬티를 내리는 창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남자 친구 민준의 연락에도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바쁘다며 대화를 피했다. 옷장 서랍 구석에 숨겨놓은 돈다발을 생각하며 정말로 나는 몸을 팔아 돈을 갚을 생각을 했던 건가 스스로 되묻기도 했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보내던 어느 날 밤. 야근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엄마를 걱정하며 방안을 서성이던 민아에게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엄마가 폭행을 당해 응급실에 있으니 찾아오라는 연락이었다.
급히 달려간 응급실에서 본 엄마의 모습은 성한 곳이 안 보일 정도로 처참했다. 민아가 물려받은 엄마의 미모는 폭행의 흔적으로 모두 지워져 있었다.
"다른 보호자는 안 계신가요? 따님이 들으시기에는 좀 민망할 수도 있는데."
"네. 다른 사람은 없어요. 그냥 지금 말씀해주세요."
"겉으로 보이는 외상 외에도 심한 성폭행의 흔적이 보입니다. 음부가 심하게 부풀어 있고 항문에 열창도 보이는 상태입니다."
"열창이 뭐죠?"
"상처가 나서 찢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적 손상이 심해서 당장 입원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신대 제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종류의 환자는 나중에 정신과 치료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의사의 설명에 놀라고 낙담한 민아는 정신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경찰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저희가 피해자분이 발견된 놀이터 주변의 CCTV를 급히 조사해서 검은색 카니발이 피해자를 내려놓고 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간이 늦고 골목이라 목격자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것도 저희가 최선을 다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른 보호자는 안 계신가요? 아버님은?"
"아버님은 안 계세요. 돌아가셨어요. 제가 보호자예요."
"아, 실례했습니다. 일단 지금 DNA 검사를 의뢰해 놓은 상태이니까 결과가 나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서로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다른 사항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찰들은 돌아갔고 민아는 의식 없는 엄마 옆에서 밤을 보냈다. 왜 이리 힘든 일은 연달아 생기는지, 낙천적 성격이라 자부해 왔던 민아지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힘들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음 날, 경찰은 cctv 영상에서 차량의 번호판 식별에 실패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민아 엄마의 몸에서는 아무런 다른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검사 결과도 알려왔다. 외견으로 볼 때 분명히 성폭행이 이루어졌는데 신체 내부는 마치 청소가 된 것처럼 깨끗하다는 것이다. 경찰로서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민아는 마지막 5만 원권 두 장을 지갑에 채워 넣으며 하늘을 봤다. 자신이 수모를 겪으며 벌어온 돈으로 엄마의 병원비와 집 월세를 냈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10만 원. 응급실 진료비는 어찌어찌 감당했지만, 병실로 옮겨져 장기 치료에 들어간 엄마의 병원비를 어찌해야 할지 눈 앞이 캄캄했다. 군에 있는 동생에게는 연락도 하지 못했다. 동생이 안다고 해결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민준에게서 오는 톡에도 답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자살, 파산, 휴학,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 부끄러운 행동들, 그리고 엄마의 사고. 연달아 벌어진 일들로 자존감이 떨어진 민아는 혹시라도 민준이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면 떠나갈까 두려워 외면해 버린 것이다.
당장 생활비와 병원비. 그리고 사채 이자를 마련해야 하는 압박감이 민아를 짓눌렀다. 그렇다고 Z 클럽을 다시 찾아갈 수 는 없었다. 그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 밤새도록 자신의 몸을 장난감처럼 다루었던 사장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민아는 궁리 끝에 사촌 오빠인 현태철에게 연락을 했다. 다시 찾아오지 말라던 큰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연락을 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만나자는 약속을 해주었다.
"한 달만인가? 좀 더 됐나? 여전히 이쁘구나 민아는."
"오빠. 잘 지내셨죠? 고마워요 이렇게 만나 주셔서."
"그래 일단 커피 좀 시키자. 이건 내가 살게."
민아가 두 사람이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이제는 중년티가 나는 뚱뚱하고 배 나온 태철과 꽃같이 아름다운 민아가 한자리에 있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 관계를 유추하기 힘든 어색한 그림이었다.
"민아야 너 학교는 휴학한 거니?"
"네.."
"그렇구나. 아깝네. 친구들이 많이 아쉬워하겠다. 너같이 예쁜 동기가 있으면 그거 보는 낙에 학교 오는 녀석들도 있었을 텐데. 참 남자 친구는 있니?"
"... 네. 대학 들어와서 만난 사람 있어요."
"그래? 오 그렇구나. 너 어릴 때부터 철벽 소리 듣는 거 알고 있어서 계속 그런가 했는데 이제 민아도 아가씨가 다 됐네."
"저... "
"그래 남자 친구랑은 어때? 잘 해줘? 연락은 자주 하고?"
민아가 용건을 꺼내려 하면 태철은 다른 소리를 하며 말을 막았다.
"그게 오빠 제가 오늘.."
"태성이는 이런 상황 알고 있나?
"아뇨, 연락 안 했어요. 괜히 방법도 없는데 고민만 할까 봐."
"그렇군."
사촌 오빠 현태철은 계속 말을 돌리며 시답잖은 수다로 시간을 보냈다.
"오빠 실은 제가."
"알아. 돈 때문이지?"
민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네. 엄마 병원비가..."
"그래. 전화로 네가 대충 얘기했었잖아. 척하면 척이지 뭐. 예상했어. 그런데도 내가 오늘 여기 나온 건 그래도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야. 나 돈 없어. 우리 집 돈은 아버지가 다 가지고 계셔. 근데 지난번에 아버지 말씀 들었지?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하신 거. 그럼 끝인 거야. 그리고 지금 내가 얼마라도 너한테 주면, 너도 생각해봐. 앞으로 다시 어려운 일 있을 때 넌 또 내 생각을 하겠지. 가서 빌면 또 돈을 주겠거니 하고. 그리고 그다음도, 또 그다음도. 이런 건 끝이 없어. 뻔한 일이지."
그래도 혹시 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나왔던 민아는 사촌 오빠 현태철의 말을 들으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 얘가 갑자기 울고 난리야. 쯧. 야 그런 건 남자 친구한테나 통하지 나한텐 안 통해. 하여간 얼굴 반반한 것들은 뭐 좀 불리하다 싶으면 눈물부터 질질 짠다니까."
어느새 태철의 말투는 처음의 친절함이 사라져 냉랭하게 변했다.
"야 까고 말해서 니 아버지가 우리 집 사람 취급 안 한 거 넌 모르지? 시발. 그게 얼마나 그랬으면 형제가 의절을 하고 살았겠냐. 근데 왜 우리가 너희 집안을 도와야 하는데! 저번에 그거 준거로 부족해? 너 거지야? 엉!"
민아는 서럽고 부끄럽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아 시발. 넌 말야. 니가 부탁하면 사람들이 다 들어줄 거라 생각하지? 아니 지금까지 대부분 그랬지? 사람들이 니 부탁 거절한 적 별루 없지? 니미, 얼굴이랑 몸매 타고나서 세상 편한 게 산 거야 이 년아. 정신 차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외모가 먹히는 거는 학생 때까지가 끝이야. 그다음에도 외모 내세우려면 몸 팔아 먹고살아야지. 너 그럴 거야? 엉! 몸 팔아 먹고살 거야? 흥. 뭐 그것도 방법이겠네. 아무튼 더 이상 우리에게 기댈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살아. 그럼 이만 나 먼저 간다."
태철이 그렇게 독설을 퍼붓고 떠난 후 민아는 혼자 남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해결해야 할 것들 병원비 생활비 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카페를 빠져나온 민아의 사촌 오빠 현태철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한다.
"김 사장, 나요 현태철. 그래그래 잘 지냈어. 인사는 됐고. 그년 오늘 나한테 왔어. 난 뭐 당연히 거절했지. 그니까 이제 김 사장이 적당히 오퍼하고 구슬리면 될 거야. 지가 무슨 수가 있겠어. 조금만 건드리면 넘어올 거야. 응. 응. 그래. 수고해. 지금까지 애썼어. 김 사장 보기보다 수완이 좋네. 내가 이번 일 잘 마무리 하면 수고는 잊지 않을게. 그래 수고."
카페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민아의 폰에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 내일모레가 이자 날짜야. 잊지 않았지? 그래도 이번엔 벌어간 돈이 있어서 어렵지 않겠네. 날짜 어기지 말고 꼭 입금해. 우리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고. -
안 그래도 답답하던 민아의 가슴에 커다란 짐이 또 하나 턱 얹혔다. 이제 시간이 없다.
다음 날 아침 민아는 Z 클럽 앞에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몇 번이고 멈춰서서 다른 방법이 없을까, 큰아버지에게 다시 매달려 볼까, 친구들이나 남자친구 민준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망설였지만 밤새 고민해도 해답이 없던 일이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계단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라 클럽이 썰렁하지? 뭐 우리 일이 그래. 나도 아직 출근할 시간이 아닌데 민아씨가 부탁해서 일부러 나온 거야. 그건 그렇고 2주 동안 연락도 없이 잠수 타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 우리 애들이 당장 잡으러 간다는 걸 내가 말리느라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참내 그러게 내가 왜 말렸지? 응? 뭐 땜에 말렸을까? 아 난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래서 내가 친히 문자까지 보내줬지? 혹시 까먹을까 봐. 우리 애들 다시 만나면 좋은 꼴 못 봐 알지?"
"죄송해요 연락 없이..... 그게..."
민아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힘들었던 고민, 어머니의 사고와 입원 등등.
"그래서 결론은 지금.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거네. 저번에 내가 준 몸.값. 도 다 써버렸고."
사장은 '몸값'이란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민아는 그 말에 지난 일이 생각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 민아씨 사정은 알아들었어. 그럼 지금 어쩌자고 여기 찾아온 거야? 뭐 해결 방법은 있어? 아니면 그냥 나한테 빌어볼 작정으로 온 거야?"
밤새 많은 고민을 한끝에 큰 결심을 하고 찾아왔지만, 막상 이 상황에 처하자 민아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아가씨가 이 상황에서도 어물쩍거리고 있네. 참 이래서 애들을 너무 편하게만 키우면 안되는거야. 이봐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저리 자존심 세우고 앉아있는 거."
"자, 자존심 아니에요...."
"그럼? 그럼 뭐야?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찾아온 거 아니야!"
민아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달그작거렸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저렇다니까. 이봐 순진한 아가씨야. 세상은 단순해. 물건을 사면 돈을 지불하는 거고. 돈을 받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거야. 아빠 엄마 밑에서 귀하게만 자라니까 이런 세상 단순한 이치를 모르지. 근데 이제 어쩌나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네? 니가 뭘 할 수 있지? 응? 당장 돈이 필요하지? 그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니가 뭘 할 수 있어?"
민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사장의 말이 가슴을 찔러 현실을 다시 깨닫고 초라하고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에 눈물을 흘렸다. 사장은 그런 민아를 보고 담배를 태우며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난 무식하지만 바보는 아니야. 연락을 끊는다고 우리가 모를 줄 알았어? 아가씨 사정 다 알고 있었어. 그래서 좀 준비를 해놨지."
사장은 책상 서랍에서 종이 몇 장을 가지고 와 민아 앞에 놓았다.
"봐. 하나는 신체 포기각서. 이건 민아씨 군대에 있는 동생한테 보낼 거야. 알아보니 신체 건강하더만. 사람 몸에서 떼어내도 죽지 않는 게 꽤 여러 개 있어. 알아? 신장, 간, 눈. 제대하면 바로 처리해야지. 그리고 또 하나는 입원동의서. 이건 민아씨 싸인이 필요해. 거기 싸인해. 그러면 우리가 민아씨 어머니 우리 쪽 병원으로 옮길 거야. 그럼 뭐 쉽지. 치료하면서 같이 떼어내면 되니까."
민아는 서류를 쳐다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잊고 있었는데 이 사람 사채업자였다.
"뭐? 내가 이렇게 해결 방법까지 다 제시해 줬잖아? 아가씨는 그냥 싸인만 하면 끝이야 얼마나 쉬워. 그러면 엄마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잘 지낼 거고 남동생은 필요 없는 거 몇 개 기증한 다음에 평생 우리가 시키는 일 하면서 돈 갚으며 사는 거야. 그럼 아가씨는 그냥 이대로 나가서 살던 대로 살면 돼. 뭐 아르바이트를 하건 학교에 다시 가던 그건 알아서 하고."
"...... 제가 .... 할게요... 제 거를 가져가세요..."
"뭐? 뭐라 그랬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지 웅얼거리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제 거! 제 거를 팔게요. 동생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간이건 신장이건 뭐라도 팔게요!"
사장은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아무 말 없이 민아를 바라봤다. 초조해진 민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정말 뭐라도 팔 결심이 있는 거야?"
"... 네..."
"아직 망설이는 거 같은데?"
"아니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할 거에요."
"그럼 말이야. 이 아가씨야. 아가씨한테 장기 몇 개 떼어내는 건 나한테 오히려 손해야. 자신을 몰라? 이리 와 봐."
사장은 민아를 일으켜 방 한쪽에 있는 거울 앞에 세우고 그 뒤에 섰다.
"봐 자기 모습을. 민아씨도 알지? 이쁜 거. 좀 많이 이쁘지."
뒤에서 민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사장의 손이 허리와 엉덩이로 내려왔다.
"그리고 몸매도 아주 훌륭하지. 매우 훌륭해. 그런데 이렇게 예쁜 몸을 째고 간을 떼 내라고?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응? 대가로 지불할 게 그거밖에 없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정말 몰라?"
그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민아도 자리로 돌아왔다.
"결정만 해. 내가 비싸게 팔아줄게. 그럼 어머니도 동생도 다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어. 민아씨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이랑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내가 여기 클럽 운영하는 거 봤지? 난 비밀 보장 철저해. 민아씨가 일하게 된다고 해도 일상에는 아무 영향 없을 거야."
민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은 승낙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럼 정말 결심이 선 건지 확인을 해야지. 이봐 밑에만 벗고 저기 책상에 엎드려."
민아는 주춤거리며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벗었다. 사장은 옆에서 그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다.
"팬티도 내려."
사장 앞에서 하체만 알몸이 된 민아는 책상으로 다가가 거기 기대 엎드렸다. 사장은 그런 민아를 뒤에서 쳐다보기만 할 뿐 다가오지 않았다. 민아는 노출된 하체가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이쁘군. 역시 이뻐. 내가 참 많은 여자를 봐 왔지만. 민아씨는 정말 보지마저도 이뻐. 아주 좋아."
바지를 벗어버린 사장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난번 이곳 사장실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2시간이 훌쩍 지난 후, 머리카락이 정액으로 얼룩진 채 바닥에 앉아 있는 민아를 보며 사장이 말을 했다.
"하아. 아이고 좀 힘드네. 내 나이에 연속 세 번은 정말 무리야 무리. 아이고. 근데 네 몸이 와 이건 마약이네 마약. 야 일단 좀 씻고 나와라. 씨발 너한테서 내 좆물 냄새가 진동을 한다."
민아가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자 사장은 옷을 갖춰 입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리와 앉아. 지금 한 거로 이번 달 이자는 퉁쳐줄께. 불만 없지? 그래 몸 팔아 돈 번 기분이 어때?"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이번 달 이자가 해결됐다는 말에 가슴에 무거운 추 하나가 사라진 것 같다. 그런데 왜 부끄럽지 않지? 두 번째라 그런가? 막 엄청나게 비참하고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담담하다. 내가 이런 상황까지도 다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민아는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맴돌았지만 사장 앞에선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자 그럼 계약을 해야지. 이거 좀 봐봐."
사장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현민아 매니지먼트 계약서'라고 적혀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잘 들어. 민아씨랑 나랑 매니지먼트 계약하는 거야. 매니지먼트 알지? 연예인들 하는 거 그런 거 있잖아. 행사 잡아주고 대신 돈 받고 그런 거. 그러니까 나는 민아씨 몸이라는 상품을 비싸게 팔 수 있게 도와주는 매니지먼트 사장이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돈을 지불할 소비자를 연결해 주면 민아씨는 가서 상품을 파는 거지. 물론 상품은 민아씨 몸이야. 그러면 난 그 소비자에게 비싼 돈을 받아서 일부는 우리 빚 갚는 데 쓰고 일부는 민아씨에게 수고비로 돌려줄 거야. 간단하지?"
민아는 계약서를 손에 들고 읽어보려 했지만, 눈에 눈물이 고여 글을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계약에는 조건이 좀 있어. 그 뒤에 다 쓰여 있으니까 나중에 차분히 읽어보고 지금은 몇 개 중요한 거만 말해줄게. 계약 기간 7년. 그동안에 원금 회수 못해도 7년이 지나면 계약은 종료. 그럼 민아씨는 자유야. 이건 내가 너무 착한 사람이라 집어넣은 조건이지. 흐흐. 만약에 민아씨가 일을 열심히 해서 7년 안에 원금을 갚고 수익이 발생하면 그건 민아씨 재산이 되는 거야. 그리고 비밀 보장. 이거 서로를 위해서 꼭 필요해. 민아씨가 몸 팔고 다닌다고 떠들고 다닐 사람은 아니지만 이건 서로 확실히 해야 해. 나도 민아씨도 이 계약은 누구에게도 비밀이야. 내가 소개해주는 일을 하더라도 민아씨 신분은 철저하게 보장해 줄 거야. 그러니까 민아씨도 어디 누구에게라도 이런 일 한다고 말하면 안 돼. 비밀이 깨지는 순간 계약은 파기야. 내 손님들은 신분 보장을 원하거든. 이해하지? 그리고 중요한 마지막 사항. 일상으로 돌아가. 충실하게 살아. 내가 파는 상품은 '현민아'라는 사람이야. 그냥 예쁜 몸은 텐프로 돌아다니며 찾아보면 찾을 수 있어. 민아씨가 상품성이 있는 거는 술집 아가씨가 아니라 일반인이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학교도 복학하고 친구도 만나고 예전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 그 모든 게 다 민아씨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게 되는 거야. 그리고 지금도 훌륭하지만 이제 프로가 되는 거니까 더 가꿔야 해. 운동 시작해. 몸매 관리랑 피부 관리도 하고. 그런 건 우리 쪽에서 지원해 줄 거야. 매니지먼트니까. 그럼 거기 싸인해."
민아는 눈에 고인 눈물을 옷 소매로 닦아내고 서류 아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나 현민아는 이 매니지먼트 계약 내용을 충분히 숙지했고 그 내용에 동의함에 서명합니다.
본인 현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