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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해직기자 고일상 氏의 미국 복싱 취재기 (8) (80/88)



〈 80화 〉해직기자 고일상 氏의 미국 복싱 취재기 (8)

레이놀즈 쪽의 불꽃이 먼저 사그러들기 시작한다.

그의 속사포 같던 스트레이트가 흐물거리기 시작한다.

강석현은 여전하다.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은 어퍼컷, 양훅의 콤비블로우를 쉬지 않고 폭발시킨다.

최고 수준으로 올린 에너지 레벨을 낮출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어 보인다.

이미 그의 핸드 스피드는 레이놀즈의 그것을 넘어섰다.

마치 최전성기의 최철권을 보는 것 같다.

아니, 그 이상이다.

치고받으며 공방을 거듭하던  축이 무너져 내린다.

레이놀즈의 주먹이 허공을 허우적거린다.

강석현은 바위처럼 버티고 서서 비틀거리는 레이놀즈의 얼굴과 몸통을 때리고 찍어버린다.

레이놀즈의 눈동자가 허옇게 희번덕거린다.

지켜보던 주심이 두 선수 사이에 뛰어들어 시합을 중지시킨다.

비틀거리는 레이놀즈를 부축하며 상태를 체크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달랜다.

강석현이 날렵하게 뛰어올라 청코너 쪽 로프 위에 발을 걸치고 올라타고는 포효한다.

그 짐승 같은 포효에 미국의 복싱팬들도 아낌 없이 환호를 보낸다.

나 고일상도 강석현의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손을 번쩍 들고 함께 포효하고 말았다.

이 광경을 최철권 선수, 아니  관장이 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생생하게 말해 줄 것이다.

당신의 수제자 강석현이 당신이 가르쳤던 그 전광석화 같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완벽하게 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말이다.




******




"아이고! 고일상 기자님!  오늘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구 아야!"

강석현이 자신의 얼굴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엄살을 떤다.

얼굴은 퉁퉁 붓고 여기 저기 멍이 들었지만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몸은 괜찮은거지? 축하해! 강석현 선수! 프로 데뷔 이래 7번째 승리인가? 7전 7승 7 K.O! 멋진 전적이야!"

"그래봤자 아직 풋내깁니다. 스무 번은 싸우고 나야 진짜 프로가 되는 거라고 저를 가르치신 최 관장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하셨잖아요. "

"무슨 소리야? 골드 글러브 위너 아니신가? 이제 비단길을 걸어야지!"

진심이다.

강석현이 비단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골드 글러브를 차지했고 언론의 관심도 받고 있다.

이대로라면 몇 번의 승리와 유능한 프로모터의 도움만 뒷받침 된다면 세계 타이틀 도전도 멀지 않았으니까.

한 눈 팔지 말고 쭈욱 이대로 달려갔으면 좋겠다.

복싱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나저나 그동안 무슨 훈련을 한 거야?  엄청난 핸드 스피드 말이야. 보면서도 믿기지 않더라니까?"

"아아! 그거요? 오늘 상대인 레이놀즈가 워낙 펀치가 빨라서 나도 지지 않으려다 보니······. 그런데 오늘 너무 많이 맞았어요. 그 녀석 펀치는  얼마나 묵직했는데요? 하여간 두  다시 싸우고 싶지 않은 녀석이에요."

"허!  정도였어? 그놈 하고 비교하면 어때? 태국의 카오스 갤럭사이 말이야."

"······."

내가 괜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갤럭사이에게 패한 것은 강석현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을 알면서······.

"저어, 고 기자님께 알아봐 달라고 부탁드린 것은 어떻게 되었나요? 진작에 여쭙고 싶었지만 시합이 시합인지라······."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강석현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내 생각은 이렇다.

강석현이 미국에서 계속 도전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오늘 시합을 보고 깨달았다.

강석현이 그동안 얼마나 절치부심하며 단련을 해 왔는지 말이다.

앞으로 3-4년 동안 신체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황금 같은 시기를 복싱 외적인 일에 휘둘리며 흘려버리기에는 그의 실력이 너무도 아깝다.

이제 곧 거물 프로모터들이 전미 골드글러브 위너인 강석현을 만나려 할 것이다.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미국에 머물러 있으면서 몇 걸음만 더 나가면 되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석현은 한국의 일들을 상세히 파악하려 든다.

"역시, 그렇군요. 제가 한국으로 가야겠습니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끝내는 것이 맞겠지요."

"석현이 너는 미국에서 운동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지금 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차라리 설유연이랑 이상훈이 한국에서 잠시 몸을 피해 미국으로 오도록 초청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병상에 계신  관장님도 마찬가지고······. "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역시 한국으로 가야 됩니다. 가서 설유연이랑 이상훈이 나를 만나기 전의 상태로 만들어놓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네요."

역시 강석현이다.

고집불통 녀석!

기어이 비단길을 마다하고 진창길을 가겠다고 한다.

"석현이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상훈을 도우려면 암흑가 놈들이랑 얽히게 되어 있다. 설유연도 마찬가지고······. 더구나 설유연의 스폰서는 미래일보 박상영 사장이야. 박선호의 작은 아버지! 감당할  있겠냐?"

"조폭이 아니라 조폭 할아버지라도 제가 감당해야죠. 나 때문에 누군가가 대신 당하는 건 예린이 누나 하나로 충분해요.  이상은 제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귓구멍이 꽉 막힌 놈!

하긴 저 놈 고집을 누가 당하랴?

사실 강석현이 이렇게 나올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석현이다.

"졌다, 졌어! 네 마음대로 해! 대신 나중에 나를 원망하면 안 된다!"

"감사합니다. 고 기자님! 잘못되어도 저 혼자 잘못될 겁니다. 고 기자님을 원망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겁니다."

"석현이 네가 부탁한 자료다. 대한민국 조직폭력배들 계보야. 미래일보 박선호가 신사동의 김 상사, 보영그룹 최욱이가 영등포의 자칼의 뒤를  주고 있어. 그 둘이 손을 잡고 무교동의 낭만검객 이상훈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  아무리 이상훈이라도 오래 버티기 힘들 거야."

"기자님 말씀대로라면 한시라도 빨리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거로군요."

"그, 그런 뜻이 아니야. 넘겨짚지 마! 민예린 씨의 일은 참으로 안타까워. 복수를 하겠다는 강석현 선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해. 하지만 이건 힘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잖아. 법으로 해결해야 해!"

"후후! 법으로 해결한다구요? 그게 가능할거 같습니까? 그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제가 이렇게 세계를 떠돌아다닐 일도 없었겠죠."

"그때와는 다르지. 법은 원래  있는 자의 편이야. 석현이 네가 세계 챔피언이 되고 부자가 되면 상황은 달라지게 되어 있어."

"돈이 그렇게 힘이 셉니까?"

"그게 자본주의야. 보영 그룹도 미래 일보도 결국 돈의 힘이 아닌가? 시시한 챔피언이 아닌 슈퍼 챔피언이 되면 돈도 돈이지만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겨! 여론이란 게 별거 아니야. 돈 있고 유명한 사람 말을 더 믿어주게 되어 있어."

"세상이란  참 치사하군요. "

"그래, 세상은 치사한 거야. 억울하면 출세하란 말이 왜 나왔겠어? 그러니 유능한 변호사를 구해서 한국 쪽 일은 변호사에게 맡기고 석현이 너는 운동에 집중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순 없죠. 가능한 수단은 모두 써 볼 생각입니다. 주먹이든, 돈이든, 법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 봐야죠."

"결국 한국으로?"

"네, 가능한 빨리!  프로모터와 계약이 있으니 그 문제는 해결하고 가야하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강석현 선수의 프로모터라면 결코 놓아주지 않을  같은데? 더구나 사토미는 야심이 큰 여자로 보이던데? 아닌가?"

"욕심이 큰 여자니 내가 한국으로 가는데 협조를 해  겁니다. 사토미도 이제 나를 놓치기 싫을 테니 말이에요."



******


“고일상 기자님! 축하연이 있는데 기자님도 오셔야죠!”

“내가  했다고 강석현의 승리 축하연에 참석하냐? 난 괜찮아!”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그리고 고 기자님께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밥만 먹이려고 부르는 자리가 아닌 모양이다.

축하연이라!

하긴 미래의 챔피언이라면 그런 화려한 파티에도 참석해야 한다.

슈퍼스타는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링 위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자신의 영향력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진짜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다.

승리 축하연이란 것이 궁금해진다.

조촐한 파티겠지?


######



이건 뭐!

할 말이 없다.

미국이란 나라를 내가 착각하고 있었다.

왜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이 나왔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마크 레이놀즈를 이기기 전과 후의 강석현은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저택이란 이런 것을 말하나 보다.

나를 막아선 경호원들에게 초대장을 보여주자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커다란 저택의 문이 열린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차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히 되는 큰 저택이다.

마치 궁전에라도 초대를 받은 기분이다.

넋이 나간 나를 강석현이 맞아준다.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강석현과 함께다.

“Welcome! Mr. Ko!"

“고 기자님! 환영합니다.”

촌놈이 얼이 빠지고 말았다.

“서, 석현아! 저 여자는 누구야?”

“네?”

“너 곁에 있던 공주님 말이야! 완전 바비 인형처럼 생긴 그...”

“아! 쟈스민 공주님이요?”

“......”

공주님 같은 여인이 아니었다.

진짜 공주님이란다.

아라비아의 왕족이시란다.

전미 골드글러브 위너!

그리고 지난주 스포츠 채널의 복싱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떠오르는 복싱 유망주!

K.O 아티스트 'Kang' 의 후원자는 왕족이었다.

아라비아 공화국의 왕세제이자 총리대신의 딸인 쟈스민 공주다.

물론 후원자의 위력을 자신의 위력으로 착각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겠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닌가?

호가호위도 호랑이 곁에 있어야  흉내라도 내볼 수 있다.

양아치가 주인이라면 제 아무리 혈통 좋은 세퍼트도 똥개가 되는 법이니까.


“이야! 강석현! 너 출세했구나! 장하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넨 것인데 이 순진한 소년은 손사래를 치며 민망해 한다.

“저는 그냥 상품입니다. 신흥 국가의 명예를 세상에 알리는 장식품? 아니, 그것도 잘 할 때 이야기구요.”

뭐가 그렇게 매사에 진지하시나?

너무 빨리 겪어버린 세상의 풍파가 이 젊은 청년을  늙은이로 만들고 말았다.


아무튼 스폰서가 빵빵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신의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날아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그 많은 복싱 유망주들 중에서 셀럽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강석현이 매력적인 복서라는 것을 인증받은 셈이다.

일단 셀럽의 장바구니에 들어갔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슈퍼 스타가 되기 위한  단계를 통과했다고 해도 좋다.

그 다음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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