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전(前) 페더급 동양 챔피언 최철권 씨의 회상 (1)
'그런데 사토미가 누구야? 여자라구? 예뻐?'
'왜 대답을 못해? 예쁜 거 맞구나! 둘이 무슨 사이야?'
'혹시 그 여자랑 잤어?'
'잤구나!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 줄 게! 대신 이번만이다? 다음부턴 그러면 절대 용서안해줄거야! 내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할 거라구! 흥! 그러니까 나를 안고 싶으면 다른 여자는 돌 보듯...'
이런 것을 묻고 싶었다.
시시콜콜 말이다.
보통의 연인이라면 그렇겠지?
질투도 하고, 잔소리도 하고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그와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친구 사이다.
그리고 굳이 부연설명을 붙이자면 동맹?
동맹이라기 보단 혈맹이고 싶긴 하지만 말이다.
뭐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이 정도 남자라면 나 설유연의 친구로 손색이 없으니까······.
"한국에 남아서 놈들과 싸우고 싶지만, 뭐 좋아! 석현이 너 말대로 할게. 언제 가면 돼? 일주일 후? 아니면 사흘 후?"
"가능하면 빨리 가는 편이 좋아. 오늘! 김포공항으로 가야 해. 오사카 행 비행기 표는 내가 준비해 두었어."
"싫어! 같이 싸우자고 해놓고 나 혼자 도망치는 건 싫어! 비겁해!"
"유연이 네가 무사해야 내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어."
"그런 게 어딨어?"
"결정적인 순간에 네 도움이 필요할거야. 그때까지 네가 무사해야 우리가 이기는 거야!"
이 남자, 나를 구하러 올 때부터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모양이다.
당혹스럽긴 하지만 그의 말에 틀린 것이 없다.
같이 싸우자고 해 놓고선 나 혼자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어쩌면 그와 다시 이별을 하는 것 같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무사해야 '우리'가 이긴다는 말이 나를 흡족하게 한다.
뭐, 그렇다면 이 남자의 말을 들어줄 용의도 있다.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면 말이다.
"알았어! 석현이 네 말대로 할게! 대신······."
내가 바라는 게 뭐냐구?
뭐긴 뭐겠어?
나는 아직 내 욕망을 채우지 못했다.
오늘만은 내 욕망에 충실하기로 했으니까······.
그에게 빼앗겼던 막대 사탕을 다시 내 손에 쥐었다.
다시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손에 꽉 쥐어본다.
구렁이 같은 것이 내 두 손 가득 잡힌다.
이제부터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길 것이다.
손에 잡힌 구렁이가 서서히 꿈틀거리기 사작한다.
구렁이에게 부드럽게 키스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입을 크게 벌려 놈의 대가리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나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놈이 대가리를 빳빳이 세우고 저항을 시도하지만 나 설유연의 집요함을 이길 수 없다.
내 입안을 가득채우고 있는 용맹한 남성의 정기가 내 미각에 느껴진다.
그의 남성을 입에 가득 물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세상의 그 어떤 여자도 부럽지 않다.
용맹한 남자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나도 용감해진 것만 같다.
"위험해! 서두르지 않으면 유연이 네가 달아났다는 것을 최욱이가 알게 될거고, 그러면······."
"싫어! 난 지금 아무 말도 안들려!"
흥!
지금 즐기지 않으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이 즐거움을 양보하지 않을 거다.
내가 그의 잔소리를 들은 체도 하지 않자 그도 이제 포기를 한 모양이다.
말없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
왠지 칭찬을 받은 느낌이다.
이 사내도 내가 이러는 것이 싫지는 않겠지?
그렇겠지?
그의 남성을 조금씩 내 목구멍 속 깊이 받아들이려 노력해본다.
힘이 오를 대로 오른 구렁이가 꿈틀거리며 내 목구멍을 괴롭히더니 이제 한 마리 용이 되어 승천하려 한다.
나는 용의 목에 매달려서 그와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오를 작정이다.
결코 놓지 않을 거다.
용이 승천(昇天)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무심하던 남자의 손이 내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고는 자신의 다리 사이로 거칠게 잡아당긴다.
그의 두 다리가 우악스럽고 무서운 용처럼 내 허리를 휘어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나도 지지 않고 용의 분신을 힘껏 움켜쥔다.
그가 날아오르려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용이 힘차게 날아오른다.
내 입술은 용이 토해내는 푸른 여의주의 파편을 남김없이 받고 또 받아들인다.
폭발할 것만 같았던 남자의 몸이 조금씩 고요해진다.
빨갛게 물들었던 내 뺨도, 세상을 다 삼킨 것 같았던 내 입술도 조금씩 평온해 진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몸에서 떨어지기 싫다.
그의 남성을 놓아주기 싫다.
그런 나를 억지로 남자가 위로 끌어올린다.
나는 재미난 만화 영화를 보다가 끌려나온 어린아이처럼 못내 아쉬운 얼굴로 그의 몸 위에 엎드려 숨을 고른다.
하지만 그의 분신만은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것을 손에 꼭 쥔 채로 그의 가슴에 입술을 맞춘다.
"석현이는 나뻐! 아주 못됐어! 어떻게 여자를 이렇게 괴롭히냐?"
"······."
남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이제 내가 귀찮아진 것인지 말없이 내 몸을 쓰다듬기만 한다.
"나는 해외로 도망간다고 치고, 석현인 이제부터 어떡할 거야?"
"우선 신세진 것을 갚아야지. 관장님도 찾아뵈야 하구, 그리고······."
"아, 최 관장님 몸은 좀 나아지셨다고 들었어."
강석현을 지도했던 최철권 관장님은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뺑소니였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
어쩌면 누군가가 사주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것이다.
최 관장님은 머리를 크게 다쳤고 수술을 하셨다.
다행히도 조금씩 차도가 보인다고 한다.
"참! 고맙다는 인사가 늦었어. 최 관장님을 보살펴줘서 고마워! 그 은혜는 잊지 않을 거야. 평생."
"그런 이야기 하지 마. 내가 더 미안하잖아."
내가 한 것이라고는 최 관장님의 수술비와 병원비를 낸 것 밖에 없다.
그 정도 가지고 은혜 운운하는 것은 민망하다.
최욱의 눈이 두려워 좀 더 적극적으로 돕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돈 필요하지 않아? 내가 좀 줄까?"
"유연이 너도 어렵다는 거 알아. 출연하던 프로그램들 모두 잘렸다며? 영화는 모두 엎어지고! 모두 나 때문에······."
"석현이 때문이 아냐. 그냥 잠시 쉬려는 거야.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려왔잖아?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말이야. 이젠 못할 짓은 하지 않으려구해."
"······."
"그래도 딸린 식구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가족들이 걱정이네! 우리 집에서 나 하나 빼면 돈 벌어 올 사람이 없걸랑? 헤헷!"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살짝 난다.
이런 소리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 남자에게만은 이런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이거 뭐야? 이런 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항공권이랑 또... 이건 돈 아냐? 달러네! 어디서 이렇게 큰돈이 생긴 거야? 그리고 이걸 왜 나한테 줘? 석현 씨가 써!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나 스타야! 설유연!"
나는 도리질을 치며 그가 건넨 봉투를 거부한다.
이 남자의 곤궁함을 뻔히 아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의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 남자, 또 고집을 부린다.
하여튼.
"일본에서 돈을 좀 벌었어.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지. 뭐, 이 정도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말이야."
"치이! 석현이 네가 알긴 아는구나? 나한테 갚을게 많다는건······."
"알지. 모르면 안 되지."
"그럼 지금 갚아! 돈으로 갚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걸로······."
"응? 다른 거라니?"
나도 모르게 남자의 입술을 덮치고 말았다.
이 남자가 그동안 내 생각을 조금은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손에 쥐고 꼼지락거린 덕분인지 그의 분신에 다시 힘이 돌아오고 있다.
"석현아! 해줘! 응? 나 지금 몸이 너무 뜨거워······."
바보같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기어이 남자에게 나를 범해달라고 애원하고 말았다.
그가 나를 안아주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늘을 보나?
다행이다.
역시 강석현은 의리를 아는 남자다.
은혜를 갚을 줄 안다.
그가 드디어 나를 끌어안고는 사랑을 해 줄 모양이다.
내 젖가슴을 어루만지던 남자의 손이 촉촉이 젖은 내 사타구니로 파고든다.
나 설유연은 배우다.
이제 조신한 요조숙녀(窈窕淑女)로 돌아와서는 눈을 살짝감고서 그가 나에게 선물해줄 쾌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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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최철권은 촉망받는 복싱 유망주였다.
배운 것이 없고 배가 고파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착실하게 몸을 단련했고, 다행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익힌 원투 스트레이트는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무적이었다.
아마추어 복싱의 채점 방식에서는 정권 부위로 안면을 정확히 가격하는 스트레이트가 가장 득점에 유리하다.
내가 익힌 원투 스트레이트는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무적의 무기였다.
나 최철권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앞세워 대한민국의 복싱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캐나다에서 열린 몬트리올 올림픽에 나갔다.
올림픽 무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히 내가 참가한 페더급은 소련, 동독, 미국, 쿠바 등의 복싱 강국에서 나온 강호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미국 선수와 동독 선수를 연파하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준준결승에서 복병 불가리아 선수에게 3-2 로 아쉽게 판정패하며 귀국길에 올랐다.
그야말로 절치부심!
다음에 열리는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몸과 마음을 가혹하게 단련해가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소련에서 열리는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목표가 사라졌고, 방황을 했다.
다음 올림픽 까지 기다릴 처지가 아니었다.
길은 외줄기, 프로전향이었다.
다행히도 내 원투 스트레이트가 프로 무대에서도 통했다.
전광석화 같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앞세워 K.O 행진을 거듭해 나간 끝에 동양태평양 페더급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동양태평양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세계랭킹 톱 텐 이내에 무조건 진입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세계챔피언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이제 단 한 걸음을 남겨두었다.
세계 챔피언의 자리까지 말이다.
필리핀 마닐라로 날아가 세계 챔피언인 롤란도 라바테와 일전을 펼치게 되었다.
결전의 날이 왔다.
초반부터 내 원투 스트레이트가 챔피언의 얼굴을 사정없이 찍었고, 5회 종료 직전에는 다운까지 빼앗았다.
10초나 빨리 라운드를 종료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홈링의 텃세만 아니었으면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파워펀치를 자랑하는 라바테는 중반 이후 서서히 페이스를 찾아 갔다.
경기는 서서히 혼전의 양상으로 변해갔고 판정에 대한 부담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11라운드에 챔피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원투 스트레이트가 꽂혔고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챔피언을 몰아붙였다.
코너에 몰린 챔피언이 체중이 제대로 실린 카운터 펀치를 날렸고, 그 주먹이 내 턱에 제대로 꽂히고 말았다.
하늘이 핑그르 도는 것 같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서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챔피언과 난타전을 벌였지만 놈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3 라운드 K.O 패!
그것이 내 첫 번째 세계 타이틀전에서 받아든 성적표다.
나는 모두를 실망시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