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영등포 자칼 (1)
내가 전화선을 PC 에 연결하자 특유의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리안에 접속이 된다.
아직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PC 통신이란 것이 나와 강석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다행이 이놈들은 PC통신은커녕 컴퓨터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러니까, 컴퓨터로 편지를 쓰면 강석현 그 새끼가 바로 받아본다는 거지? 내가 시키는 대로 놈에게 써! 12시간 안에 설유연을 구하러 와 달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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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현!
살려줘!
난 납치되었어.
미래일보 박상영 사장 짓이야!
12 시간 안에 나를 구하러 오지 않으면 나를 죽이겠데!
난 널 사랑해!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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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에 접속해서 자칼이 시키는 대로 메시지를 써서 보냈다.
일이 잘 풀려간다고 느낀 것이지 굳어있던 자칼의 얼굴이 밝아진다.
어찌하다 보니 나 설유연이 짐승 같은 사내들의 욕망의 전쟁에 말려들고 말았다.
"설유연, 너 똑똑하구나! 컴퓨터도 다룰 줄 알고 말이야. 타자도 정말 잘 치네? 그런데 밑에 이 꼬부랑글씨는 뭐야? 영어야? 설마, 너 영어도 할 줄 알아?"
"아, 아니에요. 나 같은 게 영어를 어떻게 알아요? 타자를 잘못쳐서 그런거에요."
"하긴, 너도 가방끈이 긴 편은 아니지? 나같이 실업계 야간부 중퇴한 놈이랑 별 차이 없지?"
"······."
"네가 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너를 공주님처럼 대해주마. 알겠지? 뭐 필요한 거 있어?"
"옷을 좀 가져다주세요. 차 트렁크에 내 옷이 있을 거예요."
찢어져서 걸레 꼴이 되고 만 옷을 다시 걸치고는 있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다.
찢어진 틈으로 드러난 속살을 가리느라 바늘 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깡패 놈들이 흘끔거리며 옷 틈으로 드러난 내 몸을 훔쳐보고 있다.
한놈은 노골적으로 입맛을 다신다.
군침도 꿀꺽 삼친다.
자칼이 눈감아준다면 당장이라도 내 몸을 덮치고 싶어하는 눈치다.
저들로부터 빨리 달아나고 싶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옷이라도 제대로 입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그러지. 또 다른 건? 배는 고프지 않아?"
"······."
먹은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와중에 밥이 목구멍을 넘어 갈 것 같지가 않다.
입술이 바싹 말라있다.
물이라도 좀 마셨으면 좋겠다.
자칼의 부하가 차 트렁크에서 내 옷이 든 가방을 들고 온다.
그리고 내 앞에 빵이며 우유며 오렌지 주스 따위를 늘어놓는다.
나는 물을 몇 모금 마셨을 뿐 다른 것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기회를 봐서 옷을 갈아 입었다.
깨끗한 속옷과 티셔츠, 청바지로 갈아입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거울을 보니 머리가 엉망이다.
고무줄로 머리를 단단히 묶었다.
"이야, 그렇게 입으니 또 다른 매력이 있네! 어디 좋은 학교 다니는 여대생 같은데? 흐흐흐!"
자칼이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본다.
그의 눈빛이 정말 싫다.
"그렇게 엉거주춤허니 서있지 말고 여기 와서 앉지? 강석현 그 놈이 여기 오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 그동안 우리는 하던 이야기 마져 해야지! 아직 이야기 안 끝났잖어?"
강석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천리안으로 보낸 메시지를 강석현은 제대로 읽었을 거니까.
영어 타자를 친 곳을 한글로 변환하면 내 진짜 메시지가 된다.
나를 납치한 놈은 영등포의 자칼이다.
그리고 자칼의 뒤에는 최욱이 있다.
여기는 자칼의 아지트고 강석현을 잡으려고 함정을 파고선 기다리는 것이다.
그에게 이곳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대신 경찰을 부르라고 했다.
나는 석현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이 나 설유연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남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인연을 정리할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야만 한다.
자칼이 기어이 자신의 곁에다 나를 끌어 앉힌다.
폭신한 소파가 돌 방석같이 딱딱하게 여겨진다.
"민예린의 일기장이 어디 있는지는 정말 모른단 말이지? 아쉽네! 그 물건이 있으면 참으로 요긴하게 쓰일 텐데 말이지. 있는 사람들 약점을 손에 쥐고 있으면 말이야!"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일기장을 찾는 것은 최욱 아니었나?
왜 자칼이란 자가 민예린의 일기장에 이리 집착하는 걸까?
"나 자칼이 보영 그룹과 손을 잡긴 했지만 최욱이의 꼬붕은 아니지. 단지 강석현이란 놈에게 걸린 막대한 현상금이 탐이 난 거야."
"......"
"솔직히 말해주지!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강석현이란 놈을 잡을거야. 그리고 놈을 족쳐서 일기장까지 손에 넣을 생각이야. 최욱은 그 일기장 때문에 강석현이란 애송이 놈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거 아냐?"
"......"
"만약 내가 그 일기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대가로 엄청난 걸 받아낼 생각이야! 그러면 나 자칼이 서울 전체를 먹는 거니까. 아니, 대한민국 건달 세계는 모두 나 자칼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겠지? 크크크!"
자칼이란 놈이 흥분하고 있다.
나를 미끼로 해서 강석현을 잡고, 그 강석현에게서 일기장의 행방까지 알아낼 생각인가 보다.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나를 자신의 전리품처럼 여기고 있다.
나를 곁에 앉히고 내 몸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한다.
과도한 폭력성을 남성성으로 착각하는 남자들을 수 없이 보아왔다.
싫다.
소름이 끼친다.
"아무튼 강석현이란 애송이 놈 대단해! 쥐뿔도 없는 어린놈이 톱스타를 따먹었다는 거지? 그것도 보영 그룹의 최욱을 제치고 말이야! 그것 때문에 최욱이란 놈이 야마가 돈 거겠지? 병신 같은 놈!"
내 어깨를 감싸고 있던 자칼의 손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참! 아까는 미안했어. 나도 모르게 거칠어질게 굴었지?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잔데 말이야. 하하!"
자신의 부드러움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놈이 내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소름이 끼친다.
놈의 손을 밀어내고 싶지만 내 손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내 몸은 녀석의 잔혹함을 이미 경험했고,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 살벌한 폭력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녀석의 손이 이미 내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와 내 젖가슴을 주무른다.
손가락 끝으로 내 젖꼭지를 찾아서 빙빙 돌린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젖꼭지는 놈의 손가락 장난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딱딱하게 부풀어 올라서 놈에게 의도치 않게 즐거움을 준 모양이다.
"설유연 넌 내 스타일이야. 얼굴도 예쁘고, 특히 몸이 마음에 들어. 넌 이 자칼이 어때?"
"······."
"난 야망이 있는 놈이야. 이미 영등포 일대는 내 왕국이야. 강석현을 잡으면 낭만검객 이상훈의 나와바리인 종로와 무교동도 내 손에 들어오게 되어 있지. 그 다음엔 강남이야. 그 일기장만 있으면 보영 그룹의 도움으로 강남을 먹는 건 일도 아니게 되지. 전국구 보스의 안주인 자리라면 너 설유연에게도 나쁜 제안이 아닐 걸? 안 그래?"
자칼이 손으로는 내 유방을 주무르며 자신의 청사진을 나에게 펼쳐 보인다.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뿐이다.
내 침묵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내 의사 따위는 상관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자칼이 내 몸을 번쩍 들어 나를 자신의 무릎에 앉힌다.
내 엉덩이를 딱딱한 막대기가 쿡쿡 찌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겨우 참아내었다.
자칼의 손이 내 허벅지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의 부하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너, 강석현 많이 좋아했냐? 응? 그런 애송이 따위는 아주 잊어버리도록 만들어주지."
자칼의 두툼한 손이 내 청바지를 벗긴다.
"아그들아! 여기는 쳐다보지 말고 맡은 곳이나 잘 지켜! 강석현 그 새끼가 곧 여기로 올 꺼다. 불곰 너는 입구 지키는 애들 긴장 좀 시켜라!"
영등포 자칼은 부끄러움 따위는 모른다.
놈의 손이 내 팬티 속으로 파고든다.
젖기 시작한 내 다리 사이 은밀한 속살 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아! 나는 여자 속살을 주무르면 적당히 긴장이 풀리면서 싸울 준비가 돼. 중요한 전투를 앞둔 성스러운 의식 같은거지. 그런데 강석현 그 새끼는 언제 올거 같아?"
강석현은 오지 않을 거다.
내가 분명히 그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여기로 오고야 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와 살을 섞었던 여자로서의 예감이다.
무모하다.
여기를 지키는 깡패들은 적게 잡아도 스무 명이 넘는다.
더구나 사시미 칼이며 야구방망이 따위로 무장을 하고 있다.
그 놈들 위에는 악명 높은 영등포 자칼이 도사리고 있다.
강석현 혼자서는 무리다.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힘 있는 놈들 품으로 그때그때 옮겨다니면 된다.
그게 나 설유연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랑 같은 사치스런 감정은 내 가슴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
바깥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기합소리와 비명소리가 마치 딴 세상에서 들리는 것 같다.
"씨발 놈! 이제 겨우 계집애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어 놓았더니 하필 지금 와? 이 새끼 생각보다 빨리 왔네!"
내 팬티에서 자칼의 손이 빠져나간다.
내 구멍 속을 채우고 있던 손가락이 빠져 나가자 한기가 느껴진다.
춥다.
서늘하다.
참기 힘든 한기가 엄습한다.
강석현 그가 왔다.
고집쟁이!
내가 그토록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옥 끝에 서 있어도 그 사내라면 나를 구하러 와 줄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