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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영등포 자칼 (2) (68/88)



〈 68화 〉영등포 자칼 (2)

"호오! 설유연! 너 아직도 저 애송이 놈을 사랑하고 있구나! 그렇지?"

"아, 아니에요!"

"거짓말!  자칼의 눈은  속여! 네년의 몸이 반응하고 있는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금에 절인 배춧잎처럼 축 처져 있던 네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어. 이거 재미있네! 움찔거리면서  손가락을 받아들이던 네년의 조갯살이 이제  손가락을 밀어내고 있잖아! 크큭! "

"아니에요. 강석현과 나는 이미 끝난 사이에요."

"이상하잖아? 왜 그렇게 기겁을 하면서 부인을 하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며?"

"소, 손이나 좀 치워주세요. 사, 사람들이 보잖아요!"

"오매불망 기다리던 님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는 건가? 재미있는 년이야!"

"아악!"

자칼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다시  은밀한 곳을 쑤신다.

조금 전까지  귀에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더니 이제는 내 몸을 거칠게 다루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은 무섭다.

자칼이 다시 나를 공포 속으로 밀어 넣는다.

"네년에 기다리던 강석현을 여기서 죽여놓을거야. 물론 그 전에 민예린의 일기장이란 것도 손에 넣을 생각이야. 설유연 너랑 강석현 둘 중에 하나는 일기장의 행방을 알고 있을  아냐? 맞지? 흐흐흐!"

"......"

"내 재크나이프로 강석현을 육포로 만들어 주지! 보영 그룹 최욱이는 강석현을 죽여서 데려오든 살려서 데려오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거든?"

자칼은 내 음부를 꽉 움켜잡고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나는 아픔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려보지만 소용없다.

그나마 움직이지 않고 자칼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자칼의 예상과는 달리 바깥에서 들리던 기합소리가 차츰 줄어든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강석현이 밖에서 지키고 있는 자칼의 부하들을 해치우고 이곳까지 들어올지도 모른다.

"아그들아! 아무래도 강석현이가 여기까지 들어올 모양이다. 정신들 똑바로 차려라, 잉?"

자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구의 사내 하나가 부서진 문짝 사이로 내동댕이쳐지듯 쓰러진다.

그리고, 그 뒤로 강석현 그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달라졌다.

강석현이 달라졌다.

이제 소년이 아니라 완연한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설유연을 구하려고 온 것이다.

바보!

멍청이!

여기는 영등포 자칼의 아지트다.

분명히 오지 말라고 했는데!

마음이 복잡하다.

걱정되고, 기쁘고, 부끄럽고, 흥분된다.

"어이! 네가 그 유명한 강석현이구나! 나 영등포의 자칼이다. 내 이름은 들어 봤지?"

"워낙 악명이 높으셔서  알지! 주먹이 아니라 사시미 칼로 영등포를 접수했다는 그 분 아니신가? 내 취향은 아냐!"

"뭣이라?"

"난 맨손으로 싸우지 않는 놈은 건달로 취급  해! 자칼, 너는 양아치다!"

내가 아는 강석현은 과묵한 사내였다.

싸울 때도, 사랑을 나눌 때도······.

그런 그가 조금 변한 것 같다. 말을  때 여유가 넘친다.

허세일까?

아니다.

강석현은 강해진 것이다.

싸움 따위는 문외한인 나 설유연의 눈에도 보인다.

강한 남자의 자신감이!

강석현에게 오지 말라고 비밀 메시지를 보낸 것은 당연하다.

상대가 영등포의 자칼이기 때문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냉혈한!

영등포의 터줏대감 독수리파의 행동대장으로 악명을 떨치다가 급기야는 반란을 일으켜 보스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때 자신의 보스였던 김영학에게 얼마나 무자비하게 칼침을 놓았는지  광경을 지켜보던 조직원들조차 오줌을 지렸다는 잔혹한 남자가 바로 영등포 자칼이다.

내가 아는 강석현은 아마추어 복서다.

그리고 스포츠맨이다.

오로지 두 주먹으로만 싸우는 남자다.

그런 강석현이 대한민국 건달들 중에서 가장 칼을 잘 쓴다는 자칼을 이길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아니, 결과를 알고 싶지도 않다.

설령 어떻게 이긴다한들 자칼의 칼에 찔리기라도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가 다쳐서는 안 된다.

나는 괜찮다.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내 육체를 차지하는 주인이 바뀔 뿐이다.

늙은 부자에서 그보다 젊고 거친 깡패로 말이다.

보스인 자칼의 영향 때문인지 영등포 자칼파의 조직원들 대부분은 칼로 무장하고 있다.

시퍼런 회칼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맨손의 강석현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보인다.

지켜봐야 하는 내가 더 무섭다.

"자칼! 그 여자는 그만 놓아주고 둘이서 한번 놀아보자! 네놈의 실력이 궁금하다! 정정당당하게 맨손 격투를 하고 싶지만 그건 너에게 너무 불리하겠지? 뭐, 칼을 들고 덤벼도 무방해! 그 정도 핸티캡은 받아줘야 공평하겠지?"

무슨 배짱인지 강석현은 전혀 쫄지 않는다.

그 와중에 자칼과 눈싸움을 하며 신경전을 벌인다.

긴장을 하기 시작한 쪽은 오히려 자칼이다.

쉬지 않고 나를 희롱하며 끝끝내 놓아주지 않던 자칼 자식이 내 음부에서 비로소 손을 땐다.

그리고는 강석현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서서히 싸울 준비를 한다.

"아그들은 잠시 물러나 있거라! 내 이놈 실력을 한 번 봐야 쓰겄다. 주둥이만 살아서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 놈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뜻밖에도 강석현의 원터치 제의를 자칼이 받아들인다.

부하들에게 폼을 잡아보겠다는 걸까?

아니면 암컷의 마음을 빼앗기 위한 수컷의 자존심일까?

강석현이 수십 명의 폭력배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자칼과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쪽이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다음은 어떡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순간 강석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나를 보고 웃는다.

한결 마음이 놓인다.

마치 장난치듯 나에게 옷을 챙겨 입으라고 눈치를 준다.

내가 허연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황급히 옷을 찾아 입었다.

바보!

지금 내 걱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상대는 영등포의 자칼이다.

내게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자칼이 칼이라도 휘두르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눈앞의 적보다도 여자에게 신경을 쓰는 강석현의 태도가 자칼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자칼이 부하들을 한 걸음 뒤로 물리고 강석현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재크나이프를 공중에서 몇 바퀴 돌리며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꾸어 쥔다.

어지롭도록 현란한 칼놀림으로 강석현을 위협한다.

"아가야! 넌, 이런 거 처음 보지? 뭐 그렇게  먹을 거 없어! 이제 들어간다. 각오해라!"

자칼이 휘두르는 칼에서 바람소리가 나는 것 같다.

"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분명히 강석현이 칼에 찔리는 줄 알았는데 용케 피한다.

자칼의 칼놀림이  빨라진다.

쉴  없이 강석현의 목을 노리고 칼춤을 춘다.

"어맛!"

나이프가 깻잎 한 장 차이로 강석현의 얼굴을 지나간다.

지켜보던 내가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간이 떨려서 더 보기 힘들다.

왜 강석현은 피하기만하고 공격은 전혀 하지 못하는 걸까?

역시 자칼의 재크나이프가 무서워서 그런 거겠지?

쉭!
쉭!
쉬익!

자칼의 칼놀림이 점점  빨라진다.

번개 같은 발놀림으로 강석현에게 칼을 날린다.

 빠른 칼에 강석현이  번이나 찔린것만 같은데 강석현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

용케도 자칼의 칼을 모두 피한 것일까?

지금이라도 손을 들고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지 않을까?

내가 자칼에게 간절하게 강석현의 목숨이라도 구걸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강석현 이 새끼!  무지 빠르구나! 어디 이것도 한번 피해봐라!"

자칼이 자신의 종아리에 차고 있던 칼을 하나 더 손에 쥔다.

이것은 날이 서늘한 회칼이다.

오른손에는 재크나이프, 왼손에는 회칼을 쥐고 강석현을 몰아붙인다.

이제는 끝인가 보다.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자칼의 칼이 강석현의 가슴을 찌르기 직전, 강석현의 전광석화 같은 발차기가 자칼의 무릎을 가격한다.

자칼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린다.

그 순간 강석현의 오른발이 자칼의 턱을 가격한다.

자칼이 썩은 고목처럼 앞으로 넘어진다.

강석현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쓰러지는 자칼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른다.

내 귀에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무릎에 한방!

턱에 한방!

그리고 다시 얼굴에 한방!

정확히 세 번의 발차기가 영등포의 보스 자칼에게 꽂혔고.

그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도 놀랐고, 자칼의 부하들도 놀랐다.

놀라지 않은 것은  두 사람, 발차기를 날린 강석현과 죽은 듯이 쓰러져있는 자칼, 두 사람 뿐이다.

"보스를 지켜라! 저 새끼를 잡아라!"

두목을 잃은 조직폭력배들이 당황한 기색이다.

산이라도 무너뜨릴 듯 고함소리만은 대단하지만 그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여자인 나도 알 수 있다.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서 누가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싸우고 있는지 기억해주고 보상해줄 사람이 없으니 졸개들이 몸을 사리는 것이다.

두목이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석현이 자칼을 도발했는지도 모른다.

강석현은 그럴 의도로 자칼과의 일대일 싸움으로 몰고갔는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  보는 사이에 성장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스무 명이 넘는데?

당해낼 수 있을까?

저러다 칼에 찔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누가 뭐래도 이것은 칼과 맨주먹의 싸움이다.

맨주먹이 이길 수 있을까?

오늘 강석현은 냉혹한 전사다.

그의 주먹과 발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깡패놈들이 갖가지 기합을 내지르며 그에게 달려든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날이 불빛에 반짝인다.

그런데 사람의 주먹이란 것이 저렇게 무서운 무기였나?



난전(難戰)이 펼쳐진다.

깡패 놈들이 강석현을 둥글게 포위한다.

놈들도 강석현이 무서운지 멀찌감치 포위를 하고 있을 뿐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한다.

몇 놈이 용감(?)하게 강석현에게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참혹하다.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그 자리에 고꾸라진다.

칼보다 펜이, 아니 주먹이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잘못 덤볐다가는 반병신이 될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는지 이제는 감히 강석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오히려 포위당한 강석현이 그들을 도발하고 나선다.

강석현이 주먹을 휘두를 듯 깡패놈들에게 다가서면 포위망이 뒤로 물러난다.

이쯤되면 누가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재미가 있다.

강석현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 말이다.

나 설유연이 지금 처해있는 곤궁한 처지도 잊어버리고 그의 전쟁을 엿보고 있었나 보다.

이것은 차라리 화려한 군무(軍舞)다.

나 설유연 하나만을 위한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특별한 공연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시던 발레리노가 독무(獨舞)를 시작할 모양이다.

강석현을 둘러싸고 있던 악당들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는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강석현의 독무(獨舞)를 훼방 놓으려 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서서히 수컷들의 싸움판에 오롯이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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