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올림픽 대표 선발전 - 떠버리 복서와 S체대 마피아 (2) (26/88)



〈 26화 〉올림픽 대표 선발전 - 떠버리 복서와 S체대 마피아 (2)



아무튼 인터뷰는 끝났고 나는 다시 말이 없어진다.


그것이 내 평소 모습이니까.

그리고 최 관장님께서는 TV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한을 나에게 풀려고 하신다.


"야! 석현아! 너무 건방지게 인터뷰를   아닐까?"


"......"


"오죽 했으면 해설자가 말을 잊었겠냐? 상대인 장인욱도 강했지만 제가 오늘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모범답안이 아닐까?"

"......"


"그리고 결승 상대가 무려 김영호다! 아무리 사각의 링 위에 선후배가 없다지만 선배 대접은 해 줘야지! 선배랑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라든지, 응?"

"그건 너무 가식적이지 않나요?"

"어쭈! 가식이라? 우리 석현이가 그렇게 힘든 말도  알아?"

"......"

내가 생각한 것 보다 관장님은 화가 나신 모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철없는 행동이 걱정이 되신 것이다.

우리 최 관장님 마음을 내가 모르면 세상 누가 알까?

"뭐, 강석현 선수 말이 틀린 것도 없잖아요? 복서라면 그런 거친 맛이 있어야지! 너무 언론 입맛에 맞는 소리만 할 필요 없다구요."

어느새 곁에 와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일상 기자께서 내 편을 들어 주신다.


"아이고! 고 기자님! 여기는 선비의 나라 대한민국이에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 모르세요? 분명히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내가 복싱 주류 세력하고 사이가 좋지 않아서 석현이 이놈 앞길 막지는 않을까 걱정인데..."


"괜찮아! 강석현! 무하마드 알리를 봐! 만약 알리가 힘 있는 사람들 입맞대로 맞춰 줬으면 지금 처럼 복싱의 신이 될 수 있었을까? 천만에!"

"아이고! 고기자님! 말씀하신 무하마드 알리가 선수 자격 정지를 먹어서 황금 같은 전성기를 몇 년이나 날려 먹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아실만한 분이 애한테 바람을 넣으십니까? 나는 우리 석현이가 무하마드 알리처럼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가늘고 길게, 무난하게 세계 타이틀 10번 정도만 방어했으면  이상 여한이 없겠네!"

"......"


응? 기대가 너무  것 아닌가?


"강석현! 최 관장님 말씀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버려! 너는 슈퍼스타가 되야지!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는 주저하지 않는 진짜 슈퍼스타 말이야!"

"알겠습니다. 저는 고 기자님 말씀대로 무하마드 알리 같은 슈퍼 챔피언이 되어서 할 말은 하면서 10차 방어 까지 하겠습니다!"

"으하하! 고놈 말 잘하네! 우리 강석현 선수 다시 봤어! 나도 오늘 부로 강석현 팬이다!"

"참!  기자나 석현이 놈이나 둘 다 아주 죽이 잘 맞는구먼! 아무튼 좀 숙이고 삽시다. 그게 세상 사는 처세술 아니요?"

"그러는 최 관장님도 딱히 처세술이 좋은 양반은 아니잖소? 우린 셋  비슷한 놈들입니다. 그러니 죽이 맞는 거지! 으하하!"


오늘따라 고일상 기자가 기분이 좋다.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다.

식사라도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저어! 고 기자님!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나요?"

"허! 무슨 소리야? 식사 대접이라니? 밥을 사면  살이라도 많은 내가 사야지! 무슨 염치로 내가 밥을 얻어먹어?"

"저어, 그래도!"

"좋아! 우리 미래의 슈퍼스타 님과의 식사 자리를 마다한대서야 기자로서 자격이 없는 거지! 어디로 갈까? 밥은 내가 사는 걸로! O.K?"

다행이다.


 기자님과 식사를 하게 되어서 나도 기쁘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나?

이왕이면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데!

아는 곳이 하나도 없다.

아니, 아는 곳이 하나 밖에 없다.


시합에 나를 보러 온 사람이 또 있다.

민예린이다.

그녀가 내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진작부터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오늘은 자신감이 넘친 것인지 체육관 구석구석이 다 눈에 들어왔다.


내 눈에 띄지 않으려고 구석에서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눈에 너무도 선명히 보였다.

육 개월 만인가?


그녀를 본 지가 벌써 그렇게나 되었다.

보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믿었다.

민예린 그녀를 위해서도 말이다.


기껏 시합을 보러 와서도 그녀는 나를 만나지 않고 돌아갔다.


시합 전에도, 시합 후에도.


"고 기자님! 제가  가던 카페가 있어요. 거기로 가요!"





***



카페로 찾아온 나와 고일상 기자를  민예린이 당황한다.


내가 반가운 걸까?

아니면 부담스러운 걸까?

"오! 여기가 미래의 페더급 챔피언 강석현의 1호 팬 분께서 경영하는 가게인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 고일상 기잡니다."


"어머! 고 기자님! 오랜만이에요. 정말  오셨어요!  관장님도 같이 모시고 오지 않구!"

다행이다.


민예린은 고 기자님을 정말 반가이 맞이한다.

오늘 여기로 고 기자님을 모시고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 양반은 극구 사양하더라구요! 우리끼리 잘 먹고 오랍디다. 우리 강 선수 식사 신경 써 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던데요? 하하!"


오랜만에 민예린이 만든 순살 쇠고기 스테이크를 맛본다.

오늘은 내가   몰랐을 것이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르고 있었다.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음식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먹을  있는 음식이 아니였다.


고 기자님과는 주로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싱 선수라는 놈이 설마 알리를 모를까?

그의 현란한 풋 워크!


영리하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의 기가 막힌 경기 운영!

환상적인 테크닉 까지!

"강선수, 알리 잘 모르지?"

"아는데요? 그것도 잘!"

"복싱 선수 중에 알리만큼 유명한 선수가 없지? 지금의 F4 라는 슈퍼스타들도 알리에 비하긴 역부족이지!"

"F4요?"

"Fabulous 4 라고 그래. 외국 복싱 기자들이 그렇게 불러. 괴물같은 4명의 슈퍼스타! 슈거레이 레너드, 마빈 헤글러, 토마스 헌즈, 로베르토 듀란을 F4 라고 해. 잘 알잖아? 그런 슈퍼스타들을 뛰어넘는게 바로 무하마드 알리야!"


설마 그들을 모를까?


나의 우상들인데!


아니 그들은 전 세계 복싱팬들의 우상이다.

그들의 물고 물리는 빅 매치들이 현재의 복싱계를 주도하고 있다.


"모두가  아는 것 같지만 누구도  모르는 것이 바로 무하마드 알리지. 그러면 케시어스 클레이가 누군지는 알지?"

"그, 글쎄요? 잘 모르는 선수인데..."

"하하! 그럴  알았어! 케시어스 클레이가 바로 무하마드 알리야. 세계 헤비급 챔피언 케시어스 클레이가 이슬람 교로 개종을 하고는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을 했지. 백인들이 붙여준 노예의 이름은 쓰지 않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


"무하마드 알리가 위대한 것은 자신이 싸워야  상대를 정확히 포착해 냈다는 점이야. 그의 상대는 복서들이 아니었어. 차별, 불평등, 불합리, 전쟁, 국가의 폭력! 그런 적들과의 싸움을 결코 피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 적들을 복싱판으로 끌여들였지. 거기에 사람들이 열광한 거야!"


"......"


고 기자님의 알리에 관한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굳이 나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이제 결승전이지? 자타가 공인하는 아마추어 무대 국내 페더급 1인자 김영호! 이길 자신 있어?"


"네!"


"하하! 대답  번 빨라서 좋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어! 멋져!"


"......"


내가  건방졌나?

말을 좀 조심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강석현 선수가 이긴다고 봐!""


"네?"


나야 자신 있다.


하지만 복싱을 아는 누구에게 물어도 답은 김영호다.


최 관장님조차도 내가 김영호에게 이길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으신다.

그저 내가 좋은 경험을 하고, 패배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바라고 계시는 눈치다.


"솔직하게 말할게! 사실 강석현 선수가 페더급 최강 김영호를 이긴다고 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거야! 승자가 된다는 전제하에서만 의미 있는 이야기야. 막연한 짐작이긴 하지만 아마  말이 맞을 확률이 높을걸?"


"무슨 말씀이신지...?"

"만약 김영호를 이기게 되면 그 즉시 S체대 김원기 교수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해 올 거야!"

"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이라니오?"

 기자님이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국가대표 자리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S체대로 진학을 하라고 하겠지. 전액 장학금에 두둑한 격려금까지 보장하면서!"


"에이, 말도 안됩니다. 김 교수 그 사람이 저를 얼마나 싫어하는데요?"

"강 선수는 아직 세상을 몰라! 그건 강석현이 장인욱을 이기기 전의 이야기야. 만약 김영호까지 이기고 나면 김원기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될걸?"


"설마!"

"지금껏 보지 못한 고결한 인품의 신사가  명 눈앞에 나타날 거야! 그 자상한 신사분이 강석현 선수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겠지. 지금껏  선수가 알던 김원기 교수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일걸? 그건 내가 장담하지!"

"아무리 그래도 저는 S 체대엔  갑니다. 끝까지  관장님이랑 함께 할 겁니다."


"역시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야 강석현이지. 내가  선수를 좋아하는 건 강석현의 그런 면을 알기 때문이야."


"......"


"강석현 선수! 대신, 이건 알고 있어야 해! 김 교수의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부터 지옥을 보게  거야!"



"저는 최 관장님과 함께 갈 겁니다. 올림픽을 거쳐 프로무대까지요!"

"......"

"저를 키워주셨고, 앞으로도 저를 가르쳐 주실 사람은 이 세상에  관장님 밖에 없습니다. 최 관장님께 배우지 못했다면 돌대가리에 약골인 저 같은 놈은 오늘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럴 줄 알았어.  예상 그대로군! 내가 강석현을 좀 알지!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는 있어야 해. 그리고 생각은  봐!"

"두 번, 아니 백 번을 생각해도 답은 같습니다. 저는 최 관장님이랑 함께 갑니다!"

"부럽군, 부러워!"


"네?"


"최 관장 말이야."


"....."

"실은 이 이야기를 최 관장한테도 했어."

"그런...!"

"아! 놀랄 거 없어. 최 관장이라고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를까? 최 관장은 강석현을 언제든지 놓아 줄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그러더군!"


"......"

"강석현 선수! 본인이 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박선호 미래일보 전략기획실장 말이야."

"아, 네!"

"강석현이 천하의 미래일보 후계자 박선호의 불알을 터뜨릴  했다는 것은 언론계에서 아는 사람들은  알아!"


멀리서 우리를 슬쩍슬쩍 지켜보던 민예린이 입을 가리고는 살짝 웃는다.

민예린, 그녀도 알고 있었나 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고 기자의 말을 인정해야 할  같다.


"방심하지 마! 박선호는 반드시 앙갚음을 하는 놈이야."


"......"

"강 선수는 있는 놈들이 얼마나 집요한지 모르지? 놈들은 보복할 타이밍을 잘 알아. 차도살인(借刀殺人)이란 말 알지?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칼을 들이밀걸?"

나도 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


 힘을 기르는  외에는 다른 방법을 모른다.

아! 솔직히 말하자면 차도살인, 그 말 만은 모르겠다.


누가 기자 양반 아니랄까 봐 꼭 배운 티를 낸다.

"강 선수가 내 동생 같으면 그 놈 한테 달려가 싹싹 빌라고 조언을 하고 싶지만, 천하의 강석현이 그럴 리는 없겠지?"

"네!"


"대답이 너무 빨라! 진정한 강자는 여유가 있어야 해! 생각은 깊게, 행동은 천천히! 말은 더 천천히! 아니, 가능하면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

"내 말이 이해하기 어렵나? 하긴 겨우 고등학교 3학년 아닌가?"


"곧 졸업 합니다. 이미 주민등록증도 받았어요. 성인이에요!"

"아, 내가 강석현 선수를 무시해서 한 말은 아니야. 오해는 하지 말라구! 알지 내 마음?"

"저도 압니다.  기자님이 저를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란 것두."

사실이다.


고일상 기자는 지금껏   편이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관장님과  기자의 말은 새겨들어야 한다.

"고맙군! 그리고, 부러워! 그 젊음이."


"......"


"이런! 내가 시간을 너무 빼앗았군. 오늘 즐거웠어!"

"아니! 괜찮습니다. 저도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 아니야!  선수는 괜찮아도, 강 선수 팬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걸? 내가 여기에 조금만  있으면 노골적으로 눈치를 줄 것 같은데?"

아니다.

민예린과는 이제 좋은 누나 동생일 뿐이다.


나 같은 것은!


"혹시 제가 앞으로 난처한 일이 있으면 고 기자님께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머리는 나빠도 은혜를 잊는 놈은 아닙니다.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겁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고일상 기자 정도면 훌륭한 우군이다.


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


"나는 힘없는 기자 나부랭이야! 쓰레기 같은 놈이지! 나 같이 입만 살아 있는 놈은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위에서 찍어 누르면 결국 가진 놈들 편이 될 수밖에 없는 놈이라구! 내가 이 바닥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강 선수가 안다면 나 같은 놈에게 도움 따위는 요청하지 않을걸?"


"......"

"아! 내가 나도 모르게 너무 심각했군! 미안해! 내 그런 소심한 도움이라도 필요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부탁은 해 봐! 물론 그럴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고일상 기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스카치 위스키를 그대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는 자리를 뜬다.


카페는 벌써 파장 분위기다.



민예린이 좀 달라진 것 같다.


뭐랄까?

조금은  차분해졌다고 할까?

예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조금은 사라진  같다.


어쩌면 그것이 내 탓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어렵다.


그리고 사랑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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