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민예린의 일기장 (3) (36/88)



〈 36화 〉민예린의 일기장 (3)

세상은 넓으면서도 좁다.

광풍회 놈들을 하나씩 하나씩 쫓아서 들어가면 놈은 결국 꼬리를 보이게 되어 있다.


그 몇 단계를 착실히 밟았고 기어이 최욱의 꼬리를 잡았다.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에 유학중이라는 최욱 놈은 어쩐 일인지 미국보다는 서울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어디선가 여자 사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냥감을 쫓는 놈은 막상 자신의 뒤쪽이 허술한 법이다.

내가 놈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놈은 아직 모른다.

놈이 겁을 집어먹고 두더지처럼 숨어버리기 전에 잡아야 한다.


오늘 밤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





"강석현! 너 미쳤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낭만 검객 이상훈이 기겁을 한다.


내가 그를 찾아 온 것은 보영 그룹 회장 최대갑 놈의 집에 침입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내 말 몇 마디에 그는 일의 자초지종을 대번에 파악한다.


두 손을 들어 나를 만류한다.

그의 눈에는 내가 죽으려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백 번 양보해서 네가 최욱과 최대갑 회장에게 응징을 가하는데 성공을 한다고 치자! 그 다음은 어떡할 건데?"

"놈들을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기껏해야 폭행 아닙니까?"

"네가 돈 많은 놈들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석현이 네가 놈들을 죽이든 안 죽이든 상관없어. 네가 그놈들을 건드리는 순간부터 네 목숨은 네께 아냐!"

"그럼, 차라리 두  모두 죽여 버릴까요?"

"야!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압니다. 나도 그 정도 돌대가리는 아니요."

"······."

"고마워요, 형! 내 편이 되어 주어서! 이 은혜는 지옥에 가서도 잊지 않을 겁니다. 혹시 살아서 보게 된다면 은혜를 갚을 날이 있겠지만... 그럼, 이 바보 동생은 갑니다!"

"잠깐! 이거 입고 가라!"

"뭡니까? 이건!"

"방검복이다. 칼든 놈들하고 붙을 때는 도움이 된다. 목숨은 아껴야지!"


"뭐, 이런  다······."

"석현아! 혹시 살아남게 되면 나에게로 와라! 내가 아는 일본 기술자가 있다.  신분증 만들어 놓을 테니까 일본으로 가라! 거기라면 괜찮을 거다. 나와 호형호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단 몸은 숨길  있을 거다."


"괜찮아요! 잘못하면 형까지 다칩니다. 있는 놈들 무서운 줄 몰라서 그럽니까?"

낭만검객 형이 나에게 해준 걱정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 말이 우스웠는지 형이 크게 웃는다.

나도 따라서 크게 웃어 본다.

"으하하! 간만에 웃어 본다. 배짱이 맞는 아우 하나 생기나 했더니 잘못하면 정도 들기 전에 제사 부터 지내게 생겼구나!"

"걱정 마세요! 내가 형보다 먼저 병풍 뒤에 누워서 향냄새 맡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다.

별 것 아닌 인연에 배짱이 맞아 형제처럼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작은 악연이 쌓여서 이렇게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한다.


하나가 생기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그것이 인생이다.


***




민예린을 구덩이 속에 밀어 넣은 것이 최욱이고, 그녀의 목숨을 끊은 것이 최대갑이다.

일의 선후를 정해야 한다.

먼저 최욱을 치고, 그 다음이 최대갑이다.

 놈을 치고 나면 다른 놈은 꽁꽁 숨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생각만 하고 고민만 하다 보면 한 놈도 응징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이제 곧 보영 그룹을 이끌게 되신 재벌3세 최욱께서는 여전하시다.

미국의 명문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초심을 잃는 법이 없으시다.


오늘도 나이트클럽으로 행차를 하신다.

겁 많은 최욱은 결코 혼자 다니지 않는다.


보디가드들을 여럿 거느리고 다닌다.


말이좋아 보디가드지 조직폭력배들이다.

미래 일보의 박선호 흉내를 내는 것인지 자신이 뒤를  주는 조직도 생긴 모양이다.


돈이 좋긴 좋다.


나 못지않게 공부를 못하던 최욱이 미국 명문대를 다니면서 조폭들을 거느리고 다닌다.

그런 최욱이 눈길만 주면 몸을 갖다 바치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여자들이나 건드리고 다니면 되지 굳이 민예린 까지! 왜?



나이트클럽에서 최욱은 항상 룸을 잡는다.

오늘처럼 최욱 혼자서 나이트클럽을 찾는  놈의 목적은 춤도, 술도 아니다. 오로지 섹스만이 목적이다.


룸 안에서 매의 눈을 하고서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찍는다.

 입구에다 보디가드를 병풍처럼 세워두고는 웨이터를 통해 여자들을 룸으로 불러 들인다.

최욱 놈의 단골 웨이터가 여자들에게 제안을 하면 여자들은 십중 팔구 최욱이 있는 룸으로 찾아든다.

호텔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즉석에서 섹스 판을 벌인다.


최욱 놈도 부끄러움은 남아있는지 이

런 날에는 평소처럼 대부대를 거느리고 오지 않는다.

오늘이 그날이다.


룸 앞에 장승처럼 서 있는 두 놈!

아마 칼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놈들과 싸우다가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빠르고 간결하게 끝내버려야 한다.

가능하면 사시미 칼을 뽑기 전에 말이다.


"쩌억! 쩌억!"


쌍으로 턱이 깨지는 소리다.

내 스트레이트가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발로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벌거벗은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자가 기겁을 하며 옷으로 지금껏 즐겁기만 하던 부분을 열심히 가리려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자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최욱 하나다.

최욱 이놈은 그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놈은 아직 내가 경찰서에서 풀려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밖에 쓰러진 놈들을 룸 안으로 질질 끌고 왔다.

놈들이 정강이에 차고 있던 칼을 빼앗아 멀찍이 던저 버리고는 문을 잠갔다.


최욱을 담당하는 노련한 웨이터는 여자가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잡인들의 출입을 단속할 것이다.

내 눈빛이 많이 무서웠는지 여자는 고개를 파묻고 찍소리도 내지 않는다.

사극을 보면 꼭 나오는 대사가 있다.


'이놈!  죄를 네가 알렷다!'


자신의 죄는 자신이 제일  안다.

최욱도 마찬가지다.


내가 뭐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파랗게 질린 놈의 얼굴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놈의 몸뚱아리가 최욱의 죄를 자백하고 있다.

나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말 없이 놈의 뺨을 갈겼다.


너무 세게 갈기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혹여라도 놈을 죽이고 말까봐 얼마나 내 가슴을 눌렀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내, 내가 그런거 진짜 아냐!  모르는 일이야! 제발 살려 줘!"

놈의 변명 따위는 관심 없다.

듣고 싶지도 않다.

"정말이야! 믿어 줘! 내가 죽인에게 아냐! 꼰대가 그랬어! 꼰대가 민예린을 죽였어!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


"······."


이런 놈과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놈은 공포에 질려서 바닥을 긴다.


 손을 모아 싹싹 빈다.

"꼰대는 민예린이 자기를 배신하고 석현이 너랑 붙어먹은 것을 알아버렸어. 우리 꼰대 뒤끝이 장난 아니거든! 그래서 그만..."

"······."


"내, 내가 꼰지른거 아냐! 정말이야!"


"상관없어! 나는 최욱 네놈을 여기서 때려죽일 거야!"

"······."


내 눈을 흘끔거리던 최욱이 공포에 질려서 이제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궁금했었어! 수박이 더 단단할까? 아니면 최욱 네놈의 머리가 단단할까?"

"······."


"수박은  주먹 한 방에 박살이 나더라고."

"......"

최욱 너도 만만치 않은 돌대가리니까, 수박보다는 오래 버티겠지? 딱 세 방 예상해 본다. 그러고도 버티면 더는 안때릴께! 그건 약속해! 자, 이제 고개 드시고! 들어갑니다!"

"석현아! 사, 살려줘! 난 한대만 맞아도 죽어! 응? 뭐든지 해줄게! 돈? 얼마면 될까? 액수만 말해! 으악!"


내가 손만 슬쩍 들어도 최욱이 기겁을 한다.


"돈은 필요 없고, 너희 집이나 구경시켜줬으면 하는데! 너희 아빠 최대갑 회장님께서 요즘 집에 일찍 들어오신다며?"


"깡석현! 그건 아니지!  우리 꼰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무서운 사람이야! 사람 하나 죽이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아! 네가 걱정이되어서 하는 말이야!  말은... 우욱! 웩! 웩!"


매를 버는 놈이다.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면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놈이다.

"네 아비 최대갑이 그거 알아? 아들 놈의 새끼가 민예린을 겁탈했다는 사실 말이야."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무슨 증거로 사람을 모, 모함해?"

"가자! 3자 대면을 해야지? 서로의 진술과 증거가 엇갈리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어억! 마, 말로해! 한대만 더 맞으면 나 죽을지도 몰라! 컥! 사, 사람 살려!"


때리라면 때리고, 때리지 말라고하면 안 때릴까?

내 마음이다.

최욱이 놈을 딱 절반만 살려 놓았다.

폭력의 힘에 다시 한 번 놀란다.


개망나니 최욱이 순한 양이 되어서는 내 말에 순순히 복종한다.

이제 지옥구경을 하러 갈 차례다.


 기회에 재벌집 구경 한 번 해 보지 뭐.




민예린을 죽인 놈을 징치할 수 있다면 지옥문을 지키는 대가리 세 개 달린 강아지 발에다가 오줌을 싸고 돌아올 용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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