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아라비아 왕국의 프린세스 (81/88)



〈 81화 〉아라비아 왕국의 프린세스

아랍의 왕족이라면 다들 독실한 이슬람 신도들이 아니신가?

노는 행태로 보아서는 그야말로 평범한 아메리카 대륙의 젊은이들이다.

 음악을 들으며 디스코 음악에 몸을 흔든다.

코카콜라를 마신다.

술도 마찬가지다.

거리낌 없이 마신다.

하긴!

금기(Toboo)란 것은 깨뜨리라고 존재하는 것이니까!

이것만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강석현은 여전히 강석현이다.

이들 사이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나 고일상이야 뭐, 늙은 꼰대 아저씨니까!

***

넓은 거실이 댄스 음악으로 가득 찬다.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노래를 열창한다.

물론 오디오 속에서.

쟈스민 공주님께서는 마돈나의 팬인 모양이다.

색연필로 자신의 입가에 검은 점을 찍고는 마돈나로 분하신다.

그야말로 갈색의 마돈나다.

Papa don't Preach! ( 아빠! 잔소리 좀 그만! )

마돈나의 히트곡을 마돈나 뺨치게 흉내내신다.

공주님께서 아무래도 아버지에게 맺힌 것이 많으신가보다.

잠시  주제를 잊고 아라비아 공주님의 공연(?)에 빠져 들었다.

나이는 스무살 전후?

매력적인 여인이다.

공주라는 후광까지 합쳐져서 그야말로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런 지체높은 아랍의 공주님께서 미국 팝가수의 마돈나의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모르겠지만 춤은 마돈나와 괘 유사한 구석이 있다.

하긴,  눈에야 그것이 그것이라고 해 두자.


공주님의 공연이 길어진다.

'Papa don't Preach!'

에 이어서

'True blue'

그리고

'Like a Virgin' 까지!

마돈나의 히트곡 메들리가 이어진다.

단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이다.

정작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혹은 알고 있어도 똑 같이 저런 맹숭맹숭한 반응만을 보일  같다.



공주님의 눈은 강석현을 보고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강석현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쑥맥같은 강석현은 그런 공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

쑥스러워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쩌면 저놈은 지금 마음 속으로는 자신의 숙적 카오사이 갤럭사이와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백번, 아니, 수천번을 싸워보았던 자신의 라이벌과 주먹을 주고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 녀석은 서울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세우고 있는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뮬레이션 하면서 다듬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주님은 애가 타시는 눈치다.

어쩌면 삐친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난 이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세상의 중심만 있었던 여인의 자존심에 기스가 난 모양이다.

 뾰로퉁한 모습이 귀여워서 혼자 웃었다.

조금은 특이하나 평화로운 시간이다.

그 평화를 깨뜨리는 남자가 있다.

누굴까?

공주님의 남자친구쯤 되려나?

아니다.

오빠?

오빠란다.

사촌 오빠?

 평화로운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가 흥분을 하고 있다.

공주님과 말다툼을 벌인다.

공주님의 품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극동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왔다는 프로복서에게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웃기는 일이다.

석유 부국의 왕자님께서 빈털터리 망명객을 질투한다는 아이러니에 입맛이 씁쓸하다.

사촌간의 말다툼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나같이  일 없는 아재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지 다른 청춘 남녀들은 자신들의 다시오지 않을 젊음을 즐기느라 바쁘시다.

“What a whore! ( 창녀 같으니! )

왕자님께서 말씀이 험하시다.

공주님께서 극심하게 반발하신다.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사촌 오빠란 남자가 씩씩거린다.

공주님이 걱정이다.

짝!

세상에!

공주님께서 뺨을 맞았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다.

공주님께서 참지 않고 소리를 치신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랍의 왕자님께서 또다시 손을 높이 치켜든다.

보기에 불편하다.

익숙한 남자가 치켜든 왕자님의 손을 잡는다.

혹은 뒤로 꺾어 버린다.

아랍의 왕자님이 힘을 써 보지만 전미 골드 글러브 위너의 힘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파티는 파장을 향해 서서히 걸어간다.

공주님의 친구들, 혹은 시녀들이 몰려와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공주님을 달랜다.

묘한 기시감이다.

혹자는 강석현을 일컬어 정의의 기사라고 할 것이다.

혹자는 강석현을 트러블 메이커라고 할 것이다.

강석현을 오랫동안 지켜본 내 입장에서는 둘 다 틀렸다.

강석현은 아무 생각이 없다.

본능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는 놈이다.

그런 강석현에게 거창한 정의감 따위는 없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여자들의 입장은 다른 모양이다.

위기의 순간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지켜준 강석현에게 로맨틱한 감정이 생기나 보더라.

나쁜 것은 그런 강석현을 질투하는 남자란 동물들의 찌질함이라고 해 두자.

명쾌하지 않나?

강석현의 불행을 원치 않는 나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는 강석현이 자중을 했으면 싶다.

자신에게 국적을 허락한 나라의 왕자인지 왕세자인지 하는 인간과 분쟁을 만드는 짓은 삼갔으면 좋겠다.

남자란 동물이 얼마나 질투심이 강하고 찌질한 존재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 남자들은 강석현의 이런 행동들을 용납하기 어려워 하더라.

사라졌던 아라비아 왕국의 왕자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손에는 경호원에게서 빼앗은 권총을 들고서 말이다.

권총의 위력 앞에 모두가 침묵한다.

사촌 오빠의 총구가 사촌 동생인 공주님을 겨냥한다.

모두들 경악을 한다.

경악을 할 뿐이다.

쟈스민 공주님의 고운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강석현이 그런 공주님의 앞을 막아선다.

시커먼 총구 앞에 자신의 가슴을 들이민다.

자신의 목숨으로서 연약한 여인을 지켜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참으로 강석현다운 어리석은 행동이다.

녀석은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평소  주장대로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까?

지리한 대치가 이어진다.

쌍방의 경호원들의 설득과 회유 끝에 사태는 평화롭게 정리된다.

세상 무서울것이 없어보이던 아라비아 왕국의 왕자님께서 발을 구르며 분해 하신다.

단지 그 뿐이다.

강석현은  사이에 또 한 명의 적을 또 만들었고,   명의 열혈 팬을 만들었다.

지켜보던 내 간만 조그맣게 오그라들 뿐이다.

의협심 진한 남자 강석현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

특히 심장에!

***



“야! 강석현! 너  그랬어? 혹시 공주님 좋아하냐?”

“아뇨?”

“......”

“......”

뻔한 것을 묻는 놈이 바보다.

“이제 좀 죽이고 살자!  후세인 왕자란 사람, 너에게 도움이 되어   있는 사람이잖아? 좋은게 좋은 거란 말이있어!”

“저는 그게 잘 안되요. 천성이 그런가봐요.”



오래지 않아서 강석현의 프로모터 사토미가 달려온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더라.

내 말이 맞다니까?

다행히 프로모터 사토미는 사태를 정리할 능력이 있는 여자다.

젊은 왕족들을 얼르고 달래어 적당히 무마한다.

나에게도 속삭인다.

 해결 될 것이란다.


쟈스민 공주께서 아까부터 강석현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공주님께서 마치 지체높은 왕자님을 바라보듯 강석현을 바라보고 있다.

운이 좋은 놈인지, 운이 나쁜 놈인지 알 수가 없다.

정작 본인은 어여쁜 공주님의 관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강석현은 프로모터 사토미와 중요한 비즈니스가 있단다.

사토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강석현이 떠난다.

이렇게 강석현의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내일이면 강석현은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아라비아 왕국의 시민 신분으로 말이다.

그리고 도쿄를 경유해서 서울로 들어갈 것이다.

그의 귀국을 한국에 있는 그 누가 짐작이라도 할까?

이 두려움 모르는 열혈 청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생각해둔 것들을 행동에 옮길 것이다.



“뭐야? 내 티켓은? 내 비행기표는 안 끊어주는 거야?”

"......"

"하여튼! 있는 놈이 더 하다더니! 알았어! 비행기 티켓은 내가 사면 되는 거지?"

“기자님은 이곳에서 좀 더 쉬시다가 오세요. 한국은 위험하니까요.”

“무슨 소리야? 나 고일상이를 비겁자로 만들 작정이야?”

“기자님은 중요인사잖아요? 안전한 곳에 계셔야지요.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 나서실 수 있을 거 아닙니까?”

“......”

“기자님 마음 압니다. 이번 한 번만 제 부탁 들어주세요!”

“......”

“쟈스민 공주님께서 기자님을 도와준답니다. 공주님이 기자님을 좋게 본 모양이에요!”

무슨!

내가 아니라 강석현을 좋아하는 거겠지.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아무튼 졌다.

저 고집을 어떻게 이길까?

나는 남고, 강석현은 떠난다.


의리의 사나이 강석현의 무운을 빌어 본다.

그런데 사토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사토미는 아직 자고 있을 겁니다."

"......"

"......"

뭔가 의미심장하면서도 야사시하게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겠지?

참!

그런데 일기장은?

민예린의 일기장은 누가 가지고 있는 걸까?

나는 아니고,

강석현도 아니고,

설유연도 이상훈도 아니란다.

그럼 누구?

강석현은 짐작이 가는 곳이 있는 모양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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