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K-1 준결승전( vs 메데로프 ) (1) (56/88)



〈 56화 〉K-1 준결승전( vs 메데로프 ) (1)

이 여인을 밀어내 버릴까?


아니면 그냥 내 몸을 맡겨둘까?

잠시 고민을 했다.


이 여인의 복잡 다단한 감정을 내 무딘 감성으로는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여인을 모질게 대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내 고민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사토미가 내 트렁크를 아래로 내린다.


고개를 빳빳이 든  물건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사토미의 뺨을 때린다.

여자의 신음 소리가 나즈막히 들린다.

여자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까칠한 내 음모와 뒤섞인다.

사토미가  물건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는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가져 온다.

잔뜩 성이 난 내 불기둥이 사토미의 촉촉한 입술 틈으로 사라진다.

오늘따라 사토미의 입술과 손길이 부드럽기만 하다.


내가 겪어본 여자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내 몸을 탐하던 사토미가 오늘은 다른 여자처럼 여겨진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선수에 대한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괜히 쓴 웃음이 나온다.

덕분에 마음은 한결 평온해지고 긴장이 적당하게 풀리고 말았다.

내 물건을 물고 있는 사토미의 얼굴이 귀엽게 보인다.


사토미를 끌어당겼다.

이 귀여운 욕심쟁이를 뜨겁게 안아주고 싶었다.


뜻밖이다.


사토미가  손을 밀어낸다.


"나에게 맡기고 석현 상은 가만히 있어. 시합을 앞둔 전사는 쓸데없는데 힘을 쓰면  되는 법이라구!"


우스운 생각도 조금 들지만 그녀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편안하게 누워서 그녀의 입술에 내 몸을 완전히 맡긴다.


사토미의 따뜻한 혀가 내 물건을 따라 오르내린다.

나는 긴장을 풀고 그녀가 나에게 선물하는 기분 좋은 감촉을 즐길 뿐이다.


"아아! 아쉽지만 여기서 멈출게! 대신 시합이 모두 끝나고 나면 사토미를 꼭 안아줘야 해! 알겠지? 약속한 거야! 응?"

사토미가 한껏 달아오른 숨을 고르며 내 물건을 보듬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을 맞춘다.


쪼옥!

청량감 그득한 소리가 기분좋게  귀를 간지럽힌다.



******




"석현 상! 일어나! 준결승전 상대가 결정 되었어."

나도 모르게 잠시 잠이 들었나 보다.

귓불을 스치는 간지러운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사토미가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와서 소곤거린다.


나의 준결승 대진 상대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누구? 메데로프?"


"······."

사토미는 말없이 살짝 끄덕인다.


역시 메데로프인가?


예상은 했지만 피하고 싶은 상대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속한 B조에 강자들이 모인 것은 모종의 음모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태국의 복싱영웅 갤럭사이, 전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 메데로프, 그 메데로프를 이긴 바 있는 나 강석현 까지!

A조에는 세군도 다타야마 외에는 이렇다  강자가 보이지 않는다.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지만 아마도 A 조에서는 세군도 다타야마가 무난히 결승에 진출 할 것이다.


그것도 이른 시간에 K.O 승을 거두며 체력을 보존하면서 말이다.


B조에서는 누가 올라가든 혈전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강석현만 해도 벌써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아마도 세군도 측에서는 나와 메데로프가 진이 빠질 때까지 싸우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그들의 뜻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태다.

주최 측에서 바라는 우승자는 일본의 세군도 다타야마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야 흥행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니까.

K-1 이 정식 대회가 되기 위해서는 멋진 그림이 필요한 것이다.


"메데로프의 시합 영상 준비해 뒀어.  풀면서 봐 두도록 해!"

잠시 눈을 붙인 덕분인지 머리가 한결 맑아졌다.

적당한 시간에 정신을 차린 것 같다.

너무 많이 자면 몸이 굳어버린다.

다행이 그 정도는 아니다.


스트레칭을 하며 사토미가 준비한 메데로프의 8강전 영상을 본다.

"메데로프가 몸을 많이 불렸군요. 한계체중인 70kg이 훨씬 넘어 보이잖아요? 녀석이 계체량 통과한 것 맞아요?"

"메데로프는 파워를 집중적으로 보강했어. 석현 상에게 패배한 것이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야. 압도적인 파워로 석현 상을 이기겠다는 거지. 마사오가 어드바이스를 한 눈치야."


마사오라면 일본 격투계의 큰 손이자 세군도 다타야마의 프로모터다.

사토미 사단의 휘하에 있던 메데로프는 나에게 패배한 후로 마사오 쪽으로 이적을 했다고 들었다.


아마도 나와 사토미에게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내가 태국의 갤럭사이를 꼭 이기고 싶었던 것처럼 메데로프도 나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려  것이다.


"눈 부상은 괜찮아? 스텝들 말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하더라구······."


어쩌면 내 부상 정도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토미일지도 모른다.

의료진에게서 뭔가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시합을 앞둔 선수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부상이야기를 저토록 진지한 얼굴로 하는 것으로 보아,  좋지 않은 상태인 것은 확실하다.


눈두덩이가 좀 더 찢어진다면  닥터는 바로 시합을 중지할 것이다.

그리고, 내 꿈은 이대로 바스러지게 된다.

"걱정말아요. 메데로프에게 얻어맞기 전에 내가 먼저 놈을 때려눕힐 테니까."

큰 소리는 쳤지만 그것이 가능할까?

더구나 메데로프는 체중을 불려서 거의 미들급에 육박하는 걸로 보인다.


겨우 60kg 을 넘나드는 내 파워로 놈을 한 방에 침몰시키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무슨 수가 없을까?

"피이! 큰소리칠 일이 아니야. 부상 당한 눈 쪽에 정타를 맞게 되면 바로 타월을 던질 거야. 석현 상은 아직 젊잖아? 기회는 다음에도 있어. 하지만 큰 부상을 당하면 바로 은퇴하는 수밖에 없지. 몸을 아껴둬!"

"내가 지면 사토미 상이 우습게 되잖아요. 메데로프를 버리고 나를 영입했는데, 그런 내가 메데로프 놈에게 진다면 모두들 비웃을 겁니다."

"나는 괜찮아. K-1 은 흥행에 성공할 거고. 내년에는 양지로 나아가서 정식 대회가 열릴 거야. 그때 강석현 상이 나가서 우승하면 돼!"

"나는 오늘이 지나면 한국으로 가야 합니다."

"설마! 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그동안  돈을 모두 베팅 했다며?"

"돈이야 많을수록 좋겠지만 없으면 없는 데로 해 봐야죠."

"한국에서는 복싱도 할 수 없는 몸이라고 알고 있는데? 선수 자격도 모두 박탈당했으니 말이야."

"······."


이 여자, 나에 대해서 자세히도 조사를 해 두었다.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돌아가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며? 그러지 말고 나하고 함께 하자, 응? 석현 상의 실력에 내 능력을 합치면 일본 격투계를 손아귀에 쥐는 것도 꿈이 아니야. 석현 상이 나와 함께 한다면 쥐새끼 같이 교활한 마사오 놈은 내 상대가 아니라구!"


"미안하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골치 아프게 되었다.

사토미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오늘 우승을 하고 사토미와의 관계를 청산해야만 한다.

결승에 가기 위해서는 메데로프를 이겨야만 한다.

그것도 부상이 악화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



이제는 내 등장음악인 'Queen' 의 'March of the black Queen' 에 친숙해졌다.


메데로프를 이기고 당당히 링 을 내려와야 한다.

1라운드가 시작된다.


메데로프가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하고 말겠다는 각오가  눈에도 보인다.


아마도 시종일관 탱크처럼 나를 몰아붙일 것이다.


'바추카 포' 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의 펀치는 가드 위라 하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무거운 주먹을 더욱 무겁게 만들기 위해서 근육량을 늘이고 혹독한 감량을 통해 계체량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휴식기간 동안 원래 체중을 거의 회복한 모양이다.


지금 메데로프의 체격은 미들급 파이터의 그것이다.

페더급인 나와는 파워와 내구성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대단한 선수를 이겼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메데로프의 기세에 나도 모르게 압도당한 모양이다.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메데로프를 이기고 결승에 올라 세군도 다타야마 까지 침몰시키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나를 믿어야 한다.

내 주먹을, 내 발을, 내 감각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볼 생각이다.




나에게 복싱을 가르쳤던 최관장님은 '디트로이트의 코브라' 라는 별명을 가진 토머스 헌즈의 광팬이었다.

챔피언인 호세 쿠에바스와 도전자인 토머스 헌즈의 세계 타이틀 전 필름을  번이고 나에게 보여주며 나에게 아웃복싱의 묘미를 가르치려 애를 썼다.

관장님은 나 강석현에을 헌즈의  다른 별명인 ‘히트맨’ 으로 부르기도 했다.

가방끈이 짧은 나는 히트맨이 저격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얼마전에야 알았다.

멀찍이서 라이플로 상대를 저격하는 것처럼 날카롭게 상대를 타격할 수 있어야 히트맨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히트맨 너는 헌즈와 공통점이 많아. 큰 키, 날카로운 스트레이트, 만만찮은 파괴력 까지! 거기다가 잽만  단련하면 영락없는 토마스 헌즈인데 말이야. 잽이  아쉬워! 잽을 좀 더 연습해."


"......"


"그게 아니라니까? 무게 중심을 뒤에다 두고 주먹만 내미는 것은 헌즈의 잽이 아니야! 잽은 스트레이트처럼 날카롭게! 스트레이트는 잽처럼 경쾌하게! 그렇지!  번 더!"


아직까지도 최 관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잘 계시는 걸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최 관장님이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때문일 거다.

나 때문에 다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관장님, 할머니, 설유연, 낭만검객 이상훈  까지!

나를 도와 주었던 이들은 모두 보복을 당했다.

나 대신!

그들이 대신 당한 것이다.


이제 내가 돌아간다.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된다.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오늘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한다.


최 관장님에게 배운 잽으로 메데로프를 이길 거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일본 최고의 프로모터 마사오가 자랑하는 세군도 다타야마다.



어느 틈에 메데로프가 저돌적으로 치고들어온다.

메데로프의 훅이 내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