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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K-1 8강전( vs 갤럭사이 ) (2) (55/88)



〈 55화 〉K-1 8강전( vs 갤럭사이 ) (2)
아웃복싱 만으로는 놈을 꺾을  없다는 것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나의 답이다.

동물같은 동체시력을 가진 갤럭사이 놈은 내가 내미는 잽과 스트레이트의 리듬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리 빠른 주먹이라도 리듬이 읽히면 적중이 되지 않는다.

몇 번 헛손질을 하고나면 힘이 쭉쭉 빠지는 것이 격투기라는 운동이다.


놈에게 리듬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차라리 접근전을 펼치는 쪽이 확률이 높다.

갤럭사이 같은 특급 인파이터에게 접근전을 펼친다는 것은 무모하지 않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강력한 어퍼컷이 있다.

내 어퍼컷을 놈의 명치에 꽂아서 놈의 가드를 낮추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 스트레이트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접근전을 펼치되 놈의 훅을 가드가 아닌 위빙으로 흘려버려야 한다.

놈의 명치에 내 어퍼컷이 충격을 가할 때 까지 말이다.

가드를 열고 놈의 코앞까지 치고 들어간다.

놈의 왼손 훅이  귓전을 스친다.

‘쉬익!’

놈의 주먹이 내뿜는 바람소리가 섬뜩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왼손 어퍼컷이 놈의 복부에 정확히 꽂힌다.

하지만 놈은 내 주먹을 몸으로 받아 낸다.


탄탄한 생고무 공을 때린 느낌이다.

나도 알고 있다.


펀치 하나로 놈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는 것을.


다음엔 놈의 차례다.


놈의 오른 손 훅이  턱을 노리고 날아든다.


몸을 비틀고 어깨를 슬쩍 올렸다.


덕분에 놈의 훅이 내 어깨에 걸리며 궤도가 바뀐다.


 틈을 놓치면  된다.

내 오른  훅이 놈의 관자놀이를 노린다.


놈이 고개를 숙여 피한다.


사실 훅은 페인트 모션이다.


진짜는 내 왼손 어퍼컷이다.


주먹을 내미느라 놈의 호흡이 흐뜨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놈의 명치를 때린다.

갤럭사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물러서던 갤럭사이의 몸이 로프에 막힌다.

찬스를 잡은 내가 놈의 얼굴과 몸통에 파상공격을 퍼 붓는다.

이대로 시합을 끝내고 싶지만 아쉽게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공이 울리고 1라운드가 끝난다.

1라운드를 이긴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다운조차도 빼앗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다.





***




2라운드가 시작 된다.

1라운드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포인트는 땄지만 시합을 끝내지는 못했다.

리드를 하고는 있지만 그 정도의 포인트는 주먹 한 방이면 뒤집힐 수 있다.

1라운드에 시합을 끝냈다면 다음 시합을 임하기에 한결 수월할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혼전 중에 놈과 머리를 부딪혔는지 왼쪽 눈두덩이가 부어오른다.


조금 더 부어오르면 눈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는 수 없다.


이리  바에는 2라운드도 접근전을 펼칠 것이다.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다음 문제다.

내 소원은 갤럭사이를 이기는 것이었으니까!

이 놈을 잡기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한다.

갤럭사이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나이다.


나에게 참혹한 검은 별을 달아준 바로 그 남자다.

2라운드를 알리는 공이 울린다.


시작은 1라운드와 비슷한 작전으로 임해본다.

일단 처음 1분은 흘려보낼 생각이다.


3분 내내 폭발적인 대쉬를 해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1라운드 막판에 맹렬한 공세를 퍼붓느라 소비한 에너지를 감안해서 힘을 조금 아껴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행히 이제 내가 던지는 잽이 갤럭사이의 안면에 서서히 적중하고 있다.

나의 누적된 복부 공격에 놈의 리듬이 단순해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놈을 코너로 몰아가야 한다.

놈이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순간 폭풍처럼 몰아칠 것이다.

2 라운드에서 시합을 끝내고 싶다.


등에 로프가 닿자 놈이 화들짝 놀란다.

훅을 크게 휘두르며 코너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왼쪽으로 빠져 나가려고 시도할  알고 있었다.

내 왼눈이 부어있으니 그 쪽으로 돌아나가려는 놈의 생각은 합리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가 그 순간만을 노리며 그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 왼손 훅이 짧지만 예리하게 놈의 턱을 노린다.

놈이 얼굴을 돌려 충격을 줄여보았지만 늦었다.

주먹에 짜릿한 감촉이 온다.


충격은 받았지만 갤럭사이는 움츠려들지 않는다.


되려 무지막지하게 주먹을 크게 휘두르며 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다고 내가 손 놓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럭키 펀치를 두려워해서는 복서의 자격이 없다.


 정도 위험은 감내해야 한다.


그래야 링 위의 폭군 갤럭사이를 쓰러뜨릴 수 있다.


어퍼컷을 연이어 놈의 복부에 작렬시킨다.

놈의 발이 눈에 띄게 무디어진다.

하나!
두울!
세엣!


내 스트레이트가 리드미컬하게 놈의 얼굴을 두들긴다.

이제 결정타를 날릴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내가 방심을 한 것일까?

아니면 갤럭사이가 노리던 덫에 걸린 것일까?

생각 없이 휘두르는 줄 알았던 놈의 훅 한 방이 내 눈두덩이를 스친다.

갑자기 붉은 장막이 드리우는 것 같다.


눈앞이 벌겋게 물든다.

1라운드 도중 놈의 머리와 부딪혀서 부어있던  눈두덩이가 터진 것이다.

찢어진 상처에서 핏물이 튄다.

관중들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진다.


심판이 시합을 중지시킨다.


결혼식에라도 참석하는 것처럼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닥터가 나에게 다가와 눈의 상처를 살핀다.




나에게 체중이 실린 정타를 연이어 얻어맞고 있었지만 갤럭사이는 결코 시합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안일했던 것이다.

놈은  눈자위를 찢어발길 수 있다면 시합이 속개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한 방만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놈을 멋지게 드러눕힐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링 닥터가 눈살을 찌푸린다.

시합을 중지시킬지 말지를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야유를 퍼붓는 관중들이 없다면 링 닥터의 결정이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에서는 관중의 힘이 대단하다.


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링닥터가 고민 끝에 시합 속개를 결정한다.

눈두덩이의 출혈이 상당하다.


 방만  눈을 맞는다면 시합은 끝나고  것이다.


절체절명!

갤럭사이의 짧은  한방이면 나는 이대로 링을 내려와야 한다.


이상하게도 내 정신은 얼음장처럼 맑아진다.


온 몸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얼음물에서 건저낸 것처럼 살아난다.


갤럭사이가 코뿔소처럼 나에게 달려든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놈의 훅이 내 얼굴을 때리기 전에 내 크로스 카운터가 갤럭사이의 턱에 꽂힌다.

관중들이 열광한다.


충격을 받고 뒷걸음질 치는 놈의 얼굴에 체중을 제대로 실은 왼손 훅이 작렬한다.


손이 저릴 정도로 짜릿하다.


놈은 결코 자기 발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겼다!


링의 무법자 갤럭사이를 쓰러뜨리고야 말았다.

이제서야 놈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나는 챔피언이라도 된 것처럼 포효했다.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 준다.


 순간만은 내가 챔피언이다.

이제 부상 때문에 다음 시합을 가질 수 없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

나는 갤럭사이를 이긴 것이다.


******



"다행히 생각보다는 상처가 깊지 않군요. 하지만 준결승전은 무립니다. 자칫하면 왼쪽 눈의 시력을 상실  수도 있어요."

선수 대기실에서 내 상처를  의사가 고개를 절래 절래 젓는다.

사토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그녀는  닥터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내가 준결승전을 치를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걱정말아요 사토미 상. 나는 죽어도  위에서 죽을 거니까요. 눈에서 출혈이 일어나지 않도록 응급처치나 잘 부탁해요. 이런 거 잘 하는 스텝이 있다고들 하던데요?"


"그건 걱정 마 최고의 커팅 맨을 대기시킬 테니까."

사토미의 얼굴이 밝아진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내 눈을 보아줄 스탭들을 수배하는 눈치다.




나보고 포기하라구?

당치 않은 이야기다.


나는 오늘의 시합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내 돈도, 그리고, 내 목숨도!


다행히 사토미는 아직  편인 것 같다.


나를 아주 팔아넘긴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내가 갤럭사이에게 졌다면 사토미의 태도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내 준결승전 상대는 누가 될려나?


예상과 같이 하드펀치의 소유자 메데로프가 될까?

아니면?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명색이 준결승전이다.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준결승전에서 살아남는다면 결승 상대는 세군도 다타야마가 될 것이다.

놈을 이기고 우승을 하려면 준결승전에서는 빠른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준우승을 해 보았자 나에게는 남는 것이 없다.


오직 우승만이 살 길이다.


그리고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토미가 수배해온 스텝들이 능숙하게 찢어진 내 상처를 돌본다.


선수용 간이베드에 누워 빨리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따갑고 욱신거리던 눈두덩이가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아니 감각이 없어진 건지도 모른다.

"오늘 강석현 상이 싸우는 동안 이 사람들이 상처를 돌봐 줄 거야. 일본에서도 톱클래스의 컷팅맨들이니까 걱정말고 싸워도 돼! 내가 비싼 돈을 주고 긴급해 모셔온 거야. 전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구시켄 요꼬 부터 현 밴텀급 세계 챔피언인 와타나베 지로까지 세계챔피언이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는 일류들이라구!"


이 여자는 내가 우승하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내가 오늘 시합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분명히 말한것 같은데,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일까?




"준결승까진 아직  시간 남았어. 조금이라도 쉬어 두도록 해! 결국 체력 싸움이 될 거니까."


"······."

나도 안다.


쉴  있을 때 쉬어 둬야 한다.


긴장을  풀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신경이 시퍼런 칼날처럼 바짝 날이 서 있다.


어느 순간 부드러운 손길이 뭉친 내 근육을 어루만진다.

사토미의 손이다.

나도 모르게 그 손을 밀쳐 내었다.

"호호! 왜 그렇게 긴장을 해? 석현 상 답지 않게! 가만히 있어. 오늘까지는 누가 뭐래도 강석현 상은 나 사토미의 선수야!  말 들어, 응?"

"······."

"이래봬도 내가 스포츠 마사지를 제대로 배웠다구. 제때 뭉친 근육을 풀어두지 않으면 부상이 오기 쉬워! 가만히 있어! 옳지! 그렇게!"

엉겁결에 사토미에게 내 몸을 맡기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선수들의 몸을 관리할 때 운동 후의 마사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근육을  풀어두는 것이 피로 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사토미의 마사지 실력은 상당하다.


그녀의 손이 목덜미부터 등근육을 따라 척추로 내려온다.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있던 내 신경들도 부드럽게 이완된다.


"이제 돌아누워! 앞쪽 근육들도 풀어 둬야해!"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몸을 맡긴다.

다행이다.


사토미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순순히 허락해 준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 여자다.

덕분에 돈도 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갤럭사이와 싸울 수 있는 기회를  것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사토미에게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진다.




혹시라도 한국에서 내 일이 잘 풀린다면 사토미를 위해서 싸울 날이 있을 것이다.

신세는 그  곱절로 갚으면 된다.

어깨 근육과 이두박근, 삼두박근을 천천히 풀어주던 사토미가 이제 대흉근을 비롯한 가슴 근육을 풀어주려 한다.


그녀의 손길이 점점 느려진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내 근육들이 이완된다.

그녀의 손길보다 더 보드라운 것이  가슴팍을 쓰다듬는다.


사토미의 입술이다.

가슴 언저리를 배회하던 그녀의 입술에서 촉촉하고 말랑한 살덩이가 나오더니 내 젖꼭지를 쓰다듬는다.


여자의 입술 사이로  젖꼭지가 빨려 들어간다.





사토미의 손길이 점점 부드러워진다.

이제는 마사지가 아니라 확연한 애무로 바뀌어 버렸다.

여자의 손길이 길을 열고  뒤를 따라 여자의 입술과 혀가 차근차근 내 몸을 더듬는다.


그녀의 손이 가슴을 지나 전투의 긴장감으로 팽팽한 나의 복근을 어루만진다.


아아!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 음탕한 교성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토미의 붉은 입술에서 새어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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