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낭만검객((浪漫劍客) 이상훈의 수난 (1)
서울 종로와 무교동 일대를 주름잡는 거물 주먹 이상훈의 마음이 편치가 않다.
대한민국 건달들이라면 한수 접어준다는 전국구 건달들 중 하나인 이상훈이다.
후배 건달들은 그를 일컬어 '낭만검객((浪漫劍客)'이라고 부른다.
존경의 의미가 듬뿍 담겨있다.
이상훈은 그 별명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말았다.
검술에 능해서 한 자루 박달나무로 만든 목검 하나만 손에 쥐고 있으면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다고 해서 검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상대의 뒤통수를 향해 알루미늄 야구베트와 횟칼, 자전거 체인을 휘두르기를 마다하지 않는 작금의 세태에 일 대 일 대결을 고집하는 이상훈은 별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낭만검객'이라고 부른다.
돈을 벌고 세력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명예를 지키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하게 여기는 이상훈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
그가 관리하던 유흥업소가 하나, 둘 줄어간다.
전국구 건달이라며 대접을 해 주던 후배들도 이상훈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
건달들이라면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다.
건달의 세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리고 그 힘을 키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돈이다.
강남 신사동을 주 무대로 하는 신흥조직이 이상훈의 나와바리로 치고 들어온다.
조직원들의 충성심도 예전같지 않다.
조직의 2인자인 김두원을 중심으로 조직원 사이에 갈등이 고조된다.
아직 드러내 놓고 반기를 들어내지는 않지만 이런 소문이 돈다는 것만으로도 낭만검객 이상훈의 카리스마는 금이 가고 만다.
동생들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을 끌어내지 못하는 보스는 더 이상 보스가 아니다.
이상훈은 건달 생활을 청산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부하들로부터 완벽한 존경을 받을 수 없다면 은퇴를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이상훈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부하들이 자신에게서 돌아서는 이유가 너무도 뻔뻔스럽기 때문이다.
돈! 유혹! 음모! 배신!
이제 알고 있다.
자신이 한때 동생처럼 아꼈던 김두원이 언젠가는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눌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김두원의 배후에는 미래일보 박선호와 보영그룹의 최욱이 있다.
그들이 낭만검객 이상훈을 제거하려고 한다.
비록 군신 관계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기는 박선호와 최욱을 위해서 충심을 보인 이상훈이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그들이 입에 담기 난처할 정도로 치졸한 일을 의뢰하는 경우에도 최대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해 왔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이상훈의 행동이 재벌가 자제분들에게는 건방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이상훈에게 일종의 괘씸죄를 물으려는 것이다.
아니, 이 기회에 그들이 좀 더 편하게 수족같이 부릴 수 있는 놈으로 교체하려는 것이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이상훈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
아마도 적당한 구실을 대고 이상훈 몰래 조직의 2인자 김두원을 불러내었을 것이다.
김두원을 치켜세우며 이상훈 같은 놈의 밑에서 썩기에는 아깝다는둥,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김두원 같이 충성심이 강한 이라는둥하며 치켜 주었을 것이다.
김두원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마도 그들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았을 것이다.
그것도 황송해마지 않는 얼굴로 말이다.
이상훈은 잘 알고 있다. 미래일보의 박선호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말이다.
그놈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다.
돈도 권력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을 어떻게 쓰면 사람들이 자신을 무서워하게 되는지 너무도 잘 안다.
이선호는 지금 자신이 미래일보 박선호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왜 일까?
왜 그들과 틀어지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상훈은 한때 박선호의 해결사이자 보디가드였으니 말이다.
역시!
그놈 때문인가?
애송이 아마복서 강석현.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의 편을 들어준 것을 책망하여 그러는 것일까?
조직에서 눈치 빠른 아우 하나가 박선호에게 빨리 사과할 것을 충고한 적이 있다.
이상훈은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강석현을 도운 것은 인간적인 도리를 지킨 것이다.
한 때 강석현과 정정당당하게 주먹다짐을 했었고 싸움은 이미 끝이났다.
치열하게 싸우되 뒤끝이 있는 것은 싫다.
누구의 편을 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호의 도리, 의리 이런 것도 돈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마 박선호나 최욱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재벌에게는 재벌의 길이 있고, 건달에게는 건달의 길이 있다.
재벌의 비위를 맞추고자 건달이 가야 할 길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는 순간 낭만검객 이상훈은 더이상 낭만검객도, 건달도 아니게 되는 것이니까!
돈줄이 막혔으니 조직의 축소는 불가피하다.
이젠 지쳤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부하들을 위해서 조직을 김두원, 아니 박선호에게 순순히 넘길 생각까지도 했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건달은 싸워야 건달이라고들 하지만 무의미한 싸움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쪽이 좋지 않은가?
문제는 아직까지도 낭만검객을 따르는 동생들이다.
김두원의 치졸한 행동을 배신으로 간주하며 분개한다.
이상훈은 걱정이다.
그들의 안위가 염려된다.
이상훈이 제거되면 그 다음 차례는 그들이다.
박선호와 최욱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까.
망나니 재벌 3세 님들께서는 참으로 냉혹하신 분들이시다.
나름 거칠게 살아온 이상훈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가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하시곤 한다.
김두원에게 반기를 들고 이상훈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부하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자신들에 대한 반항으로 여길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뻔하다.
아우들을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어서 다시는 자신들에게 위험요소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다.
어쩌면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조직의 보스로서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담판을 지어야한다.
이상훈 자신이 다치더라도 부하들은 살려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빨리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인 미래일보의 후계자가 될 박선호 전무께서 친히 룸살롱 '불야성'까지 왕림해 주셨다.
무교동의 보스 낭만검객 이상훈이 몇 번이나 독대의 기회를 청한 끝에 이루어진 일이다.
박선호는 혼자 오지 않았다.
보영 그룹의 후계자 최욱까지 데리고 왔다.
이상훈의 눈에는 한때 여자를 사이에 두고 피터지게 싸우던 두 사람이 화해를 한 것이 우습다.
하긴 화해라고 하기 보다는 최욱의 일방적인 항복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련님!"
"아! 상훈 씨도 잘 지냈어?"
"······."
"잘 못 지낸 거야? 하긴, 나 박선호도 마음 편하게 잘 지낸 건 아니니까. 피차일반이라고 해야 하나?"
"대한민국에서 박 전무님 같은 분이 잘 지내지 못하신다고 하시면······."
"모르시는 말씀! 돈 있고 권력 좀 부릴 수 있으면 뭐하나? 마음이 편해야지 마음이! 내 앞에서는 굽실거리다가 뒤 돌아서서는 딴 소리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
이상훈은 자신에 대한 박선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한다.
아마 그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뭐, 각오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자신은 다치더라도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다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건달 두목의 책무다.
"아니지! 사람 없는데서야 욕을 좀 할 수 있지! 하지만 내 돈을 받아먹던 놈이 뒤통수를 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낭만검객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혹시 쫄다구들 중에서 그런 놈이 있으면 어떻게 처리하냐구!"
역시 그랬구나!
이상훈은 박선호가 자신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역시 강석현 때문인가?
"도련님!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아! 맞아! 당신 말대로 내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주먹 휘두르는 것 빼놓고는 아무런 존재 가치도 없는 깡패 새끼잖아? 그런 놈이 내가 오해를 하게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죄를 지은 거야."
"......"
"나 박선호는 주인한테 한 번 으르릉거린 개새끼를 그냥 둘 만큼 인내심 강한 놈이 아냐! 안 그래? 최 부사장?"
박선호가 곁에 있는 최욱을 돌아보며 차갑게 웃으며 동의를 구하고 있다.
보영 그룹의 최욱이 특유의 잔혹한 눈빛으로 이상훈을 노려보고 있다.
"야, 너 이 새끼! 강석현 알지?"
"죄송하지만 말씀을 가려서 하시지요. 저, 이상훈이가 보영 그룹의 최욱 실장님께 막말을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모시는 분이 아니시니 저를 새끼라고 하시는 말은 심한 모욕이 됩니다."
최욱에게 욕지거리를 들었지만 낭만검객 이상훈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한다.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그의 눈빛에 압도되었는지 최욱이 움찔한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박선호가 제지하지 않는 것에 용기를 얻어서는 기세를 이어간다.
"이상훈 네가 강석현 그 자식을 빼돌렸잖아! 어디다 숨겨 놓은 거야?"
"······."
"왜 대답이 없어? 켕기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
"하도 오래 전의 일을 끄집어 내셔서 잠시 기억을 더듬느라 그런 겁니다. 혹시 최욱 실장님께서 말씀하신 강석현이라는 놈이 예전에 보영 그룹 회장님 자택에 쳐들어갔던 그 놈이 맞는지요? 하도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
"아! 그 누구더라? 맞다! 민예린! 민예린이라는 카페 여사장 살인 사건 때문에 강석현이란 어린 고등학생이랑 최 대갑 회장님 부자가 다툼이 있었던것 같은데,... 제 기억이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