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지옥으로 가는 전야제 (1)
나는 김영호와의 재대결에서 승리를 했고, 비로소 미래 일보는 조용해졌다.
이것으로 끝이 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무슨 꼬투리를 잡고서, 무슨 핑계를 대며 또다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민예린의 얼굴이 밝지 않다.
카페를 정리하고 한적한 바닷가로 내려가겠다고 했는데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걸까?
그녀는 점점 말이 없어진다.
그녀에게 굳이 까닭을 묻지 않았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복싱협회에서는 나에게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킹스컵 국제 복싱 대회에 참가할 것을 종용한다.
올림픽을 위해서는 세계무대 경험이 필요하다는 자상한 설명을 덧 붙인다.
최 관장님은 시큰둥한 반응이시다.
"태국 킹스컵 대회를 왜 나가라는 거야? 올림픽이 몇 달도 남지 않았는데 말이야!"
"외국 선수들과 시합 경험이 필요하다는데요? 뭐, 일리가 있는지도..."
"다른 체급은 전부들 2진급을 내 보내면서 왜 하필 페더급만 국가대표인 우리 석현이를 보내려는 거야?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하지만 내가 국제 대회 경험이 없는 것은 사실이니 협회의 결정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괜히 그러다가 여론이 나빠지면 이번에는 또 누구랑 다시 국가대표 결정전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최 관장님이 이번 태국 킹스컵 대회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된 점이다.
경비 문제 때문이라는데 석연치는 않다.
돈 문제라!
역시 돈이란 놈이 만악의 근원이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따질 명분이 없어진다.
그래서 국가 대표 코칭 스텝의 관리 하에 대회를 치러야 한다.
S체대 김원기 교수의 제자들이라는데,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지난 대회 페더급 우승자가 내가 두 번이나 꺾은 바 있는 김영호 선배다.
더구나 세계적인 강호들이 출전하겠는가?
큰 무대인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대거 불참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다가 우승 못하면?
혹시라도 우승을 하지 못하면 엄청나게 많은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출전하는 페더급에 터무니없는 강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전통적인 복싱 강국 미국, 쿠바, 러시아가 아닌 킹스컵 대회가 열리는 태국에 말이다.
"강석현 선수! 소식 들었어?"
태국 킹스컵 대회 참가를 두고 한창 심란하던 체육관에 고일상 기자께서 찾아오셨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 킹스컵 대회에 엄청난 놈이 나온데! 그것도 페더급에서!"
카오스 갤럭사이!
태국 무에타이 챔피언이란다.
그런 그가 어쩌면 이번 태국 킹스컵 대회 페더급에 참가할지도 모른단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엄청난 강타자라는 거야! 오죽했으면 현역 무에타이 챔피언을 복서로 데뷔 시키려고 그걸까? 킹스컵을 거쳐 올림픽까지 치르고 바로 프로로 전향을 하기로 했다고 태국에서는 지금 난리도 아니라는 거야!"
"······."
나 같은 놈이 무에타이 챔피언을 알 리가 없다.
무에타이라면 발차기가 주 무기 아닌가?
복싱은 주먹으로 하는 거다.
그런 놈이 뭐가 문제라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무에타이 챔피언이라도 복싱은 초보인 놈이다.
그런 놈에게 당할 정도로 내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고일상 기자님의 지나친 걱정이다.
"고일상 기자님! 무에타이 챔피언이 아마추어 복싱대회에 참가해도 되는 겁니까?"
최 관장님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꼭 참가해야 하는 대회도 아닌데 괜히 나갔다가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을 하신다.
"그것 때문에 말이 많아요. 복싱으로는 아마추어니까 참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고요. 일단 태국에서 열리는 대회니까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지요."
"무에타이 선수 출신들 중에 강자들이 많아서,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군! 그놈 실력은 어떻답니까?"
"펀치력 하나는 엄청난 모양이에요. 태국 프로모터들이 갤럭사이에게 그렇게 끈질기게 구애를 했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확실한 물건이라는 거 아닐까요? 세계 챔피언을 만들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태국 프로모터 눈에는 슈퍼 챔피언 감이라는 거죠!"
"걱정이네요! 갑작스럽게 대회 참가가 되는 바람에 우리 석현이가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는데!"
나는 상관없다.
몸은 금방 만들 수 있다.
관장님께서 괜한 걱정을 하시는 거다.
태국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우습게 본 모든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다.
***
출국 날짜가 갑자기 변경 되었다.
내일 새벽 3시에 출발이다.
오늘 저녁까지 김포 공항으로 나오란다.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외국에 나간다.
아니, 비행기를 타 보는 것도 처음이다.
모든 것이 낯설다.
함께 태국으로 가는 선수단과도 서먹서먹하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대부분이 S체대 소속 선수들이다.
늘 내 곁을 지키던 최 관장님이 안 계시다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민예린과는 통화를 하지 못했다.
신경 쓸 일이 많아 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아마 내가 오늘 공항으로 간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야 하는 건 알지? 꼭 신발 벗어야 돼!"
"······."
그런가?
그러고 보니 신을 벗고 타는 게 맞는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뒤에서 킬킬대는 놈들을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덥지않은 농담이라도 받아주는게 선수들과 좋게 지내는 길 인건 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
나 혼자 다른 별에 떨어진 것 같다.
군중 속의 고독이다.
이런 고독감이 싫어서 사람들은 주류에 편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나는 이런 고독감이 싫지만은 않다.
이런 외로움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혼자다.
"강석현! 석현 씨!"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고독은 이미 저만치 달아나고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서 민예린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얼굴이다.
내가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김포 공항까지 달려온 모양이다.
좋기도 하고, 다른 선수들과 코칭스텝들이 보고 있어서 쑥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석현 씨! 이거 전해주러 왔어."
하얀 봉투 속에는 낯선 지폐 여러 장이 들어 있다.
미국 돈이다.
달러다.
그걸 전해주러 김포공항까지 달려 왔단다.
이 돈으로 할머니 선물도 사고, 관장님 선물도 사오라며 코치를 해준다.
나는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놈인가 보다.
***
해가 떨어진 김포 공항 밖은 깜깜하다.
출국 심사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주차해둔 그녀의 차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서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입술이 평소 보다 더 붉어 보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말을 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서두른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바보다.
돌 대가리다. 그
래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그저 그녀가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출국을 앞두고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짐승 같은 욕망만 솟아 오른다.
스커트 속 스타킹이 주는 까칠함이 나를 자극한다.
망설이지 않고 그 스타킹을 아래로 내린다.
그녀도 엉덩이를 살짝 들어 나를 돕는다.
스타킹 아래 그녀의 맨살은 보드랍기만 하다.
속살을 손으로 더듬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쁠 것 같았던 내 마음은 만족을 모른다.
이제 그녀의 팬티를 발목까지 끌어 내린다.
뽀얀 속살에 검은 풀숲이 매혹적인 대비를 이룬다.
내 손가락은 그녀의 뽀얀 속살 틈으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붉은 아랫입술로 파고든다.
내 손이 닿자마자 그녀의 음부는 금세 촉촉하게 젖어든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속살을 건드릴 때마다 그녀가 꿈틀거린다.
그 놰쇄적인 율동에 나는 더 이상 내 욕망을 억제할 수 없다.
이번에는 그녀의 하얀 손이 내 바지 속으로 파고든다.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내 욕망덩어리를 확인한 그녀의 눈빛에서도 욕망이 너울거린다.
서둘러서 내 바지와 팬츠를 끌어내린다.
그녀가 내 몸 위로 올라온다.
민예린 그녀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내 성기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마치 내 몸의 굴곡 하나하나까지 기억하려는 듯 꼼꼼하게 더듬는다.
내 재촉에 못 이겨 자신의 몸 속으로 내 성기를 밀어 넣는다.
우리는 곧 바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서로가 한 몸이 되어 서로를 탐했다.
아니, 한 몸이 되고나니 더더욱 서로를 원하게 되었다.
내 몸은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팽팽하게 팽창했고, 그녀의 깊은 속살이 그런 내 몸을 뜨겁게 감싼다.
그녀가 내 육체를 온 몸으로 빨아들이려 한다. 내 몸뚱아리가 그녀의 몸 속 깊이 녹아든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민예린과의 마지막 사랑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내가 왜 그렇게 서둘러 출국심사장으로 들어갔을까?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대신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 시간에 그녀를 조금 더 사랑해 주었어야 했다.
출국 따위를 서두르느라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녀를 공항에 남겨두는 대신, 보다 뜨겁게 보다 오래 사랑을 나누었어야 했다.
그녀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남김없이 작별 인사를 했어야 했다.
그 고운 젖가슴을 내 온 정성을 다해 애무하고 사랑했어야 마땅하다.
적어도 내가 사랑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 은밀하고 요염한 그녀의 아랫입술에 작별의 키스는 해 주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
그래서 미안하다.
머리도 나쁜 놈이 이기적이기까지 해서 나 밖에 몰랐다.
그 비행기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
복싱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홀로 두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바보다.
나는 최악의 남자다.
나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서울에 그녀를 남겨둔 채!
또 다른 악마가 링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태국 방콕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지옥으로 가는 비행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