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전쟁의 시작 (43/88)



〈 43화 〉전쟁의 시작

상대는 모두 네 명!

모두 짧은 칼을 들었다.

일본도다.


소태도라고 하는 짧은 칼이다.


암살자들답게 뒤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오직 가네다의 목숨만을 노린다.


벌거벗은 가네다가 급한 마음에 손에 잡히는 것들을 던지며 버텨 보지만 이건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가네다가 세숫대야를 방패처럼 들고 필사적으로 칼날을 피해 보려 한다.

내 주먹이 암살자 중 한 놈을 뒤에서 정통으로 가격했다.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풀썩 쓰러진다.

 존재를 알아챈  놈이 기합소리를 지르며 칼을 날카롭게 휘두른다.

예상했던 움직임이다.


어렵지 않게 칼을 피함과 동시에 놈에게 달려들어 벼락같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턱에 꽂아 넣었다.


짜릿하다!


역시 나는 투사인 모양이다.

칼을  상대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적과 맞서서 주먹을 휘두르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상쾌하다.

야만적이라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나 강석현이니까...!

내가 뒤에서 치고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자신들의 과업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있다.


한 놈은 나를 막고, 다른 놈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가네다만 노린다.

서둘지 않으면 가네다의 목숨이 위험하다.

'타앗!'

암살자가 기합소리와 함께 일본도를 휘둘렀고 그 칼은 내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그 틈에 내가 날린 타월이 창날같이 놈의 손등을 때린다.


타올을 따라 그 충격이  손에 전해진다.


놈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내가 놈에게 파고들었고 놈의 칼날은 무디어져 있다.


놈이 다시 칼을 휘두르기 전에 내 짧은 훅이 놈의 턱을 반 바퀴 돌려 버렸다.

이제   놈 남았다.

가네다는 이미 암살자의 칼에 몇 군데 찔리고 베여서 선혈이 낭자하다.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싸움을 시작했을까?


가네다가 나를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은인 까지는 아니다.


그에게 잘 보이면 좋겠지만 내 몸이 상해가면서까지 보호할 사람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능인 모양이다.


강한 자를 보면 피가 끓어 오른다.


칼을 품고 가네다의 목숨을 노리고 온 놈들의 살기가 내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투기를 깨웠는지도 모른다.


앞뒤를 돌아볼 것도 없이 가네다의 숨통을 끊으려 일본도를 휘두르려는 놈의 몸통을 향해 몸을 날렸다.

 충격으로 놈과 나는 바닥에 나뒹군다.

서로의 몸뚱이에 부딪힌 충격때문인지 머리속이 아찔해진다.

다행이 나에게 뒤에서 기습을 당한 암살자 놈이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놈이 다시 공격 자세를 가다듬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 틈에 내 앞에 보이는 의자를 집어들어서 놈에게 던졌다.

놈이 당황한다.


 번째 의자의 집어들었다.


놈은 이번에도 내가 의자를 집어던질 것으로 예상하는 눈치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다.

놈은 내가 의자를 집어던지면 그 의자를  내고는 폭풍같이 달려들어 나에게 칼질을 하려는 생각이다.

원목을 깎아서 만든 이탈리아제 의자는 생각보다 묵직하다.


놈의 짧은 칼날을 견뎌내기에 충분하다.

의자를 집어 던지지 않고 놈의 목젖을 노리고 깊숙이 찔러 넣었다.


길죽하고 단단한 의자 다리가 놈의 칼날과 엉킨다.

의자로 놈의 칼날을 버티며 놈을 사정없이 밀어 붙여본다.


내 완력을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 치던 놈이 테이블에 걸려서 균형을 잃는다.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관자놀이에 짧은 훅을 연달아 넣었다.

놈의 눈이 풀린다.


"무엇하는거냐? 오야붕을 보호하라! 어서!"


가네다의 부하들이 이제서야 몰려온다.

 일은 이제 끝났다.

내가 입고 있던 와이셔츠가 피범벅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칼날이 스친 모양이다.


조금 어지럽다.





***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입원실이다.

종합병원 까지는 아니고 제법 규모가 있는 외과병원이라고 나중에 들었다.


다행히 내 부상은 크지 않았다.

칼날에 살갗이 조금 찢어진 정도다.

열 바늘 이상 꿰매긴 했지만 이정도야 뭐!

가네다도 부상을 입긴 했지만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빠찡고 영업권을 두고 가네다와 트러블이 있던 조직에서 가네다를 제거하려던 것이라고 들었다.

앞으로도 시끄러울 모양이다.

"내 경호원이 되어 주시게!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해 주겠네!"


"······."

할 일도 없고, 돈도 궁하지만 야쿠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타국에 있다 보면 돈이 궁할거야. 이 돈을 받아 두는 것이 어떤가?"


가네다가 하얀 봉투를 나에게 내민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가네다 오야붕께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게.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 아니신가?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이면 기꺼이 도와야지!"

"저는 복서입니다. 복싱을 계속 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사실 큰 기대를 하고 하는 부탁은 아니다.

갑갑한 마음에 일단 던져놓고 본 것이다.


내 신분은 불법 체류자다.


합법적으로 링에 설  있는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길을 찾아보겠네! 기다려 보도록!"


가네다가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그런 그가 기다려 보라고 한다면 뭔가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야쿠자 조직의 거물들은 프로 복싱계는 물론 프로 레슬링계와도 유착 관계가 있다고 들었다.


뭔가 묘수가 나올지도 모른다.




"우와! 오백만 엔이나! 역시 야쿠자 오야붕쯤 되니까 통이 크네!"


봉투를 열어 본 정 도사가 나보다 더 좋아한다.

가네다가 나에게 준 두툼한 봉투 안에는 예상했던 대로 돈이 들어 있었다.

 돈이면 당분간 걱정없이 생활 할 수 있을 것이다.


돈 보다는 복싱을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올지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서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매일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고 몸관리를 해야 한다.


로드웍과 쉐도우 복싱 등으로 몸을 만들어가던 어느 날 가네다가 뜻밖의 제안을 해 온다.


"특이한 시합이 열리는데 혹시 출전을 해 보지 않겠나?"


"복싱 시합이라면 어떤 상대라도 좋습니다. 대전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아마추어든 프로든 상관없습니다. 사각 링에 올라 주먹을 휘두를 수만 있다면 좋습니다."

"으음, 그런데 그것이······. 시합이 사각 링에서 펼쳐지는 것은 맞지만 강석현 군의 상대는 복서가 아닐지도 몰라!"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상대가 복서가 아니라니요?"


"음성적으로 열리는 경기가 있어. 복싱도 가라데도 무에타이도 모두 허용되는 시합 말이야."


"······."


처음 듣는 말이다.


복싱이란  주먹만을 가지고 겨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링 위에서 무에타이나 가라데가 허용된다면 그것은 싸움판이 아닌가?"

"맞아! 나쁘게 보자면 싸움판이야! 좋게 보자면 여러 종목의 격투가들 중에서 누가 최고인지 알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


"극소수의 관중 앞에서 시합이 이루어질 거야. 하지만 그 관중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시합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가장 궁금해 하던 것 아닌가? 호랑이가 셀까? 아니면 사자가 셀까?  그런 궁금증 아니겠나? 강석현 군 자네처럼 양지에서는 시합을 가질 수 없는 파이터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네. 며칠 생각해 보고 답을 주게!"

"하겠습니다! 그 시합에 나가 보겠습니다."

"호오! 대답이 너무 빠른  아닌가? 복싱 시합보다는 훨씬 위험할 텐데? 괜찮겠나?"

"부딪혀 보겠습니다. 가만히 세월만 죽이고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우니까요."


"생명의 은인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군!"


가네다의 얼굴에 주저하는 빛이 역력하다.

아마 가네다가 설명한 것보다도 훨씬 위험한 게임인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발차기가 허용된다면 복서에게 결코 유리한 룰이 아니다.

대비책을 세워 둬야 한다.

"강석현 군의 결심이 확고하다니 내 시합에 나가도록 주선을 해 주지! 주선자가 파이트머니 절반을 가져가는것이 이 세계의 불문율이지만 은인에게 그 돈을 받을 수야 없지. 파이트머니는 자네가 전액 다 갖도록 하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 밖에 없는 것 같군!"


마음에 드는 것은 꽤 괜찮은 파이트머니가 있다는 것이다.

이기면 1만 달러, 지면 1천 달러가 즉시 지급된단다. 1


1만 달러면 큰돈이다.

프로 복서에게도 거액의 대전료다.


동양 챔피언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액수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꺼이 감수해낼 생각이다.

그리고 파이트머니 전액을 내가 다 챙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호의다.

가네다의 목숨을 구한 보람이 있다.

내가 시합에서 이기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겠지만 말이다.



***






"정 도사 형님! 공부는 잘 되어 갑니까?"

"내 실력이야 막강하지! 문제는 실탄이 없다는 거야, 실탄이!"


"일본에만 오면 실탄이 생길 것 같이 말씀하시더니 어떻게 된 겁니까?"

"미연이 그년만 찾으면 실탄이 생겨! 그때부터 시작이야!"

정성기가 일본으로 오기 전에 자신의 내연녀를 일본으로 먼저 보냈다고 한다.

자신의 전 재산과 함께. 그런데 그 여자의 행방이 묘연하단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는 여자가 정성기의 돈을 가지고 잠적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정성기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워 보인다.

"무슨 도사님께서 심심하면 사기를 당하고 뒤통수를 맞고 그럽니까? 그래가지고서야 도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습니까?"


"뭐야? 내가 무슨 사기를 당했다고 그래? 미연이는 그런 여자가 아냐! 무슨 사정이 있는  분명해!"

목소리는 커지지만 정성기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진다.

내가 괜한 소리를 한 모양이다.


이러다가 술독에라도 빠지면 대책이 없다.

"도사님! 내 돈을 맡길 테니 알아서 불려 주시오!"


"석현이 너도 형편이 좋지는 않잖아?"

"내가 콜로세움에 나가 볼 생각이오."

"무슨 소리야? 검투사 노릇이라도 할 생각이야?"

"그럴 생각입니다. 굶어 죽는 것 보다는 맞아 죽는 편을 택해야죠!"


"야! 강석현! 위험한 일은 하지 마! 여긴 일본이라구!"

"도사님은 내 걱정하지 마시고, 돈 불릴 생각이나 하시오. 자신 있지요? 형님이 장담한  처럼 열배, 아니 백배로 돈을 불릴 자신 말입니다."

"그, 그야! 자, 자신은 있지만 세상 일이란 게..."

"나는 매주 콜로세움에 설 생각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죠. 그렇게 된다면 매주 1만 달러씩의 현금이 나에게 들어 옵니다. 제법 큰 돈이지요.  돈을 종잣돈으로 해서 돈을 불려 보세요."


"······."

정성기의 표정이 굳어진다.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걱정 마세요!  돈 날린다 하더라도 형님 탓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


"한 번 모험을 해 봅시다. 형님이 나한테 이야기  준 대로 투자를 해 봅시다. 일이 잘 풀리면 나도 백만장자, 아니 억만장자가 되는 것 맞지요?"


잊고 있었다.


돈의 힘을!


어쩌면 돈을 버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몇 년 만에 열배로 돈을 불릴  있다면 십 년 정 도면 몇 백 배로도 불릴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게 가능한가?


설령 가능하다고 한다해도 그걸 자칭 정 도사라는 정성기란 사람이 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이란 것을 보았다.

지푸라기 같이 힘없는 희망이라 해도 아예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내가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다음은 신경 쓰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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