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K-1 결승( vs 세군도 다타야마 ) (2)
심판을 사이에 두고 드디어 세군도 다타야마와 마주 섰다.
심판의 주의 사항 설명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사진 상으로는 곱상하게만 보이던 세군도가 독사같이 눈을 뜨고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눈 싸움으로 내 기세를 꺾어보겠다는 것이다.
나도 지지않고 놈을 노려 본다.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커진다.
그들은 파이터들의 별 것 아닌 손짓 하나 눈짓 하나에도 흥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드디어 K-1 대회 경량급 결승전 1라운드 공이 울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에는 무에타이 선수 출신 파이터가 부담스러웠다.
상대의 킥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상대의 발이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움츠려들고 내가 내미는 펀치에 체중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제 아무리 강자라 하더라도 차라리 복서 쪽이 싸우기에 편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달라졌다.
상대의 움직임만 보아도 지금 주먹이 날아올지 아니면 발이 날아올지 파악이 된다.
복싱을 처음 배울 때 선배들이 맞으면서 배우면(?) 빨리 배운다더니, 내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흐흐!
세군도 다타야마는 복싱과 무에타이를 모두다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아마추어 복서 출신이고, 태국에서 2년간 무에타이 선수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돌아와서 복싱과 무에타이를 절묘하게 혼합해서 자신만의 이종격투기 스타일을 확립한 모양이다.
한마디로 입식타격기의 베테랑이란 말이다.
지금 세군도는 철저하게 무에타이 스타일로 나와 맞설 모양이다.
나에게 잽이 있다면 세군도에게는 로우 킥이 있다.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내 하체를 향해 집요하게 로우 킥을 날린다.
세군도의 코치들도 분명 나와 메데로프의 시합을 분석했을 것이다.
내 아웃복싱을 막기 위한 대비책으로 들고 나온 작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아웃복싱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나올까?
세군도의 작전을 망치기 위해서 아웃복싱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 인파이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 심장이다.
이왕 돌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과감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편이 가장 피해가 적다.
세군도가 로우 킥으로 하체를 공격해오고, 미들 킥으로 내 옆구리를 노려보지만 내 대쉬가 미세하게 빨랐다.
코 앞에 녀석의 숨소리가 느껴진다.
내 특기인 원투 스트레이트를 버리고 짧은 훅을 연달아 휘둘렀다.
하나!
두울!
세엣!
급소에 정타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많이 놀랐을 것이다.
당황한 세군도가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도망가려고 한다.
녀석도 발이 빠르다고 인정받고 있지만 미안하게도 스피드는 분명 내가 우위에 있다.
놈을 쫓아가면서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아쉽게도 첫 펀치는 빗맞았고 두 번째 번치는 가드 위에 걸렸다.
세군도가 많이 놀랐는지 등을 보이며 달아난다.
관중석이 술렁거린다.
일본 관중들의 우상 세군도 다타야마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 것이다.
추태에 가까운 행동이다.
세군도는 아직 작전을 바꾸지 않는다.
거리를 유지하게 로우 킥으로 내 다리를 노린다.
우선 내 발을 봉쇄하고나서 원거리에서 킥으로 나를 타격하겠다는 작전이다.
그 다음에는?
내 눈 두덩이의 상처를 노릴 심산이다.
눈 부상이 있는 내가 접근 전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세군도 측의 전략도 일리가 있다.
내가 시합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링 닥터가 결정을 해 버리면 그것으로 시합은 끝난다.
세군도의 K.O 승이다.
더군다나 링 닥터는 세군도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세군도가 벼락같이 오른 발 하이 킥을 날린다.
내 왼 눈의 상처를 노리고 날린 것이 분명하다.
하이 킥은 위력은 있지만 일단 피하고 나면 반격에 나설 절호의 기회가 생긴다.
나는 가드를 올리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여서 세군도의 하이 킥을 피했다.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역공에 나서기 위함이다.
킥이 빗나가자 세군도의 균형이 살짝 무너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밀고 들어간다.
세군도도 지지 않고 내 몸통을 향해서 연신 미들 킥을 날린다.
미들 킥을 막기 위해서 가드를 내리면 그 틈에 내 안면을 노리고 녀석의 펀치가 들어올 것이다.
세군도의 오른 손 훅은 빠르다.
조심해야 한다.
세군도가 사정거리 안에서 날리는 미들 킥을 완벽히 피하는 것은 어렵다.
피하기보다는 몸통을 틀어 충격을 최소화하는 편을 택했다.
나는 녀석의 미들 킥을 버텨낼 자신이 있다.
세군도가 연이어 킥을 날리며 반격하자 관중들이 열광한다.
나도 알고 있다.
내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자꾸 정타가 나오지 않는다.
알았으면 고칠 수 있어야 프로다.
녀석의 미들 킥을 몸을 비틀어 흘려버리고는 원투 스트레이트를 가볍게 뻗었다.
마치 잽을 던진다는 기분으로!
역시 힘을 빼야 한다.
처음으로 깨끗한 정타가 나왔다.
세군도의 얼굴이 뒤로 젖혀진다.
뒤로 물러나는 세군도를 향해 다시 한 번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이번에는 체중을 좀 더 실어서!
주먹에 기분 좋은 감촉이 전해진다.
세군도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는 녀석의 맷집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내 스트레이트 단발을 맞고 다운을 당한 다타야마는 심판이 카운트 8을 세자 겨우 일어난다.
가벼운 펀치였다.
말이 스트레이트지 조금 강한 잽이었다.
툭툭 털고 일어나 잃어버린 포인트를 만회하고자 맹렬히 공격을 해 올 줄 알았는데 뜻밖이다.
일본 최고의 스타 세군도 다타야마 씨의 엄살이 대단하시다.
세군도는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나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다.
저리도 약한 모습을 보이니 뭔가 함정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녀석이 충격을 받았던 충격을 받은 것처럼 연기를 하던 상관없다.
다운 당해서 뒷걸음질을 치는 상대를 지켜보는 놈을 멀뚱히 지켜보기만 하는 놈은 격투가가 아니다.
성큼성큼, 거침없이 거리를 좁히며 세군도를 압박했다.
녀석은 로우 킥을 날릴 타이밍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서 내게 거리를 허용하고 말았다.
서로가 서로의 사정거리로 들어왔다.
세군도가 자신의 특기인 미들 킥을 내 옆구리를 향해 날린다.
하지만 다운으로 위축이 된 것인지 파워가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녀석의 킥을 슬쩍 흘려버리며 원투 스트레이트를 세군도의 턱을 향해 날렸다.
세군도가 필사적으로 가드를 올리며 막는다.
체중이 제대로 실렸는데!
아깝다.
녀석도 가드 위긴 하지만 내 주먹의 무게를 충분히 느낀 모양이다.
두텁게 올린 가드를 감히 내리지 못한다.
얼굴을 막느라 허술해진 세군도의 복부를 향해 어퍼컷 콤비를 연달아 날렸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느낄 수 있다.
세군도의 입이 조금씩 벌어진다.
그리고 단단하던 복부가 조금씩 물렁해져간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가 싶더니 가드가 아래로 내려온다.
녀석의 복부 내구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비어있는 녀석의 얼굴에 짧고 빠른 훅을 한 발 터뜨렸다.
세군도가 휘청거린다.
이제 되었다!
내 화려한 연타 공격을 여기 오신 격투기 팬들에게 선보이며 경기를 끝내련다.
시간은 아직 15초 정도 남아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세군도 다타야마는 다음 라운드의 시작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아아!
갑자기 심판이 나와 세군도의 사이에 끼어든다.
설마 여기서 시합을 끝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내 화려한 콤비 블로우를 아직 팬들에게 보여들이지 못했는데?
아쉽다.
그것이 아니다.
내 팔을 잡아끌고는 링 사이드로 데려 간다.
링 닥터를 불러서 갤럭사이와의 1차전에서 찢어진 내 눈을 체크한다.
설마!
나는 얼굴 쪽으로는 전혀 얻어맞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링 닥터의 얼굴이 심각해 보인다.
조금의 빌미만 있으면 시합을 중지시키기라도 할 표정이다.
관중들은 양분된다.
여기서 시합을 멈추고 세군도의 승리를 선언하라는 듯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고, 석연치 않은 시합 중단에 야유를 보내는 팬들도 있다.
다행히 시합이 속개된다.
중단된 동안 세군도는 기력을 회복했는지 날렵하게 발차기를 시도한다.
공격을 하려기보다는 팬들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어필하려는 쇼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일본 팬들은 자신들의 우상에게 뜨거운 격려를 보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그래도 흘러간다.
1라운드가 종료 된다.
***
2라운드가 시작된다.
1라운드 종료 직전의 경기 중단은 시합 흐름을 슬쩍 바꾸어 놓았다.
아무래도 눈의 상처가 신경이 쓰인다.
유효타를 맞지도 않았는데 시합을 중단시킬 정도라면, 내가 잽 한대라도 맞으면 바로 세군도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완연히 살아났다.
세군도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상처 입은 내 눈두덩이를 한대만 때리면 이길 수 있다는데 누군들 기가 살지 않겠는가?
코칭스텝들에게 내 상처를 터뜨릴 전략들을 전해들었음이 분명하다.
세군도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로우 킥을 바탕으로 미들 킥, 때로는 하이 킥까지 선보인다.
관중들은 환호한다.
물론 녀석의 킥은 보여주기 용이다.
심판들과 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 같다.
침착해야 한다.
찢어진 상처 쪽 수비를 단단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곤란하다.
녀석의 리듬에 익숙해져야 한다.
로우 킥을 날리다가 내가 간격을 좁혀 들어가면 미들 킥이다.
그러다 내가 몰아붙이려 하면 끌어앉고는 내 뒤통수를 주먹으로 가격한다.
이전투구를 벌이며 시간을 끌 필요가 있을 때 흔히 사용하는 전략이다.
미안하지만 내 눈에는 다 보인다.
녀석이 로우 킥을 날릴 때 주저 없이 파고들었다.
미들 킥을 날릴 틈도 없는지 클린치를 하려고 든다.
내 어퍼컷 단발이 순식간에 녀석의 명치에 박힌다.
몸통 쪽에 받은 충격은 차곡차곡 누적되는 법이다.
세군도가 다시 헉헉대기 시작한다.
역시!
1라운드에서 몸통공격으로 받은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이 되었을 리가 없다.
이번에는 양 훅을 녀석의 옆구리에 순서대로 꽂았다.
놈의 발이 눈에 띄게 무뎌진다.
다리가 둔해진 녀석이 도망 갈 수 있는 곳은 코너 밖에 없다.
나는 녀석을 서서히 몰아간다.
다섯 방이었나?
아니면 여섯 방이었나?
화려한 콤비 블로우가 녀석의 얼굴과 몸통을 가리지 않고 터진다.
세군도가 출렁거린다.
필사적으로 머리들 들이밀며 코너를 빠져 나오려 한다.
그런 녀석의 도주로를 막다가 그만 녀석의 머리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아!
관중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내 상처가 다시 터진 것이다.
붉은 피가 내 눈에 자꾸 들어와서 눈을 뜨기가 어렵다.
주심이 기다렸다는 듯 시합을 중지시킨다.
이대로 끝난다면 세군도의 K.O 승이다.
규칙이 그렇다.
링 닥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고 말았다.
비신사적인 행위로 파울을 받고 말았다.
1점 감점이란다.
관중들이 야유를 보낸다.
시합을 중지시키지 말란다.
V.I.P 석에 앉아있던 프로모터 마사오와 사토미가 링 사이드로 다가온다.
주최측 대표와 그들이 링 닥터와 뭔가를 수근거린다.
짙은 음모의 향기가 난다.
이런 상황이 참으로 싫다.
명색이 격투가라는 놈이 자신의 주먹이 아니라 타인의 수군거림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만약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링 위에서는 오직 내 주먹으로 승부를 내고 말 것이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질까?
사토미가 나에게 귓속말을 한다.
"이번 라운드가 마지막이야. 2라운드가 종료되면 시합을 중지시키기로 양측 프로모터가 합의 했어. 미안해!"
이상하게 사토미의 그 말이 절망적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2라운드 종료 까지는 정확히 33초가 남았다.
33초나 남아있다는 말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