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k, high return )
"강석현 군! 드디어 초대장이 왔어. 언더그라운드 격투기 챔피언 선발전이 결정되었다! 오사카에서 열리기로 말이야!"
가네다 씨가 흥분한 어조로 나에게 알려 준다.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가네다 씨에게는 이례적인 일이다.
"아, 네."
짐짓 놀란 척 했지만 사실 예상하고 있었다.
사토미가 내게 미리 언질을 주었던 것이다.
"상금은 무려 일백만 달러! 전 세계에서 참가하는 16명의 출전 선수 중 예선전을 거쳐 16명을 선발하고 토너먼트 게임으로 단 한 명의 챔피언을 정한다는군."
"......"
"강석현 군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는 것은 주최 측에서 군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일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팔 억 쯤 되는 큰돈이다.
그리고 돈도 돈이지만 거물급 복싱 프로모터들이 경기를 보러 올지도 모른다.
비공개라느니 언더그라운드니 하는 것은 법망을 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란다.
내 상품성을 인정받으면 복싱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프로복싱의 세계에서는 프로모터가 신이다.
모든 것은 프로모터가 결정한다.
그들이 시합을 만들고 스타를 만든다.
그들의 눈에 들면 기회가 생긴다.
이는 하늘이 주신 기회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 사토미와 손을 잡은 것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사토미의 말로는 주최 측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입식 격투기를 밝은 양지로 올려놓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프로젝트 이름이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프로젝트 K1 이었던가?
"일본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격투기를 좋아해! 세계적인 복싱 챔피언의 탄생에 목말라 있지. 하지만 슈거레이 레너드나 마빈 헤글러 같은 슈퍼스타는 쉽게 나오지 않아. 어쩌면 영원히 나오지 않을지도 몰라."
"......"
"하지만 종합 격투기라면 이야기가 달라. 판을 잘 꾸미면 일본에서도 슈퍼스타를 탄생시킬수도 있다고 봐.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먼저 종합 격투기를 활성화 시킨 나라니까! 유도는 물론이고 주짓수, 가라데 모두 일본의 지분이 있다구!"
이미 도박판과 결합된 언더그라운드 이종 격투기 시합에 거액의 돈이 오간다.
단지 파이트머니 뿐이 아니다.
관심을 끌만한 시합이 열리면 그 결과를 놓고 거액의 돈이 걸린다.
전문 도박사들도 참가를 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호황에 호황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 경제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정식 경기로 진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화끈한 경기가 예정된 것이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특유의 도박판이 크게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양지로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도박성을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원래 도박판에서도 마지막 판이 가장 커지게 되어 있단다.
모두들 마지막 불꽃을 태울 모양이다.
사토미가 원하는 것은 흥행성이 뛰어난 선수의 확보다.
놀랍게도 사토미는 복싱 프로모터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우수 선수들을 거느리고 입식 타격에 바탕을 둔 이종 격투기 단체를 만들 계획이다.
이종 격투기 단체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할 것이고 결국 가장 능력 있고 재력이 있는 단체에 흡수될 것이란다.
사토미는 자신이 세계 격투기 시장을 주무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격투기가 자리를 잡을 때 까지는 복싱 프로모터 일도 함께 겸업을 할 모양이다.
사토미를 통한다면 나에게도 길이 열릴수도 있다.
생각을 바꿔먹었다.
복싱을 할 수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링 위에 오를 생각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성공한 뒤에도 늦지 않다.
조급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 힘을 기르고 실력자들과의 인맥을 탄탄하게 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없다.
설령 돌아간다 하더라도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복수와 응징은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힘이 없으면 내 목숨조차도 장담 할 수 없다.
주최 측은 일본인인 세군도 다타야마의 우승을 바라고 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세군도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챔피언 자리에까지 오른다면 이종 격투기의 인기는 탄탄대로에 오르게 된다.
이종 격투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입식 타격을 바탕으로 하는 게임 룰도 있지만, 레슬링과 유도 까지 합친 그야말로 종합 격투기의 룰을 받아들이자는 의견까지도 나온다고 들었다.
프로모터들은 자신이 확보한 선수에게 유리한 룰을 적용하려고 그들 나름의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단 말이다.
세군도 다타야마는 사토미 휘하의 선수가 아니다.
사토미와 앙숙인 프로모터가 확보한 선수란다.
그에 맞서 차선책으로 러시아계 미국인인 메데로프를 앞세워 챔피언 자리를 노린 것이다.
문제는 그 메데로프가 나 강석현에게 무참히 패배를 당하면서 발생했다.
대회는 코앞으로 다가 왔고 이제와서는 특급 선수를 구할 수가 없다.
얼굴만 번지르르한 마에다나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메데로프로는 창피를 당할 뿐이다.
그래서 사토미는 과감하게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일본 최고의 격투가 세군도 다타야마!
일본 프로복싱 신인왕 출신으로 복싱 스킬도 대단하다. 그
런 놈이 일본 무에타이 현역 챔피언이기도 하다.
입식 타격가로서는 가장 완벽한 경력을 가졌다고 보아야 한다.
태국의 갤럭사이!
무슨 말이 필요할까?
녀석의 실력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무에타이 출신의 복서라는 것은 킹스컵 대회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프로복서로 전향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런 이종 격투기 무대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놈의 반 박자 빠른 펀치를 이번에는 피해 낼 수 있을까?
미국의 메데로프!
WBC 라이트급 전 챔피언이다.
무지막지한 하드 펀치를 가지고 있다.
사토미의 총애를 받던 그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절치부심!
복수심에 불타는 그도 결코 방심할 상대는 아니다.
"강석현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당분간 비밀에 부칠 거야. 그 이유는 알지? 이 바닥 물을 좀 먹었으니까 말이야."
"······."
"격투기만큼 내셔널리즘에 좌우되는 스포츠는 없어. 축구의 내셔널리즘이 굉장하다고는 하지만 직접 때리고 얻어맞는 격투기만 할까?"
"하지만!"
"알아! 강석현 선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하지만 이번 시합은 아니야. 아직 양지로 나온 것도 아니니까! 미디어도 기자 나부랭이들도 신경 쓸 필요 없어. "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는 양지로 나갈 수 없는 몸이다.
내 정체를 사토미가 감추어 준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충분한 힘을 갖출 때까지는 사람들이 모르게 숨어있어야 하니까.
***
"정말 이만 달러를 나에게 걸었단 말이에요? 이런 미친..."
잘못하면 쌍욕이 나올 뻔 했다. 그 어렵게 번 돈을 허무하게 날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이길 수 있다면서? 나는 석현이 너를 믿었지! 간밤에 꿈도 좋았고······."
"아니! 과학적 투자기법을 앞세워서 절대 잃지 않는 투자를 한다는 양반이 왜 그렇게 무모합니까?"
"아아! 과학적 분석도 좋지만 가끔은 머리보다 손이 앞설 때가 있어! 설마하니 우리의 강석현이 한물간 퇴물 복서 따위에게 질까? 석현이 스피드라면 메데로프에게 한대도 안 맞을 줄 알았지. 내 말이 맞았잖아?"
"체급이 달라요 체급이! 사실 미스매치였다구요."
"그러니까 투자를 한 거지. 배당률이 터무니가 없잖아? 10 대 1 이라니! 냉정하게 보면 1 대 1 이 맞아. 딱 호적수였다구. 아무리 페더급과 라이트급의 차이라 하더라도 1.5 대 1 이 최대치야. 도박사들이 강석현의 실력에 대해서 전혀 정보가 없었다는 거 아냐? 이런 정보 비대칭의 기회를 왜 놓쳐? 다시 선택 하라 하더라도 내 선택은 같아! 아니 한 오만 불 쯤 갈 걸 그랬나?"
"다음부터는 미리 이야기라도 하세요. 내가 얼마나 놀랬는데."
"얼씨구! 미리 이야기 했으면 석현이 네가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 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섭섭한걸?"
아무튼 다행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기는 하다.
이만 불로 그 열 배인 이십만 불을 벌어 들였다.
과정은 좀 그렇지만 결과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투자자금이 순식간에 풍족해진다.
"번 돈은 투자 해야겠지요?"
"물론!"
"역시 은행주로 가실 생각입니까?"
"전략을 수정할 생각이야. 2만 불은 원래 계획대로 은행주로! 그리고 나머지 18만 불은 삼성전자로 가자구!"
"삼성전자는 위험한 회사잖아요? 되지도 않을 반도체에 투자 하다고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주가도 많이 내렸구요."
"삼성전자가 조금 위험하긴 하지! 하지만 살 만한 주식이 없어. 다른 주식들은 너무 올라서 말이야. 하지만 위험한 투자로 생긴 돈이잖아? 이왕에 버린 몸, 모험 한 번 더 해보자구! 이미 주가가 삼만 원 밑으로 떨어졌어. 한 번 정도 투매가 나올 거야. 그 때 과감하게 들어가 볼까 하는데 석현이 네 생각은 어때? 네게 결정해!"
"까짓거 그럽시다. 혹시 압니까? 언젠가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는 날이 올지?"
"큭큭! 그건 좀 심했다. 대한민국이 무슨 재주로 일본 반도체를 이기냐? 다른 주식은 다 올랐는데 혼자 빌빌대고 있으니 싼 맛에 사 두자는 거지 뭐. 반도체 사업이 잘 안되면 적당히 포기할 거구. 그러면 주가는 금방 회복될 거야. 투매가 나올 때 싸게 사 뒀다가 적당히 오르면 털고 나와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 아닙니까?"
"에이! 주식은 트로이카야! 건설주! 증권주! 은행주! 이놈들이 지금 얼마나 올랐는데? 전자 산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냐."
"······."
하긴 정 도사의 말이 맞다.
지금까지 그의 투자전략은 기가 막혔다.
우리의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제 나만 잘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