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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낭만검객((浪漫劍客) 이상훈의 수난 (2) (62/88)



〈 62화 〉낭만검객((浪漫劍客) 이상훈의 수난 (2)

"강석현 그 놈은 선량한 고교생이 아니었어! 사람들 패고 다니는 폭력배! 그놈이 우리 가족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대 보영 그룹의 총수께서 새파란 놈한테 무슨 망신을 당했는데!"

"......"

"그리고 나는 또 어떻고! 아직도  오는 날에는 놈한테 얻어 맞은 곳이 쑤신다고!"

"······."

"그리고 민예린 그년이 죽은 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

"가만! 그러고 보니 이상훈 당신 말에 가시가 있는 거 같은데? 너도 강석현 그놈이랑 한패지? 강석현 그놈 어디다 숨겼어?"

"최욱 실장님께서 저 이상훈을 언제 보셨다고 경찰처럼 심문을 하십니까? 저는 그 질문에 답을 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 새끼가 정말!"

최욱이 주먹을 쥐고서 이상훈을 위협한다.

가소롭다.


어디 철없는 젊은 놈이 감히 낭만검객 이상훈에게 주먹으로 위협을 한단 말인가.


그런 최욱을 박선호가 손을 들어 제지한다.


"맞아! 여기 있는 최 실장은 그런 질문을 할 입장이 아니지. 하지만 나 박선호는 다르지. 당신이 내 밑에 오래 있었잖아! 나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는 거지? 물론 지금은 그런 관계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야."


"······."

이상훈은 침묵을 지킨다.

괜한 말을 해 보았자 문제만 커질 뿐이니까.


"혹시 강석현 그 놈을 해외로 빼돌렸나? 일본? 필리핀? 미국? 설마 북한은 아니지? 하하하!"

"······."

"아! 이런! 우리 낭만검객 이상훈 씨가 입이 무겁다는 것을 깜박했어. 그동안 워낙 격조했잖아!"

"선호 형! 사실이야? 강석현 그 새끼가 해외로 내뺐어? 어쩐지 연기처럼 사라졌다 싶었지! 이상훈 이 새끼도 한패였구나!"

"일주일 시간을 주지! 강석현 그놈을 내 앞에 끌고 와! 그러면 모든 일을 불문에 부쳐주지. 낭만검객과의 옛 정을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야!"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호오! 그래? 이상훈 씨가 모를 리 없겠지만. 나에게는 눈과 귀가 많이 있어. 내가 근거 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혹시 그렇다면  박선호를 너무 우습게 본 거야."


"죄송합니다. 박 전무님!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누추한 곳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멀리 배웅을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상훈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런 이상훈을 잠시 응시하던 박선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최욱은 그런 박선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투덜거린다.

"강석현 그놈은 이상훈이랑 설유연이가 빼돌린 게 맞다니까? 이상훈 저놈 눈깔 봤지? 절대 말을 들어먹을 놈이 아니야. 지금 이 자리에서 요절을 내고 자백을 받아야지!"

박선호와 최욱이 나가면서 나눈 이야기가 이상훈의 귀에 와서 박힌다.

설유연의 이름까지 나왔다.

아마 이선호와 최욱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역시 잘못된 일이다.

처음부터 잘못  일이었다.

강석현이란 놈과 의형제를 맺은 것이 잘못된 일이냐구?


천만에!

당장 돈이 된다는 이유로 저런 저급한 놈의 밑에서 일을 한 것이 잘못되었단 말이다.


달콤한 꿀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독이 되어 몸을 썩게 만든다.

어리석은 판단을 했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업자득이다.


이상훈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절감한다.


하지만 그 불똥이 죄없는 동생들에게 튀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책무가  것이다.


참!

잊고 있었다.


여배우 설유연도 위험하다.


설유연이 강석현을 도왔다는 것을 박선호와 최욱이 알았으니 반드시 보복을 하려고 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녀를 도울 힘은 없다.

하지만 알려는 주어야 한다.

그리고는 행운을 빌어 주는 수밖에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강하니까!

어쩌면 무사히 위험을 피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참! 강석현 그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인연있는 야쿠자들에게 부탁을 해 놓았지만 그들에게 기대할  있는 의리라는 것은 사실 빤하지 않은가?


흘러가는 소문으로는 나름 적응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딱히 신뢰가 가는 정보 까지는 아니다.

외국인, 특히 한국인에게 적대적인 일본에서 밀항자의 신분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역시 좀 더 돈을 써서 미국으로 보내   그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후회되는 일 투성이다.




***





쿠데타가 일어났다.


서울 무교동을 아지트로하는 낭만자객파의 보스가 오늘부로 바뀌게 될 모양이다.


조직의 2인자인 김두원이 자신을 따르는 놈들을 규합해서 보스인 이상훈에게 반기를 들었다.


무능하게도 조직 경영에 실패해서 조직의 위세를 약화시켰다는 것이 쿠데타의 명분이 되었다.

김두원은 수완 좋게도 악명 높은 재야의 고수들을 초빙해서 자신의 전위대로 내세웠다.


오늘부로 보스인 이상훈을 몰아내고 자신이 보스 자리에 오를 생각이다.

 것이 왔다!

조직원들의 대다수는 순순히 체념하며 새로운 보스를 받들 마음의 준비를 한다.

사실, 보스가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돈과 언론의 힘을 바탕으로 암흑가의 판세를 좌지우지   미래일보의 박선호가 망나니로 악명이 자자한 보영그룹의 최욱을 데리고 와서는 낭만검객 이상훈을 찾아와서 협박(?)을 하고 갔다는 사실은 곧 세상에 퍼져 나갔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미래일보의 박선호에게 찍혔다면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보스는 바뀔 것이고 새로운 보스는 박선호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아니, 이미 맹세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맹세의 대가로 박선호는 뭔가를 하사했을 것이다.


조직의 보스가 아니라 박선호의 개다.


오늘부터 무교동의 낭만자객파는 미래미디어 그룹의 위장계열사(?)로 편입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혀, 형님!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가긴 어딜 가란 말이냐? 이미 늦은 모양이다."

검은 슈트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낭만자객 이상훈은 마음을 가다듬는다.

적어도 추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자신을 지키려고 곁에 남아있는 충성스러운 부하들의 안전만은 지켜 주고 싶다.

부하들이 소파와 의자를 쌓아서 막고 있던 자바라 철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진다.

손에 회칼과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건장한 사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조직의 2인자이자 차기 보스임이 확실시 되는 김두원이 2열에 서서 지휘를 하고 있다.

이상훈의 곁을 지키던 부하들이 보스를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아선다.

하지만 중과부적이다.

기세는 이미 넘어갔다.

이상훈이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박달나무 목검을 휘두른다.


전국구 보스의 위용에 침입자들이 잠시 움츠러든다.


"김두원! 이제 조직은 네 손에 넘겨주마! 대신 조건이 있다!"


"낭만자객 형님! 미안하지만 어떤 조건도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소. 양해하시오. 나도 부탁받은 게 있어서 말이오."


이상훈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준 동생들을 살려 보낼  없다면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피투성이다.

큰 형님으로서 면목없는 일이다.


"형님! 우리 걱정은 말고 형님 빠져나갈 생각만 해요! 형님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소!"


안될 말이다.


그렇게까지 목숨을 구차하게 연명할 생각은 없다.

장렬하게 싸우다가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고 나면 김두원은 아킬레스 건을 끊어버릴 것이다.

다시는 두 발로 걸어다니지 못하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어쩌면 목숨까지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폭풍전야!


마지막 대치가 이어진다.

마지막 숨을 고르며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진다.

이제 김두원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잠깐 지나갑시다. 죄송! 죄송!"


이상한 놈이 하나 있다.

교통체증으로 막힌 길을 헤치고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것처럼, 키가 껑충한 놈 하나가 대오를 헤집고 이상훈에게로 다가온다.

하도 상황이 어어 없어서 모두들 어어하며 그냥 보내 준다.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싸구려 가죽점퍼를 입고 있는 놈이 이상훈의 곁에 붙어 선다.

그러고는 자신이 지나온 김두원 측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며 도발한다.

모두들 황당해서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


"거, 같이 싸웁시다. 보아하니 많이 지친 거 같은데!"

이상한 일이다.

 젊은 놈의 목소리가 귀에 익다.


분명 아는 목소린데······.

설마?


"나 깡석현입니다. 낭만자객 형님, 오랜만입니다!  동안  지내셨습니까?"


낭만검객 이상훈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는 있는지, 밥은 얻어 먹고 다니는지 걱정을 했었던 놈이 지금 거짓말처럼 이상훈의 눈 앞에 나타났다.

 애송이 고등학생 놈이 돌아왔다!

그것도 훌쩍 자라서 말이다.

키도 컸고, 몸도 훨씬 탄탄해진 것 같다.


그리고 싸움판에서 잔뼈가 굵은 자신의 직관으로 알 수 있다.

강석현은 강하다!

그것도 무서울 정도로!

이상훈의 곁에는 다섯 명의 부하들이 남아있다.

김두원은 적게 잡아도 서른 명은 된다.


기세는 이미 기울었고 이제 남은 것은 싸움을 빙자한 무자비한 폭력뿐이다.

그렇게 흘러갈 것만 같았던 싸움판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겨우 애송이  놈이 더 가세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자!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다들 내 뒤꽁무니만  따라들 오슈!"


패싸움은 전쟁과 똑같다.


오와 열에 맞춰 진을 짜고 전략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싸움에도 요령이 있다는 말이다.


진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결코 지지 않는다.


역으로 말하자면 적의 진열을 붕괴시킬  있다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돌격대장의 역할이다.

고대의 전장에서는 전차가 내달려서 적진을 붕괴시켰고, 중세시대의 전장에서는 중갑철기병이 그 역할을 해 내어야 했다.



돌격대장이 갖추어야  가장 중요한 덕목의 첫째는 용기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무수한 공격의 공포를 이겨내어야 한다.


두 번째는 강인한 체력이다.

몇번 맞고 때리고 나서는 탈진해서 헉헉거릴거 같으면 처음부터 나서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중요한 역할을 강석현이가 해 낼 수 있을까?


이상훈은 걱정이 앞선다.


자신이 다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녀석을 괜히 이기지도 못할 싸움판에 끌어들이는 것만 같다.

나이가 든 것일까?


자꾸 이런저런 걱정만 앞선다.

하지만 돌격 대장 못지않게 바로 그 뒷선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주공격수의 역할도 중요하다.


노련한 이상훈 자신이 아우들을 이끌고 돌격대장을 보조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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